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olden Spoon Investment Portfolio RAW novel - Chapter (220)
금수저 투자백서 220화(220/231)
220. 플라자 호텔 오너인 걸 왜 진작 떠올리지 못했지.
[그건 낙관적인 전망일 뿐이죠. 여전히 셧다운이 진행 중인 상황이고 전 합의가 쉽지 않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어쩌면 연방정부가…… 그래서 저희 펀드 포트폴리오 가운데 일부분을 숏포지션에 두고 있습니다.]펜트하우스 거실 소파에 앉아 데브라가 가져온 인터뷰 편집본을 보던 석원은 리모컨을 집어서 VCR을 멈췄다.
그러자 검은색 정장 바지에 긴 모직 코트를 입은 데브라가 왼편 소파에 앉아 그를 향해 물었다.
“어때요?”
“딱히 문제될 건 없는 것 같네요.”
석원이 작게 머리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다행이네요. 난 또 여기저기 막 편집해달라고 할까 봐 조마조마했거든요.”
“내가 그렇게 까다로워 보였어요.”
슬쩍 쳐다보는 눈빛에 데브라가 얼른 양손을 내저었다.
“아뇨! 그런 게 아니라 오늘 저녁 뉴스에 인터뷰 영상을 내보내기로 국장한테 승인까지 다 받았는데. 다시 편집을 해야 되면 방송 시간을 맞추기 힘들어지니까 그랬어요.”
“오늘 저녁에? 그렇게 빨리 내보내는 거예요.”
석원이 약간 놀란 듯 묻자 그녀가 한쪽 머리칼을 귀 뒤로 넘기며 말했다.
“어제 사비츠 하원의장이 워싱턴을 떠나 지역구가 있는 조지아로 간 건 알고 있죠?”
“그럼요. 뉴스를 틀 때마다 그 이야기가 나오는데 모를 수가 있겠어요.”
“그것 때문에 다들 낙관적으로 바라보던 내년도 예산안 타결이 생각보다 쉽지 않을 거라는 우려가 커졌잖아요.”
실제로 사비츠 하원의장의 조지아행 뉴스가 나온 이후 오늘 열린 뉴욕 증시는 상승을 계속 이어가긴 했으나 소폭 오르는 데 그쳐 힘이 여실히 빠진 모습을 보였다.
“이런 상황에서 월가에서 가장 핫한 엘도라도 펀드 대표가 증시 폭락을 예상하는 인터뷰를 했으니 국장이 이슈를 크게 끌 수 있는 소재를 놓칠 리가 없죠.”
대충 상황을 이해한 석원이 피식 미소를 지었다.
“그렇군요.”
그의 인터뷰 영상이 지수가 상승을 멈추고 꺾여 떨어지는데 조금이라도 영향을 끼친다면 숏포지션을 취한 엘도라도 펀드 입장에서는 이득이니 뭐가 어찌되든 좋은 일이었다.
“그럼 전 이만 가볼게요.”
데브라가 옆에 놔둔 숄더백을 챙겨 들며 일어났다.
“정말 이대로 내보내도 되는 거죠? 국장이 확실하게 허락을 받아오라고 했거든요.”
“그렇게 해요.”
VCR에서 비디오테이프를 꺼내 숄더백에 넣은 데브라가 활기찬 목소리로 말했다.
“7시 프라임 뉴스 타임에 방송될 예정이니까 시간이 되면 꼭 봐줘요.”
“그럴게요.”
급한 발걸음으로 데브라가 나가자 석원은 소파에 그대로 앉아 적당히 식은 커피를 한 모금 마셨다.
그때 보커스가 옆으로 가까이 다가와 말했다.
“보스. 맥그리거 총지배인이 잠시 뵙고 드릴 이야기가 있다는데 어떻게 할까요?”
맥그리거라면 그가 묵고 있는 플라자 호텔을 관리하는 총지배인이었다.
뉴욕에 올 때마다 여기 펜트하우스를 썼기에 안면이 있었다.
“용건이 뭐래요?”
“그건 직접 뵙고 말씀드리겠다고 합니다.”
무슨 일인지 의아했지만 못 만날 이유는 없었기에 몸을 뒤로 기대며 말했다.
“오라고 해요.”
“알겠습니다.”
얼마 있지 않아 회색 쓰리 피스 정장을 깔끔하게 차려입은 차분한 인상의 중년인이 펜트하우스로 찾아왔다.
바로 호텔 총지배인인 맥그리거였다.
부드러운 미소를 지은 채 거실로 들어선 맥그리거는 소파 가운데 자리에 앉아 있는 석원을 보고 정중하게 인사했다.
“바쁘신데 시간을 내주셔서 감사합니다.”
석원은 한쪽 팔을 들어 비어 있는 왼편 소파를 가리켰다.
“앉아요.”
“감사합니다.”
5성급 호텔의 총지배인답게 단정한 몸짓으로 그가 자리에 앉자 석원이 한쪽 다리를 꼰 자세로 물었다.
“갑자기 무슨 용건이죠?”
