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olden Spoon Investment Portfolio RAW novel - Chapter (228)
금수저 투자백서 228화(228/231)
228. 혹시 또 알아요. 댄틱 회장이 나중에 엄청난 거물이 될지.
하루라도 빨리 대금을 지급받길 원하는 데이비드 댄틱 회장의 요청에 따라 다음날 오후 바로 양측이 만나 계약이 진행됐다.
천장에 커다란 샹들리에가 달려 있고 웅장하면서도 화려한 바로크 양식으로 꾸며진 플라자 호텔 소회의실에 양쪽 관계자들이 기다란 테이블을 가운데 두고 마주 앉아 있었다.
이미 랜든을 비롯한 펀드 고문 변호사들이 꼼꼼하게 따져서 작성한 계약서였지만 마지막으로 한 번 더 살펴본 석원은 이내 준비해 둔 만년필을 들어 서명했다.
앞에 앉아 있던 댄틱 회장도 서명을 끝내고 계약서를 서로 교환하자 랜든이 입을 열었다.
“이걸로 계약이 모두 마무리됐습니다. 지금 이 순간부터 법적 효력이 발생하게 되고 인수 대금 3억 5천만 달러는 협의한 대로 계약금 없이 오늘 안에 전액 일시불로 댄틱 컴퍼니 계좌로 입금될 겁니다.”
매각 대금이 일시불로 들어온다는 이야기에 댄틱 회장은 반색하며 얼굴 가득 미소가 번지는 걸 감추지 못했다.
야심차게 추진했던 초대형 부동산 개발 프로젝트가 연달아 실패하고 그로 인한 대출금 상환 압박에 상당한 어려움을 겪고 있었기에 그럴 만도 했다.
물론 댄틱 회장이 가지고 있는 부채를 생각하면 3억 5천만 달러가 들어온다고 해도 금방 녹아 없어져 버리겠지만 그래도 한숨 돌릴 수는 있을 터였다.
자리에서 일어난 댄틱 회장이 테이블을 돌아 가까이 다가와선 한쪽 손을 내밀며 말했다.
“뉴욕의 보석 중에 하나인 플라자 호텔의 새 주인이 된 걸 축하합니다.”
그러자 몸을 일으킨 석원도 웃는 얼굴로 그와 악수를 나눴다.
“감사합니다.”
“내겐 성공을 상징하는 트로피나 같은 건물이라 상황이 힘들지만 않았다면 절대 팔지 않았을 거요. 어찌됐든 기왕 이렇게 됐으니 앞으로 호텔을 잘 운영해 나가길 바라겠소.”
댄틱 회장은 아쉬움이 살짝 담긴 표정으로 주변을 향해 눈을 돌렸다.
천장에 매달린 샹들리에나 화려한 색채로 꾸민 벽과 바닥들을 둘러보는 그의 눈빛에 여러 감회가 스쳤다.
“호텔을 파셨지만 최고 VIP로 모실 테니 언제든지 찾아오십시오.”
“고맙소.”
댄틱 회장이 씁쓸한 기색으로 대답했다.
그런 모습을 바라보던 석원이 문득 생각났다는 듯 물었다.
“참. 소문에 골프를 상당히 즐기신다고 들었습니다만.”
“그렇소. 지금도 시간이 있을 때마다 필드를 나가는데 핸디캡 3에 평균 75타를 친다오.”
좋아하는 취미 이야기가 나오자 댄틱 회장이 가라앉았던 기분을 떨치고 금방 밝은 표정을 지었다.
그 정도면 프로 못지않은 상당한 실력이었기에 우쭐거리며 뽐낼만했다.
‘아마 골프 실력만 따지면 미국 역대 대통령들 가운데 최고일 거야.’
아직은 아니지만 대통령에 당선되기 전까지 열 개가 훌쩍 넘어가는 대형 골프장을 소유했을 정도로 대단한 골프광으로 유명했다.
‘오죽했으면 댄틱한테 잘 보이려고 일본 총리가 모래 벙커에서 넘어져 데굴데굴 구리면서까지 접대 골프를 쳤을 정도니. 더 말할 필요가 없지.’
석원은 잠시 딴생각을 하다가 이내 웃는 얼굴로 말했다.
“그럼 리처드 말레스 선수도 아시겠군요.”
“아. 물론이오! 남자 프로 골프 세계 4대 대회를 모두 석권하는 커리어 그랜드 슬램을 3번이나 달성한 골프계의 전설이지 않소.”
“역시 잘 알고 계시는군요.”
“하하. 골프를 치는 사람이라면 어떻게 리처드 말레스를 모르겠소. 타이거 스톤이 너무 뛰어나서 2인자 취급을 받지만 20세기 최고의 프로 골퍼 중에 하나인 걸 아무도 부정하지 못할 거요.”
어느새 좋아하는 골프 이야기에 열중한 댄틱 회장이 열을 내며 떠들어댔다.
석원은 내심 제대로 짚었다고 생각하면서 아무것도 모른 척 댄틱 회장에게 제안했다.
