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olden Spoon Investment Portfolio RAW novel - Chapter (205)
금수저 투자백서 205화(205/231)
205. 박석원 그 친구가 도대체 뭘 본 걸까.
생각지도 못한 이야기에 박태홍 회장은 순간 당혹감을 감추지 못했다.
그러다 이내 표정을 수습하고는 확인하듯 되물었다.
“방금 대흥 창업투자를 네가 사겠다고 했냐?”
박태홍 회장의 시선을 똑바로 마주 보면서 그는 태연하게 대답했다.
“네.”
“허어.”
헛웃음을 내뱉은 박태홍 회장은 속이 깊은 작은 아들이 이런 이야기를 꺼냈다면 뭔가 이유가 있을 거라는 생각에 상체를 바로 세우며 물었다.
“갑자기 왜 창업투자에 관심이 생긴 거냐?”
“아버지가 증권사에 연연하지 말고 이제 마음껏 제가 하고 싶은 걸 해보라고 하셨잖아요.”
“그랬지.”
“외국뿐만 아니라 국내에서도 돈을 벌 기회가 많다고 생각해서 대흥 창업투자를 투자 창구로 활용할 생각이에요.”
“흠…….”
박태홍 회장은 한 손으로 턱을 매만지며 잠시 생각했다.
“하긴 엘도라도 펀드가 네 소유긴 해도 다른 사람들이 보기엔 외국계 회사일 뿐이니까. 국내 회사인 대흥 창업투자를 내세우는 것이 사업을 하기에 여러모로 편리하겠지.”
“예, 맞아요. 투자를 받는 쪽에서도 거부감이 덜할 거고요.”
확실히 일리가 있는 이야기였다.
거기다가 어차피 대흥 그룹에서 몇 개 없는 금융 계열사인 대흥 창업투자는 대흥 중권과 함께 둘째 아들한테 줄 생각이었기에 더욱 결정이 어렵지 않았다.
“좋아. 너한테 주도록 하마.”
“감사합니다.”
“하지만 비자금 파문이 현재 진행 중인 상황에서 지분을 증여한다면 괜히 시끄러워질 수 있으니까. 회사 운영은 네가 먼저 맡아서 하고 지분 정리는 분위기를 보며 차차 하는 걸로 하자.”
그러자 석원이 대뜸 생각지도 못한 말을 꺼냈다.
“증여가 아니라 제가 매수를 하면 문제 될 것이 없지 않겠어요.”
“네가 지분을 사겠다고?”
박태홍 회장이 눈을 깜빡이며 되물었다.
“예. 아버지가 보유하고 계신 지분을 증여받고, 제가 가진 주식과 합친다고 해도 30%밖에 안 되잖아요.”
그룹에서 금융 계열사를 떼어내 둘째 아들한테 줄 생각을 일찌감치 하고 있었던 박태홍 회장은 증시 상장 전에 가지고 있던 대흥 창업투자 지분 절반을 미리 증여해뒀다.
그 덕분에 대흥 창업투자 지분 15%를 보유한 석원은 최대 주주인 미도파 백화점과 박태홍 회장에 이은 3대 주주로 이름이 올라가 있었다.
“미도파 백화점은 우호 지분이니 그것만으로도 경영권을 행사하는데 아무런 문제가 없지 않냐.”
“물론 그렇지만 앞으로 하려는 투자를 위해서라도 전 대흥 창업투자가 완벽히 제 뜻에 따라 움직이는 개인 회사가 되길 원해요.”
“……!”
“그래서 미도파 백화점이 보유한 주식은 물론이고 개인 주주들의 지분까지 전부 사들여서 최종적으로 상장 폐지를 시킬 생각이에요.”
“상장 폐지를 시킨다고 했냐?”
박태홍 회장이 깜짝 놀라 몸을 앞으로 내밀었다.
“예.”
담담한 말투로 대답하자 박태홍 회장은 뭐라 할 말을 잃고는 이해가 안 된다는 표정을 지었다.
