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olden Spoon Investment Portfolio RAW novel - Chapter (247)
금수저 투자백서 247화(247/283)
247. 난 오히려 이득을 봤다고 봐요.
“조심해서 가십시오!”
1층까지 따라 내려온 안병석 사장과 윤남호 부장의 배웅을 받으며 석원이 탄 벤츠 대형 세단이 미끄러지듯 서초 창업지원실을 떠났다.
샛길을 나와 대로로 접어들자 옆에 탄 유현석 본부장이 힐끔 눈치를 살피고는 조심스럽게 입을 뗐다.
“저. 사장님.”
푹신한 뒷좌석 시트에 몸을 기댄 채 차창 밖을 바라보고 있던 석원이 고개를 돌렸다.
“왜 그래요.”
유현석 본부장은 살짝 망설이다가 솔직히 말을 꺼냈다.
“너무 성급하게 투자를 결정하신 것 같아 조금 걱정스럽습니다.”
“그래 보여요?”
다행히 크게 기분 나빠하지 않는 모습에 유현석 본부장이 좀 더 용기를 내서 말했다.
“디지털 웨이브가 MP3 플레이어를 정말로 만들어 낼 역량이 되는지 의문스러운데다가 무엇보다 개발비 거의 전액을 내는데. 고작 특허권에 대한 권리 절반만 가져온 건 너무 손해 보는 계약인 것 같습니다. 지금이라도 다시 재검토를 해보시는 게 어떻겠습니까.”
구두 약속만 하고 정식 투자 계약을 하진 않았기에 아직은 얼마든지 제시한 조건을 바꿀 수 있었다.
“우리가 손해보는 계약이라고 생각해요?”
“그렇습니다.”
“난 오히려 이득을 봤다고 봐요.”
“?”
이해가 안 된다는 표정을 짓는 유현석 본부장을 보며 석원이 엷은 미소를 지었다.
“워크맨이 소니를 전 세계적인 전자 회사로 올려놓은 것처럼 MP3 플레이어는 앞으로 맞이할 디지털 시대에 상징과도 같은 제품이 될 거예요.”
“…….”
“그런 혁신적인 제품을 만들어내는 데 큰 몫을 한다면 대흥 창투의 이름을 국내는 물론이고 전 세계에 알리는 효과가 있을 거예요. 당연히 엄청난 투자 수익도 뒤따를 테고 말이죠.”
석원은 확신에 찬 얼굴로 최상의 시나리오를 그렸다.
“물론 디지털 웨이브가 보잘것없는 작은 벤처 기업인 건 맞지만 안병석 사장을 비롯한 직원들 모두 열정이 넘치고 실력이 뛰어난 엔지니어들이에요. 유명한 세계적 IT 기업인 애플과 마이크로소프트도 처음에는 작은 차고에서 시작한 벤처 기업이었던 걸 생각해 봐요. 그 사람들도 해냈는데 한국에선 그런 혁신적인 제품을 만들어내지 못한다는 법은 없잖아요.”
석원이 이처럼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는 건 회귀 전 삶에서 대형 전자 업체들이 해내지 못한 걸 세계 최초로 디지털 웨이브가 성공해낸 사실을 알고 있기 때문이었다.
‘그러니까 이번에도 당연히 MP3 플레이어를 만들어 낼 수 있겠지.’
더구나 이번에는 석원이 빵빵하게 자금을 지원해 줄 테니 어쩌면 시제품이 원래 역사보다 더 빨리 나올지도 몰랐다.
반면 유현석 본부장은 여전히 디지털 웨이브가 MP3 플레이어를 개발해 낼 수 있을지 의심스러웠으나 석원이 강한 믿음을 보이자 더 반론을 꺼내지 못했다.
대신 다른 부분을 조심스럽게 거론했다.
“말씀대로 MP3 플레이어가 그렇게 큰돈을 벌어줄 제품이라면 특허권이야 어차피 회사에 귀속되는 것이니. 그냥 디지털 웨이브 지분을 가져오는 것이 더 나은 거 아닙니까?”
얼핏 생각하면 회사 지분이 더 가치가 크게 느껴지니 유현석 본부장의 이야기가 맞게 들렸다.
하지만 석원은 미소 띤 얼굴로 머리를 가로저었다.
“그렇게 보일 수도 있지만 하나하나 꼼꼼하게 따져보고 나면 특허권에 대한 권리가 훨씬 더 가치가 크다는 걸 알게 될 거예요.”
잠시 생각하던 유현석 본부장은 이내 이해가 안 된다는 표정을 지었다.
“제가 공부가 부족해서 그런지는 몰라도 잘 납득이 안 됩니다.”
“흠. 예를 들어 설명해볼까요.”
석원이 입고 있는 재킷 단추를 편하게 풀면서 느슨한 자세를 취했다.
“디지털 웨이브가 MP3 플레이어 개발에 성공해 제품을 내놔서 크게 인기를 끌게 되면 어떻게 될 것 같아요.”
