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olden Spoon Investment Portfolio RAW novel - Chapter (226)
금수저 투자백서 226화(226/231)
226. 어떻게 이럴 수가 있는 거지…….
항상 넓은 공간을 가득 채운 수십 명의 트레이더들이 수화기를 든 채 고함을 질러대고 여기저기에서 시끄럽게 울려대는 전화벨 소리에 전쟁터 같은 트레이딩 플로어였다.
하지만 오늘은 마치 강력한 허리케인이 들이쳐 숲속의 나무들을 마구 흔들어 놓듯 커다란 혼란과 패닉에 빠진 채 아수라장이 되어 있었다.
따르릉! 따르릉!
리먼브러더스 주니어 트레이더인 래크먼은 시뻘겋게 변한 채 무섭게 폭락하고 있는 애플 주가에 수화기를 부셔 버릴 듯 세게 내려놓으며 욕설을 내뱉었다.
“미친! 도대체 어디까지 떨어지려는 거야!”
그러고는 고개를 돌려 옆자리에 앉아 있는 동료를 향해 물었다.
“이봐. 다른 섹터들은 좀 어때?”
그러자 수화기를 어깨에 끼운 채 키보드를 빠르게 두드리며 주문을 내고 있던 동료 트레이더인 찰리가 큰 소리로 대답했다.
“건설, 기계, 유통할 것 없이 다 박살 나고 있어!”
래크먼이 자리에서 일어나 정면 벽에 설치된 커다란 시세판을 쳐다보자 온통 시뻘겋게 피바다가 되어 있었다.
초록색이라곤 눈곱만큼도 찾아볼 수 없는 광경에 래크먼이 탄식을 쏟아냈다.
“하아. 이게 다 무슨 일이야.”
“애플이 어닝쇼크를 낸 여파지 뭐겠어.”
찰리가 수화기를 내려놓으며 말했다.
“겨우 그거 때문에 이 난리라고?”
래크먼이 믿을 수 없다는 듯 눈썹을 치켜세우고 찰리를 돌아봤다.
“겨우 그게 아니지. 안 그래도 실적에 대한 불안감이 컸는데 애플이 바짝 마른 건초더미 옆에서 불을 당겨 버린 거야.”
그러면서 찰리가 턱으로 앞에 있는 모니터를 가리켰다.
“미친 듯이 쏟아져 나오는 매도 물량을 보면 모르겠어.”
래크먼이 고개를 돌려 모니터를 보자 말 그대로 무섭게 엄청난 투매가 이루어지고 있었다.
예상치를 훨씬 웃도는 애플의 어닝쇼크에 다른 기업들도 실망스런 실적을 내놓을까 봐 겁이 난 투자자들이 일제히 차익 실현에 나선 거였다.
갈대밭에 들불이 빠르게 번져 나가듯 다들 오로지 팔자, 팔자를 외치며 앞다퉈서 가지고 있던 주식을 집어 던지고 있었다.
어느새 630으로 시작했던 S&P500이 15포인트 넘게 빠져 610선이 위태로워 보이는 모습에 래크먼이 질린 얼굴로 말했다.
“아무리 봐도 이건 아니야. 투자들이 아니 시장 전체가 너무 과민 반응하는 거라고!”
그러자 옆에 있던 찰리가 한쪽 손으로 숫자 키패드를 두드리면서 짜증 가득한 목소리로 말을 받았다.
“패닉셀이고 뭐고 이대로 끝날 분위기가 아니니까. 기껏 쌓은 수익을 다 날려 먹기 전에 너도 빨리 가진 물량을 다 던져. 까딱 잘못했다가는 보너스는 고사하고 책상을 빼야 될지도 모르니까 말이야.”
“뭐? 이런 씹!”
최근 증시를 뜨겁게 달군 인터넷 열풍에 올라타려고 IT기업 비중을 크게 늘려놨던 래크먼은 폭락하는 주가만큼 빠르게 줄어들고 있는 자신의 수익률을 확인하곤 황급히 수화기를 집어 들었다.
“IBM 현재가에 3만 5천 주 전량 매도!”
