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olden Spoon Investment Portfolio RAW novel - Chapter (193)
금수저 투자백서 193화(193/231)
193. 이것 좀 보세요. 어머니.
서울 한남동.
조덕례 여사는 밝은 햇살이 들어오는 거실 소파에 앉아 우아하게 홍차를 마시면서 오후의 여유를 만끽했다.
한 손에 들린 건 작년에 노벨 문학상을 수상한 일본 작가의 장편 소설이었다.
“사모님.”
그때 군산댁이 주방에서 나와 물에 젖은 손을 앞치마에 닦으면서 다가와 물었다.
“오늘 저녁 메뉴는 뭘로 할까요?”
“그러게요. 아, 어제 꽃게가 들어왔다고 했죠?”
“네. 백령도에서 잡은 알이 가득 찬 암꽃게들이에요. 업자도 이렇게 상태가 좋고 싱싱한 건 드물다고 엄청 자랑하더라고요.”
조덕례 여사가 잘됐다는 듯 말했다.
“회장님이 꽃게탕을 좋아하시니까 그걸로 탕을 끓이죠.”
“쪄서 먹는 건 어떠세요? 살이 통통해서 그것도 맛있을 텐데.”
“발라먹는 게 귀찮다고 매번 투덜거리잖아요. 그냥 탕으로 해요.”
“알겠습니다.”
그때 띵동하고 현관 벨소리가 울렸다.
군산댁이 얼른 벽에 붙어 있는 인터폰 수화기를 집어들고 물었다.
“누구세요? 아. 네. 잠시만요.”
그러더니 이내 버튼을 눌러 대문을 열어줬다.
“석원이에요? 아직 퇴근하려면 멀었을 텐데.”
“아뇨. 작은 사모님이세요.”
“어머. 걔가 어쩐 일이지.”
오늘 온다는 연락이 없었기에 조덕례 여사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잠시 뒤 현관 중문을 열고 샤넬백을 든 최보경이 안으로 들어섰다.
“작은 사모님, 어서 오세요.”
“오랜만이에요.”
가볍게 인사를 하며 하이힐을 벗은 최보경은 거실에 있는 조덕례 여사를 보자마자 활짝 웃었다.
“어머니! 저 왔어요.”
조덕례 여사는 손에 든 소설책을 덮어 탁자 위에 내려놓으며 며느리를 맞이했다.
“전화도 없이 어쩐 일이니?”
“아이. 시댁에 오는 건데 손님처럼 전화를 하고 와야 되나요. 저흰 가족이잖아요.”
옆에 딱 붙어서 애교를 떨자 조덕례 여사도 내심 싫진 않은지 살짝 미소를 지었다.
안 그래도 남자들 밖에 없어서 칙칙한데 며느리라도 이렇게 밝고 살가운 성격이라서 다행이었다.
“차는 뭘로 마실래?”
“그냥 차가운 커피요.”
그러자 조덕레 여사가 군산댁을 향해 말했다.
“아이스 커피로 한 잔 가져다 줄래요?”
“네. 사모님.”
군산댁이 대답하며 주방으로 향했다.
“정말 무슨 일로 온 거니?”
“어머니한테 보여드릴 것이 있어서요. 그런데 도련님은 집에 안 계세요?”
“이 시간이면 회사에 있지. 집에 있겠니.”
“아, 그렇겠네요. 직접 물어보고 싶었는데 아쉽네.”
“뭐가?”
“이것 좀 보세요. 어머니.”
최보경이 무릎 위에 올려둔 샤넬백을 들고 헤어샵에서 빌려온 보그 잡지를 꺼내 펼쳤다.
“갑자기 웬 잡지를 가져왔어.”
“여기 보세요. 여기! 구찌 모델로 나온 남자 모델이 우리 도련님하고 너무 닮지 않았어요?”
“응?”
며느리가 호들갑을 떨며 하는 말에 조덕례 여사가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석원이가 연예인도 아닌데 갑자기 무슨 잡지 화보야. 그냥 닮은 사람이겠지…….으응?”
웃으면서 화보 페이지를 보던 조덕례 여사의 눈동자가 점점 커졌다.
금발 머리의 멋진 여자 모델 옆에 함께 포즈를 취하고 있는 동양인 남자 모델의 얼굴이 어쩐지 눈에 익었기 때문이었다.
“?”
내 아들…… 맞는데?
