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olden Spoon Investment Portfolio RAW novel - Chapter (241)
금수저 투자백서 241화(241/283)
241. 기초자산이 조금 특이하더군요.
책상 한쪽에 설치된 블룸버그 단말기로 석원이 조금 전 나온 유럽 관련 뉴스를 살펴보고 있을 때 노크를 하며 나성미가 문을 열고 들어왔다.
“사장님. 말씀하신 한지성 대리가 왔습니다.”
“들어오라고 해요.”
“네.”
짧게 대답을 하고 나성미가 밖으로 나가자 얼마 있지 않아 호리호리한 체격에 20대 후반쯤으로 보이는 사내가 걸어들어왔다.
책상 앞으로 다가온 사내는 정확하게 90도 각도로 꾸벅 허리를 숙이며 인사했다.
“처음 뵙겠습니다. 한지성이라고 합니다.”
국내뿐만 아니라 외국에 나가 있을 때도 항상 붙어 다니면서 일을 처리할 수행 비서의 필요성을 느낀 석원은 고심 끝에 길성호 비서실장한테 적당한 사람을 한 명 보내달라고 부탁했었다.
그러자 이력서와 함께 세 명을 추천해줬는데 그중에 고른 사람이 바로 오늘 찾아온 한지성이었다.
크게 튀지 않는 복장에 과묵한 인상인 한지성을 위아래로 훑은 석원이 몸을 일으키며 한쪽 손을 내밀었다.
“박석원이에요.”
“잘 부탁드립니다.”
한지성이 얼른 두 손으로 그의 손을 맞잡고 공손하게 악수를 했다.
“소파에서 얘기하죠.”
“예.”
책상을 돌아 나온 석원이 먼저 가운데 상석에 앉았다.
한지성은 그 모습을 보고 나서야 비어 있는 오른편 소파에 자리를 잡았다.
사소한 행동이었지만 먼저 앉지 않고 그가 먼저 앉기를 기다리는 모습에 석원은 내심 머리를 끄덕였다.
“차는 뭘로 하겠어요?”
“저는 괜찮습니다.”
“사양하지 말고 아무거나 편하게 말해요.”
“그럼…… 커피로 하겠습니다.”
석원이 고개를 돌려 문 쪽에 서 있는 나성미에게 말했다.
“나 비서. 커피 두 잔 가져다줘요.”
“네.”
나성미가 문을 닫고 나가자 다시 고개를 바로 한 석원은 허리를 꼿꼿이 세운 채 앉아 있는 한지성을 보며 물었다.
“이력서를 보니까 미 8군에서 카투사로 군 복무를 한 걸로 나와 있던데. 맞아요?”
“예. 동두천에 있는 캠프 케이시(Camp Casey)에서 군생활을 했습니다.”
카투사(KATUSA)는 통역 등을 위해 주한 미군에 파견되어 근무하는 한국군 병사를 가리켰다.
“그럼 영어를 잘 하겠네요.”
“의사소통에 문제가 없을 정도는 됩니다.”
겸손하게 대답했지만 이력서에는 토익 점수가 950점이 넘고 영어뿐만 아니라 중국어도 할 줄 안다고 적혀 있었다.
“입사 3년 만에 대리를 달다니 승진이 상당히 빨랐네요.”
“윗분들이 좋게 봐주신 덕분입니다.”
“그전까지 대흥 방직 영업부에서 일했다고 들었어요.”
“그렇습니다.”
석원이 한쪽 다리를 꼬면서 물었다.
“여기서는 날 항상 따라다니는 수행 비서 역할을 해야 되는데 할 수 있겠어요?”
“익숙하지 않은 업무지만 맡겨주신다면 최선을 다해 보필하도록 하겠습니다.”
망설임 없는 대답에 석원이 마음속으로 머리를 끄덕였다.
성실하면서도 시원시원한 태도가 꽤 믿을 만한 사람처럼 보였기 때문이었다.
“주말이나 공휴일 상관없이 일이 있으면 출근해야 하고 외국에도 오래 나갈 수 있어서 사생활이 거의 없는 생활을 하게 될 텐데 괜찮겠어요?”
“다행히 아직 미혼이라 챙겨야될 가정이 없고 사귀는 사람도 없으니 오로지 업무에만 집중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사장님을 보필하면서 여러 사람들을 만나고 다양한 경험을 하는 것만으로도 저한테는 시야가 크게 트일 좋은 기회가 될 거라고 생각합니다.”
“이런. 애인도 없다니 그건 좀 슬픈 이야기네요.”
그러자 한지성이 어색한 미소를 지으며 한쪽 손으로 머리를 긁적였다.
그때 나성미가 쟁반을 가지고 들어와 따뜻한 커피를 두 사람 앞에 내려놓고 다시 나갔다.
