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olden Spoon Investment Portfolio RAW novel - Chapter (210)
금수저 투자백서 210화(210/231)
210. 흥청망청 샴페인을 터트리며 파티를 벌이고 있는 졸부로 보이네만.
갑자기 울리는 시끄러운 전화벨 소리가 새벽의 정적을 깼다.
띠리리릭. 띠리리릭.
넓은 침대에 혼자 누워 있던 석원은 잠시 몸을 뒤척이다가 한쪽 팔을 뻗어 협탁 위에 올려둔 휴대폰을 집어 들었다.
그리고 막 잠에서 깬 탓에 잔뜩 잠긴 목소리로 전화를 받았다.
“여보세요.”
[미스터 박. 바이켈입니다.]전화 너머로도 무겁게 가라앉은 분위기가 느껴졌다.
뭔가 심상치 않은 일이 생겼음을 감지한 석원이 곧바로 상체를 바로 세우고 능숙한 영어로 물었다.
“재클린 씨 상태가 안 좋아진 겁니까?”
바이켈은 작년에 자궁암 말기 진단을 받고 투병 중인 아마르 커프의 어머니인 재클린의 주치의였다.
[네. 이런 말씀을 드려서 죄송하지만 마지막을 준비하시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으음.”
며칠 전부터 재클린의 상태가 좋지 않다는 걸 알고 있던 석원이었다.
하지만 막상 임종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이야기를 듣자 자신도 모르게 침음성이 새어 나왔다.
“가족들한테도 상태를 알렸어요?”
[물론입니다. 그런데 환자분이 시카고에 살고 있는 아드님한테는 연락하지 말고 당분간 비밀로 하라고 말씀하신 모양입니다.]일리노이주 상원 의원 선거에 출마해 한창 선거 운동을 하는 중일 아들을 배려한 것일 터였다.
‘가장 힘든 당내 경선에서 이겨 당선이 유력한 상태라고 해도 선거 운동 중에 후보자가 며칠이나 자리를 비우는 건 쉽지 않은 일이지.’
마지막일지도 모르는데 자식을 걱정하고 배려하는 모습에 어머니라는 존재가 참 대단하다는 걸 그는 다시 한번 느꼈다.
“알겠어요. 환자 상태에 변화가 있으면 바로 연락을 주세요.”
[그러겠습니다.]통화를 끝낸 석원은 잠기운을 털어내듯 얼굴을 몇 번 문지르고는 이내 휴대폰 버튼을 눌러 랜든한테 전화를 걸었다.
짧은 연결음 뒤에 상대가 전화를 받자 석원이 곧바로 입을 열었다.
“나예요.”
[이 시간에 어쩐 일이십니까?]“지금 바로 회사 전용기를 시카고로 보내도록 해요.”
[전용기를요? 무슨 일이라도 있으신 겁니까.]갑작스러운 지시에 랜든이 의아한 듯 물었다.
“커프 어머니의 상태가 많이 안 좋은 모양이에요.”
자궁암 투병 사실을 알게 된 석원의 지시로 병원비는 물론이고 간병인까지 붙여 치료를 도왔기에 랜든도 상황을 바로 알아차렸다.
[최대한 빨리 보내도록 하겠습니다.]“나도 하와이로 가야될 것 같으니까. 내 전용기도 준비를 시켜놔요.”
[오늘 바로 출발하실 겁니까?]“그래요.”
[알겠습니다. 공항에 도착하시면 바로 타고 가실 수 있게 해두겠습니다.]보통은 항공편 스케줄부터 확인해 봐야겠지만 전용기가 있었기에 언제든 필요할 때 비행기를 타고 원하는 곳으로 갈 수 있었다.
짧게 통화를 끝낸 석원은 이어서 커프의 번호를 찾아 통화 버튼을 누르려다가 잠깐 망설였다.
환자 본인이 자신의 상태를 아들한테 알리길 원하지 않은 것도 있었지만 무엇보다 커프의 인생에서 큰 전환점이 될 주 상원 의원 선거를 앞두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출마한 지역구가 민주당 텃밭이라 큰 이변이 발생하지 않는 한 아마르 커프의 당선은 확정된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세상에 정해진 건 없다는 말처럼 생각지도 못한 변수로 인해 결과가 뒤바뀔 수도 있지.’
그 변수가 커프 어머니의 죽음이 될 수도 있는 거였다.
특히나 커프가 가장 존경하고 사랑하는 사람이 바로 어머니였기에 정신적인 충격과 고통이 클 거라는 건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었다.
“내 기억이 맞다면 혼수상태가 되어서야 여동생의 연락을 받고 급히 하와이로 오지만 결국 어머니의 마지막 모습을 옆에서 지키지 못했었지.”
석원이 고민에 찬 얼굴로 나직하게 읊조렸다.
