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olden Spoon Investment Portfolio RAW novel - Chapter (269)
금수저 투자백서 269화(269/283)
269. 제발 잘 좀 하자. 응?
일요일 아침.
휴일이었지만 배상윤 검사 1국 국장은 집에서 쉬지 못하고 사무실로 출근했다.
바로 전날 대형 비리 스캔들이 터졌으니 당연한 일이기도 했다.
제대로 잠을 못 자 까칠한 얼굴을 한 배상윤 국장은 서류가방을 책상에 내려놓자마자 호출을 받고 원장실로 올라갔다.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가자 황상현 원장이 태극기와 대통령 사진이 들어간 액자가 나란히 걸려 있는 벽을 등 뒤에 두고 책상에 앉아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얼굴을 딱딱하게 굳힌 황상현 국장은 꾸벅 머리를 숙이는 배상윤 국장에게 소파에 앉으라는 말도 하지 않은 채 팔짱을 낀 자세로 지그시 노려봤다.
그러고는 차가운 목소리로 먼저 입을 뗐다.
“배 국장.”
“예.”
“어제 증권가에 뿌려진 찌라시와 석간신문에 실린 증감원 관련 기사를 봤을 거라고 생각하네.”
“……그렇습니다.”
“단도직입적으로 묻지. 돈을 받고 선진피혁 주식 내부자 거래 혐의 조사를 제대로 하지 않고 무마한 적이 있나?”
각오는 하고 있었으나 막상 추궁을 받게 되자 배상윤 국장은 곧바로 대답하지 못하고 저도 모르게 마른침을 꿀꺽 삼켰다.
날카로운 눈빛으로 그를 쳐다보고 있던 황상현 원장은 목울대가 꿀렁이는 모습을 놓치지 않고 눈가를 찌푸렸다.
“저희 1국에서 선진피혁을 조사한 건 맞습니다. 하지만 살펴본 결과 사소한 문제는 있었으나 검찰 수사까지 갈 상황은 아니라서 사건을 종결시켰을 뿐입니다.”
“방금 한 말 전부 확실한 거겠지?”
“물론입니다.”
배상윤 국장이 최대한 억울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하지만 앞서 주춤하는 모습을 본 황상현 원장은 그가 거짓말을 하고 있다는 걸 바로 눈치챘다.
“후우.”
황상현 원장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대신 한쪽 손을 아래로 내려 책상 서랍 속에서 종이 쇼핑백을 꺼내 올려놨다.
“가져가게.”
“이게 뭡니까?”
턱으로 종이 쇼핑백을 가리키며 하는 말에 배상윤 국장이 눈치를 보면서 조심스레 물었다.
황상현 원장은 찬 서리가 내린 듯 냉담한 표정을 한 채 대꾸했다.
“지난번에 자네가 나한테 줬던 취임 선물이네.”
“그걸 왜…….”
새로 취임한 황상현 원장한테 잘 보이기 위해 배상윤 국장은 부와 재물을 상징한다면서 값비싼 순금 열 냥짜리 금두꺼비를 선물로 건넸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선물로 받기에는 너무 과한 것 같아서 돌려주는 거니까. 가져가도록 하게.”
“!”
형광등 불빛을 받아 누렇게 번쩍이는 금두꺼비를 보고 입이 찢어져라 좋아해 놓고선 이제 와서 과한 선물이었다며 돌려준다니 씨알도 안 먹힐 거짓말이었다.
비리 스캔들이 터져서 문제가 될 것 같으니까 배상윤 국장과 엮이지 않으려고 슬그머니 선을 그어두려는 행동이 분명했다.
안 그래도 불안함을 감추고 있던 배상윤 국장은 벌써부터 거리를 두려고 하는 황상현 원장의 모습에 마음이 더욱 급해졌다.
“그냥 제 성의라고 생각하시고 편하게 받아주십시오.”
“쯧. 편하게 받을 수가 없으니 이러는 거 아닌가.”
황상현 국장은 왜 이리 말귀를 못 알아듣냐는 듯 냉정한 태도로 그를 대했다.
