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olden Spoon Investment Portfolio RAW novel - Chapter (197)
금수저 투자백서 197화(197/231)
197. 성공만 한다면 또 한 번 월가가 발칵 뒤집히겠군.
김포 공항 입국장.
평일 낮인데도 천장이 높은 입국장은 사람들로 북적이고 있었다.
여행용 캐리어를 끌고 탑승객이 나올 때마다 마중을 나와 있던 가족이나 친지들이 달려와 서로 끌어안고 웃으며 반기는 모습들이 곳곳에 보였다.
그런 사람들 속에 회색 정장을 입고 연신 시계를 확인하는 사내가 한 명 있었는데 바로 우호근의 측근인 오상현 과장이었다.
작은 플래카드를 든 가족 옆에 서 있던 오상현 과장은 굵은 눈썹에 날카로운 인상을 가진 우호근이 막 입국장 밖으로 걸어 나오는 걸 발견하곤 얼른 허리까지 오는 철제 펜스를 돌아 앞으로 가까이 다가갔다.
“어서 오십시오. 상무님.”
주가 조작 사건으로 홍콩 지사로 쫓겨나 근신 중이던 우호근은 며칠 전 우용갑 회장의 호출을 받고 정말 오랜만에 다시 한국으로 돌아온 참이었다.
선글라스를 벗어 손에 든 우호근은 허리를 꾸벅 숙이며 인사하는 오상현 과장을 보고 대뜸 내뱉었다.
“상무라고?”
“예.”
오상현 과장이 얼른 입을 열어 대답했다.
“어제 자로 본사 상무로 승진 발령이 나셨습니다.”
“상무라…….”
직장인이라면 누구나 꿈꾸는 목표이자 흔히 별을 단다고 이야기하는 임원 승진이었다.
하지만 우호근은 별다른 감흥 없이 심드렁한 얼굴로 말했다.
“부사장 정도는 줄줄 알았는데 겨우 상무라니. 노친네가 하여튼 깐깐하다니까.”
쉽게 만족하지 못하고 투덜거리는 성격은 여전했다.
오상현 과장은 눈치를 보며 서 있다가 캐리어 손잡이를 대신 잡으며 자연스럽게 화제를 돌렸다.
“밖에 차를 대기시켜뒀으니 일단 나가시죠.”
“그러지.”
머리를 끄덕인 우호근은 거만한 태도로 오상현 과장을 따라 공항 청사 밖으로 나왔다.
단풍과 함께 깊어진 가을에 공기가 상당히 차가웠는데 여태껏 더운 홍콩에서 지내다 와서 그런지 더욱 춥게 느껴졌다.
우호근은 천천히 앞으로 와서 멈춰선 고급 대형 세단에 올라타고는 곧바로 공항을 벗어나 서울 시내로 향했다.
한쪽 다리를 꼰 자세로 뒷좌석에 앉은 우호근이 앞에 있는 오상현 과장한테 시선을 주며 물었다.
“아버지가 검찰에 소환돼 조사를 받으셨다면서.”
그러자 오상현 과장이 옆에서 운전대를 잡고 있는 기사를 힐끔 쳐다보곤 이내 몸을 뒤로 돌려 대답했다.
“네. ST그룹 문 회장님과 함께 지난주 검찰에 소환돼 조사를 받으셨습니다.”
시트에 등을 기댄 우호근이 팔짱을 끼며 쯧하고 혀를 찼다.
“전직 대통령 사돈 두 사람이 나란히 검찰 포토라인이 서다니. 망신도 이런 망신이 없네.”
“…….”
너무 노골적인 말투에 오상현 과장은 뭐라 말을 해야 할지 몰라 입을 다물었다.
우호근은 그가 곤란해하든 말든 상관하지 않고 작게 콧방귀를 뀌면서 빈정거렸다.
“하긴 이미 매제하고 이혼한 사이니 따지고 보면 사돈도 아니지.”
ST 그룹과 달리 우용갑 회장은 문민정부가 들어서며 군사정권 청산 작업을 시작하자 눈치 빠르게 딸 부부를 이혼시켜 노 전 대통령과의 관계를 손절해 버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노 전 대통령의 후광을 발판으로 임기 중에 사세를 크게 키운 건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었기에 검찰 수사를 피하지 못했다.
