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olden Spoon Investment Portfolio RAW novel - Chapter (242)
금수저 투자백서 242화(242/283)
242. 엘도라도 놈들한테 잃은 돈을 되찾아 오는 셈 치자고.
“보통은 채권을 기초자산으로 해서 CDS 옵션을 거는데 주가 지수라니 조금 당황스러군요.”
존 지사장이 태연하게 우사미 상무의 말을 받았다.
“채권이든 주가 지수든 손해가 날 위험을 대비하기 위해 보험을 들어두는 건 똑같은 것 아니겠습니까.”
“그건 그렇지만 이런 경우가 한 번도 없어서 어떻게 옵션 계약을 해야 될지 난감하군요.”
그러자 존 지사장이 대수롭지 않게 대답했다.
“간단합니다. 제안서에도 적어뒀지만 국가나 기업의 부도 확률에 따라 CDS 수치를 산출해내는 기존 방식처럼. 세 국가의 주가 지수를 기초자산으로 두고 약정한 라인 밑으로 지수가 내려오면 옵션이 발동되도록 하는 겁니다.”
우사미 상무가 고개를 돌려 왼편에 앉아 있는 나카무라 본부장을 보며 물었다.
“엘도라도 펀드에서 제시한 기준선이 얼마였지?”
“한국 코스피가 500 그리고 태국 SET 지수와 인도네시아 IDX 지수는 각각 600과 450입니다.”
의자 등받이에 몸을 기댄 존 지사장이 미소를 띤 얼굴로 말을 덧붙였다.
“오늘 태국 SET 지수가 1,279인 걸 생각하면 여기서 반토막이 나야 옵션이 발동되는 겁니다. 다른 두 지수 역시 마찬가지고요.”
“흐음.”
한쪽 손으로 턱을 매만지는 우사미 상무를 보며 존 지사장이 어깨를 으쓱였다.
“솔직히 증시가 이 정도로 폭락하려면 지난번 고베 대지진이 온 것 같은 충격이 닥쳐야 할 겁니다. 한마디로 가능성이 아주 낮다는 뜻이죠.”
안 좋은 기억을 떠올리게 해서 언짢은 기분이 들긴 했지만 틀린 이야기는 아니었다.
“말씀대로 증시가 그 정도로 폭락하는 일은 흔치 않은 경우죠. 그래서 더욱 의아한 생각이 드는군요.”
우사미 상무가 웃음기 하나 없는 표정을 하곤 가늘게 뜬 눈으로 존 지사장을 응시했다.
“엘도라도 펀드에서는 태국 아니 아시아 증시가 크게 폭락한다고 보는 겁니까?”
그러자 시선을 피하지 않고 그와 눈을 마주한 존 지상이 싱긋 웃으며 대꾸했다.
“그럴 리가요. 최근 아시아 증시가 얼마나 좋은지는 노무라 증권에서도 잘 알고 있지 않습니까.”
“그런데 왜 비싼 프리미엄을 지불해 가면서까지 저희와 옵션 계약을 하려는 겁니까?”
여전히 의구심에 가득 찬 우사미 상무가 날카로운 물음을 던졌다.
뜬금없이 제안서를 보내 기존에 없던 CDS 옵션 계약을 체결하길 원하니 다른 의도가 있는 건 아닌지 의심하는 것이 당연했다.
더군다나 엘도라도 펀드가 일본 수출기업들을 상대로 녹인-녹아웃 옵션을 팔아 엄청난 거액을 뜯어간 것이 아직 생생하게 남아 있었기에 더욱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었다.
그런 속내를 모르지 않는 존 지사장은 경계하는 기색이 가득한 상대의 모습에 내심 혀를 찼다.
‘역시 쉽지 않군. 하긴 노무라 증권에 바보들만 있는 것이 아닌 이상 의심하는 것이 당연하긴 하지.’
하지만 겉으로는 전혀 내색하지 않은 채 입가에 여유로운 미소를 지었다.
“말 그대로 보험을 들어두려는 겁니다.”
존 지사장은 팔짱을 끼고 있는 우시마 상무를 보며 말했다.
“알고 계신지 모르겠으나 저희 엘도라도 펀드는 일본뿐만 아니라 아시아 각국 증시에 활발하게 투자를 하고 있습니다. 때로는 과감한 베팅을 하는 경우도 많아 손실이 날 경우를 대비해서 이런 식으로 안전장치를 마련해 두려는 거지요.”
“그렇다고 하기에는 액수가 너무 크군요.”
우시마 상무가 의심하는 눈초리를 거두지 않은 채 앞에 놓인 서류를 뒤적거렸다.
“제안서를 보니 원하는 계약액이 각각 10억 달러나 되더군요.”
“원래 보험액은 클수록 좋은 것 아닙니까.”
대수롭지 않은 일이라는 듯 존 지사장이 너스레를 떨었지만 우사미 상무는 딱딱한 말투로 그를 대했다.
“통상적으로 CDS 거래에서 5% 안팎의 수수료를 내는 걸 감안하면 1년에 프리미엄으로 지급해야 하는 돈만 1억 5천만 달러가 되는데. 단순한 보험치고는 사이즈가 너무 크군요.”
