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olden Spoon Investment Portfolio RAW novel - Chapter (251)
금수저 투자백서 251화(251/283)
251. 어디 네 계획대로 해보도록 해라.
서울 영등포구 동해그룹 본사.
연락을 받고 급히 달려온 우호근이 회장실 문을 열고 들어서자마자 커다란 호통이 터져 나왔다.
“도대체 일을 어떻게 하는 거야!”
회장실이 쩌렁쩌렁 울릴 정도로 거친 목소리에 우호근은 당혹감을 애써 감추며 잔뜩 화가 나 얼굴이 시뻘겋게 달아올라 있는 우용갑 회장의 시선을 피해 고개를 숙였다.
“일단 앉으라고 하시고 차분히 이야기를 들으시죠.”
먼저 와 있던 전해철 비서실장이 우용갑 회장을 달랬다.
그제야 숨을 거칠게 내쉰 우용갑 회장이 말하기도 싫다는 듯한 쪽 팔을 내저었다.
예상치 못한 대흥 그룹의 기자회견에 우용갑 회장이 화를 내는 건 충분히 이해가 됐다.
하지만 완전히 일을 망친 것도 아니고 약간 어긋났을 뿐인데 마치 큰 잘못이라도 저지른 것처럼 닦달하는 모습을 보자 우호근은 그렇게도 자기가 못미덥고 마뜩잖은 건지 반발심이 치밀었다.
‘제기랄.’
아랫입술을 질끈 깨문 우호근이 묵묵히 비어 있는 오른편 소파로 가서 앉았다.
그런 아들을 보면서 우용갑 회장이 짜증 섞인 목소리로 말했다.
“너도 귀가 있으면 대흥 그룹에서 기자들을 불러 모아 놓고 우리가 적대적 인수합병을 시도 중이라는 걸 모두 까발렸다는 걸 들었겠지.”
“……예.”
대답을 들은 우용갑 회장은 앉아 있던 소파 팔걸이를 손바닥으로 세게 내려치며 버럭 고함을 내질렀다.
“지분을 충분히 다 모으지도 못했는데 상대가 눈치를 채고 배후가 우리인 것까지 알아내 폭로하다니. 뭘 어떻게 했기에 이럴 수가 있는 거야!”
“…….”
묵묵히 호통을 듣고 있는 아들의 모습에 우용갑 회장이 얼굴을 찌푸린 채 쯧하고 혀를 찼다.
“내가 그렇게 조심해서 잘하라고 일렀거늘. 이게 뭐냔 말이다! 애초에 너한테 일을 맡기는 게 아니었어!”
자존심에 마구 상처를 내는 말에 우호근은 무릎 위에 올려둔 주먹을 꽉 움켜쥐었다.
우용갑 회장은 고개를 돌려 함께 있던 전해철 비서실장에게도 힐난을 퍼부었다.
“자네도 실수하지 않도록 단도리를 하라고 그렇게 이야기했는데 옆에서 뭘 한 거야!”
“면목 없습니다.”
전해철 비서실장은 머리를 숙이며 사죄했다.
“하여튼 마음에 들게 일을 하는 놈이 없어! 이래서 내가 누굴 믿고 일을 맡기겠냔 말이야.”
그래도 분이 안 풀린 우용갑 회장이 어깨를 들썩거리며 성질을 부렸다.
손등에 힘줄이 돋아날 정도로 주먹을 꽉 쥐고 있던 우호근은 고개를 빳빳이 치켜들고 입을 열었다.
“대흥 그룹이 예상보다 빨리 알아차려서 조금 놀라긴 했지만 그렇다고 호들갑을 떨 정도로 큰일은 아닙니다.”
“뭐야!”
거칠게 노려보는 우용갑 회장의 시선을 받으며 우호근이 태연하게 말했다.
“지분을 더 많이 확보하지 못해 아쉽긴 하지만 어차피 계속해서 비밀로 감추기는 어려워 조만간 드러날 일이었습니다.”
“누가 그걸 몰라서 이러는 줄 알아. 문제는 네 말대로 아직 때가 다 영글지 않았다는 거 아니냐!”
