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olden Spoon Investment Portfolio RAW novel - Chapter (194)
금수저 투자백서 194화(194/231)
194. 펀드로 영입했어도 오래 품고 있긴 힘들었을 것 같군.
다음날, 아침.
이층 계단을 내려오자 맛있는 음식 냄새가 코끝을 자극했다.
주방으로 향한 석원은 먼저 와서 식탁에 자리해 있는 부모님을 보고 꾸벅 인사했다.
“잘 주무셨어요.”
“그래. 좋은 아침이구나.”
활짝 웃으며 맞이하는 조덕례 여사에 이어 가운데 상석에 앉은 박태홍 회장이 무뚝뚝하게 말을 툭 내뱉었다.
“왔으면 얼른 앉거라.”
“네.”
석원이 빈자리에 앉자 앞치마를 한 군산댁이 수저와 함께 밥그릇을 놔줬다.
갓 지은 밥 냄새에 석원이 미소를 지으며 숟가락을 들었다.
“오늘도 밥이 아주 맛있겠네요.”
“호호. 드시고 부족하시면 말씀만 하세요.”
쇠고기에 애호박, 버섯과 두부를 듬뿍 넣고 청양고추로 얼큰하게 맛을 낸 차돌 된장찌개를 먼저 한 숟가락 뜬 석원은 이어서 흰 쌀밥 위에 장조림을 얹어 먹었다.
거기다 딱 적당하게 익어서 아삭아삭한 깍두기까지 곁들이니 밥도둑이 따로 없었다.
“이것도 먹으렴.”
맞은편에 있던 조덕례 여사가 젓가락으로 보리굴비 살을 발라서 밥 위에 올려줬다.
“녹차 물에 살짝 말아서 먹으면 맛있단다.”
평소에도 잘 챙겨주는 어머니였지만 어제 저녁 퇴근해서 넷스케이프에 벤처 투자를 했다가 크게 불린 돈으로 구찌를 인수했다는 사실을 알게 된 이후부터 어쩐지 더 살뜰해진 느낌이었다.
석원은 어색하게 웃으며 조덕례 여사의 말대로 보리굴비를 올린 밥을 녹차물에 살짝 담갔다가 입에 쑥 집어넣었다.
“맛있는데요.”
“그렇지?”
조덕례 여사가 방긋거리며 보리굴비 살을 재차 밥 위에 올려줬다.
“크흠. 거 나도 보리굴비 좋아하는데.”
“앞에 따로 한 마리 놔 드렸으니까 그거 드셔요.”
그러자 박태홍 회장이 심통 난 사람처럼 미간을 찡그렸다.
“아들한테는 정성껏 가시까지 다 발라서 주더니 정작 남편은 알아서 먹으라는 말이야.”
“나 참, 애도 아니고. 당신도 똑같이 해드려요?”
“됐어.”
흥 하고 콧방귀를 뀐 박태홍 회장이 보리굴비를 젓가락으로 대충 발라서 밥에 올리지도 않고 한 덩이를 그냥 입에 넣어 우물거렸다.
“어휴. 내가 해줄 테니까 이리 줘봐요.”
결국 그 꼴을 보다 못한 조덕례 여사가 접시를 가져와 보리 굴비 살을 깔끔하게 발라줬다.
“됐다니까.”
“되긴 뭐가 돼요. 그러다가 지난번처럼 목에 가시가 걸려서 고생하려고요.”
자요, 하고 조덕례 여사가 굴비 살을 밥 위에 올려주자 박태홍 회장이 못 이기는 척 입을 다물었다.
다른 재벌가와 달리 여전히 사이가 좋고 애정이 넘치는 부모님의 모습에 석원은 자신도 모르게 웃음이 터져 나오려는 걸 애써 참으며 자연스럽게 화제를 돌렸다.
“일이 있어서 다음 주에 미국을 좀 다녀와야 될 것 같아요.”
그러자 박태홍 회장이 뚱해 있던 표정을 풀며 둘째 아들을 쳐다봤다.
“회사 일은 아닐 테고 내가 하는 투자 관련해서 가는 거냐?”
“네.”
머리를 끄덕이며 대답하자 다른 때와 달리 박태홍 회장이 크게 관심을 보였다.
“넷스케이프인가 하는 곳처럼 유망한 벤처 기업이라도 찾아낸 거냐?”
눈을 반짝이며 묻는 말에 석원이 고개를 저었다.
“그런 건 아니고요. 투자해둔 기업들이 잘 운영 중인지 확인하고 괜찮은 투자처가 있는지 둘러보기도 할 겸 가는 거예요.”
“하긴 돈만 넣어둔다고 끝이 아니라 회사든 식물이든 잘 크고 있는지 수시로 신경을 써줘야 하는 법이지.”
납득한 표정을 지은 박태홍 회장이 재차 물었다.
“그럼 얼마나 있다가 오는 거냐?”
“일단 일주일 정도로 생각하고 있지만 현지 상황에 따라서 유동적으로 바뀔 것 같아요.”
