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olden Spoon Investment Portfolio RAW novel - Chapter (229)
금수저 투자백서 229화(229/231)
229. 서울이 아니라 뉴욕으로 가자고 해요.
맨해튼, 원 뉴욕 플라자 빌딩.
31층에 위치한 엘도라도 펀드 트레이딩 플로어는 언제나 그렇듯이 시끄러운 소음들로 가득했다.
전화벨 소리가 사방에서 울려대는 가운데 넥타이를 풀어 헤치고 와이셔츠 소매를 걷어 올린 수십 명의 트레이더들이 빠르게 키보드를 두드리거나 수화기에 대고 고함을 질러댔다.
따르릉! 따르릉!
“2천 주! 현재가에 사. 지금 바로!”
“GM 5천 주 매수! 아니 GE가 아니라 GM이라고!”
“얼마라고? 그새 또 오른 거야. 젠장!”
“오케이. 던!”
오늘도 트레이드 마크 같은 멜빵을 어깨에 걸친 앤드루가 한쪽에 서서 마치 살아 있는 생물처럼 역동감 넘치게 움직이는 트레이딩 플로어를 보며 숨을 크게 들이마셨다가 내쉬었다.
이렇게 사람들이 내뿜는 열기와 파도처럼 춤추는 주가를 바라보고 있으면 몸속 깊은 곳에서 아드레날린이 솟구치는 감각이 생생하게 느껴졌다.
특히 오늘처럼 지수가 크게 오르고 있을 때는 짜릿함이 더욱 커졌다.
나중에 지금보다 더 나이가 들더라도 마약보다 더한 쾌감을 주는 이 바닥을 절대 떠나지 못할 것 같았다.
그때 값비싼 이탈리아 원단을 써서 만든 맞춤 정장을 입은 랜든이 옆으로 다가와 물었다.
“오늘 시장 분위기가 어떤가?”
그러자 앤드루가 정면에 설치된 대형 시황판을 눈으로 가리키며 대답했다.
“보시다시피 아주 뜨겁습니다.”
랜든은 거의 모든 종목들이 초록색 불을 켜고 있는 걸 보면서 헛웃음을 터트렸다.
“지난주까지만 해도 블랙 튜즈데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크게 폭락하더니 금방 반등해서 이렇게 다시 폭등할 줄이야. 완전 롤러코스터가 따로 없군.”
“그렇게 시장이 출렁거린 덕분에 짭짤한 수익을 낼 수 있었지 않습니까.”
“그건 그렇군.”
피식 웃은 랜든이 바지 주머니에 손을 꽂은 채 중얼거렸다.
“이런 걸 보면 다시 생각해도 정말 대단하단 말이야.”
“뭐가 말입니까?”
앤드루가 고개를 돌려 쳐다봤다.
“보스 말이야. 폭락을 맞춘 것도 놀랍지만 어떻게 시장이 금방 반등할 걸 예상하고 과감하게 롱베팅을 하는지 놀랍지 않나? 가끔 미래를 보고 온 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라니까.”
그러자 앤드루도 동의하듯 머리를 끄덕였다.
“그러게 말입니다. 저 역시 월가에서 나름 잔뼈가 굵었다고 자부하는데. 보스의 절묘한 베팅은 볼 때마다 감탄밖에 나오지 않습니다.”
한쪽 방향도 먹기가 쉽지 않은데 롱과 숏을 오가면서 엄청난 수익을 내는 걸 보고 있으면 마치 프로 서퍼가 거대한 파도를 자유자재로 넘나들며 아찔한 묘기를 펼치는 것 같았다.
“와아아!”
그때 갑자기 울려 퍼지는 환호성에 앤드루가 상념을 멈추고 앞을 봤다.
지난 금요일부터 반등해 무섭게 치고 올라가던 S&P500 지수가 기어이 630선을 다시 깨고 올라가 최고치를 갱신하고 있었다.
“결국 다시 630을 깼군요.”
앤드루가 낮게 탄성을 내뱉으며 말했다.
