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olden Spoon Investment Portfolio RAW novel - Chapter (201)
금수저 투자백서 201화(201/231)
201. 워싱턴에서 걸려온 전화를 받게 되면 어떤 표정을 지을지 벌써부터 기대가 되네.
[닛산 자동차를 비롯한 대형 상장사들 대규모 환파생상품 손실 발생닛산 자동차가 며칠 전 수억 달러에 달하는 파생상품거래 손실을 공시한 걸 시작으로 소니와 미쓰비시 등등 여러 수출 기업들이 줄줄이 환차손을 입은 사실을 밝히며 파장이 일고 있다.
환리스크 헤지를 위해 계약한 통화옵션 상품을 가입했다가 최근 몇 달간 연초 크게 올랐던 엔화가 급락하면서 엄청난 손실을 초래했다.
이번에 기업들이 가입한 통화옵션 상품은 환율 예상구간의 하단을 한 번이라도 밑돌면 옵션계약 자체가 무효화되지만, 상단을 한 번이라도 돌파하면 계약금액의 4배가 넘는 달러를 사서 미리 약정한 환율로 매도해야 되는 구조다.
현재까지 밝혀진 손실액만 15억 달러가 넘어가는 상황에서 아직 피해 사실을 밝히지 않은 기업들이 다수 있는 걸로 알려져 앞으로 피해 규모가 더욱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이런 상황 속에 주무 부처인 대장성에서는 기업들의 피해 상황에 큰 우려를 표시하며…….]
“장관님. 오카와라 차관님이 오셨습니다.”
여비서의 말에 3선 중의원으로 대장성 장관을 맡고 있는 사토 카즈야가 손에 든 신문을 내려놓으며 말했다.
“들어오라고 해.”
잠시 뒤 회색 정장을 입은 오카와라 사무차관이 안으로 들어와 꾸벅 머리를 숙였다.
“찾으셨습니까.”
“그리로 앉게.”
소파에 앉아 있던 사토 장관이 몸을 뒤로 기대며 왼편 자리를 턱으로 가리켰다.
한눈에 딱 봐도 심기가 불편해 보이는 모습에 오카와라 사무차관은 조심스럽게 다가와 소파에 앉았다.
탁자 위에 놓여 있는 신문을 힐끔 쳐다본 그는 왜 사토 장관의 기분이 안 좋은지 바로 눈치챌 수 있었다.
“자네 도대체 뭘하고 있는 거야.”
잔뜩 언짢은 목소리에 오카와라 차관이 죄인처럼 머리를 떨어트렸다.
“언론에서 시끄럽게 떠들어 대는데 왜 빨리 해결하지 않고 꾸물거리고 있냔 말이야!”
사토 장관이 큰 목소리로 질책하자 오카와라 차관은 곤혹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대답했다.
“문제가 된 환파생 상품을 판매한 엘도라도 펀드 관계자를 소환해 조사하고 불리한 독소 조항이 없는지 계약서를 꼼꼼하게 확인했습니다만…….”
“그런데!”
다그치며 쳐다보자 오카와라 차관이 연신 눈치를 보면서 마지못해 입을 열었다.
“……계약상에 별다른 문제점을 찾아내지 못했습니다.”
“뭐야?”
눈썹을 치켜올린 사토 장관이 손바닥으로 앉아 있는 소파 팔걸이를 세게 내려치며 버럭 고함을 내질렀다.
“그게 무슨 말도 안 되는 헛소리야! 기업들이 이렇게 큰 손실을 입었는데 속임수가 전혀 없었다고?”
눈을 부라리며 묻는 사토 장관의 모습에 오카와라 차관은 손에 배인 땀을 바지에 몰래 닦으며 힘겹게 대답했다.
“몇 번이나 계약서를 살펴봤지만 독소 조항이라고 볼 수 있는 것이 전혀 없었습니다. 오히려 일부 조항들은 옵션계약을 한 기업들한테 상당히 유리하게 되어 있기까지 했습니다.”
“허어. 그게 정말이야?”
사토 장관이 못 믿겠다는 듯 재차 물었다.
“그렇습니다. 대표적인 예로 변동 구간만 해도 달러 당 78엔부터 100엔까지 아주 넓게 설정되어 있어서 계약서를 확인한 전문가들도 국내 기업들에게 상당히 유리한 조건이라고 했었습니다.”
“그런데 왜 이런 사단이 벌어진 거야.”
그런 조건이라면 오히려 더 알 수 없는 일이었다.
사토 장관이 인상을 쓰면서 하는 말에 오카와라 차관이 황급히 설명했다.
“지난 4월 헤지펀드들의 공격에 엔화가 80엔을 뚫고 오르면서 무섭게 강세로 갔을 때까지만 해도 환율이 이렇게 갑자기 급변할 줄 아무도 예상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제 2의 도쿄 대공습이라고 불리며 조지 해밀턴이 이끄는 퀀텀 펀드와 그에 동조하는 헤지펀드들의 무차별적인 환율 공격에 큰 곤욕을 치렀던 기억을 떠올린 사토 장관의 얼굴이 저절로 일그러졌다.
