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olden Spoon Investment Portfolio RAW novel - Chapter (231)
금수저 투자백서 231화(231/231)
231. 안 내놓는다고 해도 강제로 가져올 방법이 있습니다.
이틀 뒤.
랜든과 함께 전용기를 타고 캘리포니아로 날아온 석원은 에머리빌(Emeryville)에 위치한 픽사 회의실에서 애플 창업자인 스티브 놀런을 만났다.
트레이드 마크로 유명한 검은색 터틀넥에 리바이스 청바지 그리고 뉴발란스 운동화를 신고 머리를 짧게 깎은 스티브 놀런이 바로 눈앞에 마주 앉아 있는 모습에 그는 티를 내진 않았으나 내심 설레는 기분을 느꼈다.
IT업계에 아니 인류의 발전에 한 획을 긋고 특출난 천재들이 그렇듯 갑자기 불치의 병으로 생을 다한 전설 그 자체였으니 그럴 수밖에 없었다.
귀찮은 기색을 감추지 않고 까칠한 표정으로 고문 변호사와 나란히 앉아 있는 모습을 보면서 석원은 놀런의 패션에 관련된 일화를 잠깐 떠올렸다.
‘상징과도 같은 저 옷차림이 일부러 의도한 것이 아니라. 그저 엄청 까다로운 성격이라서 착용감이 좋고 자신의 마음에 드는 옷을 한번 찾으면 그것만 교복처럼 입고 다녀서 만들어진 거라고 했었지.’
똑같은 터틀넥과 청바지를 수백 장씩 한꺼번에 주문해서 옷장에 쌓아두고 매일 갈아입었다고 하니 더 말할 필요가 없었다.
다 합쳐서 160달러 남짓밖에 안 되는 옷차림을 교복처럼 입고 다니는 억만장자라니 천재성만큼이나 정말 독특한 인물이었다.
‘스티브 놀런쯤 되니까 이러고 다녀도 찬사를 듣는 거지. 아마 보통 사람이 그랬다면 바로 미쳤냐는 소리를 들었을 거야.’
석원의 방에 그림이 두 점이나 걸려 있는 앤디 워홀이 유명해지면 길거리에서 똥을 싸도 사람들이 박수를 쳐줄 거라는 말을 했었는데 거기에 딱 들어맞는 인간상이 아닐 수 없었다.
잡생각을 지운 석원은 다리를 꼬고 앉아 있는 스티브 놀런을 보며 유창한 영어로 먼저 입을 뗐다.
“놀런 씨를 만나자고 한 건 지분을 매입하기 전에 한 가지 물어보고 싶은 것이 있어서입니다.”
“그게 뭡니까?”
놀런이 성격답게 툭 내뱉는 말투로 짧게 물었다.
직접 만나는 건 이번이 처음이었지만 원래 까칠한 스타일이라는 걸 알고 있기에 석원은 딱히 기분 나빠하지 않고 대답했다.
“지분을 매각하신 뒤에 애플을 나올 생각입니까?”
그러자 놀런이 눈매를 날카롭게 세우며 그를 똑바로 쳐다봤다.
“그건 왜 묻는 겁니까.”
석원은 찌르는 듯한 눈빛에도 전혀 주눅 들지 않은 채 태연하게 시선을 마주쳤다.
“애플의 아이덴티티 그 자체가 바로 스티브 놀런 씨니까요.”
무표정한 얼굴을 하고 있지만 눈동자에 살짝 동요하는 기색이 떠오르는 걸 보면서 석원이 재차 입을 열었다.
“그러니 투자자로서 놀런 씨의 거취에 관심을 가지는 게 당연하지 않습니까.”
안 그래도 자존심이 강한 스티브 놀런인데 그걸 제대로 저격하는 말을 해주니 티는 내지 않아도 내심 흡족해 하고 있을 게 분명했다.
