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olden Spoon Investment Portfolio RAW novel - Chapter (236)
금수저 투자백서 236화(236/283)
236. 청와대와 여당이 그럴 수밖에 없는 상황이니까요.
노크 소리를 내며 방문을 열고 들어온 최호근 부장이 책상에 앉아 있는 석원을 보곤 꾸벅 허리를 굽혔다.
“사장님. 부르셨다고 해서 왔습니다.”
살펴보고 있던 결재서류를 덮으면서 석원이 턱으로 앞에 있는 소파를 가리켰다.
“거기 앉아요.”
“예.”
최호근 부장이 조심스럽게 오른쪽 소파에 앉았다.
그러자 몸을 일으킨 석원이 책상을 돌아 나와 가운데 상석으로 가서 자리했다.
가볍게 한쪽 다리를 꼬고는 최호근 부장을 보면서 물었다.
“회사를 옮겨서 낯설고 어색할 텐데 다들 잘 지내고 있어요?”
그러자 최호근 부장이 미소 띤 얼굴로 너스레를 떨었다.
“회사만 바뀌었지 하는 업무는 전하고 똑같아서 큰 어려움 없이 적응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월급까지 올려주셨는데 불편한 것이 있어도 억지로 끼워 맞춰야죠.”
석원은 대흥창업투자로 옮겨 온 투자 4팀 팀원들의 직급과 연봉을 크게 인상시켜주었다.
그 하나만 믿고서 원래 다니던 대흥 증권보다 훨씬 작은 회사로 따라온 것이니 그 정도 베네핏(benefit)은 충분히 줄 수 있었다.
“잘 있다니 다행이네요. 그래도 어려운 점이 있으면 바로 나한테 이야기해요.”
“예. 알겠습니다.”
대답은 그렇게 해도 최호근 부장의 성격상 정말 스스로 해결하기 힘든 일이 아니라면 석원의 도움을 받지 않고 본인 선에서 처리하려고 할 터였다.
대놓고 거리를 두진 않았지만 그래도 밖에서 굴러들어온 돌이라 자금운용부를 탐탁지 않게 생각하는 시선들이 있었기에 그러는 것이 여러모로 현명한 처신이었다.
“그럼 이제 쉴 만큼 쉬었으니 슬슬 일을 시작해야 되지 않겠어요.”
그러자 최호근 부장이 눈을 반짝이고는 몸을 바싹 앞으로 당겨 앉았다.
“안 그래도 몸이 근질근질하던 참이었습니다.”
뭐든지 맡겨달라는 태도에 석원이 입가에 웃음을 띠며 말했다.
“대흥 증권에 거래 계좌는 개설해 놨겠죠.”
“물론입니다.”
“내일 계좌로 5백 50억이 입금될 거예요. 그중에 5백억을 가지고 일주일간 한국이동통신과 에이원 그리고 정미전자 주식을 분할 매수하도록 해요.”
살짝 미간을 좁힌 최호근 부장이 조심스럽게 이야기를 했다.
“최근 불고 있는 정보통신주 열풍에 대장주인 한국이동통신과 말씀하신 회사들이 크게 각광을 받고 있지만, 그런 만큼 이미 주가가 크게 올라 있는 상태인데. 여기서 더 상승할 여력이 있겠습니까?”
“지금이 고점이라고 생각하는 거예요?”
“열기가 아직 식지 않았으니 더 올라갈 수도 있겠지만 상방이 그리 높진 않다고 봅니다. 거기에 비해 많이 올라왔으니 하방은 크게 열려 있을 테고요.”
석원은 소파 등받이에 몸을 기댄 채 여유로운 얼굴로 진지하게 이야기하는 최호근 부장의 의견을 들었다.
“정보통신주가 단기 과열 상태라는 건 나 역시 같은 생각이에요. 하지만 지금이 고점이라고 보진 않아요.”
“그러면 여기서 더 올라갈 거라고 보시는 겁니까?”
여전히 회의적인 최호근 부장을 보며 석원이 머리를 끄덕였다.
“그래요.”
그러고는 깍지를 낀 손을 무릎 위에 올리고 말했다.
“오늘 조간신문에 새창통신이 CDMA방식 이동전화 시범 서비스를 시작했다는 기사를 봤어요?”
“네.”
“지난 한 달간 신문 경제면에 실린 기사를 살펴보면 CDMA와 신규통신사업자 선정 관련 내용이 하루도 빠지지 않고 들어가 있는 걸 알 수 있을 거예요.”
“그거야 최근 가장 뜨거운 이슈이니 그런 것 아니겠습니까.”
“바로 그거예요.”
허리를 바로 세운 석원이 입가에 짙은 미소를 그렸다.
“증시는 꿈과 희망을 먹고 오른다는 말이 있죠. 이런 기사들이 계속 신문을 장식하고 장밋빛 미래를 이야기한다면 주가는 오를 수밖에 없어요.”