“이것 참.”
어느새 얼굴에서 웃음기를 싹 지운 존 지사장이 잠시 침묵하다가 다시 입을 뗐다.
“역시 일본 제일의 증권사 임원은 그냥 되는 게 아닌 것 같군요. 좋습니다. 이미 대충 눈치를 채신 것 같으니 솔직히 말씀드리죠.”
그러자 우사미 상무가 역시나 그럴 줄 알았다는 표정으로 그를 쳐다봤다.
“짐작하시는 대로 아시아 증시의 하락에 베팅하려는 겁니다.”
존 지사장이 선선히 인정하자 맞은편에 앉아 있던 노무라 증권 관계자들이 크게 술렁였다.
“어쩐지.”
“아무리 그래도 이건…….”
다들 웅성거리며 놀람을 삼키는 가운데 우사미 상무가 눈썹을 찡그리고 물었다.
“지수가 이만큼이나 폭락하려면 아까 이야기했던 대로 국난에 준하는 일이 벌어져야 하는데. 정말로 그런 사태가 올 거라고 생각하는 겁니까?”
“하이 리스크 하이 리턴(High Risk High Return)이라는 말이 있지 않습니까. 큰돈을 벌려면 과감하게 베팅을 해야죠.”
능청스러운 대꾸에 우사미 상무가 어처구니가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제가 아는 포터 씨라면 이런 말도 안 되는 베팅을 하진 않을 테고. 뉴욕 본사에서 황당한 도박을 벌이려는 겁니까?”
“그 부분에 대해서는 노 코멘트를 하도록 하죠.”
시종일관 능구렁이처럼 행세하면서도 중요한 부분에선 입을 꾹 다무는 그를 보고 우사미 상무가 머리를 절레 흔들었다.
상대의 속내를 파헤치긴 했지만 어쩐지 더 골치가 아파진 느낌이었다.
그러자 존 지사장이 상체를 바로 세우고는 사뭇 진지한 태도로 물었다.
“저희하고 CDS 옵션 계약을 하시겠습니까?”
우사미 상무는 손가락 끝으로 회의 탁자를 툭툭 두드리며 잠시 생각하다가 이내 다시 고개를 들었다.
“좋습니다. 구체적인 조건에 대해 이야기를 나눠보도록 하죠.”
얼마 뒤 약간의 조율을 거쳐 양측은 한국과 태국, 인도네시아 증시 지수를 기초 자산으로 한 30억 달러 규모의 CDS 옵션 계약을 체결했다.
엘도라도 펀드 측 인사들이 계약을 끝내고 돌아가자 우사미 상무가 회의실 의자에 앉은 채 담배를 꺼내 입에 물었다.
옆에 있던 나카무라 본부장이 곁눈으로 그런 모습을 힐끔 쳐다보면서 조심스럽게 말을 꺼냈다.
“일단 말씀대로 계약을 체결하긴 했습니다만 찝찝한 마음이 가시지 않는군요.”
그러자 우사미 상무가 라이터를 켜서 담배에 불을 붙이며 툭 내뱉었다.
“정말로 아시아 증시가 대폭락이라도 할까 봐 걱정되나.”
스스로 생각해봐도 그건 너무 확률이 낮았기에 나카무로 본부장이 머리를 가로저었다.
“그건 아닙니다. 설사 충격이 발생해 지수가 폭락하더라도 약정한 구간까지 떨어지긴 어려울 테니까요.”
“그런데 뭐가 걸린다는 건가.”
나카무라 본부장은 조금 전까지 엘도라도 펀드 측 인사들이 앉아 있던 맞은편 자리를 쳐다보면서 대답했다.
“녹인-녹아웃 옵션 사태를 벌여 닛산 자동차나 소니 같이 굵직한 국내 수출 기업들을 큰 곤경에 빠뜨린 여우 같은 놈들 아닙니까. 그런 엘도라도 펀드가 확률이 낮다는 걸 알면서도 이런 제안을 가져왔다는 게 괜히 꺼림칙합니다.”
손가락 사이에 담배를 끼운 우사미 상무가 이해 한다는 듯 말했다.
“그래서 지난 며칠 동안 자네들하고 한국과 태국, 인도네시아 3국 증시가 폭락할 잠재적 위협 요소가 있는지 샅샅이 찾아봤지만 결과는 아무것도 없었지.”
“예. 뭐.”
나카무라 본부장이 복잡한 얼굴로 작게 머리를 끄덕였다.
“그나마 찾아낸 것이 3국 모두 경상수지가 적자로 돌아섰다는 점 정도지만, 그걸로는 증시가 소폭 하락할 수는 있어도 반토막이 나 버릴 만한 일은 아니지요.”
“맞아. 분명 뭔가 노리고 있는 건 틀림없는데 그걸 알아낼 수가 없었어. 반면에 의구심만으로 포기하기에는 옵션 계약으로 받을 프리미엄이 너무 매력적이었고 말이야.”
이번에 엘도라도 펀드와 맺은 옵션 계약으로 노무라 증권은 3년간 매년 1억 5천만 달러나 되는 CDS 프리미엄을 챙길 수 있게 됐다.