아니나 다를까 눈빛이 처음보다 부드러워진 놀런이 순순히 그의 물음에 대답했다.
“애플에서 먼저 날 내보내지 않는다면 계속 일을 할 겁니다.”
그러자 석원이 빙그레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위기에 처한 애플을 다시 되살리려면 가장 필요한 사람이 바로 놀런 씨라는 걸 이사회가 누구보다 잘 알고 있을 텐데 그럴 리가 있겠습니까.”
“하. 그 멍청이들도 박 대표님처럼 제대로 된 생각을 할 수 있다면 좋겠군요.”
역시나 한번 자신을 내팽개쳤던 애플 이사회에 대해 강한 불신과 반감을 가지고 있는 모습에 석원은 내심 머리를 끄덕이며 말했다.
“놀런 씨가 애플에 남아 계신다고 하니 안심하고 주식을 인수하도록 하죠.”
그러면서 석원이 깜빡했다는 듯 덧붙였다.
“아. 그 전에 한 가지 조건 아니 제안할 것이 있습니다.”
“또 뭡니까?”
놀런이 약간 짜증스런 기색을 내비치며 대꾸했다.
“매입하는 지분의 의결권을 놀런 씨한테 전부 위임했으면 하는데 어떠십니까.”
“……?”
전혀 생각지도 못한 이야기에 놀런이 깜짝 놀란 표정을 지었다.
그러다 이내 의심스런 눈으로 그를 쳐다보면서 되물었다.
“지금 나한테 의결권을 맡기고 싶다고 했습니까?”
“그렇습니다.”
그러자 놀런이 노골적으로 못 믿겠다는 표정을 지으며 물었다.
“무슨 의도로 그런 제안을 하는 겁니까.”
의자 등받이에 몸을 기댄 석원은 여유로운 태도로 여유로운 태도로 말했다.
“놀런 씨도 아시다시피 전 투자자입니다. 당연히 이번 거래도 많은 수익이 나길 기대하며 하는 거지요.”
놀런은 상대의 의도를 가늠하듯 눈을 가늘게 뜬 채 가만히 이야기를 들었다.
“그러려면 애플이 위기를 극복하고 다시 부활에 성공해야 하는데. 앞서도 이야기했다시피 전 그걸 해낼 수 있는 핵심 열쇠가 바로 놀런 씨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
“그래서 방향을 잃고 헤매는 애플을 조금이라도 빨리 수렁에서 건져 낼 수 있도록 의결권을 모두 맡겨 놀런 씨한테 힘을 실어 주려는 겁니다.”
놀런은 빠르게 머리를 굴리며 방금 들은 이야기를 속으로 곱씹었다.
의구심이 완전히 해소된 건 아니었으나 애플이 부활해 주가가 오르면 석원한테도 이득인 건 분명한 사실이었다.
무엇보다 지금처럼 고문이나 맡아 조력자 역할을 하는 것보다 자신이 주도적으로 애플을 이끌어가길 원하는 스티브 놀런이었기에 의결권을 위임받아 행사한다면 플러스가 됐으면 됐지 마이너스는 절대 아니었다.
아무리 생각해봐도 손해 볼 것이 없다는 판단을 내린 놀런은 곧바로 고개를 끄덕였다.
“좋습니다. 원한다면 그렇게 하도록 하죠.”
석원이 만족한 표정을 지으며 눈짓하자 옆에 있던 랜든이 이미 양쪽 변호사들이 확인을 끝낸 주식 매매 양수 양도 계약서를 만년필과 함께 앞에 가져다 놨다.
먼저 그가 만년필을 들어 바로 계약서에 사인하고 고개를 들자 맞은편에 있는 놀런도 서명을 끝냈다.
그러자 랜든이 양쪽 다 제대로 서명이 됐는지 확인하고는 입을 열었다.
“이걸로 스티브 놀런 씨가 보유한 애플 지분 150만 주를 주당 15달러, 총액 2천 250만 달러에 저희 대표님이 완전인수하셨습니다.”
