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olden Spoon Investment Portfolio RAW novel - Chapter (209)
금수저 투자백서 209화(209/231)
209. 망할 사비츠 하원의장과 공화당 놈들이 또다시 치킨게임을 벌이려고 하는군.
1995년 12월 15일 미국 워싱턴.
늦은 밤이었지만 예산안 합의 시한을 몇 시간 남겨두지 않은 백악관은 온통 불이 환하게 켜진 채 긴박하게 움직이고 있었다.
커다란 창밖으로 조명이 켜진 로즈 가든이 내다보이는 데이비슨 대통령의 집무실인 오벌 오피스(Oval Office)에는 네 명의 사내가 모여 앉아 있었다.
푹신한 소파 가운데 상석에 자리한 데이비슨 대통령은 굳은 얼굴로 양옆에 앉아 있는 사내들을 바라보며 입을 뗐다.
“아직 아무런 소식이 없는 걸 보면 협상이 어렵게 진행되고 있는 모양이군.”
그러자 헉슬리 비서실장이 슬쩍 눈치를 살피고는 말을 받았다.
“우드 선임고문과 에드워즈 상원의원이 사비츠 하원의장을 직접 찾아가 설득 중이니 곧 좋은 결과가 있을 겁니다.”
“쯧. 그랬으면 좋겠지만 사비츠 의장이 워낙 고집불통이라 이야기를 들으려고 할지 의문이란 말이야.”
왼편에 앉아 있던 밀번 국무장관이 커피잔을 내려놓으며 자연스럽게 대화에 끼어들었다.
“사비츠 하원의장이 강경한 태도를 고수하고 있긴 하지만 내년 대선을 앞두고 지난 11월에 이미 한차례 셧다운이 벌어졌었는데. 또다시 연방 정부를 멈춰 세우기는 부담이 클 겁니다.”
“맞습니다. 지금도 여론이 좋지 않은데 막무가내로 나오긴 쉽지 않을 겁니다.”
밀번 국무장관과 헉슬리 비서실장이 긍정적인 모습을 보이는 것하고 달리 왼편 끝에 자리한 프랭크 재무장관은 신중한 태도를 취했다.
“그렇긴 하지만 최악의 경우도 생각해둬야 합니다.”
데이비슨 대통령은 밀번 국무장관에게 시선을 주며 약간 가라앉은 목소리로 물었다.
“비상 대책은 준비를 다 끝냈나?”
“예. 오늘 자정까지 예산안이 합의 처리되지 못한다면 그 즉시 연방 공무원 80만 명이 일시 해고 상태에 들어가게 됩니다. 하지만 국방, 치안, 전기, 수도 등 국민의 생명과 재산 보호에 직결되는 필수 서비스 인원들은 셧다운 상황하고 상관없이 그대로 업무를 계속 이어갈 예정입니다.”
“업무는 중단 없이 계속 하지만 보수는 예산안이 통과된 후에 소급해서 지급한다고 했었지.”
“그렇습니다.”
데이비슨 대통령은 팔짱을 낀 자세로 고개를 끄덕였다.
“셧다운이 되더라도 피해를 최소화하려면 어떻게든 짧게 끝을 내야 되겠군.”
그러자 프랭크 재무장관이 사뭇 심각한 얼굴로 조심스레 말했다.
“행정 업무가 중단되는 것도 문제지만 더 심각한 건 제때 연방 정부 부채 한도를 높이지 못한다면 자칫 미국이 국가 부도 사태에 빠질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지난달 1차 셧다운을 끝내면서 공화당이 한 달짜리 임시 예산안과 함께 부채 상한선을 일부 상향조정 해주긴 했었다.
하지만 말 그대로 아주 조금 높여줘 당장 눈앞에 닥친 지급불능 사태를 잠시 막아준 것에 불과했다.
“부채 상한 없이 언제까지 버틸 수 있나?”
대통령의 물음에 프랭크 재무장관은 어두운 표정으로 대답했다.
“계획돼 있던 정부 지출을 뒤로 미루는 등 비상조치를 통해 재정을 최대한 아끼고 있습니다만, 내년 2월 초가 되면 보유한 현금이 모두 소진되게 될 겁니다.”
아직 두 달이 넘게 여유가 남아 있었고 설사 두 번째 셧다운이 발생하더라도 다들 그렇게 오래 끌지는 않을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마냥 마음을 놓고 있을 상황은 아니었다.
“디폴트까지 갈 일은 절대 없겠지만 그래도 혹시 모르니까. 현금 보유 상황을 매일 꼼꼼하게 체크하며 위기 관리를 하도록 하게.”
“알겠습니다.”
그때 협탁 위에 설치된 인터폰 벨이 울리자 데이비슨 대통령이 한쪽 팔을 뻗어 버튼을 눌렀다.
“뭔가?”
