Golden Spoon Investment Portfolio RAW novel - Chapter (188)
금수저 투자백서 188화(188/231)
188. 가능하면 오래 버텨줬으면 좋겠는데 말이야.
일본 요코하나 닛산 자동차 본사.
연락을 받고 황급히 재무팀 사무실로 내려온 야마모토 다이토 이사는 한쪽 벽에 설치된 상황판을 보곤 그대로 몸이 얼어붙었다.
[USD/JPY : 100.17 +1.06]설마했던 100엔의 벽이 너무나도 허무하게 무너져 버린 모습에 야마모토 이사는 눈앞이 아찔해졌다.
이내 현실을 부정이라도 하듯 벌겋게 상기된 얼굴로 버럭 고함을 내질렀다.
“이게 도대체 어떻게 된 거야!”
잔뜩 성이 난 모습에 직원들은 괜히 불똥이 튈까 봐 다들 몸을 사리며 눈치만 보았다.
그런 와중에 어쩔 수 없이 나서게 된 가쿠다 과장이 손수건으로 이마에 맺힌 땀을 닦아내며 당황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갑자기 엔화 매도 물량이 쏟아지는 바람에 달러-엔 환율이 100엔을 넘기고 말았습니다.”
“제기랄, 정말 환장하겠군!”
야마모토 이사가 발을 쿵 구르며 욕설을 내뱉자 앞에 서 있던 가쿠다 과장이 움찔하고 눈을 굴렸다.
뚜르르르!
그때 전화벨이 큰 소리로 울렸다.
갈색 유니폼을 입은 여직원이 얼른 수화기를 집어 들었다.
“네. 닛산 자동차 재무팀 사코다입니다.”
여직원은 수화기 너머에서 들리는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며 잔뜩 긴장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아…… 네. 알겠습니다.”
여직원이 수화기를 한쪽 손으로 막은 채 야마모토 이사를 조심스레 불렀다.
“저, 이사님.”
“뭐야!”
짜증이 머리끝까지 치솟은 야마모토 이사가 큰소리를 치며 돌아봤다.
그러자 여직원이 잔뜩 주눅 든 얼굴로 어깨를 움츠렸다.
“모, 모리야마 부장님 전화인데 어떻게 할까요.”
“모리야마? 어서 이리 내!”
야마모토 이사가 다급히 다가와 수화기를 거칠게 낚아챘다.
“나야. 옵션을 해지하러 간 건 어떻게 됐나?”
달러-엔화 환율이 100엔을 넘겼지만 그 전에 계약 해지를 했다면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
그러면 야마모토 이사도 본사 경영진의 문책을 피할 수 있을 터였다.
아니, 어쩌면 위기를 슬기롭게 잘 넘겼다고 칭찬을 받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그렇게 마지막 한 가닥 희망을 건 야마모토 이사의 기대와 달리 모리야마 부장의 목소리는 침통함으로 가득 차 있었다.
[…… 계약 해지를 못 했습니다.]마지막 희망마저 사라진 야마모토 이사는 수화기를 귀에 댄 채 절망에 찬 표정을 지었다.
이제 꼼짝없이 녹인(Knock-In) 옵션이 발동돼 거액의 환손실을 입게 됐으니 그럴 수밖에 없었다.
“이런 빌어먹을…….”
야마모토 이사는 수화기를 꽉 움켜쥐고는 버럭 고함을 내질렀다.
“어떻게든 설득해서 옵션 계약을 해지시키라고 했는데 도대체 뭘 한 거야!”
야마모토 이사의 입에서 온갖 폭언이 쏟아져 나왔다.
이런 천하에 쓸모없는 놈이라느니, 회사가 망하면 다 자네 탓이라느니 아무튼 차마 들어주지 못할 말들이었다.
거의 모욕에 가까운 폭언을 고스란히 듣게 된 모리야마 부장은 기가 막혀 말이 나오지 않았다.
몇 달 전부터 환율이 급격히 엔저로 돌아서는 분위기에 다소 손해를 보더라도 엘도라도 펀드와 맺은 옵션 계약을 청산하는 게 어떻겠냐고 여러 차례 설득했던 게 바로 모리야마 부장이었다.