래크먼처럼 뒤늦게 투매에 가세하는 투자자들까지 생겨나면서 뉴욕 증시는 브레이크가 고장난 자동차처럼 시간이 갈수록 아래로 더 강하고 깊게 곤두박질쳤다.
공포에 주식을 내다 팔고 그것이 더 큰 두려움과 투매를 불러와 엄청난 폭락을 일으키는 죽음의 소용돌이(Death Spiral) 속으로 빠져들기 시작한 거였다.
***
갑작스럽게 찾아온 폭락에 월가 전체가 패닉에 빠진 채 비명을 내지르고 있을 때.
사납게 몰아치는 허리케인의 영향권에서 벗어나 여유롭게 무너지는 시장을 지켜보고 있는 곳이 있었는데 바로 엘도라도 펀드였다.
트레이딩 플로어로 나온 석원은 랜든과 앤드루를 양옆에 둔 채 나란히 서서 전체가 시뻘겋게 물들어있는 대형 시세판을 바라봤다.
마치 거대한 쓰나미에 쓸려나가듯 무섭게 추락하고 있는 시장의 모습에 석원은 아드레날린이 솟구치는 짜릿한 기분을 느꼈다.
마진콜 전화를 받아 증거금을 추가로 채워 넣으면서도 위험을 감수하고 끝까지 숏포지션을 유지한 보상을 지금 받고 있는 거였다.
물론 숏베팅만 한 것이 아니라 마이크로소프트와 시스코등등 여러 기업들의 지분을 가지고 있었기에 시장이 박살 나면서 엘도라도 펀드가 보유한 주식 가치 역시 녹아내리고 있었다.
가파르게 추락하는 시장의 모습에 랜든이 낮게 중얼거렸다.
“시장이 한순간에 이렇게 바뀌다니 정말 무섭군요.”
그러자 앤드루가 힐끗 그의 표정을 살피고는 조심스럽게 말했다.
“숏베팅은 성공했지만 저희가 보유한 기업들의 지분 가치도 크게 줄어들고 있어서 조금 걱정이 되는군요.”
몸에 딱 맞는 더블 스트라이프 정장을 입고 가슴께에 행거치프로 포인트를 준 석원이 고개를 돌려 앤드루를 보며 물었다.
“더 떨어지기 전에 보유한 지분을 팔고 싶은 거예요.”
“전부는 아니더라도 일부만 팔았다가 저점에서 다시 사들인다면 차익을 거둘 수 있고. 거기에 더해 매도 압력을 가중시켜 하락폭을 키우는 효과를 볼 수 있지 않겠습니까.”
“흐음…….”
이야기를 들은 석원이 팔짱을 낀 채 잠시 고민했다.
예상하는 대로 S&P500이 580까지 폭락하더라도 보유하고 있는 지분들의 평단가가 낮아 수익률이 줄어들 뿐 엘도라도 펀드가 손해를 볼 일은 없었다.
거기다가 시장의 우려와 달리 기업들의 실적이 나쁘지 않다는 것이 밝혀지면 폭락한 지수가 금방 다시 바닥을 찍고 올라올 터였기에 굳이 중간에 매매할 생각을 하지 않았다.
하지만 앤드루의 이야기를 듣고 보니 추가로 수익을 낼 수 있고 잘하면 지분을 더 늘리는 것도 가능한 좋은 기회인데 이걸 그냥 놓치기에는 아깝다는 생각이 들었다.
빠르게 결정을 내린 석원은 앤드루를 보며 물었다.
“3일 안에 매매를 끝내야 되는데 할 수 있겠어요?”
“물론입니다. 맡겨만 주신다면 실망시켜 드리는 일이 없도록 하겠습니다.”
약간의 망설임도 없이 자신 있게 대답하는 모습에 석원이 작게 머리를 끄덕였다.
“좋아요. 그럼 시스코 지분은 그대로 놔두고 나머지 주식들로 어디 한 번 실력 발휘를 해봐요.”
“감사합니다.”
반색한 앤드루가 눈을 반짝였다.