우용갑 회장은 눈썹을 찌푸린 채 전해철 비서실장을 향해 고개를 홱 돌렸다.
“지금까지 매집한 미도파 백화점 지분이 얼마나 되나?”
그러자 전해철 비서실장이 힐끗 맞은편에 앉아 있는 우호근을 쳐다보곤 대답했다.
“동해페레그린 증권을 통해 매집한 주식 일부를 백제 산업에 넘긴 것까지 합쳐 모두 14%를 확보했습니다.”
대답을 듣자마자 우용갑 회장이 인상을 팍 찡그렸다.
“이것 봐라. 14%면 박 회장 일가가 보유한 지분에도 못 미치는데 지금 그딴 한가한 소리가 입에서 나와!”
“그래봤자 5% 남짓밖에 차이가 안 나니 금방 역전시킬 수 있습니다.”
“허!”
우용갑 회장은 기가 차다는 듯 헛웃음을 내뱉고는 이를 꽉 악물었다.
“상대보다 한 표만 적어도 모든 것이 허사가 되어 버리는 게 주주총회인 걸 몰라? 이제 우리가 미도파 백화점을 노리는 걸 알았으니 상대도 필사적으로 주식을 사들일 것이 불을 보듯 뻔하지 않아!”
하지만 우호근은 여전히 여유로운 태도로 반박했다.
“당연히 그러겠지요. 하지만 마음과 달리 주식 매수가 그리 쉽지 않을 겁니다.”
이상할 정도로 자신하는 모습에서 뭔가 꿍꿍이가 있는 낌새가 느껴졌다.
미간을 좁힌 우용갑 회장은 가느다랗게 뜬 눈으로 아들을 노려봤다.
“대체 뭘 믿고 그렇게 자신하는 거냐.”
“간단합니다. 주식을 매수할 자금이 부족할 테니까요.”
우호근은 찌르는 듯한 시선을 똑바로 마주보면서 고개를 쳐들었다.
그러자 우용갑 회장이 팔짱을 낀 채 자세히 이야기를 해보라는 듯 턱짓했다.
“현재까지 파악한 정보에 따르면 대흥 그룹이 당장 끌어다 쓸 수 있는 현금은 100억 안팎에 불과합니다. 그에 비해 저희는 아직 총알이 550억이나 더 남아 있는 상태죠.”
“현금이 그것뿐이라는 게 확실한 거냐?”
확인하듯 되묻는 말에 우호근이 약간의 머뭇거림도 없니 머리를 끄덕였다.
“대흥 그룹 내부 정보를 빼내 확인한 거니까 분명할 겁니다.”
“흐음.”
다리를 꼬고 앉은 우용갑 회장은 속으로 아들에 대한 평가를 조금 상향 조정했다.
무턱대고 덤벼드는 것이 아니라 상대의 내부 정보를 빼내는 치밀함에 제법이라는 생각을 한 것이다.
하지만 겉으로는 티를 내지 않은 채 그저 고개를 살짝 끄떡이기만 했다.
“현금 장사를 하는 백화점 사업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유동 자금이 고작 그것뿐이라니. 강남점 신축에 돈을 있는 대로 다 쏟아붓고 있어서 현금이 말라붙었다는 소문을 들었는데 정말인 모양이구나.”
그러자 우호근이 몸을 앞으로 기울이며 강한 어조로 말했다.
“급히 기자회견까지 열어 미도파 백화점에 대한 적대적 M&A 시도를 공개한 것은 분명 여론을 이용해 우리를 궁지로 몰아넣고, 그 틈을 타 부족한 자금을 마련하려는 꼼수일 겁니다.”
우용갑 회장이 얼굴을 찡그린 채 무겁게 머리를 끄덕였다.
“당장 소식을 접한 다른 그룹 회장들이 우릴 탐탁지 않게 여기겠지.”
함께 있던 전해철 비서실장도 굳은 표정으로 말을 거들었다.
“기자회견을 하면서 외국 세력이 개입됐다고 강조한 것도 재계와 국민들의 반감을 의도적으로 자극하려는 걸로 보입니다.”