“이런 빌어먹을.”
사토 장관이 끄응하고 앓는 소리를 내뱉었다.
그런 모습을 보고 있던 오카와라 차관은 잠시 눈치를 살피다가 조심스레 이야기를 꺼냈다.
“지금 상황에서는 엘도라도 펀드에 제재를 가할 마땅한 근거가 없습니다.”
그러자 사토 장관이 혀를 차고는 한심하다는 듯이 쳐다봤다.
“그래서 여론이 이렇게 안 좋은데 기업들이 욕심을 부려 옵션계약을 하고 내각에서 환율 관리를 잘못해 벌어진 일이라고 국민들한테 말할 거야?”
“그건…….”
가뜩이나 내각 지지율도 바닥인데 그럴 수는 없었다.
이맛살을 찌푸린 사토 장관이 한쪽 다리를 꼬며 말했다.
“계약 내용이 어떻든 국민들은 그딴 건 신경 안 써. 하지만 엔저로 수출 기업들이 호황이라고 알고 있었는데 기껏 번 돈을 엉뚱한 곳에서 가져간다고 해봐. 당연히 화가 치솟아 오르지 않겠나.”
그는 짜증스럽게 소파 팔걸이를 툭툭 치면서 계속 말을 이었다.
“그러면 그 화가 어디로 향할 것 같아. 당연히 내각과 담당 부처인 대장성을 욕하겠지!”
오카와라 차관은 차마 숙인 머리를 들지 못했다.
부글부글 끓는 속내를 진정시킨 사토 장관은 뒤로 기대고 있던 몸을 바로 세우고는 가라앉은 목소리로 말했다.
“샅샅이 털다 보면 뭐든 꼬투리를 잡을 만한 것이 나오지 않겠나. 아니 안 나온다고 해도 상관없으니까 엘도라도 펀드에 대해 강도 높은 조사를 벌여 국민들한테 우리가 제대로 일을 하고 있다는 모습을 보여주란 말이야!”
그러다 사토 장관의 비열한 눈빛을 번득이며 말을 이었다.
“뭐, 그 과정에서 옵션계약을 파기하거나 최소한 손해액을 줄일 수 있는 위법 사항이 발견된다면 더욱 좋겠지.”
“……!”
오카와라 차관이 당황한 표정으로 머리를 치켜들었다.
“엘도라도 펀드는 미국계라 자칫 잘못했다가는 문제가 커질 수도 있습니다.”
걱정하는 그와 달리 사토 장관은 콧방귀를 뀌었다.
“상관없어. 미국계 펀드라고 해도 위법 행위를 조사하는 건 우리의 정당한 권리잖나. 만약 그걸 가지고 미국이 뭐라고 따진다면 그거야말로 월권이고 내정 간섭이지.”
“물론 그렇긴 합니다만…….”
오카와라 차관은 껄끄러운 기색을 감추지 못한 채 말끝을 흐렸다.
아무리 생각해도 불길한 느낌이 가시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해밀턴 그 빌어먹을 인간한테 치욕을 당한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이번에 또 국내 기업들이 외국 헤지펀드에 농락되는 꼴을 보이면 국민들이 내각과 대장성을 어떻게 보겠나! 그리고 외국 헤지펀드들은 우리 일본을 얼마나 우습게 생각하겠어!”
“…….”
“그러니 다시는 일본에서 이딴 짓을 벌이지 못하도록 단단히 혼쭐을 내줄 필요가 있어. 내 말 무슨 이야기인지 알겠나?”
사토 장관이 주먹을 꽉 쥐고 그를 쳐다봤다.
이미 결심을 굳힌 듯 강경한 태도에 오카와라 차관은 어쩔 수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여전히 찝찝한 구석이 남아 있었지만 장관이 이렇게 나오는 이상 더 말릴 방도가 없었다.
“예. 말씀대로 처리하겠습니다.”
그러자 사토 장관이 만족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몸에 힘을 뺐다.
“그래도 미국 정부와 마찰이 생기면 곤란하니까. 미국인 직원들은 가급적 너무 심하게 다루지 말고 조사를 진행하도록 해.”
탈탈 털어 어떻게든 꼬투리를 잡아내라고 해놓곤 또 미국을 너무 자극하진 말라니 앞뒤가 안 맞는 지시였다.
‘어이가 없군.’
하지만 까라면 까야 했기에 오카와라 차관은 속으로 깊은 한숨을 내쉬고 대답했다.
“알겠습니다.”
“그럼 지금 바로 나가서 지시한 걸 실행하게.”
“예.”
오카와라 차관은 자리에서 일어나 꾸벅 머리를 숙였다가 바로 하고는 그대로 장관실을 나갔다.
문이 닫히자 혼자가 된 사토 장관은 한 손으로 넥타이 매듭을 느슨하게 풀고는 끙 소리를 내며 소파에 등을 기댔다.
“가뜩이나 신경 쓸 것도 많은데 환헤지를 하려면 제대로 할 일이지. 정말 짜증나는군.”