그러자 유현석 본부장이 뭘 묻는 건지 모르겠다는 듯 고개를 옆으로 기울였다.
“잘 팔리면 돈을 잔뜩 벌 테니 좋은 것 아닙니까?”
“한동안은 그렇겠죠. 하지만 금방 국내는 물론이고 세계 곳곳에서 디지털 웨이브가 만든 제품을 베낀 카피품들이 쏟아질 거예요.”
“으음…… 아무래도 돈이 된다고 하면 그렇게 되겠죠.”
유현석 본부장이 미간을 살짝 좁힌 채 대답했다.
카피품이라고 하면 바로 중국이 떠오르겠지만, 안타깝게도 이때 MP3 플레이어를 마구 따라 만들어서 디지털 웨이브를 어렵게 만든 곳은 다름 아닌 한국 회사들이었다.
‘서로 돕지는 못할망정 같은 식구들끼리 완전 제 살 깎아 먹기를 한 거지.’
회귀 전에도 뭔가 한 업종이 잘 된다고 하면 사람들이 우르르 몰려들어 결국 시장 자체가 망가지는 경우를 종종 볼 수 있었기에 어쩌면 한국의 고질적인 문제일지도 몰랐다.
“하지만 그런 걸 막기 위해서 특허가 있는 것 아닙니까?”
“물론 그렇지만 항상 이상과 현실은 다른 법이잖아요.”
눈썹을 모으는 유현석 본부장을 보며 석원이 말을 이었다.
“유사 제품을 내놓은 업체들이 디지털 웨이브가 가진 특허에 대한 무효 소송을 제기하면서 제품을 계속 팔아먹는다면 대응하기가 어렵지 않겠어요.”
“아! 그런 방법이 있었군요.”
유현석 본부장이 낮게 탄성을 내뱉었다.
악질적인 꼼수였으나 시장에서 흔히 써먹을 정도로 유효한 수법이었다.
“분명 유사 제품을 내놓는 업체들 가운데에는 사성이나 현우 같은 대기업들도 있을 텐데. 작은 벤처 회사에 불과한 디지털 웨이브가 제대로 대응하긴 쉽지 않을 테죠. 그건 우리가 뒤에서 돕는다고 해도 마찬가지일 테고요.”
아무리 대흥 창투가 대기업 계열사라고 하지만 한계가 있었기에 유현석 본부장이 무겁게 머리를 끄덕였다.
“그런 과정에서 디지털 웨이브는 MP3 플레이어 생산과 판매에 제대로 집중할 수 없을 거고, 운영에 상당한 어려움을 겪게 될 가능성이 커요.”
“그렇긴 하지만 재판을 영원히 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결국은 판결이 나올 테니. 그러면 유사품을 만들어낸 회사들이 다시는 제품을 생산하지 못하도록 해 버리면 되지 않습니까.”
“그래 봤자 시간이 엄청나게 흘러가 버린 뒤일 테고 그때쯤이면 특허권을 교묘하게 피해서 MP3 플레이어를 만들 방법을 찾아낼 테니 상처뿐인 영광이 될 거예요.”
충분히 가능성 있는 결과에 유현석 본부장이 잠깐 머뭇거리다가 곧바로 반박했다.
“그렇다고 해도 결국에는 원천 특허를 완전히 피하긴 어려울 테니 반대로 저희가 소송을 걸면 되지 않습니까.”
“뭐 그렇게 해서 다른 업체들이 MP3 플레이어를 만들어서 팔지 못하도록 막을 수는 있겠죠. 하지만 그건 하책 중에 최악의 하책이에요.”
“왜 그렇게 생각하십니까?”
유현석 본부장이 의아한 표정으로 그를 쳐다봤다.
“당장은 이득이 될지 몰라도 특허권을 독점해 버리면 결국엔 MP3 플레이어의 생명력을 단축시키는 결과를 낳게 될 테니까요.”
석원은 몸을 뒤척여 자세를 바로 하더니 갑자기 다른 말을 꺼냈다.
“베타맥스와 VHS 경쟁에 대해서 알고 있어요?”
“VHS면 저희가 비디오를 볼 때 사용하는 테이프를 말씀하시는 겁니까.”
그러자 석원이 작게 머리를 끄덕였다.
“맞아요. 아는 사람들이 많지 않지만 원래 비디오테이프는 두 가지 표준 규격이 있었는데 바로 소니에서 만든 베타맥스와 JVC의 VHS에요.”
뜬금없이 갑자기 왜 비디오테이프 이야기를 하는지 몰랐으나 유현석 본부장은 일단 가만히 말을 들었다.
“소니에서 내놓은 베타맥스가 VHS보다 1년 더 일찍 개발됐을 뿐만 아니라 크기도 작고 화질과 기능 등 기술적인 부분이 훨씬 우수했죠. 하지만 이미 알고 있다시피 결국 표준 규격 싸움에서 이긴 건 JVC가 만든 VHS 방식이에요. 왜 이런 결과가 나온 것 같아요?”