“증시에 상장시킨 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자진 상폐를 하겠다니. 굳이 그럴 필요가 있겠냐?”
“때에 따라 과감하면서도 무모해 보이는 투자를 해야 될 경우가 있는데 지금 같은 형태로는 그게 쉽지 않잖아요.”
“흐음. 그건 그렇지.”
아무리 오너의 힘이 강하다고 해도 주주들의 눈치를 보지 않을 수가 없었다.
“하지만 증시가 안 좋아 주가가 많이 떨어졌다고 해도 지분을 다 매입하려면 자금이 만만치 않게 들어갈 텐데 그걸 감당할…… 수 있겠군.”
우려 섞인 표정을 짓던 박태홍 회장은 둘째 아들이 얼마나 돈이 많은지를 떠올리곤 머쓱하게 입맛을 다셨다.
하긴 석원이 가진 재력이라면 대흥 창업투자 정도는 통째로 사들인다고 해도 티도 안 날 터였다.
도움을 받지 않고 혼자서 이만한 돈을 벌어들인 둘째 아들이 새삼 대견하고 뿌듯하면서도 한편으로는 부모로서 해줄 수 있는 게 별로 없는 것 같아 조금 서운한 기분이 들었다.
“능력이 안 된다면 모를까 충분히 할 수 있는데 막을 이유는 없지. 그게 편하다면 네 뜻대로 하도록 해라.”
“감사합니다.”
“대신 한 가지 조건이 있다.”
“……?”
박태홍 회장은 뒤로 몸을 기대며 둘째 아들을 바라봤다.
“내가 가진 지분 15%는 너한테 그냥 증여해 줄 테니까 그렇게 알 거라.”
“제가 매입을 해도 되는데 굳이 그러실 필요는…….”
“그러면 내 체면이 안 서지 않냐. 아비가 아들한테 무슨 돈을 받아.”
말도 안 되는 소리 하지 말라는 듯 박태홍 회장이 딱 잘라 말했다.
석원의 입장에선 정말 얼마 안 되는 액수였기에 굳이 세금까지 내가며 증여로 받을 필요는 없었다.
하지만 아버지인 박태홍 회장의 체면과 위신을 생각해서 얌전히 말을 듣기로 했다.
“예. 그럴게요.”
그러자 박태홍 회장이 흡족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회사에 이야기를 해둘 테니 구체적인 계획은 길 실장하고 의논하도록 해라.”
“네.”
짧게 대답한 석원은 슬슬 일어날 준비를 했다.
“그럼 전 이만 가볼 테니 쉬세요.”
그렇게 석원이 자리를 떠나자 혼자 남은 박태홍 회장은 소파에 앉아 닫힌 문을 쳐다보며 중얼거렸다.
“대흥 창투라…… 그걸로 뭘 하려는지 모르겠지만 둘째 녀석이라면 알아서 잘 하겠지.”
최근 적자 폭을 많이 줄이긴 했지만 수익을 거의 내지 못하고 있는 대흥 창업투자를 석원이 어떻게 변화시킬지 박태홍 회장은 벌써부터 기대가 됐다.
* * *
뉴욕 월스트리트.
퀀텀 펀트 CIO인 로드니는 컴퓨터 모니터 4대가 둘러싼 자리에 앉아 증시 상황을 살펴보고 있었다.
그래프와 숫자가 쉬지 않고 정신없이 오르내리는 가운데 특이한 움직임을 하나 발견하곤 낮게 침음성을 흘렸다.
“흐음.”
아침에 깔끔하게 면도를 하고 나온 턱을 한쪽 손으로 매만지며 모니터를 한참 동안 들여다본 로드니는 이내 책상에 놓인 인터폰 수화기를 집어 들었다.
“이안한테 연락해서 지금 바로 내 방으로 오라고 해요.”
[네. 알겠습니다.]여비서의 대답을 들으며 그대로 수화기를 내려놓은 로드니는 모니터에 띄워진 GE와 코카콜라, P&G 등의 주가창을 다시 한번 주의 깊게 살폈다.