하지만 야마모토 이사는 그때마다 문제가 없을 거라며 귓등으로 흘려듣고 넘겼지 않았던가.
계속 괜찮을 거라고 하다가 막상 일이 터지니 괜히 화풀이를 하며 책임을 떠넘기는 모습에 모리야마 부장은 어처구니가 없었다.
서운함을 넘어 깊은 배신감까지 느낀 모리야마 부장이 딱딱하게 굳은 목소리로 말했다.
[해약금 액수에 대한 의견까지 나누며 상당한 진전이 있었지만, 협상 중에 환율이 100엔을 넘겨 버리는 바람에 모두 허사가 되어 버렸습니다.]“그 전에 서둘러서 계약을 해지했어야지!”
그러자 더 참지 못한 모리야마 부장이 덩달아 목소리를 높였다.
“뭐야? 이렇게 된 게 나 때문이라는 건가!”
그래! 다 당신 탓이라고!
시원하게 소리를 내지르고 싶었지만 그랬다가는 회사 생활도 끝일 게 분명했다.
모리야마 부장은 분한 마음을 애써 삼키며 사과했다.
[…… 죄송합니다.]하지만 야마모토 이사는 노골적으로 언짢은 표정을 지은 채 차가운 말투로 대꾸했다.
“당장 회사로 돌아와!”
그는 대답도 듣지 않고 그대로 수화기를 부숴 버릴 듯 세게 내려놨다.
“멍청한 놈 같으니.”
기껏 엘도라도 펀드까지 찾아갔으면 담판을 짓고 올 것이지 어떻게 아무것도 못 하고 돌아온단 말인가.
이를 벅벅 가는 야마모토 이사의 모습에 재무팀 직원들은 다들 숨을 죽인 채 눈치만 보았다.
그때 단발머리를 한 여직원 한 명이 살얼음판 같은 분위기에 쭈뼛거리며 사무실 안으로 들어왔다.
그러고는 여전히 씩씩거리며 콧바람을 내뿜고 있는 야마모토 이사한테 다가가 조심스럽게 말을 걸었다.
“야마모토 이사님.”
“뭐야!”
야마모토 이사가 고개를 홱 돌려 사나운 눈빛으로 여직원을 노려봤다.
양손을 앞으로 모은 여직원은 잔뜩 위축된 모습으로 더듬거리며 용건을 꺼냈다.
“저, 사장님이 급히 찾으십니다.”
“사장님이?”
흠칫한 야마모토 이사가 미간을 좁히고 물었다.
“네. 지금 바로 올라오시랍니다.”
보나마나 달러-엔 환율이 100엔을 넘긴 걸 보고 그를 호출한 것일 터였다.
얼굴을 보자마자 불호령이 떨어질 게 불 보듯 뻔했기에 야마모토 이사의 얼굴이 사정없이 일그러졌다.
“젠장!”
이날 달러-엔 환율이 100엔을 넘기자 닛산 자동차뿐만 아니라 엘도라도 펀드와 옵션 계약을 맺었던 많은 일본 기업들이 발칵 뒤집히며 황급히 대책 회의를 가졌다.
* * *
서울 한남동.
어느새 많이 쌀쌀해진 날씨에 넓은 정원 담벼락을 따라 심어놓은 단풍나무들이 붉게 물이 들었다.
면바지에 얇은 캐시미어 가디건을 입은 석원은 정원등이 밝게 켜져 있는 파라솔 테이블 의자에 앉아 뉴욕에 있는 랜든과 통화를 하고 있었다.
[오늘 하루 일본 지사 전화통이 아주 불이 났다고 합니다.]석원은 무릎 위에 올라와 있는 어미 냥이를 손으로 쓰다듬으며 작게 미소를 지었다.
“달러-엔 환율이 100엔까지 떨어지면서 녹인 옵션이 발동됐으니 그럴 만도 하죠.”
[하하하. 맞습니다. 계약 기간 안에 절대 그럴 일이 없을 거라고 생각했을 텐데. 다들 지금쯤 속이 새까맣게 타들어 가고 있을 겁니다.]엔화가 떨어지면 수출 경쟁력이 높아져 기업들이 환호하는 것이 정상이었다.