“다음 주말에 마이애미 골프장에서 리처드 말레스와 공을 치기로 했는데. 시간이 괜찮으시면 댄틱 씨도 함께하시죠.”
“오! 정말 그래도 되겠소?”
댄틱 회장이 눈을 반짝이며 물었다.
“원래 같이 필드를 돌기로 했던 분이 갑자기 일이 생겨서 한 자리가 비었는데. 댄틱 씨처럼 실력이 되시는 분이 오신다면 저야 좋지요.”
“하긴. 라운딩 멤버들끼리 실력 차이가 너무 나면 재미가 없는 법이지. 무려 리처드 말레스 선수하고 같이 공을 칠 수 있는 기회인데 절대 놓칠 순 없지요. 꼭 가겠소이다.”
제대로 미끼를 문 모습에 석원은 내심 쾌재를 부르며 살짝 웃었다.
“그러면 다음 주말에 다시 뵙도록 하죠.”
“하하. 그럽시다.”
댄틱 회장 역시 얼굴 가득 미소를 지은 채 흔쾌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계약을 무사히 다 끝낸 석원은 댄틱 회장과 헤어져 소회의실을 나와 위층 펜트하우스로 올라갔다.
한 손으로 재킷 단추를 풀면서 거실 소파에 걸터앉자 따라온 랜든도 왼편에 앉으며 말했다.
“주말이 끼어 있어서 다음 주 말쯤에 등기까지 모든 절차가 마무리될 겁니다.”
“문제가 없게 랜든이 알아서 잘 처리하도록 해요.”
“그러겠습니다.”
한쪽 다리를 꼰 석원이 확인하듯 물었다.
“리처드 말레스 선수 섭외는 확실히 된 거겠죠?”
“네. 13일 하루 동안 스케줄을 빼주는 조건으로 그쪽 매니지먼트에 십만 달러를 지급했습니다.”
“수고했어요.”
랜든이 슬쩍 눈치를 보다가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그런데 이렇게까지 해서 댄틱 회장과 친분을 만들 필요가 있는지 의문입니다.”
어쩌면 당연하다 싶은 의문에 석원이 빙긋 입가에 미소를 지었다.
“쓸데없는 돈 낭비를 하는 것 같아요?”
그러자 랜든이 황급히 양손을 흔들며 말했다.
“그런 것이 아니라 굳이 보스께서 억지로 친분을 쌓으려고 노력하실만한 인물인가 해서 말입니다.”
방송 출연을 통해 전국적인 유명세를 얻어 백악관까지 입성하는 기적을 이루어내는 데이비드 댄틱이었다.
하지만 그건 먼 미래의 이야기였고 지금은 크게 특출날 것 없는 디벨로퍼(developer), 즉 부동산 개발 업자에 불과했기에 의아하게 생각할 만도 했다.
그에 비해 석원은 댄틱하곤 비교도 되지 않는 자산을 가진 월가에서도 가장 주목받는 거물급 투자자였다.
이런 걸 고려하면 석원이 아니라 오히려 댄틱 회장이 그와 친분을 쌓으려고 애를 쓰는 것이 더 이치에 맞았다.
“일종의 투자라고 생각해요.”
석원의 말에 랜든이 더욱 모르겠다는 표정을 지었다.
양손으로 깍지를 끼고 무릎 위에 올린 석원이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은 채 그를 쳐다봤다.
“혹시 또 알아요. 댄틱 회장이 나중에 엄청난 거물이 되어서 지금 맺은 친분이 큰 도움이 될 수도 있죠.”
“글쎄요. 제가 보기에는 가능성이 아주 낮은 일 같습니다.”
랜든이 회의적인 태도로 대꾸했다.
자신처럼 미래를 알지 못한다면 지극히 당연한 반응이었기에 석원은 굳이 설득하려 하지 않고 다른 쪽으로 화제를 돌렸다.
“그건 그렇고 엔론 지분 매입이 끝났다고요?”
시선을 받은 랜든이 작게 머리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네. 말씀하셨던 대로 1억 2천만 달러에 엔론 에너지 지분 10%를 확보했습니다.”
“평단가는 얼마에요?”
“13.11달러입니다.”
시스코와 함께 닷컴 버블 시기 엄청난 폭등을 기록할 엔론 지분을 헐값에 확보했다고 하자 석원은 얼굴 가득 흡족한 표정을 지었다.
“이번 폭락 때 엔론 에너지 역시 주가가 크게 떨어져서 매입 단가를 많이 낮출 수 있었습니다.”
“그거 잘됐네요. 이왕이면 조금이라도 싸게 사는 게 낫죠.”
석원이 편한 자세로 뒤로 몸을 기댔다.
“엔론 에너지 지분은 시스코와 함께 팔지 않고 몇 년 간 장기 보유할 거니까. 그렇게 알고 따로 관리하도록 해요.”
“알겠습니다. 그런데 엔론 에너지 쪽에서 이사회 의석을 저희한테 하나 내주겠다고 제안을 해왔는데 이건 어떻게 할까요.”