화보 촬영을 위해 헤어 스타일을 바꾸고 메이크업도 했지만 아들 얼굴을 못 알아볼 리가 없었다.
“아니 얘가 왜 여기에 있어!”
“그렇죠? 도련님 맞죠? 저도 처음에 보고 깜짝 놀랐다니까요!”
그러고 있을 때 군산댁이 얼음을 넣은 커피를 가져와 테이블 위에 내려놨다.
요란하게 떠들어대는 소리를 들었는지 힐끔 조덕례 여사가 들고 있는 잡지를 쳐다본 군산댁의 눈도 소리 없이 커졌다.
“이게 어떻게 된 거니?”
놀란 가슴을 겨우 진정시킨 조덕례 여사가 최보경의 손을 덥석 잡고 물었다.
“저도 오늘 우연히 단골 헤어샵에 머리를 하러 갔다가 보게 됐어요. 미국 잡지라서 아마 본 사람은 적을 텐데…… 그러니까 소문이 안 났나?”
“맙소사. 아닌 밤중에 홍두깨도 아니고 도대체 무슨 일이야.”
조덕례 여사가 이마를 짚고는 다시 잡지에 실린 사진을 쳐다봤다.
두 번 세 번 쳐다봐도 역시 자신의 아들이 맞았다.
“안 되겠다. 어떻게 된 일인지 알아봐야겠어.”
“도련님한테 전화하시려고요?”
“그래. 군산댁, 여기 전화기 좀 줘봐요.”
“네.”
조덕례 여사는 군산댁한테서 무선 전화기를 받아들곤 얼른 석원에게 전화를 걸었다.
그 옆에서 최보경이 흥미진진한 얼굴로 커피를 쪽 빨아 먹으며 귀를 기울였다.
[네 박석원입니다.]“나다.”
[어? 어머니가 어쩐 일이세요.]“지금 바쁘니?”
[아니에요. 하실 말씀 있으시면 하세요.]조덕례 여사는 테이블 위에 펼쳐 놓은 잡지를 내려다보곤 크게 심호흡을 했다.
“너 혹시 구찌 모델 사진을 찍은 적 있니?”
에둘러 말하지 않고 단도직입적으로 묻자 수화기 너머에서 당황한 기색이 느껴졌다.
[어머니가 그걸 어떻게 아셨어요?]“세상에…….”
혹시나 했는데 진짜 둘째 아들이 맞았다는 사실에 조덕례 여사가 눈을 질끈 감았다.
옆에서 귀를 쫑긋 세우고 있던 최보경도 손으로 입을 가리고 어머 하며 작게 감탄했다.
“너 도대체 어쩌려고 이런 사진을 찍은 거야!”
[아…… 어쩌다 보니 그렇게 됐어요.]“그러니까 그 이유가 뭐냐고?”
조덕례 여사가 인상을 찡그리며 물었다.
[말씀드리려면 사연이 기니까 자세한 건 퇴근해서 설명드릴게요.]“너…….”
묻고 싶은 게 산더미 같았지만 조덕례 여사는 일단 참았다.
“알았으니까 빨리 들어오렴.”
[네. 그럴게요.]조덕례 여사는 더 이상 추궁하지 않고 무선 전화기를 내려놨다.
“도련님이 맞다고 하시죠?”
“그래.”
자기 아들이 연예인처럼 잡지에 실릴 줄은 상상도 못 한 조덕례 여사가 복잡한 얼굴로 대답했다.
“어머 어머! 이런 쪽에 전혀 관심이 없으신 것 같더니 갑자기 구찌 모델은 어떻게 하신 거래요?”
나도 그걸 알고 싶다는 말이 목구멍까지 올라왔지만 가까스로 참아낸 조덕례 여사가 끙 소리를 내며 이마를 짚었다.
그런 시어머니의 반응에 최보경이 살짝 눈치를 살필 때 안방 문이 덜컥 열리면서 박태홍 회장이 나왔다.
“무슨 일인데 집이 이렇게 시끄러워.”
“아버님! 집에 계셨어요.”
최보경이 얼른 몸을 일으켜서 인사했다.
“우리 며느리 왔구나. 그런데 당신은 왜 그런 표정이야?”
“별일 아니에요.”
남편이 알면 크게 화를 낼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조덕례 여사가 애써 모른 척했다.