[벤 우드 선임 고문님의 전화입니다.]안 그래도 기다리고 있던 연락에 데이비슨 대통령이 곧장 대답했다.
“바로 연결하게.”
[네.]비서실 여직원이 대답하고 얼마 있지 않아 벨소리가 다시 울렸다.
데이비슨 대통령은 주변 사람들이 들을 수 있게 스피커폰으로 돌려 전화를 받았다.
“여보세요.”
그러자 지난 대신 때 선대본부장을 맡았던 벤 우드 선임고문의 무거운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많이 기다리셨을 텐데 좋지 않은 소식을 알려드리게 돼서 죄송합니다.]기대했던 것과는 한참 거리가 먼 이야기에 데이비슨 대통령이 눈썹을 찌푸렸다.
“합의점을 찾지 못한 건가?”
[에드워즈 상원의원과 함께 사비츠 하원의장을 어떻게든 설득해 보려고 했지만 태도가 너무 강경했습니다. 공화당이 내놓은 예산안에서 단 한 발자국도 물러설 수 없다고 고집을 부리고 있습니다.]“이런 고집불통 같으니!”
이야기를 듣고 있던 데이비슨 대통령이 버럭 화를 냈다.
“젠장. 알았네.”
통화를 끝낸 데이비슨 대통령은 짜증스럽게 한 손으로 머리카락을 쓸어올리며 인상을 찡그렸다.
“망할 사비츠 하원의장과 공화당 GOP(Grand Old Party)놈들이 또다시 치킨게임을 벌이려고 하는군.”
그러자 밀번 국무장관이 우려 가득한 얼굴로 물었다.
“임시 예산안마저 거부하고 있다면 이미 공화당 쪽은 셧다운을 각오하고 있다는 뜻일 텐데 이제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한발 물러나 공화당이 내놓은 예산안을 받아들여 셧다운을 피할지.
아니면 이대로 한 해에 두 번이나 연방 정부가 폐쇄되는 미국 역사상 초유의 사태를 각오하고 계속 강 대 강 대치를 이어갈 것인지 묻는 거였다.
어느 쪽이든 공화당 못지않게 데이비슨 대통령 역시 정치적 부담이 엄청나게 컸다.
밀번 국무장관을 비롯한 측근들의 시선이 데이비슨 대통령에게로 향했다.
데이비슨 대통령은 극심한 부담감을 안은 채 고심을 거듭하다가 배알이 뒤틀리는 기분을 느꼈다.
자꾸만 절벽 끝으로 상황을 몰고 가는 공화당 놈들의 행동에 짜증이 치밀어 올랐다.
심사가 잔뜩 꼬인 데이비슨 입술 끝을 뒤틀며 삐딱한 표정을 지었다.
“이대로 힘없이 물러설 수는 없지.”
“하지만…….”
“내년 대선을 앞두고 의도적으로 핵심 공약 중 하나인 사회 프로그램 예산을 줄여 버린 데다가 메디케이드에 대한 통제권도 각주들에 넘겨서 정국 주도권을 쥐고 날 흠집 내려는 수작이 뻔한데. 장단에 놀아날 순 없지 않나.”
연이은 셧다운 사태에 국정 운영이 불안정하고 여론마저 좋지 않았다.
하지만 지금 벌이고 있는 공화당과의 힘겨루기는 단순한 예산 문제가 아니라, 얼마 남지 않은 대통령 선거의 전초전이나 마찬가지였다.
그걸 너무나도 잘 알고 있었기에 밀번 국무장관을 비롯한 참석자들은 내심 걱정을 하면서 쉽사리 양보하자는 이야기를 꺼내지 못했다.
“두 번째 셧다운에 들어간다면 정부 역시 비난을 받겠지만 강경 일변도의 태도를 보이며 상황을 파국으로 끌고 간 공화당에 가장 많은 질타가 쏟아지겠지.”
지금도 언론 기사와 여론 조사 결과를 보면 공화당을 성토하는 내용이 더 많았기에 참석자들은 작게 머리를 끄덕였다.
“그렇게 될 걸 생각하면 두 번째 셧다운이 마냥 나쁜 것만은 아닐 거야.”
데이비슨 대통령은 헉슬리 비서실장에게 시선을 주며 말했다.
“그래도 연방정부 폐쇄가 오래가서 좋을 건 없으니까. 공화당과 계속 물밑 접촉을 하면서 타협점을 찾아보도록 해.”
“예.”
그러고는 고개를 돌려 밀번 국무장관을 보며 이야기를 계속했다.
“자넨 프랭크와 함께 연방 정부 기능이 최대한 정상적으로 작동할 수 있도록 애를 써주게나.”
“그렇게 하겠습니다.”
밀번 국무장관이 무거운 표정으로 대답했다.
데이비슨 대통령을 비롯한 참석자들 모두 이미 셧다운을 기정사실로 받아들인 모습이었다.