“그건 그렇고 내가 알아보라고 한 건 어떻게 됐어?”
우호근의 물음에 오상현 과장이 조수석 앞에 있는 글러브 박스를 열어 안에 넣어둔 서류 봉투를 꺼냈다.
그러고는 뒤에 앉아 있는 우호근에게 건네면서 말했다.
“꿀이 가득한 증권감독원에 오랫동안 몸담고 있었는데도 요즘 찾아보기 힘들 정도로 아주 청렴한 공무원이더군요.”
서류 봉투를 받아든 우호근이 코웃음을 치고 대꾸했다.
“세상에 털어서 먼지 안 나는 놈은 없지.”
“말씀대로 샅샅이 뒷조사를 해보니 하나 걸리는 것이 있었습니다.”
“그게 이거야?”
오상현 과장이 몸을 뒤로 돌린 채 머리를 끄덕였다.
“그렇습니다. 4년 전쯤에 새빛 은행 부장으로 있는 대학 선배한테 부탁해 사촌을 취직시킨 일이 있더군요.”
그러자 눈에 이채를 띤 우호근이 슬쩍 입꼬리를 말아올렸다.
“압력을 행사해 은행에 친인척을 채용시켰다는 거야.”
“수시 채용에 지원할 수 있도록 약간의 편의만 봐준 정도라 압력을 행사했다고 보기에는 조금 힘든 부분이 있습니다.”
하지만 우호근은 싸늘한 미소를 지었다.
“그거야 어떻게 끼워 맞춰 일을 만드느냐에 따라서 문제가 될 수 있고 아닐 수도 있는 거지.”
우호근한테는 그럴만한 힘과 재력이 충분했다.
서류 봉투를 열어 안에 든 내용물을 꺼내자 새빛 은행에 다니고 있는 최복락 증권감독원 과장 사촌의 이력서 사본과 입사를 도와준 은행 간부에 대해 뒷조사를 한 자료가 나왔다.
“겁대가리 없이 날 건드렸으니 대가를 치러야지.”
우호근은 천천히 서류를 훑어보며 차가운 어조로 중얼거렸다.
그러고는 고개를 들어 조수석에 앉아 있는 오상현 과장에게 말했다.
“이대로 일을 진행시켜.”
“예. 알겠습니다.”
서류를 다시 봉투에 집어넣고 돌려준 우호근은 푹신한 시트에 몸을 기댄 채 차창 너머로 유유히 흐르는 한강을 느긋하게 바라봤다.
* * *
뉴욕 플라자 호텔.
석원은 커다란 통유리창 너머로 탁 트인 센트럴 파크가 내려다보이는 펜트하우스 거실 소파에 앉아 오늘자 월스트리트 저널을 읽고 있었다.
[미국 연방정부 셧다운 종료연방정부의 부채 한도액 상향과 균형예산 편성 공약 이행을 둘러싸고 지난 13일부터 일주일간 이어진 연방정부 셧다운이 오늘부로 종료됐다.
공화당이 장악한 의회와 백악관의 벼랑 끝 대결로 인해 필수요원을 제외한 80만 명이상의 연방 공무원들이 무급 휴가에 들어가며 일손을 놓는 사태가 벌어져 미국 전체를 혼란에…….]
“준비는 다 끝나셨습니까?”
고개를 옆으로 돌린 석원은 미소를 지으며 다가오는 랜든을 보고 말했다.
“안 와도 된다고 했잖아요.”
“그래도 오늘 한국으로 돌아가시는데 배웅은 해야되지 않겠습니까.”
“괜찮다니까요.”
자연스럽게 비어 있는 오른쪽 소파에 엉덩이를 붙인 랜든은 그가 탁자에 내려놓은 신문을 힐끔 쳐다봤다.
“셧다운 종료 기사를 보고 계셨군요. 대결 상황이 길어지면 어떻게 하나 걱정했었는데 늦었지만 해결이 돼서 다행입니다.”
“정말 그렇게 생각해요?”
“……?”
한쪽 다리를 꼰 채 몸을 뒤로 기댄 석원이 말을 이었다.