하지만 최호근 부장은 여전히 부정적인 태도를 보였다.
“맞는 말씀이긴 합니다만 그동안 그런 호재를 다 끌어다 써서 증시 침체 국면에서도 정보통신주들이 상승세를 이어온 것 아니겠습니까. 아직 상승세가 꺾이진 않았으나 탄력이 현저하게 줄어든 상태로 주가가 지지부진한 모습을 보이는 걸 보면 이제 끝물에 거의 다다른 걸 겁니다.”
“내 생각은 달라요. 주춤거리고 있는 건 맞지만 아직 마지막 한 방이 남아 있다고 봐요.”
석원의 알 수 없는 자신감을 보고 최호근 부장이 납득되지 않는 얼굴로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게 뭔지 여쭤봐도 되겠습니까.”
그러자 석원이 담담하게 한마디를 내뱉었다.
“외국인 주식투자 한도 확대에요.”
“……!”
생각지도 못한 이야기에 최호근 부장이 깜짝 놀라 눈을 크게 떴다.
그러고는 상체를 앞으로 숙이며 황급히 물었다.
“외국인 투자 한도가 늘어날 거라는 말씀이십니까?”
“그래요. 이미 한번 겪었듯이 15%로 제한된 지분율이 더 확대된다면 늘어난 비율만큼 외국인 자금이 추가로 들어와 증시를 끌어 올리게 될 거예요.”
놀란 마음을 아직 진정시키지 못한 최호근 부장을 보면서 석원이 눈가에 짓궂은 웃음을 머금었다.
“신규 자금이 쏟아져 들어온다면 제일 먼저 어디로 쏠리겠어요.”
그때서야 왜 주가가 더 오를 거라고 자신했는지 깨닫고는 최호근 부장이 낮게 침음성을 흘렸다.
“으음. 당연히 가장 뜨거운 정보통신주로 돈이 들어가겠군요.”
“이미 적정 가치를 한참 넘어선 상태지만 그때부터는 몰려든 돈이 주가를 끌어 올리는 유동성 랠리가 펼쳐지게 될 거예요.”
외국인 투자금이 쏟아져 들어오면 어떤 일이 펼쳐지는지 온몸으로 경험을 해봤기에 최호근 부장은 더 반박하지 않고 바로 수긍했다.
오히려 작년부터 정보통신주를 제외하고 전반적인 침체 상황에 빠져 있던 증시가 다시금 뜨겁게 불타오를 걸 생각하자 기대감에 심장이 두근두근 뛰었다.
그러다 문득 떠오른 생각에 최호근 부장이 눈치를 힐끔 살피며 물었다.
“그런데 외국인 주식투자 한도를 늘린다는 뉴스나 소문을 들어본 적이 없는데 그걸 어떻게 아시는 겁니까?”
“청와대와 여당이 그럴 수밖에 없는 상황이니까요.”
“네?”
최호근 부장이 더욱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이번 4월에 뭐가 있어요.”
“4월이면…….”
머리를 갸웃거리며 잠시 생각하던 최호근 부장은 이내 번쩍 고개를 들고 대답했다.
“15대 총선을 말씀하시는 겁니까?”
“맞아요. 김성규 대통령이 남은 임기를 안정적으로 이끌어가기 위해서는 어떻게든 이번 총선에서 여당이 승리를 거둬 국회 의석을 과반수 이상 확보해야 되죠. 하지만 그다지 유리한 상황이 아니라는 걸 알고 있을 거예요.”
최호근 부장이 작게 머리를 끄덕이며 씁쓸한 표정을 지었다.
“연이은 대형 인명사고에 두 전직 대통령의 비자금 사건까지 겹쳐 국민들의 여론이 좋지는 않지요.”
“거기다가 증시까지 신통치 않으니 더욱 지지율이 떨어질 수밖에 없죠.”
이야기를 듣던 최호근 부장은 금방 뭔가를 깨닫고는아! 하고 탄성을 내뱉었다.
“총선을 앞두고 증시를 부양하기 위해 외국인 투자 한도를 늘릴 거라는 말씀이시군요!”
“바로 맞췄어요. 이미 같은 방법을 사용해서 재미를 봤으니 한 번 더 써먹고 싶은 마음이 들지 않겠어요.”
분명 그럴듯하고 수긍이 가는 이야기였으나 최호근 부장은 뭔가 개운치 않은 표정을 지었다.
‘청와대와 여당 입장에서 지지율을 끌어올리기 위해 증시를 부양할 필요성이 있는 건 맞지만 그게 꼭 외국인 투자 한도 확대라는 법은 없잖아.’