“미국이 가까운 곳도 아니고 가면 할 일이 많겠지. 급하게 서두르지 말고 여유를 가지고 천천히 볼일 보고 와라.”
그러자 조덕례 여사가 보리굴비 살을 박태홍 회장의 밥 위에 다시 한 점 올려주면서 별일이라는 듯 말했다.
“출장 갈 때마다 회삿일은 안 하고 밖으로만 나돈다면서 투덜거리던 양반이 어쩐 일이래요.”
“크흠. 내가 언제 그랬다고 그래.”
“어머어머 시치미 떼는 것 좀 봐.”
조덕례 여사가 피식 웃으며 장난스런 표정을 지었다.
“누가 모를 줄 알아요. 둘째가 투자를 해서 돈을 크게 벌었다고 하니까 이러는 거죠?”
“거 쓸데없는 말 하지 말고 얼른 밥이나 먹어.”
속마음이 들통난 박태홍 회장은 무안한 마음에 괜히 헛기침을 하면서 조금 전 아내가 밥 위에 올려준 보리굴비 살을 꼭꼭 씹어먹었다.
그걸 보며 조덕례 여사가 몰래 한쪽 눈을 찡긋거리자 석원은 웃음이 터져 나오려는 걸 애써 참았다.
* * *
뉴욕 월스트리트(Wall Street).
창밖으로 높은 마천루들이 줄지어 서 있는 멋진 스카이라인이 내려다보이는 사무실 소파에 퀀텀 펀드 CEO이자 전설적인 투자자인 조지 해밀턴과 로드니 CIO가 마주 앉아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러시아는 어떠셨습니까?”
로드니의 물음에 마주 앉아 있던 해밀턴이 찻잔을 내려놓으며 입을 뗐다.
“소련 연방 해체 이후 꽤 시간이 흘렀지만 여전히 정국이 불안정한 상황이더군.”
영란은행을 무릎 꿇리며 엄청난 수익을 거둔 해밀턴은 퀀텀 펀드를 운용하는 한편 인권 운동과 난민 보호 등을 목적으로 하는 재단을 설립해 공익 활동에 적극 나서고 있었다.
주로 해밀턴의 모국인 헝가리를 비롯한 동유럽을 중심으로 활동해 오다가 최근에는 러시아로 영역을 넓혔다.
그렇게 러시아에 발을 디딘 재단이 자리 잡는 걸 돕기 위해 해밀턴은 꽤 오랫동안 모스크바에 체류하다가 돌아온 지 얼마 안 됐다.
“재작년에 있었던 친위 쿠데타의 여파가 아직 남아 있는 모양이군요.”
“91년에 공산당이 일으켰던 8월 쿠데타하고 달리 이바노프 대통령 본인이 T-80 전차를 붉은 광장으로 들여보내 국민들이 지켜보는 앞에서 반대파가 점거한 국회의사당을 날려 버렸으니 민심이 좋을 리가 있겠나.”
“저도 텔레비전으로 그 장면을 보고 크게 놀랐었습니다.”
뒤로 몸을 기댄 해밀턴이 씁쓸한 표정을 지으며 말을 받았다.
“쿠데타군의 전차를 맨몸으로 막아서 러시아 연방 대통령이 된 인물이 불과 몇 년 만에 같은 장소로 전차를 끌고 와 무자비하게 포를 쏴 버렸으니. 정말 아이러니한 일이지.”
“그러게 말입니다. 러시아 국민들이 얼마나 실망했는지는 같은 해에 있었던 총선 결과만 봐도 알 수 있지 않겠습니까.”
“맞아.”
국회의사당 포격 사건 두달 뒤에 치러진 총선에서 이바노프 대통령이 이끄는 여당은 고작 15.5%의 저조한 득표율을 기록하며 패배해 다수당 지위를 상실하고 말았다.
“이바노프 대통령이 민심을 여전히 회복하지 못하고 있다면, 올해 12월로 예정된 총선에서도 여당이 승리하기 어렵겠군요.”
“총선뿐만 아니라 내년에 있을 대통령 선거에서도 이바노프가 재선이 실패할 가능성이 절반 이상일 걸세.”
“만약 선거에서 졌을 때 권력에 집착이 큰 이바노프 대통령이 순순히 결과에 승복할지 모르겠습니다.”
“아마도 순탄하게 권력이 넘어가진 않겠지.”
로드니가 걱정스러운 얼굴로 몸을 당겨 앉으며 말했다.
“그런 분위기라면 러시아 투자를 재고해 봐야 되는 것 아닙니까?”
이해 충돌을 우려한 해밀턴은 공익 재단을 설립한 국가에는 투자하지 않는다는 원칙을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비록 공산주의 몰락과 함께 지금은 힘든 시절을 보내고 있는 러시아였지만 초강대국인 미국하고 어깨를 나란히 했을 만큼 잠재력이 큰 국가였기에 예외로 두고 작지 않은 자금을 투자 중이었다.
우려 섞인 로드니의 시선에 해밀턴이 팔짱을 끼며 대답했다.
“지금은 많이 혼란스럽지만 그렇다고 해도 설마 핵무기를 가진 국가가 망하겠나.”
