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olden Spoon Investment Portfolio RAW novel - Chapter (277)
금수저 투자백서 277화(277/283)
277. 새로 찾았다는 외국인 투자자가 진짜로 있긴 한 건가?
임시주주총회 개최가 확정된 가운데 양쪽이 숨 고르기를 하자 주당 7만 원대에서 횡보하며 잠시 소강상태에 있던 미도파 백화점 주가가 갑자기 장대 양봉을 만들어내면서 폭등하는 모습을 보이자 증권사 객장 역시 뜨겁게 불타올랐다.
“저 거래량 터지는 것 좀 봐. 괜히 팔았네…… 왜 내가 팔면 올라가는 거냐고!”
“갑자기 왜 이러는 거야?”
“검찰에서 동해페레그린 증권을 수사한다고 했잖아. 그럼 M&A 호재가 다 끝난 거 아니었어?”
“계속 올라가는데 이러다가 상종가를 치는 거 아냐.”
객장에 거의 상주하다시피 하는 마흔 명 안팎의 개인투자자들은 시뻘건 불기둥을 만들어내고 있는 미도파 백화점 주가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급격한 폭등에 어떤 사람은 입을 크게 벌리며 탄성을 내뱉었고 지지부진한 주가에 오전장에서 미도파 주식을 매도했던 이는 반나절 만에 바뀐 상황에 머리를 쥐어뜯으며 주식을 판 걸 후회했다.
그리고 몇몇은 시황판과 단말기 사이를 오가거나 삼삼오오 모여 진짜로 2차 폭등이 시작된 건지 아니면 하락 전에 잠깐 반등하는 것에 불과한 건지 갑론을박을 벌였다.
“이거 지금이라도 들어가야 되는 거 아니야?”
“그러다가 다시 떨어지면 어쩔 건데!”
“내가 말했잖아. 이대로 끝날 리가 없다고!”
“아니라니까. 이거 개미들 털어먹으려는 수작질이야.”
이런 가운데 행동력이 빠르고 야수의 심장을 가진 이들은 주가가 뛰기 시작하자마자 얼른 상담 창구로 달려가 미도파 주식을 매수하기도 했다.
* * *
[미도파 백화점 80,200 9,820]오후장이 시작되자마자 갑자기 벌어진 상황에 대응하느라 정신없이 움직였던 정환엽 과장은 주가창에 표시된 숫자를 보며 머리를 절레 흔들었다.
“결국 8만 원을 다시 넘겨 버렸네.”
그때 홍재희가 박카스 한 병을 책상 위에 내려놓으며 말했다.
“이거 드시고 하세요.”
“어. 고마워. 안 그래도 체력이 바닥난 참이었거든.”
정환엽 과장은 반가운 표정으로 고개를 들며 곧바로 뚜껑을 따 한 번에 쭉 들이켰다.
“별말씀을요.”
홍재희가 다른 사람들한테도 박카스를 한 병씩 돌리는 걸 보며 몸을 뒤로 돌린 정환엽 과장은 누군가와 막 통화를 끝내고 수화기를 내려놓고 있던 최호근 부장에게 말을 걸었다.
“돈을 엄청 쏟아붓는 게 이거 아무래도 끝장을 보자는 거 같은데요.”
그 말을 들은 유석현도 슬쩍 눈치를 보며 끼어들었다.
“제가 보기에도 막판에 지분을 최대한 땡기려는 느낌입니다.”
“그치?”
정환엽 과장은 양손으로 낀 깍지를 머리 뒤에 얹은 채 다시 최호근 부장을 쳐다봤다.
“방금 거래소 쪽하고 통화를 하신 거죠?”
그러자 와이셔츠 소매를 걷어 올린 최호근 부장이 담배를 꺼내 입에 물면서 머리를 끄덕였다.
“그래. 오전장에서 대량 매수 주문이 나온 곳이 동해 페레그린 증권이라고 하더라고.”
최호근 부장은 라이터를 켜서 담배에 불을 붙였다.
나중에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었지만 이때까지만 해도 사무실에서 흡연은 그리 특별한 행동이 아니었다.
“그렇다면 동해그룹 놈들이 확실하네요.”
정환엽 과장이 그럴 줄 알았다는 듯 대답했다.