“30일간의 임시 지출 법안을 통과시켜서 가까스로 정부가 다시 돌아갈 수 있게 됐지만 임시 봉합에 불과할 뿐 상황이 완전히 해결된 건 아니잖아요.”
“셧다운으로 인해 큰 혼란을 겪었고 국민들의 여론도 좋지 않은데. 설마 또다시 연방정부가 문을 닫는 일이 벌어지겠습니까.”
랜든은 서로 다투긴 해도 백악관과 공화당이 결국 합의를 할 거라고 상황을 낙관적으로 바라보는 쪽이었다.
하지만 석원의 생각은 달랐다.
“다른 때라면 또 모르겠지만 곧 차기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있는 시기잖아요. 양측 다 쉽게 물러서지 않으려고 할 거예요.”
이야기를 들은 랜든이 콧잔등을 살짝 찡그렸다.
“이번 예산안 처리가 대선의 전초전이 될 거라는 말씀이십니까?”
석원은 작게 머리를 끄덕이며 말했다.
“그래요. 공화당은 데이비슨 대통령의 기를 꺾어 놓는 것과 동시에 균형예산 기본 골격을 확립해 정부 부채 증가를 늦춘 걸 대통령 선거에서 자신들의 성과로 선전하려고 들겠죠.”
“…….”
“반면 데이비슨 대통령은 정책에 일관성이 없고 우왕좌왕한다는 부정적인 이미지를 불식시키고, 강력한 리더쉽을 보여주기 위해서라도 쉽사리 타협하거나 물러서지 않으려고 할 거예요.”
“으음…….”
잠시 이야기를 곱씹어본 랜든은 이내 얼굴을 굳혔다.
“말씀을 듣고 보니 그렇군요.”
“내 예상이 틀려서 30일 전에 협상이 타결된다면 다행이지만 또다시 셧다운에 들어가면 그때는 상황이 아주 심각해질 거예요.”
“셧다운 기간이 더 길어질 수 있다는 말씀이십니까.”
이제 막 셧다운 종료 기사가 난 상황에서 암울한 예측이었지만 그래도 석원은 확신에 찬 어투로 말했다.
“앞서 말했지만 내년 대통령 선거의 주도권을 누가 갖냐는 게 함께 걸려 있는 만큼 양쪽 다 팽팽한 평행선을 달리며 마지막까지 양보 없는 줄다리기를 하려고 들게 분명해요.”
“연방정부가 일주일동안 문을 닫은 것만으로도 여파가 이만저만이 아닌데 더 긴 셧다운이 발생한다면 정말 큰일이군요.”
랜든의 눈썹이 좁혀지며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그를 바라봤다.
그러자 석원이 사뭇 진지한 태도로 이야기를 계속했다.
“다음 셧다운 때는 이번과 달리 주식 시장에 큰 충격을 줄 거예요.”
“예?”
갑작스런 말에 랜든이 눈을 동그랗게 떴다.
많은 전문가들의 우려와 달리 셧다운이 발생하자 살짝 떨어지던 미국 증시는 금방 반등해서 연방정부 폐쇄 기간 동안 오히려 상승하는 모습을 보였다.
대표적인 안전자산인 금 역시 이례적으로 아래로 꺾여 내려갔다.
‘이것 때문에 주식 숏, 골드 롱에 베팅했던 많은 딜러와 브로커들이 피눈물을 흘리며 짐을 싸야 했지.’
그런데 다음에는 이번과 달리 충격을 줄 거라고 하니 의아할만도 했다.
“백악관이나 공화당 양쪽 모두 정말 미친 것이 아니라면 문제가 심각해지기 전에 적당히 타협할 거란 걸 다들 알고 있으니까. 이번에는 셧다운이 되더라도 증시에 큰 충격을 주지 않았던 거예요.”
“맞습니다.”
랜든이 동의하며 대꾸했다.
“그런데 일주일, 열흘이 지나도 합의가 이루어지지 않고 대치 상황이 계속 이어지면 어떻게 되겠어요.”
“……그때부터는 불안감이 슬금슬금 생겨나겠죠.”
“지금까지 최장기간 셧다운이 이루어진 것이 17일이죠?”
“아마도 그쯤 될 겁니다.”
석원은 차분하게 가라앉은 눈으로 랜든을 쳐다보고 물었다.