회사 일을 소홀히 한다며 미국에 출장 다니는 것도 못마땅해하는 남편인데 잔뜩 멋 부린 모습으로 잡지 화보를 찍은 사실이 들키면 무슨 말이 나올지 몰랐다.
“별일이 아닌 게 아닌 것 같은데.”
박태홍 회장이 그런 아내를 스윽 보더니 가운데 상석으로 가서 앉았다.
“그게…….”
조덕례 여사는 잠시 머뭇거리다가 이내 한숨을 내쉬었다.
어차피 지금 숨기더라도 얼마 지나지 않아 비서실을 통해 석원이 구찌 화보를 찍은 걸 알게 될 터였다.
남의 입으로 듣느니 차라리 바로 말해주는 게 더 나을 것 같다고 생각하며 조덕례 여사가 테이블 위에 놓여 있던 보그 잡지를 박태홍 회장에게 보여줬다.
“이것 좀 봐요.”
“뭔데 그래.”
잡지에 시선을 준 박태홍 회장이 일순 표정을 굳혔다.
“응? 이거 석원이 녀석이잖아.”
“맞아요.”
조덕례 여사는 남편이 크게 화를 낼까 봐 잔뜩 긴장한 채로 대답했다.
함께 있던 최보경도 시아버지가 화를 내면 얼마나 무서운지 알았기에 마른침을 삼키며 연신 눈치를 봤다.
긴장된 분위기 속에 잡지를 집어 들어 자세히 살핀 박태홍 회장이 이내 피식 웃음을 터트렸다.
“녀석. 날 닮아서 이목구비가 시원시원하고 남자답게 생긴 것이 영화배우라고 해도 믿을 것 같네.”
“어쩌다 한번 경험 삼아 해본 걸 수도 있으니까 당신도 너무 화내지 말…… 지금 뭐라고 했어요?”
재빠르게 석원을 변호하던 조덕례 여사가 눈을 깜빡이며 쳐다봤다.
며느리인 최보경 역시 당장 불벼락이 떨어질 줄 알았는데 전혀 생각지도 못한 말이 나오자 잘못 들었나 싶을 정도였다.
“원판이 더 괜찮은데 사진빨이 잘 안 받는 것 같구만.”
박태홍 회장이 태평한 얼굴로 손에 든 보그 잡지를 내려놨다.
멍하니 남편을 쳐다보던 조덕례 여사는 믿을 수 없다는 듯 입을 벌렸다.
“당신 지금 뭐라고 했어요?”
“왜?”
뒤로 몸을 기댄 박태홍 회장이 오히려 이상하다는 눈으로 물었다.
“아니 이걸 보고 화를 안 낸다고요?”
“내가 뭐 아무 때나 벌컥벌컥 화를 내는 놀부 영감인 줄 알아.”
조덕례 여사는 그럼 아니냐는 말이 저절로 튀어나오려는 걸 겨우 참았다.
“혹시 모델로 사진을 찍은 걸 알고 있었어요.”
“아니. 나도 당신이 잡지를 보여주는 바람에 처음 알았지.”
그러자 조덕례 여사가 더욱 이해가 안 된다는 듯 물었다.
“그런데도 아무렇지 않아요.”
조용히 눈치를 보고 앉아 있던 최보경도 머리를 끄덕거리다가 아차 하며 얼른 행동을 멈췄다.
다행히 박태홍 회장의 눈에 띄진 않았는지 별 반응이 없었다.
“워낙 어디로 튈지 모르는 녀석이잖아. 이번에도 어쩌다가 화보 사진을 찍게 된 거겠지. 키도 크고 얼굴도 잘 생겼으니 모델하자는 소리가 나왔을 법도 해.”
“말도 안 돼. 당신이 언제부터 그렇게 아량이 넓었어요?”
조덕례 여사가 팔짱을 끼고는 수상하다는 시선으로 남편을 쳐다봤다.
“나야 항상 이랬잖아.”
“입에 침도 안 바르고 거짓말하는 것 좀 봐.”
조덕례 여사는 살짝 어이가 없다는 표정을 짓다가 이내 눈을 가늘게 떴다.
“똑바로 말해봐요. 내가 모르는 것이 있죠?”
최보경 역시 평소와 너무나도 다른 시아버지의 반응에 본능적으로 이상하다는 느낌을 받았다.
“어허. 있긴 뭐가 있어.”
슬쩍 시선을 피하며 대꾸하자 조덕례 여사가 압박하듯 더 가까이 다가와 앉았다.