그런데 생각지도 못한 옵션 계약에 발목이 잡혀 환차익을 다 까먹는 건 물론이고 거기에 돈을 더 얹어 줘 큰 손해를 보게 생겼으니 당황하지 않을 수 없었다.
“엔화가 떨어지면 떨어질수록 손해가 기하급수적으로 커질 테니 머릿속이 아주 복잡할 거예요.”
[분명 그럴 겁니다.]석원의 쓰다듬는 솜씨에 만족한 어미 냥이가 골골거리는 소리를 내며 몸을 발라당 뒤집었다.
“냐앙.”
더 해달라고 말하는 것 같은 모습에 석원도 피식 웃고 말았다.
“옵션을 계약한 일본 업체들은 어떻게 반응하고 있어요?”
[아직은 방향을 잡지 못하고 허둥대는 모습을 보이고 있습니다만, 포터 지사장의 말에 따르면 계약 기한이 몇 달 남아 있으니 조금 더 상황을 지켜보려고 할 것 같다고 합니다.]일본 기업들이 무슨 생각을 하는 건지 바로 알아차린 석원은 가볍게 코웃음을 쳤다.
“녹인 옵션이 발동된 건 이제 돌이킬 수 없으니까. 엔화가 지금보다 오르길 기다렸다가 환전해서 손해를 최대한 줄이려는 속셈인가 보네요.”
계약에 따라 환율이 단 한 번이라도 상한선인 달러당 100엔을 넘긴다면 무조건 약속한 금액의 네 배에 해당하는 달러를 약정 환율인 90엔에 환전을 해야만 했다.
대신 정해진 날짜는 따로 없었기에 계약 만료 전까지만 달러를 엔화로 바꾸면 됐다.
[아무래도 언제 환전을 하느냐에 따라서 손해액이 크게 달라질 테니 눈치를 볼 수밖에 없을 겁니다.]당장 닛산 자동차만 해도 옵션 계약액이 5억 달러나 됐다.
이번에 녹인 옵션 조건이 충족되면서 계약액의 네 배인 20억 달러를 약정 환율인 90엔에 바꿔야 했다.
그러니 조금이라도 손해를 줄이기 위해서는 엔화가 올라왔을 때 환전하는 방법뿐이었다.
“냐아앙.”
태평하게 무릎 위에 늘어진 어미 고양이가 입을 크게 벌리고 하품했다.
석원은 위로 뾰족하게 솟은 귀와 부드러운 털을 쓰다듬어주면서 휴대폰 너머에 있는 랜든에게 말했다.
“나름 잔머리를 굴리는 모양이지만 시간이 갈수록 크게 후회하게 될 거예요.”
[엔화가 여기서 더 떨어질 거라고 보시는 겁니까?]“지난번에도 얘기했지만 이번 엔저는 미국과 일본 정부의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져서 인위적으로 환율 방향을 틀어 만들어내고 있는 거예요. 두 강대국이 나서 판을 바꾸는 건데 고작 이 정도 환율에 만족할 리가 없죠.”
석원은 손에 든 휴대폰을 고쳐 쥐며 이야기를 계속했다.
“조지 해밀턴이 이끄는 퀀텀 펀드가 엔화를 공격하기 전까지 달러-엔 환율이 90엔대 후반에서 꽤 오랫동안 안정적으로 유지됐던 걸 생각하면 이제 겨우 원래 수준으로 돌아온 것에 불과할 거예요.”
[말씀을 듣고 보니 확실히 그렇군요.]“역플라자 합의로 방향을 거꾸로 튼 이상 환율을 훨씬 더 아래로 끌어내리려고 할 것이 분명해요.”
그러자 랜든의 목소리가 조심스러워졌다.
[그럼 엔이 어디까지 떨어질 거라고 보십니까?]석원은 예전 기억을 조금 더듬었다.
“길게 보면 훨씬 더 많이 하락하겠지만 단기적으로 달러당 110엔을 볼 수 있을 거예요.”
[말씀대로 된다면 옵션 계약을 한 기업들의 손해가 정말 눈덩이처럼 불어나겠군요.]“그러니까 스스로 더 깊은 수렁으로 걸어 들어가고 있다는 거예요.”