몸을 일으킨 석원이 한쪽 손을 내밀며 말했다.
“이렇게 인연을 맺게 됐으니 앞으로도 좋은 관계를 이어갔으면 합니다.”
그러자 따라서 일어선 놀런도 그와 손을 맞잡고 악수를 하며 대꾸했다.
“저 역시 그랬으면 좋겠군요.”
마지막까지 까칠한 모습이었지만 석원은 처음과 달리 그를 바라보는 눈빛이 많이 누그러져 있는 걸 놓치지 않으며 내심 미소를 지었다.
* * *
서울특별시 성북구 성북동.
평창동과 함께 재벌가 사람들이 많이 모여 사는 부촌답게 널찍한 골목길을 따라 높다란 담장으로 둘러싸인 저택들이 줄지어 세워져 있었다.
겨울이라 해가 일찍 져서 어두운 저녁, 최고급 벤츠 승용차 한 대가 미끄러지듯 달려와 담장 위로 키가 큰 소나무들이 보이는 저택 앞에 멈춰 섰다.
그러자 조수석에서 내린 수행비서가 뒷문을 열고 조심스럽게 말했다.
“회장님. 댁에 도착했습니다.”
푹신한 가죽 시트에 몸을 기대고 있던 우용갑 회장은 깜빡 잠이 들었던 것처럼 느릿하게 눈을 떴다.
“어. 그래.”
차 밖으로 나오자 차가운 바람이 휭 소리를 내며 몸을 휘감고 지나갔다.
“어제보다 기온이 더 떨어진 것 같군.”
값비싼 코트를 걸친 우용갑 회장이 옷자락을 여미면서 중얼거렸다.
그러고는 걸음을 옮기자 수행비서가 얼른 먼저 달려가 커다란 대문 기둥에 설치된 초인종을 눌렀다.
[누구세요.]“회장님께서 도착하셨습니다.”
삐익- 덜컹.
곧바로 잠금장치가 풀리는 소리가 들리며 대문이 열렸다.
관리가 잘 된 잔디가 깔린 정원을 가로지른 우용갑 회장은 붉은색 벽돌에 검은 지붕을 올린 본채로 성큼성큼 들어갔다.
“오셨어요.”
우용갑 회장의 아내인 황수현이 긴 홈드레스를 입고 현관에서 그를 맞이했다.
그는 아내와 함께 나란히 있는 장남 우호근을 보곤 무뚝뚝한 얼굴로 물었다.
“네가 어쩐 일이냐.”
“아버지한테 드릴 이야기가 있어서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서재에서 기다리거라.”
구두를 벗고 거실로 올라선 우용갑 회장은 단지 그 말만 남기고는 그대로 우호근을 휙 지나쳐 안방으로 들어갔다.
안방 문이 탁 닫히자 황수현 여사가 나이가 많은데도 관리를 잘해 주름을 거의 찾아볼 수 없는 이마를 찌푸리며 투덜댔다.
“하여튼 잔정이라곤 눈을 씻고 찾아봐도 없는 양반이라니까.”
“원래 저런 분이잖아요.”
“그래도 그렇지. 어떻게 제 아들한테도 저렇게 매정한 태도라니.”
섭섭함을 토로하는 황수현 여사와 달리 우호근은 크게 신경 쓰지 않는 표정을 지었다.
얼마 후 편한 옷으로 갈아입고 서재로 들어간 우용갑 회장은 먼저 와서 소파에 앉아 있는 우호근을 슬쩍 쳐다보곤 가운데 상석에 자리했다.
“이번에 새로 내놓는 스파게티 소스 출시 준비는 차질 없이 잘 되고 있겠지?”
그러자 우호근이 곧바로 입을 열어 대답했다.
“네. 이미 광고 촬영을 다 끝내고 다음 달 출시일에 맞춰 TV와 라디오를 통해 대대적으로 광고를 내보낼 예정입니다.”