회귀 전에 읽은 회고록에서 그걸 평생 후회하고 부끄럽게 생각했다고 적어놨던 것이 기억났다.
작은 차이였지만 이게 나비 효과를 일으켜 나중에 가서는 아마르 커프의 인생 자체를 바꿔놓을 수 있었다.
그뿐만 아니라 석원이 그려둔 큰 안배를 완전히 망쳐 버릴 수도 있었기에 더욱 머뭇거려졌다.
하지만 망설임은 그리 오래가지 못했다.
“아무리 그래도 몰랐으면 모를까. 알면서도 사랑하는 가족의 마지막 모습을 보지 못하게 할 수는 없잖아.”
석원은 씁쓸한 표정을 지으며 중얼거렸다.
만약 변수가 생기더라도 자신의 힘으로 원래대로 되돌려 놓으면 되었다.
결정을 내린 석원은 더 이상 머뭇거리지 않고 번호를 찾아 커프에게 전화를 걸었다.
여느 때처럼 활기찬 목소리로 커프가 전화를 받았다.
석원은 가슴이 무거워지는 것을 느끼며 천천히 입을 열어 말했다.
“커프. 나예요.”
[자네가 어쩐 일이야?]“한 가지 전할 소식이 있어요.”
* * *
뉴욕, 롱아일랜드 사우스햄튼.
높은 담장으로 둘러싸인 저택 서재에서 월가의 거물인 조지 해밀턴이 오늘 자 월스트리트 저널을 읽으며 홍차를 마시고 있었다.
[두 번째 연방 정부 셧다운 발생!]큼지막한 타이틀과 함께 올 한 해에만 두 번째로 벌어지는 사상 초유의 연방 정부 셧다운 사태가 미칠 파장과 향후 전망에 관한 기사가 여러 장의 지면에 걸쳐서 상세히 실려 있었다.
신문에 실려 있는 굳은 얼굴로 국회의사당을 나서는 에릭 사비츠 하원의장의 흑백 사진을 보면서 해밀턴은 짧게 혀를 찼다.
“백악관과 공화당이 죽자고 싸움을 벌이는 걸 보니 대선이 가까워지긴 한 것 같군.”
내년에 있을 대통령 선거가 아니라면 백악관이나 공화당 모두 이렇게까지 날을 세우며 벼랑 끝 대치를 벌이지는 않을 터였다.
“그런 만큼 양쪽 다 쉽사리 물러서려고 하지 않겠지.”
뒤로 양보하는 순간 정국 주도권을 상대편에게 빼앗기게 되고 말 테니 더욱 합의점을 찾기가 어려울 거였다.
하지만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국민들의 여론을 신경 쓰지 않을 수 없었기에 지난번처럼 적당히 힘겨루기를 하다가 타협을 볼 거라고 생각했다.
“끝까지 간다면 남은 건 공멸밖에 없을 테니 바보 멍청이가 아닌 이상 당연히 그러겠지.”
그렇게 혼잣말을 중얼거리고 있을 때 옆에서 인기척이 느껴졌다.
“무슨 재미있는 기사라도 있습니까.”
해밀턴이 고개를 돌려서 쳐다보자 새파란 남색 스트레이트 줄무늬가 있는 정장을 입은 로드니가 미소 띤 얼굴로 다가왔다.
“어서 오게.”
해밀턴은 손에 든 신문을 내려놓고 앉은 자세로 가볍게 그와 악수를 했다.
재킷 단추를 풀면서 자연스럽게 맞은편 소파에 앉은 로드니가 탁자 위에 놓인 신문을 힐끔 쳐다보더니 말했다.
“셧다운 기사를 보고 계셨군요.”
그러자 해밀턴이 어깨를 으쓱이며 대답했다.
“연방 정부가 문을 닫고 일을 안 한다는데 보통 큰일이 아니지 않나.”
“뭐. 그건 그렇지요.”
말과 달리 해밀턴과 로드니 두 사람 다 심각하게 걱정하는 얼굴은 아니었다.
“연방 정부가 폐쇄됐지만 3대 지수 모두 큰 충격 없이 보합인 것 같던데. 월가 분위기는 좀 어떤가?”
“지난번 셧다운 사태 때의 영향 때문인지. 일단은 그냥 지켜보는 것 같습니다.”
“하긴 당연히 증시가 폭락할 줄 알고 숏베팅을 했다가 다들 크게 데였었지.”
“인터넷 열풍이 워낙 강하니 증시는 그렇다고 쳐도 안전자산인 금값까지 떨어줄 줄은 아무도 예측을 못 했으니까요.”
그러자 해밀턴이 씁쓸한 표정을 지었다.
“그렇게 한 번씩 역배당이 터지면 제아무리 날고 긴다는 선수라도 꼼짝없이 털릴 수밖에 없지.”
“맞는 말씀입니다.”