“이거 아무래도 냄새가 나는데.”
약속이나 한 듯 S&P500 상위 열 개 종목의 주가가 일제히 하락하고 있으니 그럴 만도 했다.
올해 두 번째 연방 정부 셧다운 우려가 커지고 있었지만, 그것 때문이라고 하기에는 다른 종목들의 주가는 아무런 영향이 없었다.
오히려 시스코 같은 경우에는 오늘도 크게 오르며 인터넷 열풍이 얼마나 뜨거운지 확인시켜주고 있었다.
반면에 같은 인터넷 수혜주이지만 S&P500 10위 안에 들어가 있는 마이크로소프트는 오전 내내 보합세를 보이다가 조금 전부터 하락으로 돌아섰다.
로드니는 모니터를 뚫어져라 주시하면서 손톱 끝으로 책상을 툭툭 두드렸다.
“누군가 S&P500 상위 열 개 종목을 대량으로 매도하고 있지 않으면 절대 나올 수 없는 그림이란 말이야.”
그때 노크와 함께 퀀텀 펀드 치프 매니저인 이안이 문을 열고 들어왔다.
“부르셨습니까.”
“장중이라 바쁠 텐데 오라고 해서 미안하네.”
“아닙니다.”
이안은 가볍게 대답하며 책상 앞으로 다가왔다.
“그런데 무슨 일로 부르신 겁니까.”
“GE를 비롯한 S&P500 상위 열 개 종목에 뭔가 일이 있는 것 같은데 알고 있나?”
그러자 이안이 살짝 얼굴을 굳혔다.
“안 그래도 좀 더 확인한 뒤에 보고를 드리려고 했는데 보셨군요.”
아니나 다를까 정글 같은 월스트리트에서 닳고 닳은 베테랑 트레이더답게 이안 역시 이상한 움직임을 포착하고 있었다.
“누군가 공매도를 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자신과 같은 생각에 로드니는 작게 머리를 끄덕이며 뒤로 몸을 기댔다.
그러고는 앞에 서 있는 이안에게 시선을 주며 말했다.
“작은 회사도 아니고 S&P500 제일 앞줄에 이름을 올리고 있는 거대 기업을 그것도 열 곳이나 동시에 공매도를 치려면 엄청난 자금이 필요할 텐데. 그런 미친 짓을 벌인 곳이 대체 어딘가?”
S&P500 상위 열 개 종목을 전부 공매도했다는 건 미국 증시에 숏을 친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이 사실이 얼마나 어이가 없는지 로드니의 입에서도 저절로 과격한 표현이 튀어나왔다.
“저도 궁금해서 여기저기 전화를 돌려 알아봤는데. 아직 확실한 건 아니지만 아무래도 엘도라도 펀드가 매도 주문을 넣고 있는 것 같습니다.”
“지금 엘도라도 펀드라고 했나?”
“예.”
롱텀캐피털매니지먼트(LTCM)와 함께 최근 월스트리트에서 가장 주목받는 펀드이자 개인적으로도 관심이 많은 엘도라도 펀드의 이름이 나오자 로드니가 미간을 좁혔다.
“허어. 이것 참. 하필이면 엘도라도 펀드라니.”
헛바람을 내뱉은 로드니는 팔짱을 끼며 납득한 듯 고개를 주억거렸다.
“하긴 이만한 규모로 공매도를 치려면 못해도 백억 달러가 훌쩍 넘어가는 자금이 필요할 텐데. 그렇게 큰돈을 동원하려면 엘도라도 펀드 정도는 되어야겠지.”
“제일 유력하다는 거지 아직 확실한 건 아닙니다.”
“아니야. 이런 미친 짓을 벌이려면 박석원 그 친구 같은 배짱이 있어야지. 분명 엘도라도 펀드가 공매도를 치고 있는 것이 맞을 거야.”
로드니가 확신에 찬 얼굴로 말했다.