롱베팅을 해둔 S&P500 선물 수익률이 실시간으로 크게 늘어나고 있는 모습에 랜든도 얼굴 가득 미소를 지었다.
“이거 잘하면 숏을 쳤던 것보다 더 큰 수익이 나겠는걸.”
“아마 그렇게 될 것 같습니다.”
최고치를 갱신하자 쏟아진 차익실현 물량에 잠시 주춤하며 내려가던 시장은 이내 다시 힘을 내며 올라가 S&P500 지수가 631.03으로 마감됐다.
땡땡땡!!
마감벨이 울리자 그렇게 요란했던 트레이딩 플로어에도 점차 소음이 잦아들었다.
“흐어어.”
“빌어먹을. 얼마나 소리를 질렀는지 목이 다 쉬었네.”
거래를 하는 동안 기력을 다 쏟아부은 팀원들이 힘없이 의자에 축 널브러졌다.
그런 모습을 보며 랜든이 다행이라는 듯 말했다.
“아슬아슬했지만 630에 안착한 것 같군.”
옆에 서 있던 앤드루도 이야기를 듣고 작게 머리를 끄덕였다.
“다음 주 월요일에 다시 장이 열리면 어떻게 될지 모르지만 일단은 그런 것 같습니다.”
“지금 같은 시장의 기세라면 떨어질 것 같은 생각이 들지 않는걸.”
랜든이 어깨를 으쓱이며 말했다.
“우려와 달리 발표되는 기업들의 실적이 좋으니 저도 아래보다는 위가 더 열려 있다고 봅니다.”
두 사람이 얼굴을 나란히 하고 만족스러운 시선을 교환할 때.
안내 데스크 직원인 에바가 다른 여직원 여럿을 이끌고 짙은 녹색 쇼핑백들이 잔뜩 담긴 카트를 끌며 나타났다.
“에바. 그게 다 뭐지?”
“대표님이 직원들한테 나눠주라고 보내신 거예요.”
곱슬거리는 빨간 머리를 뒤로 반묶음한 에바가 활짝 웃으며 대답했다.
“아. 그래. 안 그래도 오늘 올 거라고 하셨는데 내가 깜박하고 있었군.”
랜든의 말에 앤드루가 카트마다 가득 담긴 쇼핑백들을 보며 입을 벌렸다.
“그럼 저게 다 롤렉스 시계란 겁니까?”
“맞네. 보스가 빈말은 절대 안 하시는 분 아닌가.”
“그렇긴 하지만 롤렉스 시계를 저렇게나…….”
제일 싼 제품도 수천 달러가 훌쩍 넘어가는 고가의 롤렉스 시계가 든 쇼핑백들이 무슨 마트 물건처럼 무더기로 담긴 모습에 앤드루가 머리를 절레 흔들었다.
“이건 두 분 몫이에요.”
에바가 쇼핑백 두 개를 가져와 두 사람 앞에 내밀었다.
“내 것도 있다고?”
전혀 기대하지 않았던 앤드루가 놀란 눈으로 되물었다.
“그럼요. 트레이더 분들뿐만 아니라 다른 직원들한테도 전부 시계를 하나씩 다 돌리셨는걸요.”
그러면서 에바가 자랑하듯 소매를 걷어 팔을 보여줬다.
가느다란 에바의 손목에는 천장 형광등 불빛을 받아 유달리 더 반짝이는 여성용 금장 롤렉스 데이저스트 시계가 채워져 있었다.
설마 하고 다른 여직원들도 살펴보자 하나같이 손목에 번쩍거리는 빛들이 보였다.
어쩐지 얼굴에서 미소가 떠나질 않는다고 했더니 바로 롤렉스 효과였다.
“하하하. 롤렉스를 한꺼번에 50개 넘게 구입하다니 역시 통이 크시다니까.”
이런 일을 한두 번 겪는 게 아닌 랜든은 이제 더 놀랄 것도 없이 크게 웃음을 터트렸다.
“자 그럼 어디 우리건 뭔지 한번 볼까.”