“어차피 석원이가 퇴근해서 오면 다 알게 될 건데 숨기지 말고 어서 말해봐요.”
최보경도 함부로 입을 떼진 못했지만 궁금증 가득한 얼굴로 시아버지를 쳐다봤다.
“이것 참.”
두 여자의 눈빛 공격에 박태홍 회장이 난감한 표정을 지은 채 입맛을 다셨다.
“그게…… 사실은 거기 석원이 녀석 회사야.”
“……?”
말뜻을 바로 알아차리지 못한 조덕례 여사가 이맛살을 찌푸리며 남편을 봤다.
“뜬금없이 그게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예요. 이야기 돌리지 말고 제대로 말해달라니까요!”
눈썹을 치켜올리며 재차 추궁하자 박태홍 회장이 억울하다는 얼굴로 말했다.
“정말 석원이 녀석 거라니까!”
“뭐가 우리 아들 건데요?”
“구찌 말이야, 구찌!”
그러자 최보경이 참지 못하고 끼어 들었다.
“아버님 농담 그만하셔요. 구찌는 유럽 명품 브랜드인데 어떻게 도련님 회사가 된단 말씀이세요.”
“석원이 그놈이 구찌를 샀다고!”
“예?”
“뭐라고요.”
조덕례 여사와 최보경의 몸이 동시에 얼어붙었다.
“나도 처음에 그랬으니까 믿기지 않을 거야. 하지만 사실인 걸 어떻게 해.”
남편의 진지한 표정에 조덕례 여사는 장난이 아니라 진심인 걸 알아차렸다.
“아니…… 그래도 어떻게 그럴 수가 있어요. 예전에 비해 명성이 떨어졌다지만 그래도 구찌인데.”
“맞아요. 어머니.”
최보경도 놀란 얼굴을 감추지 못한 채 말을 받았다.
“내가 전에 이야기했지. 둘째 녀석이 돈 굴리는 재주 하나는 아주 타고 났다고 말이야. 알고 봤더니 지난번에 유럽을 다녀온 것도 구찌 인수 계약을 하러 간 거였더라고.”
“어머나. 세상에!”
조덕례 여사가 벌린 입을 다물지 못하고 경악했다.
그 옆에서 최보경 역시 눈을 반짝거리며 박태홍 회장이 하는 말을 들었다.
“더 대견스러운 건 뭔지 알아?”
“여기서 더 놀랄 게 있어요.”
“나한테 땡전 한 푼 안 받고 둘째 녀석이 스스로 번 돈으로 구찌를 인수했다는 거야.”
“뭐라고요.”
조덕례 여사가 말도 안 된다는 듯 대꾸했다.
구찌 같이 이름난 브랜드를 인수하려면 한두 푼이 들어가는 게 아니었을 테니 당연히 박태홍 회장이 필요한 자금을 줬을 거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내가 언제 돈 가지고 농담하는 거 봤어. 진짜야. 녀석이 미국에서 마련한 종잣돈을 굴려서 돈을 엄청나게 불렸더라고.”
허허 소리를 내며 박태홍 회장이 대견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실없는 소리를 할 사람이 아니라는 걸 잘 알았지만 좀처럼 믿을 수 없는 말이었기에 조덕례 여사와 최보경 역시 뭐라 반응하질 못했다.
그때 최보경이 냉큼 조덕례 여사 옆으로 바짝 붙어서 속닥였다.
“어머니. 방금 아버님이 하신 말씀이 정말일까요?”
“나도 뭐가 뭔지 모르겠다.”
조덕례 여사는 머리가 아픈지 고개를 절레 흔들었다.
“진짜로 도련님이 구찌를 인수하셨다면 엄청 대단한 일이잖아요!”
“그렇긴 한데…… 하아…… 그냥 돈으로 샀다고 하기엔 너무 큰 회사지 않니?”
“그건 맞아요. 어설픈 브랜드도 아니고 구찌잖아요.”
조덕례 여사가 이마를 짚은 채 박태홍 회장을 힐끔 쳐다봤다.
화보에 입고 찍은 슈트가 꽤 좋아 보인다며 느긋하게 감상이나 내뱉고 있는 걸 보니 정말 들은 말이 사실인 것 같았다.
“조금 있으면 석원이가 퇴근해서 돌아올 테니 그때 이야기를 들어보면 확실히 알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