이안 역시 내심 엘도라도 펀드를 가장 유력하게 보고 있었기에 딱히 반박하지 않았다.
“뒤에 박석원 그 친구가 있는 거라면 그냥 막무가내로 벌인 짓은 아닐테고. 조만간 증시가 크게 하락할 가능성이 크다고 생각해서 베팅한 거겠지.”
“증시가 폭락해야 돈을 벌 수 있으니 그렇겠죠.”
“인터넷 열풍을 타고 쭉쭉 오르고 있는 증시가 폭락할 만한 악재라면 연방 정부 셧다운밖에 없는데 그걸 노리고 숏베팅을 한 걸까?”
그러자 이안이 이맛살을 찌푸리며 반박했다.
“말씀대로 악재라고 할 만한 건 그것뿐인데. 얼마 전 셧다운 때에는 주가가 하락하긴커녕 오히려 계속 올랐지 않습니까.”
이야기를 들은 로드니가 슬쩍 인상을 찡그렸다.
“그렇지. 우리도 숏을 쳤다가 손해를 본 아픈 기억이 떠오르는군.”
“저희뿐만 아니라 월가에 있는 수많은 펀드들이 방향을 잘못 잡았다가 큰 낭패를 봤었죠.”
이안이 쓴 입맛을 다시며 말을 받았다.
생각하면 할수록 엘도라도 펀드의 의중을 헤아리기 힘들었기에 로드니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그걸 모를 리 없을 텐데 숏베팅을 했다니 정말 이상하군.”
“원숭이도 나무에서 떨어질 때가 있다지 않습니까. 이번에는 엘도라도 펀드가 헛다리를 짚고 베팅을 하고 있는 게 아닐까요.”
확실히 지난번 셧다운 상황을 되짚어 본다면 엘도라도 펀드가 무리수를 두고 있는 거였다.
하지만 어쩐지 찝찝한 기분을 떨칠 수 없었던 로드니는 팔짱을 낀 채 과연 그럴까하는 투로 말했다.
“지금까지 놀라운 성과를 냈고 불과 얼마 전엔 일본 기업들을 상대로 환헤지 옵션을 팔아 짭짤한 수익을 내는 수완을 부린 게 박석원이란 남자야. 그런 사람이 단지 욕심을 부려 역배당에 돈을 거는 무모한 행동을 했다고는 생각되지 않는군.”
“그럼 저희가 모르는 뭔가를 봤을 거라는 말씀이십니까?”
“그럴지도 모르지.”
로드니는 사뭇 진지한 표정으로 고개를 들었다.
그러고는 앞에 서 있는 이안을 쳐다보며 말을 이었다.
“우리도 1억 달러만 숏베팅을 하도록 해.”
그러자 이안이 깜짝 놀라 눈을 동그랗게 떴다.
“엘도라도 펀드를 따라 하시려는 겁니까?”
“그래.”
로드니가 머리를 끄덕였다.
“왠지 이번에도 박석원이 도박을 성공시킬 것 같은 예감이 든단 말이야. 하지만 누가 봐도 역배당인 것이 분명하니까 만약 잃게 되더라도 크게 데미지가 가지 않는 선에서 한번 베팅을 해보려는 거야.”
“후우…… 알겠습니다.”
이안이 어쩔 수 없다는 듯 머리를 절레 흔들었다.
“말리고 싶지만 투자 책임자는 로드니 씨니까요. 지시대로 하도록 하죠.”
“공매도를 하면서 혹시 우리가 놓치고 있는 악재가 있는지 다시 한번 면밀하게 살펴보도록 해.”
“예.”
이안이 대답을 하고는 몸을 돌려 방을 나갔다.
다시 모니터에 시선을 준 로드니는 공매도의 효과가 나오고 있는지 점점 하락폭을 키우고 있는 주가창을 바라보며 깊은 생각에 잠겼다.
“박석원 그 친구가 도대체 뭘 본 걸까.”
아무리 고심해봐도 답을 알 수가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