“만약 17일을 넘겨 최장기간 기록이 깨진 후에도 전혀 협상이 이루어질 기미 없이 계속 셧다운이 이어진다면 어떻겠어요?”
“……!”
끔찍한 가정에 랜든은 자신도 모르게 마른침을 꿀꺽 삼켰다.
“재무부가 가진 주머니에 든 달러가 점점 바닥을 드러내는 걸 보고 있으면, 투자자들의 머릿속에 최악의 경우 미국이 국가 부도 사태를 맞이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지 않겠어요?”
“디폴트라니! 정말 미치지 않고서야 그러겠습니까.”
랜든이 경악해서 자신도 모르게 목소리를 높였다.
“물론 진짜 거기까지 간다고는 나도 생각하지 않아요. 하지만 투자자들이 그런 불안감을 조금이라도 가지는 순간 시장도 크게 흔들릴 거예요.”
그러자 눈치 빠르게 말뜻을 알아차린 랜든이 무겁게 머리를 끄덕였다.
“시장에서 가장 큰 악재가 불안감이니까요. 한두 명이 돈을 빼기만 해도 전염병처럼 번져나가서 걷잡을 수 없어질 겁니다.”
그걸 보며 석원이 한쪽 입꼬리를 슥 말아 올렸다.
“반대로 우리한테는 기회이기도 하죠.”
“공매도를 생각하시는 겁니까?”
석원은 눈짓으로 가볍게 긍정했다.
“11월까지 예산안과 부채 한도 상향 합의가 이루어지지 않는다면 S&P500 상위 1위부터 10위 기업 주식에 숏베팅을 하라고 앤드루한테 미리 말을 해둬요.”
“규모는 얼마나 생각하고 계십니까?”
그러자 석원이 흰 이를 드러내며 활짝 웃었다.
“화끈하게 레버리지를 써서 200억 달러를 넣죠.”
걸어야 할 땐 누구보다 대담해지는 석원이었다.
“후우! S&P500 종목을 공매도하는 건 미국이란 나라에 숏을 치는 거나 마찬가지인데. 이거 벌써부터 심장이 쫄깃해지는 것 같군요.”
랜든이 이마에 땀을 훔치는 시늉을 하자 석원이 어깨를 으쓱였다.
“이것보다 더 한 베팅도 했는데 뭘 이 정도로 그래요.”
“아무리 그래도 상대가 다르잖습니까.”
랜든은 도저히 따라가지 못하겠다는 듯 머리를 절레 흔들었다.
그때 경호원인 보커스가 조용한 발걸음으로 다가와 말을 걸었다.
“보스. 헬기가 도착했습니다.”
“아. 그래요?”
석원이 아쉽다는 표정을 지었다.
“이제 그만 가봐야 될 시간이네요.”
몸을 일으켜 펜트하우스를 나온 석원은 일행과 함께 호텔 옥상에 있는 헬리포트로 올라갔다.
그러자 쌍발 터보 샤프트 헬리콥터인 벨 412 한 대가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짙은 레이벤 선글라스를 낀 석원이 한쪽 손을 내밀며 말했다.
“그럼 내가 없는 동안 뉴욕 사무실을 잘 부탁해요.”
“염려 마십시오.”
랜든 역시 활짝 웃는 얼굴로 그의 손을 함께 맞잡았다.
가볍게 악수를 나눈 석원은 바로 몸을 돌려 보커스와 함께 헬리콥터에 탑승했다.
잠시 뒤 시끄러운 엔진 소리를 내며 로터 블레이드를 천천히 회전시켜 추력을 끌어 올린 헬리콥터는 이내 헬리포트를 사뿐히 날아올랐다.
금방 고도를 높이 올린 헬리콥터는 맨해튼의 초고층 빌딩들 위를 가로질러 흰 구름 사이로 사라졌다.
홀로 헬리포트에 선 랜든은 어느새 시야에서 사라진 헬리콥터가 날아간 방향을 물끄러미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미국에 숏 베팅이라니.”
보스가 아니면 어느 누구라도 할 수 없는 발상이었다.
“성공만 한다면 또 한 번 월가가 발칵 뒤집히겠군.”
그렇게 말하는 랜든의 입매 역시 기대감으로 호선을 그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