“분명 그럴 거야.”
적대적 M&A도 좋은 반응을 얻기 어려운데 거기다 외국인 세력까지 끼어 있다면 동해그룹이 나쁜 쪽으로 여론을 몰아가기에 딱 좋았다.
그렇게 되면 상황이 더욱 안 좋게 흘러갈 것이 뻔했기에 우용갑 회장이 얼굴을 굳혔다.
“어차피 미도파 백화점과 대흥 그룹을 가져오기로 마음먹은 이상 다른 그룹들과 여론의 비난이 있을 건 각오했지 않습니까.”
“으음.”
“당장은 욕을 좀 먹겠지만 그건 그리 오래가지 않을 겁니다. 하지만 미도파 백화점을 통해 대흥 그룹을 몽땅 다 품에 안아 얻을 수 있는 이득은 이루 말할 수 없을 만큼 크지요.”
우호근은 상석에 앉아 있는 우용갑 회장을 보며 목소리에 힘을 줬다.
“그렇다면 더 볼 것도 없이 어떻게 해야될지 답이 나온 것 아니겠습니까.”
강한 의지가 느껴지는 아들의 눈빛에 우용갑 회장은 내심 중얼거렸다.
‘사고만 치고 다니는 철부지인 줄 알았더니 이제 정신을 좀 차린 모양이군.’
애초부터 머리는 남들보다 조금 더 잘 굴러가던 아들이었다.
일전에 사고를 친 것도 언론에 발각되지만 않았으면 무사히 큰돈을 끌어모았을 거였다.
‘홍콩에 보내 놨던 게 좋은 경험이 된 모양이야.’
자숙하라고 내친 거였지만 그만큼 더 성장해왔으니 다행이었다.
우용갑 회장은 무겁게 머리를 끄덕이며 동의했다.
“네 말대로 이미 엎질러진 물이니 어쩔 수 없지. 게다가 그냥 포기하기엔 너무 아까운 먹잇감이야.”
하지만 우용갑 회장은 찌푸린 인상을 풀지 않았다.
“지분 싸움이 시작되면 상대도 그룹의 명운이 걸린 만큼 필사적으로 나올 텐데 대응책은 가지고 있느냐.”
“물론 있습니다.”
우호근이 기다렸다는 듯 대답했다.
그러자 우용갑 회장이 뒤로 기대고 있던 상체를 바로 세우며 물었다.
“설명해 봐라.”
“지분을 매집하고 있다는 것이 드러났으니 아예 내일 장이 열리기 전에 유통 중인 미도파 백화점 주식에 대해 공개 매수를 선언할 생각입니다.”
예상 밖의 이야기에 우용갑 회장이 눈을 크게 뜨며 되물었다.
“지금 공개 매수라고 했냐?”
“네.”
주식공개매수(tender offer)는 경영권 인수를 목적으로 주주들이 보유한 주식을 정해둔 가격에 필요한 물량만큼 공개적으로 사들이는 걸 뜻했다.
“머뭇거리는 대신 이렇게 대놓고 맞받아치면 급히 대응책을 마련할 때까지 시간을 끌려는 대흥 그룹의 꼼수를 무력화시킬 수 있을 겁니다.”
우용갑 회장은 잠시 생각하더니 무언가 마음에 안 드는 부분이 있는지 눈가를 찡그렸다.
“나쁘지 않은 방법이긴 하지만 주주들이 공개 매수에 응하도록 만들려면 그만큼 당근을 제시해야될 텐데. 그럼 자금 부담이 너무 크지 않겠냐.”
우려하는 말투에 우호근이 단호하게 대답했다.
“대흥 그룹이 상황을 공개한 순간부터 쩐의 전쟁에 들어간 것이나 다름없어요. 그렇다면 상대가 자금을 끌어모으기 전에 먼저 세게 치고 나가서 확실히 기선을 제압해 버리는 것이 오히려 돈이 덜 들어가는 방법일 겁니다.”
맞은편에 있던 전해철 비서실장도 조심스럽게 대화에 끼어들며 우호근의 편을 들었다.