랜든이 에바한테 건네받은 쇼핑백에서 녹색 하드 박스를 꺼내 열자 화려한 색감의 롤렉스 서브마리너 청판 콤비가 모습을 드러냈다.
그러는 사이 에바와 여직원들이 나눠주는 롤렉스 시계를 받은 직원들이 왁자지껄하게 떠드는 소리가 트레이딩 플로어를 가득 채웠다.
“이야. 진짜 롤렉스를 주시다니.”
“이거 대박인데?”
“설마 이걸로 보너스를 퉁치는 건 아니겠지.”
“하하 보스가 어떤 사람인데 쪼잔하게 그러겠어.”
“젠장. 지난달에 산 내 서브마리너가…… 크흑.”
“어이구. 저런.”
“다른 라인도 많은데 하필이면 왜 내가 산 거랑 똑같은 모델이냐고!”
“그럼 나 주던지?”
“미쳤냐! 그건 스틸이고 이건 금이 들어간 콤비니까 둘 다 써야지!”
멱살을 잡을 기세로 동료에게 덤벼드는 사내를 보고 주변에서 와하하 웃어댔다.
앤드루는 그런 모습을 보면서 지금쯤 전설적인 프로골퍼인 리처드 말레스와 골프를 치기 위해 전용기를 타고 플로리다로 날아가는 중일 석원을 떠올렸다.
그러고는 원래 차고 있던 시계를 풀고 보너스로 받은 롤렉스 서브마리너를 찼다.
“잘 어울리네.”
흡족한 표정을 지은 앤드루는 씩 웃으며 중얼거렸다.
***
1996년 1월 7일.
플로리다주 마이애미 국제공항(Miami International Airport) 주기장 한쪽에 노털 블루와 크리스탈 화이트 투톤으로 동체를 도색한 석원의 걸프스트림Ⅳ 전용기가 이륙 준비를 하며 서 있었다.
커다란 방풍창을 옆에 두고 등받이를 비스듬히 눕힌 채 앉은 석원은 어제 함께 라운딩을 돌았던 데이비드 댄틱과 휴대폰으로 통화를 하고 있었다.
[덕분에 아주 즐거운 시간을 보냈소.]“저도 마찬가지입니다. 핸디캡이 3이라고 하시더니 너무 낮게 잡으신 것 아닙니까? 도저히 못 따라갈 정도로 실력이 좋던걸요.”
그러자 어제 게임에서 버디를 두 개나 기록하며 괜찮은 점수를 낸 댄틱이 크게 웃으며 말을 받았다.
[하하하. 어제 유달리 공이 잘 맞아서 그런 거지. 핸디캡 3이 맞소.]“드라이브 샷도 대단하더군요. 함께 공을 친 말레스 선수도 자세와 힘이 아주 좋다며 프로에 도전해도 될 정도라고 하지 않았습니까.”
[하긴 다른 건 몰라도 드라이브 샷 하나는 자신이 있지.]칭찬에 기분이 한껏 좋아진 댄틱이 우쭐대며 대답했다.
휴대폰을 귀에 댄 채 소리 없이 피식 웃으며 석원이 말했다.
“다음에 또 시간이 되면 함께 필드에 나가시죠.”
[그럽시다. 언제든 연락만 하시오.]골프를 치면서 상당히 친해진 댄틱이 스스럼없는 말투로 대답했다.
그렇게 한참을 더 이야기를 나누고 통화를 끝낸 석원은 휴대폰을 앞에 있는 테이블에 내려놓으며 중얼댔다.
“많이 고민했는데 골프 덕분에 쉽게 친분을 다질 수 있었네.”
아마르 커프에 이어 데이비드 댄틱까지.
미래에 초강대국인 미국의 최고 권력자가 될 인물들과 끈끈한 관계를 만들어 둔다면 앞으로 그의 행보에 큰 도움이 될 것이었다.
무엇보다 이 두 사람과의 친분이 중요한 건 앞으로 전 세계적인 충격을 안겨줄 사건이 둘의 재임 중에 발생하기 때문이었다.
“글로벌 금융위기와 코로나19 펜데믹까지 하나같이 생각하기도 싫은 끔찍한 전 지구적인 재앙이었지.”