“곧 선진피혁 건에 대한 감사가 있을 테니까. 그렇게 알고 있도록 하게.”
“예?”
심장이 덜컥 떨어지는 기분에 배상윤 국장이 황급히 매달렸다.
“조금 전에도 말씀을 드렸지만 찌라시나 신문 기사에 나온 것과 달리 정당한 조치였습니다. 그런데 감사라니요?”
“그렇다면 감사를 통해 억울함을 확인시켜줄 수 있을 테니 더 잘된 일 아닌가.”
“그. 그건.”
배상윤 국장이 눈에 띄게 낭패한 표정을 지으면서 말끝을 흐렸다.
그걸 보고 비리 의혹이 사실이라는 걸 더욱 확신한 황상현 원장은 한쪽 팔을 내저으며 축객령을 내렸다.
“어쨌든 할 말은 다 했으니까 이거나 도로 가지고 나가보도록 하게.”
“워. 원장님.”
배상윤 국장은 뭐라고 말을 더 붙여보려고 했지만 의자에 앉은 채 아예 고개를 홱 돌려 버린 황상현 원장의 모습을 보곤 어깨를 축 늘어뜨렸다.
“……알겠습니다.”
마지못해 대답한 배상윤 국장은 초라한 모습으로 금두꺼비가 든 쇼핑백을 집어 들고 밖으로 나갔다.
문이 닫히는 소리가 난 뒤에야 고개를 바로 한 황상현 원장은 이내 쯧 하고 혀를 찼다.
“취임한 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이런 일이 벌어지다니. 정말 재수가 없으려니 원.”
* * *
석원은 월요일 아침에 출근하자마자 사장실이 아니라 자금운용부 사무실로 먼저 향했다.
“안녕하십니까. 사장님.”
“어서 오십시오.”
네이비 정장에 한쪽 가슴에 꽂은 행거치프로 포인트를 준 석원이 수행비서인 한지성과 함께 사무실로 들어서자 직원들이 일제히 일어나서 그를 맞이했다.
“다들 좋은 아침이에요.”
석원은 미소 띤 얼굴로 인사를 받아주며 최호근 부장과 직원들을 둘러봤다.
아침 일찍부터 나와 거래 준비를 하고 있었던 듯 다들 분주한 모습이었다.
“이번 주도 꽤 바쁜 일주일이 될 텐데 주말에 푹 쉬었어요?”
“어휴 말도 마십시오. 주말에도 사건이 펑펑 터져서 시장이 어떻게 반응할지 고민하느라 쉴 틈이 없었습니다. 눈을 감으면 계속 주식 차트가 아른거려서 잠도 못 잤다니까요.”
그러자 기다렸다는 듯 정환엽 과장이 앓는 소리를 냈다.
“그런 것 치고는 혈색이 너무 좋은 것 같은데요?”
“하하.”
석원이 장난스럽게 대꾸하자 정환엽 과장이 어색하게 웃으며 한쪽 손으로 머리를 긁적였다.
더 말하려다가 최호근 부장이 눈에서 레이저가 나올 것처럼 노려보고 있는 걸 발견하곤 바로 입을 다물었다.
그런 모습에 작게 한숨을 내쉰 최호근 부장은 석원을 보며 말을 건넸다.
“오늘 조간신문에 실린 기사 보셨습니까.”
“새시대 민족회의 김재춘 총재의 발언을 말하는 거예요?”
최호근 부장이 머리를 끄덕였다.
“예. 제1 야당 총재가 증권 시장 운영에 큰 영향력을 행사하고 막강한 권한을 지닌 증감원이 비리 의혹에 휩싸인 걸 강하게 비판하면서. 내부 감사가 아닌 감사원 특별 감사를 해야된다고 주장하고 나선 만큼 앞으로 스캔들이 금방 사그라들지 않고 일파만파 더 커질 것 같습니다.”
적당한 체급의 중진 의원이 아니라 김재춘 총재가 직접 나선 걸 보면 그동안 정치 자금을 꾸준히 지원해준 효과가 확실히 있었다.
‘거기에 더해 이번 사건을 크게 키워 청와대와 정부를 공격하면 자신들한테도 도움이 되니까. 더 적극적으로 나서는 거겠지.’