막말로 세금 인하나 기관 투자자 주식 매수 확대 등 다른 여러 가지 증시 부양책들이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외국인 주식투자 한도 확대를 콕 찍어서 이야기하는 것이 이상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확신에 찬 태도로 한두 푼도 아니고 무려 5백억을 베팅하는 모습에 분명 자신에게는 밝히지 않은 무언가가 또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재벌 3세인 사장님의 뒷배경을 생각하면 여당이나 청와대 쪽에 이런 정보를 흘려주는 파이프가 있다고 해도 이상한 일은 아니지.’
그렇게 스스로 납득되는 스토리를 만들어낸 최호근 부장은 곧바로 이걸 어떻게 활용하면 좋을지 머리를 굴렸다.
“총선용 정책이라는 비난을 받지 않으려면 조만간 정부 발표가 나오겠군요.”
“그러니까 일주일 안에 분할 매수를 끝내라고 한 거예요.”
최호근 부장이 고개를 끄덕이며 물었다.
“그럼 종목별로 얼마씩 매수하면 되겠습니까?”
그러자 미리 생각해둔 것이 있던 석원이 바로 대답했다.
“한국이동통신에 백억을 넣고 나머지를 나눠서 두 종목을 매수하도록 해요.”
당연히 통신 대장주인 한국이동통신을 가장 많이 매수할 줄 알았던 최호근 부장은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한국이동통신이 아니라 에이원과 성미전자 주식을 더 많이 사시는 겁니까?”
“이미 오를 만큼 올라서 상방이 그리 높지 않은 한국이동통신보다는 다른 두 종목의 상승폭이 훨씬 클 테니까. 그쪽 주식을 더 사는 것이 당연하지 않아요?”
“아…… 말씀을 듣고 보니 그렇군요.”
최호근 부장은 미처 거기까지 헤아리지 못한 것을 뒤늦게 자책했다.
석원의 넓은 시야에 비하면 역시 자신은 아직 좁은 길에서 헤매고 있는 거나 마찬가지였다.
그때 석원이 살짝 목소리를 내리깔면서 조용히 말했다.
“외국인 자금이 들어와 유동성 장세가 펼쳐지더라도 주가 상승이 끝없이 계속 이어지진 않을 거예요.”
항상 시작이 있으면 끝이 있는 법이었기에 최호근 부장이 사뭇 진지한 얼굴로 물었다.
“그러면 언제쯤 주가가 꺾일 거라고 보십니까?”
“6월에 있을 신규통신사업자 선정이 변곡점이 될 거예요.”
“소문에 사고 뉴스에 팔라는 증시 격언대로 움직이라는 말씀이군요.”
한국이동통신 민영화에 이어 민간 사업자인 새창 통신을 출범시킨 정부는 이동통신 시장을 추가로 개방해 경쟁력을 더욱 강화시키기로 했다.
그 일환으로 새롭게 개인휴대통신(PCS) 사업자 세 곳을 선정하고 주파수공용통신(TRS), 회선임대사업, 무선데이터통신 등 7개 분야 사업자를 정하는 신규통신사업자 선정 사업을 추진했다.
사실상 독점권을 부여받는 막대한 이권이 걸린 사업이었기에 기업들 간의 경쟁이 치열하게 진행됐는데 증시 침체 국면에서 정보통신주들이 혼자 상승세를 기록 중인 것도 이 때문이었다.
“기대감에 주가가 상승했던 만큼 불을 지폈던 장작이 사라지면 그다음에 기다리는 건 하락밖에 없지 않겠어요.”
“지금까지 국내 시장에서 폭등했던 주식들의 끝이 대부분 다 그랬으니 이번에도 예외가 아니겠지요.”
최호근 부장도 입가에 쓴웃음을 지었다.
“주식투자 한도 확대로 증시에 추가로 들어올 외국인 자금도 그때쯤이면 목까지 차오를 테니까. 그 전에 주식을 털고 나오는 것이 여러모로 나을 거예요.”
“두 가지 악재가 동시에 겹치면 기껏 끌어올린 증시가 다시 침체로 빠져들 수도 있겠군요.”
최호근 부장이 살짝 표정을 굳혔다.
“총선 전까지는 정부의 증시 부양 때문에 반짝 좋겠지만 그 이후에 약발이 다 떨어지면 약세로 돌아설 가능성이 높으니까. 그걸 염두에 두고 투자금을 운용하도록 해요.”
“명심하겠습니다.”
석원의 지시를 머리에 새긴 최호근 부장이 이어서 물었다.
“그러면 남은 50억은 어떻게 할까요?”
“그건 최 부장과 팀원들이 자체적으로 매매해서 수익을 내보도록 해 봐요.”
“알겠습니다.”
투자 4팀의 실력 또한 수준급이었기 때문에 믿고 맡기는 것에 거리낌이 없었다.
그 뒤로도 한참 동안 석원은 투자를 어떻게 진행할지 최호근 팀장과 심도 깊은 대화를 나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