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olden Spoon Investment Portfolio RAW novel - Chapter (245)
금수저 투자백서 245화(245/283)
245. 만들어 내기만 한다면 세상을 바꿀 물건이 될 거야.
오전 9시.
수행 비서인 한지성을 데리고 석원이 사장실로 들어섰다.
사장인 자신이 일찍 출근하면 시키지 않더라도 밑에 있는 부하직원들은 더 빨리 나올 수밖에 없었기에 석원은 일부러 정각에 맞춰 회사에 나오고 있었다.
“어서 오십시오. 사장님.”
나란히 책상에 앉아 있던 나성미와 다른 한 명의 여비서가 얼른 일어나 두 손을 앞으로 하고는 머리를 숙였다.
“좋은 아침이에요.”
석원은 웃으며 인사를 받아주고는 걸음을 옮겨 안쪽에 있는 사장실로 들어갔다.
그러자 투피스 정장을 입은 나성미가 얼른 따라와 석원이 벗은 재킷을 받아 정리해 옷장에 넣었다.
“오늘 일정은 어떻게 되죠?”
“점심에 우영 은행 행장님과 식사 약속이 있고 오후에는 임원 회의가 잡혀 있습니다.”
“점심은 어디로 예약했어요.”
“조 은행장님이 북경 오리를 좋아하신다고 해서 명동에 있는 상해루 특실을 잡아뒀습니다.”
“잘했어요.”
언제나처럼 세심한 일처리에 석원이 머리를 끄덕이며 한 손으로 컴퓨터 전원을 켰다.
“커피 한 잔 가져다주겠어요.”
“네. 알겠습니다.”
석원은 앉아서 부팅이 되는 걸 기다리다가 책상 한쪽에 놓인 우편물들 사이에서 눈에 띄는 서류봉투를 하나 발견했다.
곧바로 눈에 이채를 떠올리며 조간신문 위에 있는 노란색 서류봉투를 집어 들고 보낸 사람을 확인했다.
[송산 상사]바로 얼마 전부터 밑에서 일하기로 한 이철균이 취합한 정보를 보내줄 때 둘만 알 수 있도록 쓰기로 한 가짜 회사 이름이었다.
문득 처음 가짜 회사 이름을 들었을 때 나눴던 대화를 떠올린 석원이 피식 웃음을 흘렸다.
‘송산 상사라. 무슨 특별한 의미라도 있어요?’
‘그런 건 없고 그냥 제 고향이 송산면이라 그렇게 붙였습니다.’
‘……진짜 별 의미 없네요.’
‘어차피 가짜 회사 이름인데 공들여서 지을 필요는 없지 않습니까.’
‘하긴 그것도 그렇네요.’
기다렸다는 듯 대뜸 들이밀길래 뭐라도 있는 줄 알았는데 허탈했다.
뭘 기대했냐는 것처럼 오히려 찜찜하게 쳐다보던 이철균의 눈빛을 머릿속에서 지우며 그는 서류봉투 한쪽 끝을 손으로 찢고 안에 든 내용물을 꺼냈다.
그러자 A4용지 열 장으로 정리된 어떤 기업에 대한 조사 보고서와 함께 30대 초반쯤 되어 보이는 사내의 사진이 들어있었다.
“한국 마이크로소프트를 다니다가 올해 그만두고 디지털 웨이브라는 벤처 기업을 설립했다라…….”
디지털 웨이브 사장인 안병석에 대한 신상명세서를 천천히 훑어본 석원은 이어서 사진을 집어 들었다.
“결혼해서 아내와 자녀까지 있는데 적지 않은 나이에 남들이 다 부러워하는 직장에 사표를 내고 나오다니 행동력 하나는 대단하네.”
그러고는 뒤로 몸을 기대며 중얼거렸다.
“하긴 그 정도 배짱과 추진력이 있으니까. 세계 최초로 MP3 플레이어를 만들 수 있었던 거겠지.”
디트리히 겐셔 박사팀이 개발한 기술이 전기전자공학회(IEEE)로부터 국제 공인을 받은 이후.
많은 PC유저들 사이에서 공짜 음악을 다운받아서 즐기는 방법으로 큰 인기를 끌며 MP3는 짧은 시간 동안 급속하게 퍼져 나갔다.
하지만 아직까지는 PC를 이용해 음악을 감상할 수 있을 뿐 휴대하며 즐길 수단이 없었다.
“당연히 돈 냄새를 맡고 MP3 플레이어 개발을 시작한 곳들이 한두 군데가 아니지.”
그중에는 소니와 필립스 같은 세계적인 대형 전자 업체들도 포함되어 있었다.
이미 워크맨이라는 훌륭한 성공사례가 있었으니 카세트테이프보다 더 휴대성이 좋은 MP3 플레이어 개발에 열을 올리는 건 당연한 일이었다.
“그런데 이런 거대 공룡들을 모두 제치고 최초로 MP3 플레이어를 만들어낸 곳이 한국의 작은 벤처 기업이라니. 정말 생각할수록 놀라운 일이라니깐.”