반쯤 남은 박카스 박스를 냉장고에 다시 넣어두고 돌아온 홍재희와 유석현 역시 같은 생각이라는 것처럼 눈을 빛냈다.
최호근 부장이 얼굴을 약간 굳힌 채 하얀 담배 연기를 내뱉었을 때, 석원이 수행비서인 한지성을 데리고 사무실로 들어왔다.
“다들 오늘 하루 고생들 했어요.”
그러자 최호근 부장이 피우고 있던 담배를 얼른 재떨이에 비벼서 끄고는 몸을 일으켰다.
정환엽 과장과 직원들 역시 자리에서 일어나 석원에게 고개를 숙였다.
“어서 오십시오. 사장님.”
석원이 한쪽 손을 들어 가볍게 인사를 받아주고는 황급히 앞으로 다가온 최호근 부장을 보며 말했다.
“오후장에서 처음 대량 매수 주문을 낸 곳이 동해 페레그린 증권이라는 이야기 들었어요?”
“예. 저도 방금 거래소에 있는 지인을 통해 확인했습니다.”
역시나 제일 중요한 부분을 놓치지 않고 체크한 모습에 석원이 작게 머리를 끄덕이며 물었다.
“오늘 매수에 돈을 얼마나 썼어요?”
“우보 재단과 방직 계좌에서 각각 백억씩, 총 2백억 원을 매수에 사용했습니다.”
승인해 준 한계선까지 풀로 다 끌어다 썼다는 뜻이었다.
“26만 2,467주를 매수했고 평단가는 7만 6,200원입니다.”
“상대는 주식을 얼마나 가져갔어요.”
“확실한 건 알 수 없지만 오후장이 시작되자마자 대량 주문을 내서 나와 있던 물량을 대거 쓸어간 걸 생각하면 적어도 30만주 이상 확보했을 겁니다. 물론 먼저 스타트를 끊은 만큼 평단가도 저희보다 낮을 테고요.”
장 막판에는 2차 폭등 기대에 매도 물량이 대부분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 매수 주문만 나오면서 호가만 뛰었기에 최호근 부장의 예상은 사실에 거의 근접했다.
“홍콩에서 자금이 추가로 들어오는 걸 끊어 버렸으니 더 이상 적극적인 매수는 없을 거라 생각했는데. 내 예측이 틀렸네요.”
석원은 솔직하게 실수를 인정했다.
보통 이런 상황이 벌어지면 본인의 잘못을 인정하기보다 감추기에 급급하면서 아랫사람들을 닦달하기 마련이었으나 그러지 않는 모습에 최호근 부장과 직원들은 신선한 충격을 느꼈다.
“여러분이 생각하기에 상대가 내일도 똑같이 나올 것 같아요?”
석원이 선 채로 팔짱을 끼며 물었다.
최호근 부장이 아니라 부서원들 모두한테 물음을 던지는 것 역시 다른 상사들한테선 볼 수 없는 모습이었다.
다들 이런 상황은 처음이라 망설이고 있는 가운데 가장 먼저 손을 든 것은 역시 정환엽 과장이었다.
“오늘 종가가 8만 원을 뚫었지만 그런데도 마지막까지 매수 주문이 전혀 줄어들지 않고 계속 나온 걸 보면 여기서 멈출 것 같지는 않습니다.”
이어서 유석현 대리도 잠시 망설이다가 조심스레 의견을 이야기했다.
“너무 성급한 예상일 수도 있지만 어쩌면 이번에 주당 10만 원을 넘길 수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정말로 미도파 백화점 주식이 주당 10만 원을 넘긴다면 한순간에 시총 상위 20위 안으로 들어가는 거였다.
M&A 호재가 터지기 전이라면 미쳤다는 소리를 들었을 테지만 지분 싸움이 다시 격화된 상황에서는 마냥 허황된 이야기로 들리지 않았다.
최호근 부장 역시 약간 가라앉은 목소리로 석원의 물음에 대답했다.
“지난 며칠 동안 지지부진했던 주가 때문에 나와 있던 매물이 꽤 되어 오후장에서 거래가 대거 체결됐습니다. 하지만 지분 매수 경쟁이 다시 불붙은 걸 투자자들이 눈치챈 이상 다들 폭등을 기대하며 가지고 있는 주식을 쉽사리 팔려고 하지 않을 겁니다.”