그러고는 성큼 앞으로 걸어나가 손뼉을 치면서 크게 소리쳤다.
“자. 다들 주목!”
한가롭게 지수 폭락을 지켜보고 있던 팀원들이 고개를 돌려 쳐다보자 트레이드 마크처럼 멜빵을 하고 소매를 걷어 올린 앤드루가 턱을 치켜들었다.
“느긋하게 구경하는 건 여기까지고 이제부터 밥벌이를 할 시간이야.”
“안 그래도 조금 따분해지려고 했는데 잘 됐군요!”
메이슨이 활기찬 목소리로 농담을 던지자 주위에서 웃음이 터져 나왔다.
앤드루 역시 피식 웃으며 짓궂은 표정을 지었다.
“그럼 지금부터 눈코뜰새 없이 바쁘게 해주지.”
“우우우!”
팀원들이 장난처럼 야유를 보내는 가운데 앤드루가 어깨를 으쓱이곤 한쪽 손으로 랜든과 함께 뒤에 서 있는 석원을 가리켰다.
“여기서 만족할 만한 성과를 낸다면 보스께서 두둑한 보너스를 주머니에 꽂아주실 거야.”
“와아!”
“정말입니까?”
방금 전까지만 해도 야유 소리를 내던 팀원들이 갑자기 눈을 반짝이며 잔뜩 기대에 찬 얼굴로 석원을 쳐다봤다.
“보너스는 물론이고 만약 수익이 천만 달러를 넘긴다면 롤렉스 시계를 하나씩 사서 돌리도록 하죠.”
석원이 염려 말라는 듯 머리를 끄덕이면서 공언했다.
“우와아!”
“역시 보스!”
그러자 트레이딩 플로어에 엄청난 환호성이 퍼졌다.
다들 받아 가는 연봉으로 롤렉스 시계쯤은 언제든지 몇 개라도 살 수 있었지만 원래 이런 건 상품이 걸려야 더 분위기에 불이 붙는 법이었다.
“까짓거 천만 달러는 껌이지!”
“맞아. 후다닥 해치워 버리자고!”
팀원들은 휘파람을 불거나 자신만만하게 큰소리를 치면서 의욕을 뜨겁게 불태웠다.
주먹을 불끈 쥐고 대결이라도 하는 듯 잔뜩 달아오른 모습이 철부지 아이들이 따로 없었다.
어찌됐건 의욕이 충만해진 모습에 앤드루가 다시 손뼉을 쳐서 시선을 모았다.
“그럼 지금 즉시 가지고 있는 물량부터 팔아 치운다. 메이슨!”
“예!”
“넌 에스티로더 주식을 맡아서 보유한 물량 가운데 30%를 매도해.”
“Yes. Sir!”
메이슨이 군인처럼 한 손을 들어 경례하며 우렁차게 외쳤다.
이어서 앤드루는 다른 팀원들에게도 차례대로 지시를 내렸다.
“시스코는 빼고 마이크로소프트와 다른 회사 지분도 팔아. 지금 당장!”
“예!”
“알겠습니다!”
각자 대답을 한 팀원들은 곧바로 매도에 들어갔다.
자유로운 분위기라 평소엔 다들 느긋해 보이지만 일단 작업에 들어가면 누구보다 빠른 손 움직임과 탁월한 집중력을 보여주는 게 엘도라도 펀드 트레이더들이었다.
“시스코는 건드리지 말고 보유 지분의 30%만 파는 거야. 다들 명심해!”
그러자 메이슨이 두툼한 팔뚝을 들어 올리며 물었다.
“자체 트레이딩 계좌에 들어있는 주식들도 30%만 매도하는 겁니까?”
석원은 별도의 회사 고유 계정을 따로 만들어서 앤드루가 이끄는 트레이딩 팀이 평상시에 자율적으로 매매를 할 수 있도록 했다.
운용 금액이 조금씩 늘어나 이제는 5억 달러에 육박할 정도여서 담고 있는 주식 역시 적지 않았다.
“트레이딩 계좌에 든 물량은 몽땅 다 팔아 버려!”