인구도 그리 많지 않고 땅덩어리도 작은 대한민국에서 이렇게 가끔씩 툭하고 여러 분야의 세계적인 천재들과 혁신적인 제품들이 만들어지는 걸 보면 신기하고 대단하다는 말 밖에 나오지 않았다.
“물론 혁신적인 제품을 만들어냈다고 해도 마지막이 다 아름다운 건 아니지만 말이야.”
우여곡절 끝에 양산 제품까지 내놓게 되지만 곧이어 들이닥친 IMF 여파와 특허권 시비 등 여러 문제에 휘말리면서 결국 심각한 경영난에 허덕이다가 빛을 보지 못하고 역사 속으로 사라지게 됐다.
“제일 안타까웠던 건 힘들게 개발한 MP3 플레이어 원천 기술들이 헐값에 전부 미국 회사에 팔려 버렸다는 거지.”
언젠가 본 신문 기사에 디지털 웨이브가 원천특허를 계속 보유하고 있었다면 2005~2010년 동안 무려 27억 달러에 달하는 로열티 수익을 받았을 거라는 내용을 읽은 적이 있었다.
이런 엄청난 특허를 경영난에 특허료를 낼 돈도 없어 국내에서는 권리가 소멸되는 일까지 겪었다고 하니 정말 아이러니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당시에 기사를 읽고 정말 안타까웠던 기억이 지금도 남아 있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내가 그렇게 만들지 않을 거야.”
기껏 애써 만들어낸 원천 기술을 어이없이 빼앗겨 남 좋은 일만 시켜줄 이유는 없었다.
“더군다나 MP3 원천 특허권을 내가 가지고 있으니까. 여기에 MP3 플레이어 관련 기술까지 선점해 버린다면 거둬들일 수 있는 특허 사용료가 더욱 커지겠지.”
그가 소유한 특허를 사용하지 않으면 아예 MP3 플레이어를 만들 수가 없을 테니 거의 독점적인 지위를 가질 수 있을 터였다.
매년 전 세계에서 MP3 플레이어가 수백, 수천만 대씩 판매될 때마다 따박따박 호주머니에 들어올 특허 사용료를 생각하자 벌써부터 배가 부른 것 같았다.
“MP3로 짭짤하게 용돈 벌이를 하려면 일단 디지털 웨이브가 MP3 플레이어를 최대한 빨리 개발해 내도록 해야겠지.”
때마침 나성미가 노크를 하고 들어와 책상에 원두향이 진하게 풍기는 커피잔을 내려놨다.
“유 본부장한테 연락해서 지금 바로 내 방으로 와달라고 해주겠어요.”
“네. 또 달리 시키실 일은 없으신가요?”
“그거만 해주면 돼요.”
“알겠습니다.”
나성미가 나가자 혼자가 된 석원은 커피를 마시며 느긋하게 이철균이 보낸 조사 보고서를 꼼꼼히 살펴봤다.
* * *
엔지니어 출신인 안병석 사장이 한국 마이크로소프트를 패기 넘치게 박차고 나와 설립한 디지털 웨이브는 소프트웨어 진흥원이 벤처 기업들을 지원하기 위해 만든 서초 창업지원실에 첫 둥지를 틀었다.
평소보다 옷차림에 상당히 신경을 쓴 안병석 사장은 사무실 안인데도 재킷까지 입은 채 초조한 얼굴로 출입문 근처를 계속 서성거렸다.
“어휴.”
안병석 사장의 대학 후배로 창업을 하자마자 제일 먼저 데려온 윤남호 부장이 컴퓨터 앞에서 일을 하다가 그런 모습을 보곤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그러고는 미간을 문지르며 자리에서 일어나 안병석 사장에게 말을 걸었다.
“사장님.”
“응? 왜 그래.”
“손님이 오시면 바로 말씀드릴 테니까. 방에 들어가 계시는 게 어떠세요.”
“괜찮으니까 난 신경 쓰지 말고 일들 해.”
여전히 출입문을 쳐다보며 건성으로 하는 대답에 윤남호 부장이 미간을 팍 찡그렸다.
“신경이 쓰이니까 그러죠.”
“……?!”
의아한 표정을 짓던 안병석 사장은 10명 정도 되는 직원들이 허리까지 오는 파티션 너머에서 그를 빤히 쳐다보고 있는 걸 발견하곤 그제야 자신이 업무를 방해하고 있다는 걸 깨달았다.
“하하하. 그렇네.”
안병석 사장은 멋쩍게 웃으며 윤남호 부장과 함께 안쪽에 있는 사장실로 들어갔다.
사장실이라고 해봤자 별거 없었는데 컴퓨터가 놓인 책상 하나 그리고 회의를 할 때 사용하는 긴 테이블과 간이 의자들만 덜렁 놓여 있을 뿐이었다.