“주가가 높아질수록 매도 물량이 잠겨 버릴 거란 말이네요.”
유석현의 얼굴을 슬쩍 곁눈질한 최호근 부장이 다시 시선을 바로 하며 말을 받았다.
“예. 그렇게 되면 10만 원을 깨는 것도 마냥 불가능한 일은 아닐 겁니다.”
“사려는 사람은 많은데 물건이 없으면 가격이 뛰는 건 당연한 시장 논리겠죠.”
석원이 동의하듯 고개를 끄덕였다.
돈 싸움을 벌인다면 절대 지지 않을 자신이 있었다.
대흥 증권에 만들어둔 계좌에 아직 천억에 가까운 현금이 남아 있었고 여차하면 석원이 개인 자산을 집어넣으면 되는 일이었다.
하지만 적정 주가를 이미 아득하게 뛰어 넘겨 버린 가격에 그것도 한국 증시가 붕괴해 버리는 IMF 사태를 앞두고 주식을 대량 매수해야 된다는 것이 마음에 안 들었다.
‘정말 마지막까지 귀찮게 들러붙는군.’
내심 쯧하고 혀를 찬 석원은 최호근 부장과 직원들을 둘러보며 지시를 내렸다.
“주머니에 남은 자금이 그리 많진 않겠지만 그래도 어떤 변수가 있을지 모르니까. 지금까지 해왔던 것처럼 주가를 계속 올려서 상대가 주식을 사들이는 걸 최대한 방해하도록 해요.”
그러자 최호근 부장이 걱정스러운 얼굴로 물었다.
“주가 폭등 기대로 당분간은 물량이 잠겨 많이 나오진 않겠지만 주주명부 폐쇄일이 가까워질수록 매도세가 커질 텐데. 그때는 어떻게 하실 생각이십니까.”
주주명부 폐쇄일이 지나면 주식을 추가로 매수해봤자 임시 주총에서 주주로서 권리를 행사할 수가 없었다.
그러니 당연히 주주명부 폐쇄일이 다가올수록 주가 폭등 기대감에 투자자들이 꽉 움켜쥐고 있던 물량들이 한꺼번에 쏟아져 나올 가능성이 상당히 컸다.
그렇게 된다면 주가를 끌어 올려 자연스럽게 매도 물량이 잠기도록 만들어 상대가 지분을 취득하는 걸 방해한다는 작전이 무위로 돌아갈 수밖에 없었다.
최호근 부장이 우려를 나타내는 것과 달리 석원은 태연한 얼굴로 대꾸했다.
“그 전에 상황이 끝날 거니까 염려하지 않아도 돼요.”
“네?”
“아. 그리고 이거.”
석원은 안주머니에서 지갑을 꺼내 백만 원짜리 수표 한 장을 빼내서 최호근 부장한테 건넸다.
“마지막까지 버티려면 체력 보충을 잘 해둬야 할 테니 오늘 저녁엔 한우를 마음껏 먹도록 해요.”
귀신같이 수표에 적힌 숫자를 알아본 정환엽 과장이 곧바로 반색하며 엄지를 치켜들었다.
“역시 사장님뿐이십니다!”
와아아, 하고 기뻐하는 모습에 석원이 피식 웃으며 말했다.
“그럼 당분간 고생들 좀 해요.”
몸을 돌려 사무실을 나간 석원은 그대로 엘리베이터를 타고 로비로 내려왔다.
그러고는 대기하고 있던 벤츠 대형 세단 뒷좌석에 올라탔다.
부드럽게 차가 출발하자 석원은 푹신한 시트에 몸을 기댄 채 휴대폰을 꺼내 어딘가로 전화를 걸었다.
연결음이 몇 번 울리더니 이내 이철균이 특유의 묵직한 목소리로 전화를 받았다.
[말씀하십시오.]석원은 차분히 가라앉은 표정을 한 채 입을 열었다.
“오늘 오후장에서 갑자기 상대가 대량 지분 매집을 재개한 걸 봤을 거예요.”
