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olden Spoon Investment Portfolio RAW novel - Chapter (202)
금수저 투자백서 202화(202/231)
202. 빌어먹을 양키 놈들!
일본 도쿄도 치요다구 대장성(大蔵省).
짙은색 정장을 입은 사토 카즈야 대장성 장관이 수행원과 함께 청사 로비로 들어서자 기다리고 있던 기자들이 우르르 몰려들었다.
그러고는 마이크를 들이대며 질문을 쏟아냈다.
“닛산과 소니에 이어서 닛폰 생명 보험도 4억 달러나 되는 환손실을 입은 걸로 밝혀졌는데. 여기에 대해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이번 사태에 대해 어떤 의견을 가지고 계신지 밝혀 주십시오!”
“파생 옵션을 판매한 엘도라도 펀드에 대해 대장성이 어떤 조치를 취할 생각이십니까?”
시끄럽게 떠들어대는 질문 세례에 노련한 정치인인 사토 장관은 주위를 둘러싸고 있는 기자들을 차분하게 훑어보고는 어깨를 펴며 입을 열었다.
“이번 사태에 대해 대장성과 내각은 상황을 심각하게 인식하고 국내 기업들의 막대한 손실을 초래한 통화옵션 상품에 대해 긴급 안전 점검과 실태 조사를 실시하기로 했습니다. 이와 더불어 엘도라도 펀드가 고위험 파생금융상품을 판매할 때 손실 가능성을 충분히 설명했는지, 그리고 상품에 위법 사항이 없는지를 꼼꼼하게 따져보고 문제점이 발견된다면 그에 대한 처벌과 제재가 내려질 겁니다.”
그러자 NHK 소속 기자가 마이크를 내밀고 물었다.
“그럼 외국계인 엘도라도 펀드에 법적 조치가 취해질수도 있다는 말씀이십니까?”
“물론입니다. 외국계라고 해도 국내 법률을 어기는 행동을 했다면 처벌을 받는 것이 마땅할 겁니다.”
사토 장관이 단호하게 대답하자 다른 기자가 재빨리 다른 질문을 던졌다.
“존 포터 지사장을 비롯한 엘도라도 펀드 임직원들에 대해 출국 금지가 이루어진 것도 그에 따른 사전 조치 차원입니까?”
“그렇습니다.”
사토 장관은 짤막하게 대답하고는 슬쩍 눈짓했다.
그러자 옆에 있던 수행원이 앞으로 나서 양팔을 벌리며 시야를 막았다.
“업무를 보셔야 하니 질문은 여기까지만 받겠습니다.”
“피해를 입은 기업들에 대한 구제도 이루어지는 겁니까?”
“한 말씀만 더 해주십시오!”
“장관님! 장관님!”
기삿거리를 하나라도 더 얻어 내려고 기자들이 끈질기게 질문을 던졌지만 사토 장관은 가볍게 손을 흔들고는 걸음을 옮겨 엘리베이터에 올라탔다.
“어땠나?”
“언제나 그렇지만 능숙하게 잘 대답하셨습니다.”
수행원의 대답에 사토 장관은 흡족한 미소를 지었다.
사토 장관이 일부러 기자들 앞에 나와서 단호한 태도를 보이며 강단있는 모습을 부각시킨 건 다분히 내년에 있을 새 내각 구성을 의식한 행동이었다.
물론 내각으로 쏠리던 비난 여론을 무마시키려는 의도도 있었지만 중요한 건 대중에 보이는 자신의 이미지였다.
‘지난 7월 참의원 선거 패배로 어차피 총리 퇴진과 내각 총사퇴는 확정된 사실이나 마찬가지니. 가라앉는 난파선 대신 얼른 다른 배로 갈아탈 궁리를 해야지.’
고베 대지진과 도쿄 지하철 사린 테러 사건 등 온갖 산적한 난제들로 인해 선거에서 이기긴 했지만 바로 정권을 넘겨받길 꺼려한 자민당의 유임 요청에 내년까지는 현재 내각이 유지될 예정이었다.