“도련님 말씀대로 상황을 길게 끌어서 저희한테 득 될 것이 없긴 합니다.”
우호근 역시 재차 설득했다.
“맞아요. 우물쭈물하다가 괜히 다른 그룹이 이번 싸움에 끼어들면 일이 꼬여 버릴 수도 있습니다.”
우용갑 회장은 소파 등받이에 몸을 기댄 채 잠시 심각한 얼굴로 고민하다 이내 결심을 내렸다.
“네 말대로 일이 커져서 좋을 것이 없으니 무리를 해서라도 서둘러 매듭을 지어 버리는 게 낫겠지. 그러면 전경련이나 다른 그룹들도 껄끄러운 마음이 들긴 하겠지만 개입할 여지가 적을 거야.”
“바로 그겁니다.”
우용갑 회장은 소파 팔걸이를 툭툭 두드리며 걱정스러운 얼굴로 말했다.
“아무리 상대가 준비가 덜 된 상태라고 해도 우리가 공개 매수를 선언한다면 그냥 넋 놓고 당하지만은 않을 텐데. 그렇게 되면 준비해 둔 자금만으로는 필요한 지분을 확보하기가 어렵지 않겠냐?”
“그래서 오기 전에 외숙부와 통화를 했습니다.”
미리 대응책을 마련해뒀다는 말에 우용갑 회장이 눈썹을 살짝 치켜올렸다.
“매제한테 말이냐?”
“예.”
우호근이 가슴을 펴고 자신 있게 말했다.
“증권이 가지고 있는 미도파 백화점 지분 4.1%를 백제 산업에서 인수하고 추가로 230억을 빌려주기로 했습니다.”
“정말 그렇게 해주겠다고 했단 말이냐?”
“네. 대신 대흥 그룹 경영권을 가져오게 되면 계열사 가운데 두 곳을 외숙부한테 넘기는 조건입니다.”
“어딜 주기로 한 거냐?”
“노원 케이블 TV와 글로벌 코리아 경제 신문입니다.”
두 곳 모두 대흥 그룹 계열사들 가운데 알짜로 분류되는 회사들이었다.
도움을 주면서도 실리를 다 챙기는 매제의 약삭빠른 태도에 우용갑 회장이 짧게 혀를 찼다.
하지만 자신 같아도 그렇게 했을 터였기에 더 이상 뭐라고 하진 않았다.
“조금 아깝긴 하지만 대흥 그룹 전체를 먹을 수 있다면 그 정도는 양보해 줄 수 있겠지.”
“맞습니다. 괜히 욕심을 부려서 일을 망치는 것보다 작은 건 내어주고 핵심만 취하는 것이 오히려 더 나을 수도 있으니까요.”
우용갑 회장은 머리를 끄덕이곤 다시 물었다.
“그건 그렇게 하기로 하고, 공개 매수 가격은 얼마로 할 생각이냐?”
허락 없이 외숙부와 먼저 해 버린 거래를 우용갑 회장이 용인해 주자 우호근은 내심 안도하면서 대답했다.
“주당 2만 원입니다.”
“미도파 백화점 주가가 얼마였지?”
그러자 전해철 비서실장이 바로 대답했다.
“오늘 종가 가격이 주당 9천 650원으로 끝났습니다.”
“그럼 두 배가 조금 더 되는 거구만.”
우호근이 차분히 말을 덧붙였다.
“1차가 2만 원이고 대흥 그룹에서 맞대응을 해오면 2차로 5만 원까지 매수 가격을 올릴 생각입니다.”
“으음.”
우용갑 회장이 이맛살을 찡그리며 침음성을 내뱉었다.
잠깐 아무런 말없이 고심하던 그가 이내 고개를 다시 들었다.
“비싼 가격이긴 하지만 미도파 백화점뿐만 아니라 대흥 그룹 전체를 가져오는 거라고 생각하면 판돈을 걸어볼 만해. 어디 네 계획대로 해보도록 해라.”
긴장한 채 대답을 기다리던 우호근은 곧바로 반색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