[예.] [분명 자금줄이 막혔을 텐데 어디서 돈이 난 건지 알아내는데 며칠이면 되겠어요?]석원의 물음에 이철균이 잠시 생각하고 대답했다.
[사흘만 주십시오.]“좋아요.”
* * *
5월 2일 목요일.
잠시 주춤하던 지분 싸움이 다시 격화되면서 2차 폭등한 미도파 백화점 주식은 상한가를 거듭하더니 결국 주당 10만 원을 넘어서고 말았다.
이렇게 되자 동해 유량 주가 역시 동반 상승을 하며 주당 6만 원을 넘기면서 두 종목이 국내 주식시장을 뜨겁게 달궜다.
개인 사무실 책상 앞에 앉아 모니터에 띄워진 미도파 백화점과 동해 유량 주가를 심각한 얼굴로 바라보고 있던 전해철 비서실장은 문을 두드리는 노크 소리에 고개를 들었다.
“오상현 과장님이 오셨습니다.”
여비서의 말에 전해철 비서실장이 상체를 바로 세우며 대답했다.
“들어오라고 해.”
“네.”
여비서가 나가고 얼마 있지 않아 회색 정장을 입은 오상현 과장이 들어와 꾸벅 목례를 하고는 책상 앞으로 가까이 다가왔다.
“실장님. 부르셔서 왔습니다.”
전해철 비서실장이 몸을 의자 등받이에 기대며 말했다.
“바쁠 텐데 오라고 해서 미안하네.”
“아닙니다.”
오상현 과장을 탐색하듯 날카롭게 쳐다보며 전해철 비서실장이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
“서론은 빼고 본론만 이야기하도록 하지. 지난 며칠 동안 우 상무가 쓴 돈이 어림잡아도 3~4백억은 넘는 것 같은데 이 돈이 도대체 어디서 난 건가?”
순간 멈칫했지만 이내 아무렇지도 않은 표정을 지은 오상현 과장이 매끄럽게 대답했다.
“이미 회장님께 보고드렸다시피 홍콩에서 다른 투자자를 찾아 받은 자금입니다.”
“그게 정말인가.”
“네. 그렇습니다.”
하지만 전해철 비서실장은 여전히 의구심에 가득찬 얼굴이었다.
이런 타이밍에 딱 운 좋게 그만한 거금을 투자해 줄 수 있는 사람을 찾았다니 도저히 믿기지가 않았다.
그는 의심하듯 눈을 가늘게 뜨고 재차 되물었다.
“그럼 새로 찾았다는 외국인 투자자가 누군지 말해보게.”
“죄송하지만 그건 말씀드릴 수가 없습니다.”
딱 자른 거절에 전해철 비서실장이 눈썹을 치켜 올렸다.
“이봐. 다른 사람도 아니고 나한테까지 비밀로 한다는 것이 말이 되나.”
하지만 아무리 다그쳐도 오상현 과장은 곤혹스러운 표정을 지은 채 제대로 된 대답을 내놓지 않았다.
“죄송합니다. 하지만 정보가 누설되면 홍콩 페레그린 때처럼 상대가 훼방을 놓을 수 있으니 절대 함구하라는 상무님의 지시가 있으셔서 대답을 드릴 수가 없습니다.”
“이런…….”
오상현 과장의 모습에 대답을 듣기는 틀렸다고 생각한 전해철 비서실장이 인상을 쓰며 노골적으로 불쾌한 기분을 드러냈다.
하지만 우호근이 시키는 대로 움직일 뿐인 오상현 과장을 붙잡고 늘어져봤자 나올 건 없었기에 전해철 비서실장은 끙하고 앓는 소리를 내며 이마를 짚었다.
“알겠네. 그만 가보게.”
“예. 그럼.”
오상현 과장이 몸을 돌려 나가려고 할 때 전해철 비서실장이 그를 다시 불러세웠다.
“잠깐.”
오상현 과장이 다시 돌아서자 전해철 비서실장이 건조한 목소리로 물었다.
“새로 찾았다는 외국인 투자자가 진짜로 있긴 한 건가?”
오상현 과장의 눈동자가 순간 흔들렸지만 이내 고개를 살짝 숙이고 대답했다.
“……네. 그렇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