괜히 지금 정권을 이어받았다가 똥물을 뒤집어쓰기 싫으니까 힘들게 일하고도 욕을 피하기 어려운 뒷수습을 전부 현재 내각에 떠넘긴 거였다.
그런 시커먼 속셈을 모를 리가 없는 사토 장관이 코웃음을 치며 말했다.
“능구렁이 같은 놈들.”
“예?”
“아무것도 아닐세.”
신경 쓰지 말라는 듯 대꾸하자 수행원은 더 묻지 않고 고개를 바로 했다.
현재 내각을 욕받이로 내세우려는 자민당의 행동도 치사했지만, 사토 장관 역시 아직 멀쩡히 내각이 유지되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은밀하게 자민당과 접촉하고 있으니 욕할 입장은 못 됐다.
‘원래 자민당에 있다가 잠시 갈라져 나온 것이니 다시 본가로 돌아간다고 해도 욕할 사람은 없겠지.’
사토 장관은 그렇게 생각하며 스스로 정당성을 부여했다.
선거에서 승리했으나 자민당이 과반수를 확보하는데 실패한 지금이 몸값을 최고로 높여 다시 당적을 옮겨갈 수 있는 적기이기도 했다.
‘이번 기회를 잘 활용한다면 차기 내각에서 어렵지 않게 한 자리를 차지할 수 있을 거야.’
사토 장관은 이왕이면 노른자위인 대장성 장관직을 다시 맡았으면 더할 나위 없겠다고 생각하면서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자 성큼 밖으로 걸음을 내딛었다.
카펫이 깔린 복도를 지나 부속실로 들어서는 사토 장관을 보고 책상 앞에 앉아 업무를 보던 직원들이 얼른 몸을 일으켜 인사했다.
“어서 오십시오. 장관님.”
“음.”
거만한 태도로 고개만 까딱이던 사토 장관은 부속실 직원들 사이에 오카와라 차관이 있는 걸 발견하고 마침 잘 됐다는 표정을 했다.
“안 그래도 부르려고 했는데 잘 됐군. 따라 들어오게.”
“예.”
오카와라 차관은 사토 장관을 따라 안쪽에 있는 장관실로 들어갔다.
재킷 단추를 풀고 소파 상석에 자리한 사토 장관은 오카와라 차관에게도 서 있지 말고 앉으라는 듯 턱짓을 했다.
“실례 하겠습니다.”
오카와라 차관이 비어 있는 오른편 소파에 앉았다.
그러자 사토 장관이 몸을 뒤로 기대면서 물었다.
“조사는 어떻게 되고 있나?”
“엘도라도 펀드 관계자들을 소환해 관련 내용을 진술받고 압수물들을 분석 중에 있습니다만 아직 혐의점을 찾아내지 못했습니다.”
마뜩찮은 표정을 짓는 걸 보며 오카와라 차관이 얼른 말을 덧붙였다.
“그래서 문제가 된 옵션의 손익 구조를 가지고 처음부터 불공정한 계약이었다는 것으로 방향을 잡아 나가볼까 합니다.”
“흐음. 그래?”
사토 장관이 뒤로 기대고 있던 상체를 바로 세우며 흥미를 보였다.
“구체적으로 어떻게 하겠다는 건지 말해 봐.”
내심 안도한 오카와라 차관은 다시 자세를 가다듬으면서 차분히 설명했다.
“파생상품이 만들어진 구조를 보면 환율이 계약 범위 안에서 움직일 경우, 최대 수익률은 15%가 안 되지만 밴드 상단을 돌파해 녹인 옵션이 발동되면 손실률이 400%를 넘기도록 설계되어 있습니다.”
그러자 사토 장관이 눈을 반짝였다.
“이야기를 듣고 보니 정말 한쪽에 일방적으로 유리하게 만들어진 계약이군.”