그러나 이때까지만 해도 첫 번째 셧다운을 넘어 연방 정부 폐쇄가 무려 21일간이나 이어지며 최장 기간 기록을 넘길 거라고는 아무도 생각하지 못했다.
* * *
다음 날 아침.
토요일이었지만 아직 주5일 근무가 도입되기 전이었기에 석원은 여느 때와 같이 출근 준비를 하고 있었다.
“흐음…….”
방에 따로 딸린 넓은 드레스 룸에 있는 커다란 전신 거울 앞에서 석원이 넥타이 두 개를 들고 한참 고민했다.
어떤 걸 메고 가면 좋을지 번갈아 가면서 목에 대 봤지만 전부 잘 어울려서 선택하기가 힘들었다.
둘 다 구찌에서 새로 출시한 신상품들이었는데 이것들 말고도 아직 입지 못한 옷이나 소품들이 가득했다.
제이콥 톰슨 구찌 수석 디자이너가 틈만 나면 신상품들을 보내주는 탓에 어느새 드레스 룸의 절반이 구찌 제품으로 채워졌을 정도였다.
남성용품뿐만 아니라 여성용 핸드백도 함께 보내줬는데 그것들은 전부 어머니인 조덕례 여사와 형수에게 선물했다.
두 사람 다 선물을 받고 크게 좋아했는데 구찌 가방 정도야 얼마든지 마음만 먹으면 살 수 있는 사람들이었지만 아직 국내에 출시되지 않은 신상을 제일 먼저 가졌다는 것에 기뻐했다.
“그러고 보니 어머니도 요즘 내가 드린 구찌 가방을 계속 들고 다니시는 것 같던데…….”
석원은 피식 미소를 지으며 무난하게 구찌 로고가 작게 들어간 검은색 실크 넥타이를 골라 목에 맸다.
거울을 보며 넥타이 매듭을 끌어 올릴 때 밖에서 벨소리가 울렸다.
몸을 돌려 드레스 룸을 나온 석원은 책상 위에 올려둔 휴대폰을 집어 들고 전화를 받았다.
[접니다. 보스.]전화를 건 사람은 랜든이었다.
미국은 늦은 밤일 텐데 이 시간에 전화를 했다면 한 가지 이유밖에 없었다.
그는 손에 든 핸드폰을 고쳐 쥐면서 곧바로 물었다.
“협상 결과가 나왔어요?”
[데이비슨 대통령의 측근인 벤 우드 백악관 선임고문과 에드워즈 상원의원이 밤늦은 시간까지 사비츠 하원의장을 설득했지만, 보스께서 예상대로 합의에 실패했다고 합니다.]예정된 결과에 그는 담담한 태도를 보였다.
“그럼 워싱턴 시각으로 자정이 지나면 바로 셧다운에 들어가겠네요.”
[그렇습니다.]“지금쯤이면 월가에도 소식이 전해졌을 텐데. 분위기는 어때요?”
정치적인 문제는 워싱턴에서 알아서 할 일이고 거액의 숏포지션을 잡아둔 석원한테 중요한 건 뉴욕 증시의 움직임이었다.
[지난 셧다운 사태의 교훈이 있어서인지 아직까지는 별다른 움직임이 없습니다.]“그럴 테죠. 저번에 숏베팅을 했다가 짐을 싸서 나간 트레이더가 한둘이 아니니까 섣불리 행동을 취하긴 어려울 거예요.”
[맞습니다. 하지만 고무적인 건 지난 셧다운 기간 동안은 계속 강한 모습을 보였던 주가가 이번에는 약보합으로 주춤하고 있다는 겁니다.]“금값은 어때요?”
[금 시세도 큰 변동 없이 눈치를 보는 듯한 모습입니다.]그러자 석원이 입가에 슬며시 미소를 지었다.
“눈치 게임을 하고 있다는 건 투자자들도 불안감을 가지고 있다는 거니까. 우리한테는 좋은 일이네요.”
[그렇습니다. 이럴 때 작은 불씨라도 하나 던져지면 그 순간 투매가 쏟아지며 아래로 크게 주저앉을 테니까요.]“계속 상황을 주시하면서 변동 사항이 있으면 바로 연락 줘요.”
[알겠습니다.]대답한 랜든이 아, 하고 말을 덧붙였다.
[그리고 지시하신 대로 엔화 포지션 청산을 오늘부터 시작하려고 합니다.]“그렇게 해요.”
앞으로도 엔저 추세가 계속 깊고 길게 이어질 터였기에 포지션을 쥐고 있으면 수익을 더 키울 수 있었다.
하지만 열 배 레버리지를 쓰고 있는 만큼 포지션을 유지하는 데 들어가는 비용이 적지 않은 데다가 무엇보다 곧 IMF가 다가오고 있었기에 아쉽지만 이쯤에서 만족하고 엔화 투자를 마무리 짓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