어찌됐든 서로에게 다 이득이 되는 것이니 나쁠 건 없었다.
“그렇겠죠. 야당이 눈에 불을 켜고 주목하는 사건인 만큼 감사원도 설렁설렁 봐줘 가면서 조사를 하진 못할 거예요.”
석원의 말에 최호근 부장이 동의하며 말을 받았다.
“까딱하면 불똥이 감사원으로까지 튈 수 있으니 아마 그럴 겁니다.”
담담한 표정을 한 석원은 평소와 다름없는 어조로 말했다.
“그동안 상장 기업들이 증감원 직원들한테 관행적으로 금품을 제공하는 악습이 계속되고 있었는데. 이번 스캔들을 계기로 그런 안 좋은 관행을 깨끗하게 털어내고 가는 것도 증시를 위해 나쁜 일은 아니겠죠.”
“이번 스캔들이 기관 경고 정도로 끝나지 않고 검찰 수사로까지 확대될 거라고 보시는 겁니까.”
그러자 석원이 작게 머리를 끄덕였다.
“전현직 증권감독원장과 임직원 상당수가 엮인 대규모 비리 사건인데 쉽게 끝날 리가 없지 않겠어요. 더군다나 야당에서 본격적으로 문제를 삼기 시작한 이상 적당히 꼬리 자르기를 하고 넘어가긴 어려울 거예요.”
“말씀을 들으니 그렇겠군요.”
최호근 부장도 사뭇 진지한 얼굴로 수긍했다.
그때 두 사람의 대화를 가만히 듣고 있던 정환엽 과장이 슬며시 끼어들어 말했다.
“말씀하신 대로 된다면 이번 사건에 연관된 오성 정보통신과 선진피혁 주가는 완전 박살 나 버리겠군요?”
“그럴 거예요.”
“선진피혁은 그렇다쳐도 오성 정보통신은 테마를 타고 주가가 잘 나가고 있어서 주식을 가지고 있는 곳들이 많을 텐데. 장이 열리면 여기저기서 곡소리가 나겠습니다.”
안 그래하고 묻는 시선에 함께 있던 홍재희와 유석현이 동시에 머리를 주억거렸다.
“차트가 예뻐서 저도 단타로 몇 번 치고 빠지는 걸로 재미를 봤었는데. 가진 주식이 있으면 다 털라는 사장님 말씀이 아니었다면 크게 낭패를 볼 뻔했습니다.”
정환엽 과장이 헤헤 웃으면서 얘기했다.
하지만 이런 건 자칫 문제가 될 수도 있었기에 최호근 부장이 정색한 얼굴로 따끔하게 야단을 쳤다.
“정 과장! 입조심 좀 해.”
“예? 왜요.”
“진짜 몰라서 물어?”
정환엽 과장은 어리둥절해 있다가 아하고 뒤늦게 아차하는 표정을 지었다.
잘못해서 이야기가 바깥으로 새어 나간다면 석원이 미리 정보를 알았거나 이번 스캔들을 뒤에서 꾸민 것이 아니냐는 의심을 받게 될 수도 있었다.
“죄송합니다.”
실수를 깨달은 정환엽 과장이 서둘러 사과했다.
석원 역시 이번에는 너무 경솔했다고 생각했는지 그를 향해 질책하는 시선을 던졌다.
“아무리 동료들만 있는 사무실 안이라도 말이라는 건 어떻게 새어 나갈지 모르는 거니까. 앞으로 각별히 조심하도록 해요.”
정환엽 과장도 자기가 잘못한 걸 알았기에 얌전히 머리를 숙이며 반성했다.
“예. 다시는 이런 일이 없도록 명심하겠습니다.”
그러자 석원은 더 이상 뭐라 말하지 않고 대신 안주머니에서 반으로 접힌 쪽지를 꺼내 최호근 부장에게 내밀었다.
“오성 정보통신과 선진피혁 외에 이번 스캔들에 연관된 기업 10곳의 명단이에요.”
“……!”