어느 정도 대화를 나눴다고 판단한 석원은 진지한 얼굴로 가장 중요한 것을 물었다.
“앞으로 일을 하다 보면 다른 사람들이 나에 대해 물어보는 경우가 있을 수 있는데. 그때는 어떻게 할 거죠?”
“비서 업무에 대해 아는 것이 많진 않지만 가장 가까운 곳에서 상사를 모시는 만큼 제일 먼저 지켜야 할 것이 비밀 엄수라고 생각합니다.”
“쉽게 입을 열진 않을 거란 말이군요?”
“예.”
석원은 앞에 놓인 찻잔을 집어들며 차분하게 가라앉은 눈매로 그를 쳐다봤다.
“길 실장이나 아버지가 불러서 물어도 그렇게 할 수 있겠어요?”
“자리를 추천해주신 길 실장님께는 죄송하지만 입을 다무는 것이 직무를 충실하게 수행하는 일이라 믿습니다.”
진짜로 그렇게 행동할 건지는 옆에 두고 조금 더 지켜 봐야 되겠지만 일단은 합격점을 줄 수 있었다.
석원은 한 모금 마신 커피잔을 내려놓으며 작게 머리를 끄덕였다.
“좋아요. 그럼 오늘부터 업무를 시작하도록 해요. 밖으로 나가면 나 비서가 알아서 안내해 줄 거예요.”
“감사합니다.”
한지성은 자리에서 일어나 고개를 숙였다가 바로 하고는 밖으로 나갔다.
소파에 앉은 채 완전히 문이 닫히길 잠시 기다린 석원은 이내 협탁 위에 있는 키폰 수화기를 집어들고 버튼을 눌렀다.
연결음이 들리고 잠시 기다리자 이내 길성호 비서실장이 전화를 받았다.
[여보세요.]“바쁜데 연락한 건 아닌지 모르겠네요.”
[하하하. 일이 있어도 둘째 도련님 전화는 받아야죠. 그런데 어쩐 일이십니까.]석원은 수화기를 든 채 조금 전까지 한지성이 앉아 있던 자리를 슬쩍 쳐다봤다.
깔끔하게 비운 커피잔이 각을 맞춰서 받침 위에 올라가 있는 걸 보니 성격도 꼼꼼할 게 틀림없었다.
“오늘 추천했던 한 대리가 왔어요.”
[아. 그랬군요. 어땠습니까?]“조금 더 겪어봐야 알겠지만 첫인상은 나쁘지 않더군요.”
[눈치도 빠르고 유능한 친구입니다. 특히 과묵해서 함부로 입을 놀리는 스타일이 아니라 수행 비서로 쓰기에 딱 좋을 겁니다.]그러자 석원이 의외라는 표정을 지었다.
“길 실장님이 이렇게까지 누굴 칭찬하는 건 처음 보는 것 같네요.”
[그만큼 뛰어난 인재니까요. 둘째 도련님이 수행 비서가 필요하다고 하시지 않았다면 본사 비서실로 데려왔을 겁니다.]“어쩌다 보니 제가 중간에서 가로채 간 꼴이 됐네요.”
석원이 웃으면서 말하자 길성호 비서실장도 능청스럽게 대꾸했다.
[그러니 저한테 빚을 하나 지신 겁니다.]“나중에 기회가 되면 꼭 갚도록 하죠.”
[하하, 농담입니다. 어찌됐든 한 대리가 마음에 드시는 것 같아 다행입니다.]“누가 추천한 인재인데 어련하겠어요. 그나저나 신세를 많이 졌으니 밥 한 끼 정도는 제가 사야 되겠어요.”
[언제든 연락만 주십시오.]“그러죠. 바쁠 테니 이만 끊을게요.”
[예. 들어가십시오.]수화기를 내려놓은 석원은 때마침 나성미가 찻잔을 치우려고 노크를 하고 들어오는 걸 보고 소파에서 몸을 일으켰다.
* * *
일본 도쿄도 주오구 니혼바시.
투박하게 지어진 노무라 증권 본사 건물 앞에 대형 세단 두 대가 줄지어 다가와 멈춰 섰다.
차문이 열리며 뒷좌석에서 회색 코트를 입은 30대 후반의 백인 사내가 내렸는데 바로 엘도라도 펀드 일본 지사장인 존 포터였다.
제 자리에 서서 잠시 건물을 올려다본 존 지사장은 어깨를 으쓱이며 중얼거렸다.
“항상 느끼는 거지만 도쿄에 있는 건물들은 개성이 전혀 없어. 건조하기 짝이 없는 지루한 디자인뿐이라니까.”
그때 뒤차에서 내려 가까이 온 일행 가운데 리먼브러더스 시절부터 존과 함께해서 친분이 깊은 라이더가 다가와 물었다.
“뭘 그렇게 보고 계십니까?”