해밀턴이 앞에 놓인 찻잔을 들어 홍차를 한 모금 마시고 내려놓고는 말을 이었다.
“이야기를 들으니 S&P500 선물에 1억 달러 숏베팅을 했다면서.”
“그렇습니다.”
해밀턴이 눈을 가늘게 하고 로드니를 쳐다봤다.
“지난번과 다르게 셧다운의 충격이 있을 거라고 보는 건가?”
“그랬다면 더 큰 액수를 베팅했겠지요.”
“하긴 자네 그릇이 겨우 그 정도밖에 안 됐다면 내 펀드로 영입하지 않았을 거야. 그럼 왜 풋옵션을 매수한 건가?”
“엘도라도 펀드가 크게 공매도를 치는 걸 보고 한번 따라서 베팅을 해봤습니다.”
생각지 못한 대답이었는지 해밀턴의 얼굴에 살짝 놀람이 스쳤다.
그러다 얼마 전에 받은 보고를 떠올리고는 중얼거리듯 말했다.
“그러고 보니 엘도라도 펀드가 숏베팅을 하고 있다고 했었지.”
“예. 정확한 액수는 알 수 없지만 어림잡아 최소 백억 달러 이상 S&P500 상위 10개 종목에 숏을 친 걸로 보입니다.”
“호오.”
해밀턴의 눈에 이채가 떠올랐다.
“그 정도 베팅을 걸었다는 건 하락을 확신하고 있다는 뜻 아닌가?”
“그게 아니라면 이런 베팅을 하지 않았겠지요.”
“이거 정말 흥미롭군.”
해밀턴은 한쪽 손으로 매끈하게 면도한 턱을 매만지며 흐음, 소리를 냈다.
그러고는 고개를 들어 앞에 있는 로드니를 쳐다보며 물었다.
“박석원 그 친구가 뭘 보고 이러는 건지 짐작 가는 거라도 있나?”
“한 가지 있긴 합니다.”
“그게 뭔가.”
해밀턴이 흥미를 보이자 로드니는 그동안 석원의 노림수가 뭔지 고심을 거듭한 끝에 생각해낸 것을 이야기했다.
“백악관과 공화당의 대결이 첨예하게 계속 이어져 셧다운 상황이 길어질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있는 것 같습니다.”
그 말을 들은 해밀턴은 잠시 진지하게 생각해보다가 이내 이맛살을 찌푸렸다.
“만약 정말로 그렇게 된다면 불안감이 커져 증시가 흔들릴 수밖에 없겠군.”
“하지만 그럴 가능성은 크지 않을 겁니다. 험악하게 대립을 벌이고 있지만 양쪽 다 사태를 파국으로 몰고 갈 만큼 바보들은 아니니까요.”
해밀턴 역시 같은 생각이었기에 머리를 끄덕였다.
“그렇겠지. 설사 그런 상황이 벌어지더라도 화들짝 놀란 정치권이 예산안을 합의하면 금방 지수가 다시 회복될 테니까. 큰 크래시가 나지는 않을 거야.”
“맞는 말씀입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정말 폭락이 벌어진다면 박석원 그 친구가 또다시 제대로 역배당을 터트리게 되겠군.”
해밀턴은 흥미로 눈을 반짝이며 미소를 지었다.
“이거 지켜보는 재미가 있겠어.”
그런 모습을 보며 로드니는 또다시 대화의 초점이 석원한테 넘어간 것에 대해 은근히 불편한 기분을 느꼈다.
펀드 대표이자 존경하는 선배 투자자인 해밀턴이 자꾸만 석원에게 관심을 보일수록 불만은 더욱 깊어졌다.
로드니는 애써 그런 마음을 감추며 일부러 화제를 바꿨다.
“그런데 하실 말씀이 있으시다는 게 뭡니까?”
“아. 그렇지.”
해밀턴은 곧바로 얼굴에서 웃음기를 지우고는 진지한 목소리로 물었다.
“자네 아시아 국가들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
뜻밖의 질문에 로드니가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무슨 말씀이신지 모르겠습니다.”
“좀 더 정확히 말하면 태국과 말레이시아, 인도네시아 같은 아시아 개발도상국들의 경제 상황을 어떻게 보느냐고 묻는 거네.”
분명 뭔가 깊은 의도가 있어서 이야기를 꺼낸 걸 텐데 좀처럼 그게 뭔지 짐작되지 않았던 로드니는 슬쩍 해밀턴의 눈치를 살피고는 조심스럽게 대꾸했다.
“글쎄요. 세 곳 모두 최근 십 년 사이에 급속한 경제 발전을 이루고 있는 국가들이지 않습니까.”
그러자 해밀턴이 입가에 의미심장한 미소를 떠올렸다.
“그런가. 내 눈에는 절벽 위에 위태롭게 서서 빚으로 흥청망청 샴페인을 터트리며 파티를 벌이고 있는 졸부로 보이네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