무려 4억 5천만 달러를 그것도 발생할 가능성이 희박한 위험을 헤지해주면서 벌 수 있다니 안 해줄 이유가 없었다.
“고베 대지진이 발생했을 때 닛케이 선물 포지션을 잘못 잡아 상당한 손해를 입었던 걸 기억하고 있을 거야.”
“……물론입니다.”
당시 대지진으로 인해 도쿄 증시가 폭락하자 상당한 주식 물량을 보유하고 있던 노무라 증권 역시 엄청난 손해를 입었다.
그러자 손해를 조금이라도 만회하기 위해 닛케이 선물을 대거 매도했다가 예상과 달리 일본 증시가 며칠 만에 금방 반등하면서 오히려 더 큰돈을 잃고 말았다.
그때 일로 입사 동기이자 임원 승진 1순위로 꼽히며 승승장구하던 요시무라가 책임을 지고 계열사로 좌천까지 됐었기에 나카무라 본부장은 당시 일을 똑똑히 기억하고 있었다.
“그때 선물을 매수해서 우리 주머니를 털어간 곳이 바로 엘도라도 펀드였지.”
우사미 상무는 반쯤 피운 담배를 탁자 위에 있는 크리스털 재떨이에 비벼 껐다.
“저자들이 무슨 꿍꿍이를 품고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한 가지 확실한 건 가능성이 아주 낮은 곳에 베팅을 하고 있다는 거야. 어쩌면 계속된 성공으로 인해 자만심에 빠져 버렸는지도 모르지.”
아무리 하이 리스크 하이 리턴이라지만 우사미 상무의 눈엔 상대가 승산 없는 도박을 벌이는 걸로 밖에 보이지 않았다.
“어찌됐든 승산이 7할 이상인 게임이니 이번 기회에 엘도라도 놈들한테 잃은 돈을 되찾아 오는 셈 치자고.”
“……예.”
고개를 끄덕이면서도 나카무라 본부장은 마음 한구석에서 사라지지 않는 찝찝함에 굳은 얼굴을 펴지 못했다.
* * *
며칠 뒤.
푹신한 뒷좌석 시트에 몸을 기대고 있던 석원은 진동벨 소리에 휴대폰을 꺼내 전화를 받았다.
“여보세요.”
[랜든입니다. 지금 통화 가능하십니까?]슬쩍 차창 밖으로 고개를 돌리자 그를 태운 벤츠 대형 세단이 한남대교를 가로질러 달려가는 중이었다.
“말해 봐요.”
[존 지사장이 지시대로 일본 4대 증권사들과 CDS 계약을 모두 끝냈다고 합니다.]기다리고 있던 소식에 석원이 휴대폰을 귀에 댄 채 미소를 지었다.
“잘됐네요. 존한테 수고했다고 전해줘요.”
석원이 CDS 옵션 계약을 맺은 건 곧 들이닥칠 아시아 금융위기를 이용해 최대한 달러를 끌어모으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아시아 외환시장을 공격하는 주체인 월스트리트 투자 은행과 헤지펀드들은 지금쯤 취약한 아시아 각국의 금융 상태를 파악하고 있을 가능성이 높았기에 대신 타겟으로 잡은 것이 바로 일본 대형 증권사들이었다.
버블 경제의 영향으로 상당한 자본력을 가지고 있지만 덩치에 비해 아직 국제 금융 감각과 정보 네트워크가 뒤떨어져 있어서 바가지를 씌워 털어먹기에 딱 좋았다.
‘일부러 이러는 건 아니지만 달러 ATM기가 되어줘야겠어.’
속으로 혼잣말을 중얼거린 석원은 상념을 지우고 랜든의 이야기를 들었다.
[4대 증권사를 다 합쳐서 옵션 계약액이 모두 120억 달러입니다.]“프리미엄은 얼마에요?”
[3년 계약에 매년 6억 달러를 수수료로 지불해야 됩니다.]“5%면 나쁘지 않은 조건이네요.”
그러자 랜든이 살짝 걱정스러운 말투로 물었다.
[만약 예상대로 아시아 증시 폭락이 안 일어난다면 18억 달러를 그냥 날리게 되는 건데 괜찮겠습니까.]“얼마 있지 않아서 일본 증권사들이 옵션 계약을 한걸 땅을 치고 후회하게 될 테니까 기대해도 좋아요.”
[하긴 보스의 예측은 항상 빗나간 적이 없었죠. 이번에도 그럴 거라 믿습니다.]“하하. 그러다가 예상대로 되지 않으면 어쩌려고 그래요?”
[뭐. 그러면 어쩔 수 없지요. 약정한 수수료를 전부 날린다고 해도 펀드 자산이 크게 축나는 것도 아니고 말입니다.]18억 달러는 매우 큰돈이었으나 이미 엘도라도 펀드의 자산 규모는 그 정도쯤은 날려 먹는다고 해도 흔들리지 않을 정도로 커져 있는 상태였다.
석원이 피식 웃으면서 느긋하게 대답했다.
“그럴 일은 없을 테니 염려하지 말아요.”
[꼭 그랬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