“실은 저희 회장님께서 대표님과 식사를 한번 하셨으면 하시는데 어떠신지 여쭤보려고 왔습니다.”
뜻밖의 이야기에 석원이 눈썹을 살짝 치켜올렸다.
“날 만나고 싶어 한다고요?”
“그렇습니다. 월스트리트에서 주목받고 있는 엘도라도 펀드에 대해 평소 관심이 많으셨는데. 마침 대표님이 저희 호텔에 머물고 계신다는 이야기를 들으시고 꼭 한 번 만나 식사를 하고 싶다고 하셨습니다.”
연이어 잭팟을 터트리고 월가의 거물 투자자인 조지 해밀턴이 기자들 앞에서 엘도라도 펀드를 언급하면서 크게 주목을 끌게 되자 자연스럽게 그와 안면을 트고 싶어 하는 이들이 많아졌기에 딱히 이상한 일은 아니었다.
‘그러고 보니 며칠 전 자선 파티에서도 명함을 꽤 많이 받았었지.’
그날 받은 명함만 서른 장이 넘어 따로 명함첩에 넣어 보관해뒀을 정도였다.
그전까지는 혼자 다녀도 괜찮았지만 명성이 올라가고 알아보는 사람들이 많아지면서 슬슬 수행 비서의 필요성이 느껴졌다.
옆에 항상 따라다니면서 일정을 챙겨줄 수 있고 입이 무거워서 신뢰할 수 있는 사람.
‘거기다 유능한 건 기본이고.’
순간 태산 증권에서 그를 보좌한 나성미를 떠올린 석원은 이내 속으로 머리를 흔들었다.
일도 잘하고 싹싹한 성격인 데다가 그의 취향을 잘 파악하고 있지만 함께 해외를 많이 돌아다녀야될 텐데 젊은 여성을 수행 비서로 두고 있으면 괜히 이런저런 말들이 나올 게 뻔했다.
쓸데없이 불필요하고 안 좋은 이야기로 남들의 입방아에 오르내리는 건 딱 질색이었기에 일단 나성미는 제외였다.
“저…… 대표님.”
“아. 미안해요. 잠시 딴생각에 빠지는 바람에.”
석원은 가볍게 사과하곤 다시 자세를 바로 하며 물었다.
“회장님 성함이 어떻게 되죠?”
“데이비드 댄틱 씨입니다.”
“……!”
이름을 듣는 순간 석원이 깜짝 놀라 눈을 크게 떴다.
정치 이단아로 불리며 아웃사이더 후보에서 모두의 예상을 깨고 미국 대통령에 당선돼 전 세계를 쥐락펴락했던 인물의 이름이었으니 그럴 수밖에 없었다.
당황스러워하는 모습에 맥그리거가 의아한 시선으로 그를 쳐다봤다.
“왜 그러십니까?”
“아무것도 아니에요.”
석원은 재빨리 놀란 표정을 감추고는 태연한 척 물었다.
“꽤 유명한 부동산 사업가로 알고 있는데 플라자 호텔이 댄틱 씨 소유였는지는 몰랐군요.”
“댄틱 컴퍼니 계열로 들어간 것이 올해로 7년째입니다.”
댄틱 컴퍼니(Dantic company)는 데이비드 댄틱이 회장으로 있는 부동산개발과 호텔 운영 등을 전문으로 하는 비상장 가족 기업이었다.
그는 머릿속으로 잠시 계획된 일정을 떠올려보고는 말했다.
“내일 점심에 시간이 비는데 괜찮겠어요.”
“회장님께 물어보고 대답을 해드려도 되겠습니까?”
“물론이죠.”
맥그리거는 입가에 부드러운 미소를 지으며 몸을 일으켰다.
“그럼 전 이만 나가보도록 하겠습니다.”
편히 쉬시라는 말과 함께 맥그리거가 펜트하우스를 떠났다.
석원은 소파 쿠션에 파묻히듯 몸을 뒤로 눕히면서 천장을 쳐다보고 중얼거렸다.
“데이비드 댄틱이 플라자 호텔 오너인 걸 왜 진작 떠올리지 못했지.”
생각해보면 지금도 꽤 유명한 사람인데 말이다.
특히 몇 년 전에 개봉한 메가 히트작, 영화 [나 혼자 집에 2]에서 주인공 꼬마한테 로비가 어디에 있는지 알려주는 행인 역할로 데이비드 댄틱이 직접 나와 큰 화제가 된 적도 있었다.
당시 촬영 장소로 플라자 호텔을 빌려주면서 데이비드 댄틱 본인의 카메오 출연을 조건으로 내걸었다는 후일담이 있었다.
“그런 걸 보면 이때부터 나서기 좋아하고 스포트라이트를 받아야만 직성이 풀리는 관종끼가 다분했던 것 같네.”
어쩌면 어떻게 해야 자신을 가장 잘 포장하고 가치를 높일 수 있는지 방법을 알았기에 유명한 걸로 유명했던 부동산 재벌이 일약 초강대국인 미국 대통령이라는 위치에까지 오를 수 있었는지도 몰랐다.