“대흥 증권에 알려줘서 괜히 손해를 입는 일이 없도록 주가가 폭락하기 전에 미리 다 정리해 두라고 해요.”
“알겠습니다.”
짧게 대답한 최호근 부장은 석원이 내민 쪽지를 받아 안에 적힌 회사 이름을 빠르게 훑어보곤 다시 바지 주머니에 잘 챙겨 넣었다.
“그리고 곧 폭탄이 하나 더 터질 테니까. 미도파 백화점과 동해 유량 주가 움직임을 주시만 하고 매수는 완전히 멈추도록 해요.”
이번에는 또 무슨 일이 있을지 다들 궁금했지만 군말없이 고개를 숙였다.
“그렇게 하겠습니다.”
“참. 그리고 정미전자 주가가 토요일에 주당 14만 원을 넘겨서 사성전자를 제쳤더군요.”
“예. 업종 대표주였던 사성전자를 멀찌감치 떨어뜨리고 어느새 시총 7위에 등극했습니다.”
최호근 부장은 대단하다는 눈빛으로 석원을 쳐다봤다.
“6만 원대에 매수하라고 하셨을 때 고점인 건 아닌지 우려가 컸었는데. 불과 몇 달 만에 두 배 넘게 오르다니 다시 봐도 놀라울 뿐입니다.”
정미전자뿐만 아니라 함께 사들였던 에이원과 한국이동통신까지 석원이 찍어준 세 종목 모두 매수가보다 크게 올라 투자금이 엄청나게 불어나 있었다.
“아직 조금은 더 올라갈 여력이 있겠지만 거의 꼭대기까지 올라온 만큼 다음 달부터는 세 종목 전부 천천히 물량을 털어내도록 해요.”
한참 잘 오르고 있는 주식을 팔라고 하는 말에 의아한 마음이 들었으나 최호근 부장은 석원의 판단력을 믿기로 했다.
“예. 알겠습니다.”
그렇게 지시를 내린 석원은 소매를 걷어 시계를 확인하곤 말했다.
“이제 조금 있으면 장이 시작하겠네요. 그럼 오늘 하루도 수고해요.”
석원이 수행비서인 한지성과 함께 사무실을 나가자 줄곧 얌전히 눈치를 보고 있던 정환엽 과장이 후아하고 참았던 숨을 터트렸다.
“것보라니까. 찌라시나 기사가 뜬 것도 없는데. 아직 드러나지도 않은 관련 기업 명단을 떡하니 주는 걸 보면 동해그룹을 잡으려고 벌인 일이 틀림없다니까요.”
그러자 최호근 부장이 인상을 쓰며 정환엽 과장의 머리통을 위에서 꽉 눌렀다.
“너 인마. 방금 사장님한테 야단을 맞고도 입조심 안 하냐? 진짜 강물에 확 빠트려서 입만 동동 뜨는 꼴을 봐야 정신을 차리지?”
정환엽 과장이 앗하고 입을 막는 시늉을 하자 그걸 보는 최호근 부장의 혈압이 더욱 위로 치솟았다.
“이걸 확 그냥. 입에 자물쇠를 채울 수도 없고 내가 정말 너 때문에 제 명에 못 살겠다.”
“죄송합니다. 정말 조심하겠습니다.”
한껏 풀이 죽은 정환엽 과장이 반성하는 것처럼 작은 목소리로 대답했다.
그런 모습에 또 애잔한 기분이 든 최호근 부장이 끄응하며 앓는 소리를 내뱉었다.
“제발 잘 좀 하자. 응?”
“예.”
“에휴. 그래 이런 것도 후배니 내가 끌어안고 살아야지 뭐 어쩌겠냐.”
한숨을 내쉰 최호근 부장은 주변에 모여 있는 직원들을 향해 큰 목소리로 외쳤다.
“10분 뒤면 개장이니까 다들 준비들 해!”
석원의 말대로 오늘도 매우 바쁜 하루가 될 예정이었기 때문에 벌써부터 이렇게 기력을 빼서야 버티질 못했다.
최호근 부장은 얼른 가라며 정환엽 과장의 등을 떠밀고 자신도 자리에 앉아 개장벨이 울리기를 기다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