“글쎄요…….”
목소리를 낮게 깐 석원이 진지하게 이유를 알려줬다.
“아주 까다롭고 폐쇄적인 라이센스 정책을 편 소니와 달리 JVC는 거의 모든 걸 허용하다시피 관대하게 라이센스를 풀어줬거든요. 이게 결정적인 영향을 끼쳐서 성능 면에서는 베타맥스가 훨씬 좋은데도 불구하고 VHS가 싸움에서 승리하고 시장을 다 가져갈 수 있었던 거예요.”
유현석 본부장의 보며 석원이 말을 계속했다.
“MP3 플레이어도 똑같아요. 만약 우리가 특허권을 꽉 움켜쥐고 욕심을 부린다면 어떻게 되겠어요.”
“……베타맥스 같은 결과를 맞이할 수도 있겠군요.”
잠시 생각을 해본 유현석 본부장이 한 박자 늦게 대답했다.
“바로 맞췄어요. MP3 플레이어를 최대한 빨리 확산시켜서 소비자들이 사용하도록 만들어야 하는데. 모든 걸 다 가지려고 하다가는 반대로 모든 것을 다 잃어버릴 수도 있어요.”
MP3 원천 기술 특허도 함께 가지고 있는 석원의 입장에서는 MP3 플레이어가 더 넓고 빨리 확산될수록 이득이었다.
‘거기다가 어차피 MP3 플레이어는 스마트폰이 나오면 역사 속으로 사라져 버릴 제품이기도 하고 말이야.’
MP3 플레이어의 등장이 파괴적이고 혁신적이었던 만큼 전성기 또한 놀라울 만큼 짧았다.
‘그러고 보니 MP3 플레이어로 가장 큰 이득을 챙기고 또 MP3 플레이어를 사라지게 만든 스마트폰을 만든 곳이 전부 애플이라는 것도 아이러니한 일이네.’
자신들의 주력 상품이 타격을 입을까 두려워 MP3 플레이어 개발에 소극적이었던 소니나 디지털카메라 기술을 최초로 개발해 놓고도 필름 판매가 줄어들까 봐 그냥 창고 한구석에 처박아 뒀던 코닥하고 비교할 때 너무나도 다른 행도였다.
‘이런 걸 보면 애플 아니 스티브 놀런이 정말 대단한 천재이기는 해.’
아마 다른 사람이라면 이런 과감한 행동을 하기가 쉽지 않을 터였다.
석원은 잠깐 딴 길로 흘러가던 생각을 지우고 말했다.
“결국 황금알을 낳는 거위의 배를 가르지 않고 MP3 플레이어가 시장을 장악하도록 만들기 위해서는 디지털 웨이브도 보유한 특허 라이센스를 다른 업체들한테 허용할 수밖에 없어요. 그 뒤는 안 사장이 어떻게 대응하느냐에 따라 달렸지만 아무래도 제조 역량이 떨어지는 디지털 웨이브의 입지가 줄어들 가능성이 클 크겠죠. 제품을 개발하는 것과 얼마나 잘 제조해서 파느냐 하는 건 엄연히 다른 거니까요.”
설마 이렇게 몇 수 앞을 내다보고 있을 줄은 꿈에도 짐작하지 못한 유현석 본부장이 놀란 얼굴로 석원을 쳐다봤다.
“그럼 특허에 대한 권한을 요구한 것도 이런 걸 염두에 두신 겁니까.”
그러자 석원이 의미심장한 미소를 입가에 매달았다.
“그래요. 회사 지분을 가지고 있으면 MP3 플레이어를 생산해서 판매하는 것까지 많은 걸 관여하고 또다시 상당한 투자를 해야 됐을 거예요.”
“제품을 생산하려면 대규모 제조라인이 필요할 테니 아무래도 그럴 겁니다.”
유현석 본부장도 머리를 작게 끄덕이며 동의했다.
“반면 특허는 권한만 잘 지키고 보호한다면 라이센스를 통해 매년 상당한 액수의 돈을 그냥 앉아서 받아 챙길 수 있으니. 골치 아픈 일도 없고 이게 훨씬 낫지 않아요.”
노림수가 뭐였는지 알게 된 유현석 본부장은 살짝 입을 벌리고 감탄했다.
“정말 그렇군요. 이런 깊은 안배가 있으신 줄도 모르고 제 생각이 짧았습니다.”
석원은 딱히 그를 타박하지 않고 담담하게 지시를 내렸다.
“디지털 웨이브와 계약을 빨리 끝내고 MP3 플레이어 개발을 성공시킬 수 있게 모든 지원을 아끼지 말도록 해요.”
“알겠습니다.”
그러자 석원은 다시 시트에 몸을 기대고는 느긋하게 차창 밖으로 시선을 던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