“물론 그렇긴 하지만 공산당이 다시 집권한다면 예전 냉전 체제로 돌아갈 수도 있지 않습니까?”
해밀턴은 그럴 리 없다는 듯 머리를 가로저었다.
“계속 얼음 장막 뒤에 갇혀 있었다면 모를까. 이미 자유라는 달콤한 맛을 본 이상 아무리 공산당이 재집권하더라도 과거로 러시아를 되돌릴 수는 없을 거야.”
“과연 그럴까요.”
“오히려 정치와 경제적 혼란으로 모든 자산 가치가 바닥까지 떨어져 있는 지금이 큰 수익을 낼 수 있는 투자 적기라고 보네.”
왠지 모르게 찝찝한 기분이 가시지 않았지만 해밀턴이 확신에 찬 모습으로 그렇게 말을 하니 뭐라 반박하기가 힘들었다.
무엇보다 그가 생각하기에도 러시아 투자는 상당히 매력적이었기에 로드니는 납득한 표정으로 더 이상 문제를 제기하지 않았다.
“참. 오면서 확인하니까 몇 달 사이 엔화가 아주 크게 떨어졌더군.”
“예. 달러당 70엔대 중반까지 갔던 엔화가 102엔을 넘나들고 있으니 그새 거의 30엔이나 폭락해 버렸을 정도로 변동폭이 엄청났습니다.”
해밀턴은 턱을 쓰다듬으면서 슬쩍 물었다.
“자네가 보기에 앞으로 엔화가 어떻게 될 것 같나?”
“여러 가지로 볼 때 엔저로 방향을 확고하게 잡은 것 같습니다.”
“그렇지. 나도 같은 생각이야. 무엇보다 백악관과 연준이 강 달러를 원하는 이상 상당 기간 엔이 다시 올라오긴 쉽지 않을 거야.”
로드니가 동감이라는 표정으로 머리를 끄덕였다.
“박석원 그 친구가 처음에 일본 기업들을 상대로 녹인, 녹아웃 옵션을 팔고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만 해도 확률이 낮은 베팅을 한다고 생각했는데. 이제 보니 내가 보는 눈이 좁았던 것 같군.”
“저도 얼마 전까지만 해도 엘도라도 펀드가 큰 손해를 볼 거라고 예상했습니다. 옵션 계약을 한 일본 기업들 역시 마찬가지일 테고요.”
해밀턴이 피식 웃으며 대꾸했다.
“엔이 이렇게 폭락할 줄 알았다면 절대 옵션 계약을 하지 않았겠지.”
“맞습니다.”
재밌다는 듯 입가에 미소를 지으며 해밀턴이 중얼거렸다.
“달러당 100엔이 넘어서 녹인 옵션이 발동됐을 테니 지금쯤 계약을 한 일본 기업들이 전부 곡소리를 내고 있겠군.”
“계약한 액수의 4배를 약정 환율로 바꿔야 하니 환손실이 상당할 겁니다.”
“약정 환율이 얼마라고 그랬었지?”
“달러당 90엔인 걸로 알고 있습니다.”
해밀턴이 작게 탄성을 흘리며 말했다.
“당장 옵션 계약을 청산하더라도 10% 이상 수익을 올리는 거군.”
“그런데 계약을 맺은 일본 기업들이 서둘러 옵션을 청산하지 않고 계속 가져가는 모양입니다.”
단번에 상황을 알아차린 해밀턴이 입꼬리를 쓱 끌어올렸다.
“엔화가 다시 올라와 손실을 최대한 줄일 수 있는 타이밍을 기다리는 모양이구만.”
“그런 것 같습니다.”
“환율이 아래로 더 크게 열려 있는 것도 파악하지 못하고 그런 꼼수를 쓰다니. 정말 멍청하군.”
신랄한 혹평에 로드니도 고개를 끄덕였다.
“아마 엔저가 더 깊어지면 그때서야 뒤늦게 정신을 차리고 크게 후회하게 될 겁니다.”
해밀턴은 잠시 생각하더니 새삼스레 입을 열어 감탄했다.
“그런 걸 보면 이 모든 걸 예상하고 판을 설계한 박석원이 정말 대단하지 않나.”
“지난번 엔화 공격 때도 그렇고 보통이 아닌 건 확실합니다.”
“맞아. 분명 크게 될 녀석이야.”
입맛을 다시는 말투에 로드니가 슬쩍 눈치를 살폈다.
“저희 쪽으로 영입하지 못한 게 지금도 많이 아쉬우신 것 같군요.”
“인재는 많을수록 좋은 법이니까. 그렇지 않나.”
“그건 그렇지요.”
해밀턴은 앞에 있는 찻잔을 집어 들었다가 차갑게 식은 걸 보곤 다시 내려놨다.
“지금 생각해보면 일찍 재능을 알아보고 펀드로 영입했어도 오래 품고 있긴 힘들었을 것 같군.”
꽤 오랫동안 함께 일했지만 한 번도 들어보지 못한 극찬에 로드니의 표정이 살짝 굳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