“재고가 적어서 매장에 물량이 딸려도 골치 아프고 너무 많아 창고에 쌓여도 문제니까. 시장 조사를 철저히 해서 공급에 차질이 없게 초도 물량 조절을 잘하도록 해.”
“문제없이 준비해 놨으니 염려하지 마십시오.”
우용갑 회장은 막힘없이 줄줄 대답하는 아들을 못미더운 얼굴로 쳐다보며 말했다.
“책상 앞에 앉아서 입만 나불대지 말고 직접 공장에 가서 현장을 체크하란 말이야. 스파게티 소스 출시에 돈이 얼마나 들어갔는지 알고 있지? 지난번처럼 엉뚱한 짓을 하다가 일을 망치면 그때는 자식이고 뭐고 국물도 없을 줄 알아!”
고작 실수 한 번 했다고 노골적으로 불신하며 다그치는 우용갑 회장의 행동에 우호근은 내심 서운함을 삼켰다.
거기다 자숙하라며 한동안 외국에 처박아 놨던 것까지 떠올라 반감이 치솟았지만 여기서 우용갑 회장한테 대들어서 좋을 것이 없었기에 우호근은 화를 애써 눌러 참았다.
“……명심하겠습니다.”
우용갑 회장은 마뜩잖은 얼굴로 쯧 혀를 차고는 물었다.
“그래서 할 이야기라는 것이 뭐냐.”
그러자 우호근이 옆에 놔둔 얇은 서류철을 들어 우용갑 회장 앞에 내려놨다.
이게 뭐냐는 시선에 우호근이 사뭇 진지한 태도로 말했다.
“홍콩에서부터 떠올려 준비한 아이디어입니다.”
미간을 좁힌 우용갑 회장은 잠시 아들을 쳐다보다가 이내 탁자 위에 놓인 서류철을 집어 들어서 펼쳤다.
그러다 첫머리에 적힌 <미도파 백화점 인수 계획서>라는 글을 보자마자 얼굴을 와락 일그러뜨리며 고개를 쳐들었다.
“미도파 백화점을 인수하겠다니. 이게 뭔 말도 안 되는 소리야!”
다른 곳도 아니고 미도파 백화점은 방직과 함께 대흥그룹을 떠받치는 핵심 계열사였기에 당연한 반응이었다.
평소라면 우용갑 회장의 호통에 어깨를 움츠리며 눈치를 보기 바빴겠지만 이런 반응을 예상하고 있던 우호근은 오히려 목을 빳빳이 세우고 시선을 피하지 않았다.
“왜 말이 안 된다고 생각하세요.”
그러자 우용갑 회장이 여전히 인상을 쓴 채 버럭 고함을 내질렀다.
“너 같으면 그룹을 지탱하는 대들보 같은 계열사를 다른 곳에 팔겠냐!”
“당연히 그러지 않겠죠.”
“그걸 알면서 이딴 걸 가져와!”
우용갑 회장이 서류철을 던지듯 탁자 위에 내려놨다.
되지도 않을 일을 당당하게 계획서까지 만들어서 가져왔으니 울화통이 터지고도 남을 노릇이었다.
하지만 우호근은 약간의 흔들림도 없이 우용갑 회장을 향해 자신만만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대흥그룹이 안 내놓는다고 해도 미도파 백화점을 가져올 방법이 있습니다.”
“허! 미친놈 같으니.”
우용갑 회장이 콧방귀를 뀌며 어디 말해보라는 듯 험악한 기세를 내뿜었다.
“어떻게 말이냐?”
“시장에서 미도파 백화점 주식을 매집해 대흥그룹보다 많은 지분을 확보한다면 싫더라도 경영권을 내줄 수밖에 없지 않겠습니까.”
“……!”
우용갑 회장이 눈을 크게 뜨며 우호근을 쳐다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