“알겠습니다.”
소매를 걷어붙인 앤드루의 지시에 따라 팀원들이 일사불란하게 움직여 보유한 물량을 매도하는 모습에 석원이 작게 머리를 끄덕이며 흡족한 표정을 지었다.
그렇게 가뜩이나 매물이 많은 상황에서 엘도라도 펀드까지 한꺼번에 물량을 던지자 이내 시장이 크게 흔들리기 시작했다.
그러다가 결국 가까스로 버티고 있던 S&P500 지수 610선이 깨지자 마치 둑이 터진 듯이 갑자기 지금까지 나온 물량을 훨씬 웃도는 엄청난 매도 주문이 쏟아졌다.
“어어…….”
“이게 다 어디서 나오는 물량들이야?”
“하느님. 맙소사!”
“매도 주문이 너무 많아서 계약 체결이 이루어지지 않아.”
그나마 있던 매수 주문을 몽땅 다 잡아먹어 버리고 지수를 말 그대로 추락시키는 매도 폭탄에 팀원들은 눈을 크게 부릅뜬 채 벌린 입을 다물지 못했다.
뒤에 서서 지켜보던 석원은 이런 상황을 예상이라도 한 듯 입가에 옅은 미소를 띠었다..
“드디어 프로그램 매도 폭탄이 터진 모양이네요.”
대형 펀드나 기관투자자들이 일정한 조건이 되면 컴퓨터가 자동으로 매수나 매도를 하도록 해둔 걸 프로그램 매매라고 불렀다.
S&P500 지수가 폭락해 610이 깨지자 입력된 프로그램에 따라 한꺼번에 엄청난 물량의 주식을 매도하고 있는 거였다.
거래창 전체를 팔자 주문으로 덮어 버릴 정도로 무시무시한 물량 폭탄에 함께 있던 랜든조차 마른 침을 꿀꺽 삼켰다.
“이러다가 증시가 완전 박살 나 버리는 건 아니겠지요?”
“충격이 상당하겠지만 지난번에 말했다시피 금방 브이자 반등을 할 거니까 걱정할 필요 없어요.”
절벽에서 수직 낙하를 하듯 폭락하고 있는 지수를 보면 과연 며칠 만에 반등할 수 있을지 회의감이 들었다.
하지만 지금껏 석원의 말이 틀린 적이 없었기에 랜든은 더 이상 묻지 않고 흔들리는 마음을 다잡았다.
결국 너무 과도한 폭락에 뉴욕 증권거래소는 패닉에 빠진 시장을 진정시키기 위해 서킷 브레이크(circuit breaker)를 발동해 모든 매매를 일시적으로 정지시키는 특단의 조치를 취했다.
하지만 그 정도로는 이미 공포와 불안감에 휩싸인 투자자들은 안정시키지 못했다.
오히려 서킷 브레이크를 발동시켜야 될 만큼 급박한 상황이라는 위기감이 더욱 커져 30분 뒤에 거래가 다시 재개되자마자 바로 S&P500이 600선마저 깨지며 급락이 이어졌다.
***
P&P 파트너스 대표인 존 밀러는 책상 앞에 앉아 허탈한 얼굴로 설치되어 있는 두 대의 모니터를 멍하니 바라봤다.
무려 두 번의 서킷 브레이크가 발동됐을 만큼 악몽 같았던 주식 시장이 이제 막 마감된 가운데 모니터에는 오늘 아침까지만 해도 상상조차 못했던 결과가 띄워져 있었다.
[S&P500 579.7350.38]
석원이 말했던 대로 정말 50포인트 넘게 폭락한 지수에 존 밀러는 당혹감을 넘어 뭐에 홀린 듯한 기분이었다.
그것도 내기 마지막 날에!
도저히 믿기지 않아 몇 번이나 눈을 비비고 다시 확인했지만 숫자는 변하지 않고 그대로였다.
“어떻게 이럴 수가 있는 거지…….”
밀러는 아랫입술을 꽉 깨문 채 떨리는 목소리로 중얼거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