“그래서 이 부분을 집중적으로 문제 삼아 엘도라도 펀드를 압박하려고 합니다.”
“좋아. 그렇게 엮으면 확실히 위법 행위를 한 것이 되니까. 과징금과 행정 처분은 물론이고 법적 처벌까지 가할 수 있겠어.”
낮은 웃음소리를 들으며 오카와라 차관도 그 말에 동의했다.
“쉽지는 않겠지만 가능은 하다고 생각합니다.”
두 사람의 생각은 수익률에 승률이 반영되어 있는 파생상품의 특성을 완전히 무시한 판단이었다.
일본 기업들이 옵션 계약을 체결할 때 만해도 달러-엔 환율이 100엔 위로 올라갈 가능성이 아주 낮았다.
그러니 확률이 높은 엔화 상승 추세에서는 수익률이 낮고 하락 시에는 그만큼 손실이 커질 수밖에 없는 것이 당연했다.
하지만 그런 건 아무 상관 없이 꼬투리를 잡을 건수를 만들어냈다는 것에 사토 장관은 아주 만족한 표정을 지었다.
그러고는 부드러운 목소리로 오카와라 차관을 칭찬했다.
“정말 좋은 방법을 찾아냈구만. 아주 마음에 들어.”
“그러시다니 다행입니다.”
“음음, 그래. 지금처럼만 하라고.”
그때 노크를 하면서 부속실 직원이 안으로 들어왔다.
“말씀 중에 죄송합니다.”
“뭔가?”
갑자기 대화를 방해받은 사토 장관이 퉁명스레 물었다.
“빈센트 미국 상무부 장관님 전화입니다.”
예상치 못한 타이밍에 사토 장관은 물론이고 오카와라 차관까지 깜짝 놀란 눈을 했다.
“바로 연결해.”
“예.”
부속실 직원이 서둘러 밖으로 나가자 사토 장관은 머리를 갸웃거리며 중얼거렸다.
“그 작자가 갑자기 무슨 일이지.”
미국 상무부 장관이 사전에 협의도 없이 불쑥 연락을 해오는 건 상당히 예외적인 일이었기에 오카와라 차관 역시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잠시 후 소파 옆 협탁에 놓인 전화기 벨이 울리자 사토 장관이 바로 수화기를 집어 들었다.
그러고는 일본 억양이 강한 영어로 먼저 말했다.
“여보세요.”
사토 장관은 단번에 빈센트 상무장관의 목소리를 알아차렸다.
그럴 만도 한 것이 미일 자동차 협상을 벌이며 몇 번이나 만났었기에 못 알아보는 것이 더 이상한 일이었다.
“장관께서 직접 전화를 다 주시고 무슨 일이라도 있습니까?”
약간 긴장했으나 사토 장관 역시 정계에서 오랫동안 닳고 닳은 정치인이었다.
표정과 달리 여유 있는 목소리를 내며 묻자 상대방 측에서 무뚝뚝한 대답이 돌아왔다.
[왜 전화를 했는지는 그쪽에서 더 잘 알고 계실 텐데요.]순간 머릿속에 스친 생각에 사토 장관이 이맛살을 찡그렸다.
“혹시 엘도라도 펀드 때문에 연락한 겁니까?”
[그렇습니다. 피차 바쁜 몸이니 서론은 빼고 본론부터 이야기하도록 하죠.]“…….”
[엘도라도 펀드에 대한 부당한 조사와 압력을 당장 그만두길 바랍니다.]미간을 찡그린 사토 장관은 불쾌한 기색을 드러내지 않으려고 애쓰면서 말을 받았다.
“뭔가 오해하고 있는 것 같군요. 적법한 절차에 따라 엘도라도 펀드의 위법 행위를 조사하고 있는 겁니다.”