석원이 어깨를 으쓱였다.
“뭐 그럴수록 우리가 가져갈 환차익은 더욱 커지는 거니까 손해 볼 것이 없죠.”
[수익이 늘어나는 건 좋습니다만…… 기업들의 피해가 너무 커지면 일본 정부가 중간에 나서서 개입하지 않을지 조금 걱정이 되는군요.]지금 당장은 기업별로 각각 계약을 했기 때문에 얼마나 많은 회사가 옵션을 샀고 액수가 어느 정도인지 엘도라도 펀드 외에는 정확한 숫자를 알 수가 없었다.
하지만 피해액이 눈덩이처럼 불어나고 닛산 자동차 같은 큰 기업들이 옵션 계약으로 엄청난 환손실을 입은 것이 언론을 통해 알려진다면 일본 정부가 나설 가능성이 충분히 있었다.
그로 인해 수익이 축소되거나 여러 가지 골치 아픈 상황이 벌어질 수도 있었지만 석원은 전혀 걱정하는 기색이 아니었다.
“옵션 계약서에 일본 정부가 꼬투리를 잡을 만한 것이 있어요?”
[말도 안 되는 억지를 부린다면 모를까 법적으로 문제가 될 만한 건 전혀 없습니다. 보스께서 특별히 신경을 쓰라고 하셔서 대형 로펌 두 곳에 의뢰해 꼼꼼하게 검토를 마친 계약서이니 그런 걱정은 하지 않으셔도 됩니다.]“그럼 염려할 필요가 없겠네요. 그리고 일본 정부가 압박을 주려고 해도 엘도라도 펀드가 미국에 기반을 두고 있는 만큼 섣불리 건드릴 수 없을 거예요.”
전 세계의 모든 돈이 월스트리트로 모이기도 했지만 석원이 굳이 미국에 펀드를 세운 이유가 바로 최강 패권국인 미국의 후광을 등에 업기 위해서였다.
‘엘도라도 펀드가 미국이 아니라 한국에 기반을 뒀다면 일본 정부도 자국 기업들이 피해를 입는 걸 그냥 두고 보지 않고 망설임 없이 개입했을 테지.’
그건 일본뿐만 아니라 앞으로 석원과 엘도라도 펀드가 사업을 벌일 모든 나라들이 다 똑같았다.
‘원래 돈이 얽힌 일일수록 뒷배가 든든해야 하는 법이거든.’
석원은 그렇게 생각하며 구운 치즈처럼 길게 늘어진 어미 고양이가 아래로 떨어지지 않게 한 손으로 받쳤다.
말랑거리는 뱃살이 제법 묵직한 걸 보니 사료를 좀 줄여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이어트라도 시켜야 되나.
“그래도 혹시 모르니까 일본 정부와 정계 유력 인사들한테 적당히 약을 쳐두도록 해요.”
[알겠습니다. 엔화가 더 하락할 거라고 하셨으니 엔화 숏 포지션도 그대로 두시겠군요.]“물론이에요. 수익이 더 날 텐데 그걸 굳이 지금 정리할 이유는 없죠.”
[맞는 말씀입니다.]그 뒤로도 한참 동안 더 이야기를 나누고 통화를 끝낸 석원은 흰 이를 드러내며 웃었다.
“가능하면 최대한 이를 악물고 오래 버텨줬으면 좋겠는데 말이야.”
옵션 계약을 한 일본 기업들이 환전을 미루고 버티면 버틸수록 그에게는 이득이었다.
“냥?”
어미 고양이가 고개를 쳐들고 짧게 울음소리를 냈다.
통화하는 내내 앉아서 쓰다듬어줬는데도 아직 부족한 모양이었다.
“슬슬 그만할까?”
“냐앍.”
말도 안 된다는 듯 어미 냥이가 꼬리로 석원의 팔을 툭툭 쳐대며 빨리하던 거 계속하라고 재촉했다.
강아지한텐 주인님인데 고양이 키우는 사람은 집사라고 하더니.
아예 상전이 따로 없는 모습에 석원은 하하 소리를 내며 웃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