그러자 석원이 눈썹을 살짝 찌푸리며 대꾸했다.
“단순 투자 목적이지 경영엔 간섭할 생각이 없다고 전달하지 않았어요?”
엘도라도 펀드가 주식을 대거 매집하자 화들짝 놀란 엔론 에너지에서 의도가 뭔지 파악하기 위해 먼저 연락을 해왔었다.
그래서 석원은 랜든에게 어디까지나 투자 목적의 주식 매입이고 지분도 10%만 확보할 계획이라는 걸 확실히 전달하도록 했었다.
“아무래도 2대 주주가 된 저희가 신경 쓰일 수밖에 없으니 먼저 요구를 하기 전에 이사회 자리를 하나 내줘서 우호적인 관계를 만들려는 의도인 것 같습니다.”
경영권에 관심이 없다고 분명히 밝혔지만 엔론 에너지 경영진 입장에서는 단번에 2대 주주 자리를 꿰찬 엘도라도 펀드가 껄끄러울 수밖에 없었다.
“뒤통수가 근질거리니까 미리 적당히 사탕을 던져주고 달래겠다 이거네요.”
“뭐 비슷한 겁니다만 이사회에 참여하면 회사 내부 사정을 살펴볼 수 있으니 저희 입장에서도 나쁠 건 없지 않겠습니까.”
“그래서 안 되는 거예요.”
“예?”
랜든이 눈을 깜빡이며 얼굴에 물음표를 띄운 채 그를 쳐다봤다.
앞으로 몇 년 뒤에 미국 역사상 최대 그리고 최악의 회계부정 스캔들을 일으키며 닷컴 버블 붕괴의 대미를 장식할 회사가 바로 엔론 에너지였다.
무려 15억 달러에 달하는 분식회계를 저질러 미국 경제와 월스트리트에 엄청난 충격과 피해를 안겨준 엔론 에너지 경영진들은 모두 다 재판을 받고 징역 24년이 넘는 중형을 선고받았다.
그런 회사의 이사회에 엘도라도 펀드가 발을 담그고 있다면 나중에 스캔들이 터졌을 때 불똥이 튈게 불을 보듯 뻔했다.
더군다나 분식회계가 드러나기 전에 지분을 매각해 큰 이득을 취했다면 더욱 의심의 눈초리가 쏟아지게 될 터였다.
‘누굴 죽이려고 이사회에 들어오라는 거야.’
까딱 잘못했다가는 재판정에 서게 될 수도 있는 일을 할 순 없었다.
석원은 정색한 표정으로 단호하게 제안을 잘라냈다.
“엔론 에너지 지분은 말 그대로 투자 목적으로 매입한 거니까 이사회 참여 제안은 거절하도록 해요. 그리고 다시 한번 말하지만 절대 경영에 간섭하지 말고 통상적인 보고서만 받으면서 그냥 내버려 둬요.”
누가 들어도 의도를 이해할 수 없는 이상한 지시였다.
랜든은 속으로 고개를 갸웃거렸지만 1억 2천만 달러면 엘도라도 펀드가 가진 포트폴리오에서 표시도 나지 않을 만큼 적은 비중이었기에 더 이상 캐묻지 않고 넘겼다.
“……예. 알겠습니다.”
작게 헛기침을 한 석원은 펜트하우스를 한번 둘러보곤 말했다.
“그리고 지금 묵고 있는 이 펜트하우스는 앞으로 예약을 받지 말고 나 혼자 쓸 수 있도록 해둬요.”
애초에 플라자 호텔을 매입한 목적 중에 석원이 뉴욕에서 지낼 거처를 마련하는 것도 있었기에 당연한 지시였다.
“참. 맥그리거 총지배인이 제안을 받아들였어요?”
“안 그래도 말씀드리려 했습니다. 맥그리거 총지배인한테 물어보니 플라자 호텔에 애착이 많아서 계속 남아 일할 기회를 주신다면 열심히 하겠다고 대답하더군요.”
“벨보이부터 시작해서 20년 넘게 여기서 일해왔다고 하니 누구보다 호텔을 잘 운영할 수 있는 적임자인데 잘됐네요.”
“맞는 말씀입니다. 맥그리거 총지배인이 제안을 거절했다면 다른 사람을 찾아야 했을 텐데 그만한 인물을 찾기가 쉽지 않았을 겁니다. 그리고 따로 알아보니 호텔에서 일하는 직원들의 평가도 아주 좋더군요.”
“그럴 거예요.”
지금까지 펜트하우스에 묵을 때마다 맥그리거 총지배인이 보여줬던 모습을 떠올리며 석원이 작게 머리를 끄덕였다.
“그럼 제안한 대로 플라자 호텔 운영은 맥그리거 총지배인한테 전적으로 다 맡기도록 해요.”
“예.”
어차피 석원은 물론이고 랜든 역시 호텔 운영에 대해서는 아는 것이 전혀 없었기에 어설프게 개입하는 것보단 아예 전문 경영인한테 모든 걸 맡기는 게 여러모로 나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