악몽 같은 사태들이지만 반대로 뒤집어서 생각하면 천문학적인 돈을 벌어들일 수 있는 다시 없을 기회이기도 했다.
이런 재앙이 덮쳤을 때 전 세계에서 가장 큰 힘을 가진 권력자와 친분이 있다는 건 엄청난 플러스 요인이 될 터였다.
그때 전용기 스튜어디스인 벨라가 쟁반을 들고 다가와 레몬이 담긴 유리잔을 내려놓으며 말했다.
“주문하신 진토닉입니다.”
“고마워요.”
“더 필요한 건 없으신가요?”
괜찮다고 고개를 끄덕이자 벨라가 10분 뒤에 이륙한다고 알려주고는 몸을 돌려 앞쪽으로 향했다.
석원이 방풍창 너머로 보이는 공항 풍경을 바라보면서 진토닉을 한 모금 마셨을 때 탁자 위에 올려둔 휴대폰이 우웅하며 진동했다.
[보스. 랜든입니다.]“어쩐 일이에요?”
[잠깐 상의드릴 일이 있어서 연락드렸습니다.]“뭔지 말해봐요.”
[조금 전에 스티브 놀런이 먼저 전화를 걸어와서 저희 쪽에 한 가지 제안을 했습니다.]생각지도 못한 이름에 느긋하게 앉아 있던 석원이 깜짝 놀라 손에 든 휴대폰을 고쳐쥐었다.
“애플을 창업한 그 스티브 놀런을 말하는 거예요?”
확인하듯 되묻는 말에 랜든이 바로 대답했다.
[예. 맞습니다. 오래전 애플에서 쫓겨나 워크스테이션을 만드는 컴퓨터 회사와 3D 컴퓨터 애니메이션을 제작하는 픽사라는 곳을 운영하다가 다시 복귀해 지금은 고문으로 일하고 있지요.]창업자인 스티브 놀런이 그가 만든 회사에서 쫓겨난 일은 한동안 실리콘밸리를 떠들썩하게 만들었을 만큼 유명한 사건이었다.
어느새 평정심을 되찾은 석원이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놀런이 무슨 제안을 했는데요.”
[그가 가지고 있던 애플 주식 150만 주를 블록딜 방식으로 매각하고 싶다고 합니다.]“……!”
눈을 동그랗게 뜬 석원은 믿기지 않는지 다시 물었다.
“놀런이 자신의 애플 주식을 팔려고 한다는 거예요?”
[그렇습니다. 150만 주면 놀런이 고문으로 복귀하면서 애플에 자신이 따로 설립한 컴퓨터 회사를 매각하며 현금 3억 8천만 달러와 함께 받은 주식 수량하고 일치하는 겁니다.]독창성을 잃고 시장 점유율을 점차 빼앗기며 몰락의 길을 걷고 있던 애플이 반전을 위한 차세대 운영체제를 간절히 찾아 헤매다가 선택한 곳이 바로 아이러니하게도 놀런이 설립한 컴퓨터 회사였다.
‘다른 수많은 컴퓨터 회사들과 차별되던 애플만의 아이덴티티가 바로 스티브 놀런이었으니 어쩌면 당연한 귀결이라고 할 수 있을 거야.’
한번 쫓겨나긴 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스티브 놀런이 강한 애착을 가지고 있는 회사가 바로 애플이었다.
그런데 자신이 보유한 지분 전부를 팔려고 한다니 이건 보통 일이 아니었다.
“지금 바로 뉴욕으로 갈 테니 자세한 건 만나서 이야기하죠.”
[한국으로 돌아가시지 않고 말입니까?]“그래요.”
[그럼 기다리고 있겠습니다.]통화를 끝낸 석원은 살짝 굳은 얼굴로 탁자 한쪽에 있는 호출 버튼을 눌렀다.
그러자 벨라가 금방 다가와 미소 띤 얼굴로 물었다.
“네. 부르셨습니까.”
“기장한테 서울이 아니라 뉴욕으로 가자고 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