“아무것도 아닐세.”
존 지사장은 시선을 떼고 건물 안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인조 대리석을 깔아 고급스럽게 꾸민 로비로 들어서자 깔끔하게 정장을 차려입은 사내 두 명이 존 지사장 일행을 보고 앞으로 다가왔다.
“엘도라도 펀드에서 오신 분들이십니까?”
존 지사장은 상대를 훑어보곤 능숙한 일본어로 대꾸했다.
“그렇소.”
그러자 두 사람 중 좀 더 윗급으로 보이는 사내가 얼른 안주머니에서 명함을 꺼내 두 손으로 내밀며 인사했다.
“노무라 증권 파생상품 사업부의 오카무라 과장입니다.”
존 지사장이 받아든 명함을 살펴보자 직책과 함께 오카무라 히데오라는 이름이 적혀 있었다.
그가 턱을 까딱이자 뒤에 있던 라이더가 대신 나서서 본인의 명함을 건네주며 물었다.
“오늘 우사미 상무님과 미팅이 잡혀 있을 텐데요.”
“상무님은 15층 회의실에서 기다리고 계십니다. 안내해드릴 테니 절 따라오십시오.”
그렇게 말하며 오카무라 과장이 앞서 걸어가자 존 지사장은 일행과 함께 뒤를 따랐다.
곧장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가 안내를 받아 도착한 곳은 VIP 회의실이었다.
VIP들을 상대로 미팅을 가지는 장소답게 회의실 바닥에는 두꺼운 카펫이 깔려 있고 일본식 화풍이 돋보이는 고풍스러운 그림과 휘호가 값비싼 액자에 걸려 벽을 장식하고 있었다.
그리고 한쪽에는 한눈에 봐도 오래되어 보이는 커다란 중국 도자기가 놓여 있었는데 그걸 본 존 지사장은 감탄보다 일본이 전 세계를 휩쓸었던 버블 시대의 유물을 보는 것 같은 기분을 느꼈다.
일행이 회의실에 들어서자 고급 맞춤 양복을 입은 우사미 상무가 양옆에 부하직원들을 데리고 앉아 있다가 존 지사장을 보고 일어섰다.
“우사미 씨. 오랜만이군요.”
리먼브러더스 일본 지사에서 일할 때부터 안면이 있었던 존 지사장이 먼저 미소를 띤 얼굴로 악수를 청했다.
“반갑습니다. 지난번 제국호텔에서 열린 신년 행사에서 보고 처음이지요?”
“그렇군요. 이제 날씨도 많이 풀렸으니 시간이 나시면 함께 필드에 한 번 나가시죠.”
“하하. 그거 좋지요.”
가볍게 웃으며 그와 악수한 우사미 상무가 옆에 서 있는 단정한 용모에 은테 안경을 쓴 사내를 한쪽 손으로 가리켰다.
“이쪽은 파생상품 사업부를 맡고 있는 나카무라 본부장입니다.”
“나카무라 쇼이치입니다.”
소개를 받은 나카무라 본부장이 미리 꺼내놓은 명함을 내밀었다.
존 지사장도 명함을 꺼내 나카무라 본부장에게 건네며 가볍게 인사했다.
“존 포터입니다. 아시다시피 엘도라도 펀드 일본 지사장직을 맡고 있지요. 앞으로 잘 부탁합니다.”
“저야말로 잘 부탁드립니다.”
그렇게 서로 명함을 교환하며 인사를 나눈 양측은 원목으로 만들어진 고급스러운 테이블을 가운데 두고 마주 앉았다.
투피스 유니폼을 입은 여직원 두 명이 쟁반을 들고 와 향이 좋은 커피와 간단한 다과를 내려놓고 나가자 우사미 상무가 앞에 앉아 있는 존 지사장을 보며 먼저 입을 뗐다.
“저희하고 신용부도스와프 계약을 하고 싶으시다고 들었습니다.”
그러자 존 지사장이 입가에 여유로운 미소를 지은 채 머리를 끄덕였다.
“그렇습니다.”
우사미 상무가 앞에 놓인 서류철을 손가락 끝으로 툭툭 두드리면서 말했다.
“그런데 보내주신 제안서를 확인해보니 기초자산이 조금 특이하더군요.”
“일반적인 CDS 거래였다면 굳이 거창하게 제안서까지 보내지 않았겠지요.”
“하긴 그렇겠죠.”
우사미 상무가 피식 웃으며 자세를 다듬었다.
“그럼 확인차 제시한 기초자산이 뭔지 다시 한번 말씀해주시겠습니까.”
그러자 존 지사장이 앞에 놓인 커피잔을 들어 한 모금 마시고 내려놓고는 대답했다.
“한국과 태국, 인도네시아까지 아시아 3국의 증권 거래소 지수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