게다가 흔한 소파도 없이 한쪽 구석에는 프린터 용지와 기타 잡다한 것들을 넣어둔 종이박스들이 가득 쌓여 있어서 문에 달아둔 사장실이라는 팻말이 무색할 정도였다.
안병석 사장이 간이 의자를 하나 빼서 앉자 윤남호 부장이 옆에 서서 물었다.
“오늘 오기로 한 대흥 창투 사람들 때문에 그러세요?”
“그래. 대흥 창투라면 너도 알고 있는 미도파 백화점을 가지고 있는 대흥 그룹 계열사잖아. 그런데서 우리가 찾아간 것도 아닌데 먼저 연락을 해온 걸 보면 투자를 해주려고 하는 것 아니겠냐고.”
안병석 사장이 기대에 찬 표정으로 눈을 반짝였다.
바로 어제 갑자기 대흥 창투에서 투자 관련해서 미팅을 하고 싶다는 전화가 걸려 왔었다.
워낙 세상이 험하다 보니 처음에는 사기꾼이 아닌가 의심도 했었지만 진짜로 대흥 창투 관계자인 걸 확인한 안병석 사장은 자신도 모르게 환호성을 질렀을 만큼 기뻐했다.
“하긴 선배가 원하는 MP3 개발을 하려면 투자가 절실한 시점이긴 하죠.”
“그래. 말 그대로 호박이 넝쿨째 굴러들어온 거라니까!”
안병석 사장이 테이블을 탕 치면서 흥분했다.
인터넷으로 팩시밀리를 전송할 수 있는 전용 소프트웨어를 판매하거나 제작 하청을 받아 그런대로 회사를 안정적으로 꾸려 나가고 있었다.
하지만 거기서 만족하지 않고 요즘 핫한 MP3를 워크맨처럼 휴대하고 다니면서 들을 수 있는 장치를 만들면 정말 좋겠다는 아이디어에 개발을 준비 중이었다.
그러나 아직 전 세계에서 단 한 번도 만들어진 적이 없는 제품인 만큼 개발비가 만만치 않은데다가 실패할 위험마저 컸다.
그래서 고민을 하던 차에 마치 그런 걸 알기라도 하듯 대흥 창투에서 연락이 온 거였다.
그러니 기뻐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래도 인터넷 팩시밀리가 문제없이 잘 팔리고 있는데 굳이 위험을 감수하고 MP3 플레이어 같은 걸 개발할 필요가 있어요? 솔직히 전 지금도 확신을 못 하겠어요.”
윤남호 부장이 심드렁한 얼굴로 말했다.
“무슨 소리야. 성공하기만 하면 우리 손으로 제2의 워크맨을 탄성시키는 거야. 그것도 전 세계 최초로 말이야! 상상만 해도 짜릿하지 않아?”
“그만큼 실패할 가능성도 크죠. 우리가 사성이나 현우 같은 대기업도 아닌데 안 좋은 결과가 나왔을 때 져야될 리스크가 너무 크지 않냐는 말이에요.”
직원들이 있는 곳에선 깍듯하게 사장으로 대하지만 단둘뿐인 공간이라 자연스럽게 말투가 편해진 윤남호 부장이 여전히 회의적인 태도로 대꾸했다.
그가 현실적인 이유를 들어 MP3 개발에 반대하자 안병석 사장이 돌연 목소리를 낮게 깔고 진지한 표정을 지었다.
“윤호야.”
“예?”
“우리가 디지털 웨이브를 창업한 이유가 뭐야.”
갑작스런 말에 윤남호 부장이 입을 다문 채 안병석 사장을 쳐다봤다.
“안정적인 생활을 원했다면 그냥 다니던 회사에 그대로 남아 있었을 거야. 하지만 심장이 두근두근해지는 일을 하고 싶어서 밖으로 나와 벤처를 하는 거 아니야.”
“하아…….”
윤남호 부장이 크게 한숨을 내쉬었다.
“그게 MP3 플레이어라는 거예요.”
“맞아! 만들어내기만 한다면 세상을 바꿀 물건이 될 거야.”
열정에 가득 찬 안병석 사장의 얼굴을 본 윤남호 부장은 더 만류하지 못하고 앓는 소리를 내뱉었다.
“끄응. 형이 사장이니 알아서 하세요.”
두 손을 들고 항복하자 안병석 사장이 웃으며 어깨를 두드렸다.
“임마. 네가 옆에서 도와줘야지 나 혼자 어떻게 하라고.”
“하여튼 평소에는 죽으라고 말 듣는 시늉도 안 하면서 이럴 때만 그러죠.”
투덜거리긴 해도 막상 MP3 플레이어 개발에 들어가면 밤을 새워가며 일할 녀석인 걸 알았기에 안병석 사장은 미소를 지었다.
그때 직원 한 명이 사장실 문을 노크하며 얼굴을 빼꼼 내밀었다.
“저. 대흥 창투에서 손님이 찾아오셨는데요.”
“어어 그래. 얼른 들어오시라고 해!”
안병석 사장은 허둥지둥 몸을 일으키며 황급히 대답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