[설마 우리가 일본 기업과 엘도라도 펀드 사이의 계약 내용도 확인해보지 않고 이런 전화를 했다고 생각합니까.]사토 장관은 딱딱하게 굳은 얼굴로 수화기를 든 채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일본 국내 여론을 무마시키기 위해 엘도라도 펀드를 압박하고 있는 걸 다 알고 있습니다. 그러니 일을 더 키우지 말고 이쯤에서 끝내도록 하죠.]그러자 발끈한 사토 장관이 불편한 기색을 그대로 드러내며 반박했다.
“일본 국내 문제에 미국 정부가 이래라저래라 하는 건 명백한 내정 간섭입니다!”
[일본 정부야말로 미국 회사인 엘도라도 펀드에 부당하고 차별적인 조사와 압력을 가하고 있지 않습니까. 이건 우리 미국을 무시하고 양국 사이에 맺은 무역협정에 위배되는 행위입니다.]빈센트 상무장관은 오히려 정색하며 강하게 압박했다.
[계속 이렇게 나온다면 미국의 이익을 침해하는 심각한 불공정 사안으로 보고 포괄통상법에 따라 응당한 조치를 취할 것입니다.]그 말을 듣자마자 사토 장관의 심장이 철렁 가라앉았다.
빈센트 상무장관이 거론한 포괄통상법에는 대상국에 대해 무자비하고 차별적인 보복 조치를 가능하도록 한 소위 슈퍼 301조가 포함되어 있었기 때문이었다.
슈퍼 301조를 실행하면 특정 상품에 대해 100%나 되는 관세를 부과하거나 수입 쿼터 실시, 각종 부과금 그리고 무역협정 철폐등 아주 강한 보복 조치를 가할 수 있었다.
얼굴에서 핏기가 싹 가신 사토 장관이 손에 든 수화기를 꽉 부여잡고 말했다.
“아니 고작 펀드 하나 때문에 그렇게까지 하겠다는 겁니까?”
[미국의 이익이 침해받거나 기업이 피해를 입는 건 그 어떤 것이라도 용납할 수 없습니다.]“으음…….”
사토 장관은 생각보다 더 단호한 태도를 직면하곤 얼굴을 구긴 채 침음성을 내뱉었다.
설마 미국에서 이렇게까지 강경하게 나올 줄은 몰랐기에 더욱 당혹스러웠다.
[미일 관계가 나빠지는 건 나 역시 바라는 일이 아니니 부디 현명한 판단을 내리길 바랍니다.]“잠깐…….”
빈센트 상무장관은 대답도 듣지 않고 바로 전화를 끊어 버렸다.
“젠장!”
자존심이 상할 대로 상한 사토 장관이 크게 욕설을 내뱉으며 수화기를 부숴 버릴 듯 세게 내려놨다.
“빌어먹을 양키 놈들!”
씩씩거리며 분을 삭이고 있자 옆에서 눈치를 보던 오카와라 차관이 조심스레 말을 걸었다.
“미국에서 엘도라도 펀드 사건에 대해 항의를 해온 겁니까?”
사토 장관은 아무 대답 없이 얼굴만 구기고 있다가 이내 입술을 질끈 깨물었다.
“조금 전에 불공정계약으로 엮어 넣겠다고 한 거 그만두게.”
“네?”
오카와라 차관이 눈을 크게 뜨고 쳐다봤으나 사토 장관은 못 본 척 외면했다.
“그리고 당장 사건을 종결지으면 우리 꼴이 우습게 될 테니까. 적당히 시간을 끌다가 무혐의로 이번 일을 마무리 짓도록 해.”
“진심이십니까?”
“무슨 수를 썼는지 빈센트 상무장관을 앞세워서 협박하는데 어쩌겠어! 젠장할!”
버럭 분통을 터트리는 모습에 오카와라 차관은 눈치 빠르게 고개를 숙였다.
“알겠습니다.”
사토 장관은 짜증 가득한 얼굴로 거칠게 넥타이를 풀어 내렸다.
“국민들의 비난을 돌리려다가 오히려 덤터기를 쓰게 생겼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