“댄틱을 일약 스타 사업가로 만들어 준 리얼리티 TV 쇼 제목이 어프렌티스였던가?”
뉴욕에서 25만 달러의 연봉을 지급하는 댄틱 컴퍼니 인턴십에 합격하기 위해 출연자들끼리 경쟁을 벌이는 일종의 오디션 프로그램이었다.
그리고 이 프로그램에서 댄틱이 만든 유행어가 바로 넌 해고됐어(you’re fired)다.
이 TV쇼를 통해 만들어진 성공한 사업가라는 이미지 덕분에 데이비드 댄틱이 대통령이 될 수 있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어프렌티스 쇼를 시작하기 전에 4번 파산하고 시즌을 진행하는 중에도 두 번이나 파산 신청을 한걸 생각하면 데이비드 댄틱은 이미지 메이킹으로 성공을 거둔 대표적인 사례라고 할 수 있었다.
“가만 그러고 보니 지금 댄틱이 야심차게 벌였던 초대형 부동산 개발 프로젝트들을 연달아 실패하며 재정적으로 가장 어려웠던 시기잖아.”
어디서 봤는지 기억이 잘 안 나지만 대통령이 된 이후 데이비드 댄틱이 평생 가장 힘들었던 시기 중 하나였다고 이야기했던 것이 떠올랐다.
“돈이 급한 상황에서 아무런 일면식도 없는 날 갑자기 만나고 싶어 한다면…….”
어렵지 않게 자금 문제 때문이라는 걸 유추해 낼 수 있었다.
다른 사람 같았으면 적당히 거절하고 만나지도 않았겠지만 22년 뒤에 초강대국인 미국 대통령이 될 사람이라면 이야기가 달랐다.
“지금은 상장폐지를 앞둔 쓰레기 잡주처럼 보이지만 푹 묵혀두면 텐베거를 기록할 대박주인데. 안 잡는다면 그게 멍청한 거겠지.”
눈동자를 반짝인 석원은 고개를 돌려 약간 떨어진 곳에 서 있는 보커스를 손짓으로 불렀다.
“예. 보스.”
“랜든한테 연락해서 데이비드 댄틱과 댄틱 컴퍼니의 현재 상태에 대해 자세히 파악해 오늘 안에 보고하라고 해요.”
“알겠습니다.”
석원은 깍지를 낀 양손을 무릎 위에 올리며 낮게 웃었다.
“이거 어쩌면 뉴욕에 와서 생각지도 못한 소득을 얻어갈지도 모르겠네.”
뜻밖의 기회를 마주한 석원의 입가에 짙은 미소가 걸렸다.
***
다음날.
몸에 딱 맞는 슈트를 입은 석원은 경호원인 보커스와 함께 호텔 안에 있는 프렌치 레스토랑으로 향했다.
높은 천장에 화려한 샹들리에가 줄줄이 매달려 있는 화려한 복도를 걸어 입구에 들어서자 직원이 바로 석원을 알아보고 허리를 숙였다.
“어서 오십시오. 댄틱 회장님께서는 먼저 와서 기다리고 계십니다.”
석원이 소매를 걷어 시계를 확인하자 아직 약속 시간이 10분 정도 남아 있었다.
그런데도 벌써 와 있다니 어지간히도 오늘 만남에 기대를 많이 걸고 있는 모양이었다.
“안쪽으로 안내해 드리겠습니다.”
작게 머리를 끄덕인 석원은 보커스와 함께 앞서가는 직원을 따라 걸음을 옮겼다.
직원이 안내해 준 곳은 레스토랑 안쪽에 있는 예약석이었다.
다른 사람들의 시선을 신경 쓰지 않고 편히 식사를 즐길 수 있도록 가림막이 쳐져 있었고 테이블의 장식도 아주 호화스러웠다.
석원이 다가가자 먼저 와서 앉아 있던 금발의 건장한 체구를 가진 중년인이 몸을 일으켜 맞이했다.
그가 바로 플라자 호텔의 오너이자 미래의 미국 대통령인 데이비드 댄틱이었다.
2미터는 훌쩍 넘어갈 것 같은 큰 키의 댄틱이 석원을 보고 활짝 미소를 지으며 호탕한 목소리로 말했다.
“하하하! 반갑소. 내가 데이비드 댄틱이요.”
“박석원입니다.”
석원도 상대의 손을 잡고 악수하며 싱긋 웃었다.
“젊다는 이야기는 들었지만 이렇게 직접 보니 더 동안인 것 같소이다. 갑자기 만나자고 해서 당황스러웠을 텐데 이렇게 시간을 내줘서 고맙소.”
“아닙니다. 댄틱 씨 같은 열정적인 사업가와의 만남은 언제든 환영이죠.”
“그렇다면 다행이구려.”
댄틱이 팔을 활짝 벌리며 말했다.
“자. 남은 이야기는 앉아서 식사를 하며 천천히 하도록 합시다.”
“그러죠.”
석원은 고개를 끄덕이곤 댄틱과 함께 테이블에 마주 앉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