* * *
다음날.
“이대로 처리하라고 해요.”
“네. 본부장님.”
비서인 나성미가 결재 서류를 건네받고 밖으로 나갔다.
잔뜩 쌓여 있던 일이 어느 정도 처리되자 석원은 고개를 좌우로 돌리며 가볍게 목을 풀었다.
“바빠서 운동을 며칠 쉬었더니 몸이 좀 뻐근한 걸.”
시간을 억지로 내서라도 헬스장에 다녀올까, 하고 생각하던 찰나 바지 주머니에서 휴대폰 벨소리가 울렸다.
[보스. 저 랜든입니다.]자다가 일어난 것처럼 꽉 잠긴 목소리에 석원이 무심코 손목시계를 확인했다.
“뉴욕은 지금 한밤중일 텐데 어쩐 일이에요.”
약간 나른한 표정을 짓고 있던 석원은 이야기를 듣자마자 눈을 크게 떴다.
“그게 정말이에요?”
[예. 그뿐만 아니라 포터 지사장을 비롯한 직원들 전원이 출국 금지를 당했다고 합니다.]“이런.”
석원이 짧게 혀를 찼다.
“가능하면 조용하게 넘어가길 바랬는데. 역시 예상했던 대로 여론이 시끄러워지니까 일본 정부가 작정하고 압박을 가하려는 모양이네요.”
[제 생각도 그렇습니다.]“사무실을 수색하는 과정에서 상대편하고 별다른 마찰을 일으키진 않았겠죠?”
[네. 지시하셨던 대로 수색을 방해하지 않고 순순히 협조를 해줬습니다. 물론 중요한 문건들은 이미 뉴욕으로 옮겼거나 파쇄를 했으니 압수물을 아무리 뒤져봤자 크게 건질 건 없을 겁니다.]미리 대비를 해두고 있었기에 갑작스러운 압수수색에도 두 사람 다 크게 당황하지 않고 차분히 대응할 수 있었다.
[그리고 계약을 해둔 대형 로펌을 통해 이번 압수수색에 대해 대장성에 정식으로 항의할 예정입니다.]그러자 석원이 심드렁한 얼굴로 대꾸했다.
“안 하는 것보단 낫겠지만 그렇게 큰 기대는 안 하는 게 좋을 거예요.”
자국 기업이나 기업인과 달리 외국인에 대해서는 차별적인 대우와 법적 잣대를 가져다 대는 일본의 공격적인 배외주의를 석원은 너무나도 잘 알고 있었다.
지금은 버블이 붕괴됐지만 아직 세계 1위의 경제 대국으로 우뚝 섰던 찬란했던 영광의 그림자가 남아 있는 시기였기에 크게 드러나진 않았다.
하지만 점점 시간이 갈수록 불황과 침체의 늪이 깊어지자 외국인이나 기업이 일본에 들어와 성과를 거두는 것에 대한 시기와 질시가 커지면서 차별이 노골화됐다.
‘훗날에 벌어질 일이지만 프랑스 자동차 회사 회장은 배임과 횡령 혐의로 체포돼 1년 이상 고생하다가 악기 상자에 숨어서 극적으로 탈출하는 일까지 벌어졌지.’
이런 걸 생각하면 일본에 있는 엘도라도 펀드 지사 직원들 역시 공정한 조사와 대우를 받을 거라고 확신하기 어려웠다.
‘오죽했으면 달아난 프랑스 자동차 회장이 기자회견까지 직접 열어서 한 맺힌 말을 토해냈겠어.’
난 유죄를 전제로 차별이 횡행하고 기본적인 인권을 무시하는 부정한 일본 사법제도의 인질이 더 이상 아니라고 말하던 그 장면은 많은 사람들에게 충격적으로 다가온 사건이었다.
더군다나 닛산을 비롯한 일본의 여러 대표적인 수출 기업들이 수십억 달러에 달하는 환손실을 본 상황인 데다가, 여론마저 안 좋았기에 일본 정부와 사법당국이 더욱 강압적이고 편파적인 태도로 엘도라도 펀드를 압박할 가능성이 농후했다.
‘그 꼴을 당할 수는 없지.’
잡념을 지운 석원은 눈을 매섭게 번득였다.
“머뭇거릴 것 없이 바로 에이스 카드를 내놓도록 해요.”
[알겠습니다. 날이 밝는 대로 빈센트 상무장관한테 연락을 넣도록 하겠습니다.]“좋아요. 변동 상황이 있으면 바로 알려줘요.”
[예.]통화를 끝낸 석원은 휴대폰을 내려놓고는 몸을 뒤로 기댔다.
“우릴 협박하려다가 워싱턴에서 걸려온 전화를 받게 되면 어떤 표정을 지을지 벌써부터 기대가 되네.”
석원은 한쪽 입꼬리를 말아 올리면서 작게 중얼거렸다.
정말 좋은 구경거리일 텐데 그걸 직접 구경하지 못하다니 아쉬운 기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