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olden Spoon Investment Portfolio RAW novel - Chapter (279)
금수저 투자백서 279화(279/283)
279. 피해보상금을 이자까지 쳐서 받아내야죠.
호출을 받은 우호근은 오상현 과장과 함께 엘리베이터를 내려 회장실로 다급한 발걸음을 옮겼다.
“그러니까 국회 대정부 질문 중에 새시대민족회의 초선 의원이 동해상호신용금고 불법 대출 의혹을 제기했다는 거지.”
짜증 가득한 얼굴로 우호근이 묻는 말에 오상현 과장이 옆에 붙어서 따라가며 바로 대답했다.
“미도파 백화점 지분 인수에 필요한 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홍콩에 있는 페이퍼 컴퍼니에 320억을 불법 대출해줬다고 폭로하며 즉각 동해상호신용금고와 관련자들을 수사할 것을 촉구했다고 합니다.”
“젠장!”
얼굴을 찡그린 우호근의 입에서 욕설이 내뱉어졌다.
액수까지 정확하게 알고 있는 걸 보면 단순한 의혹 수준이 아니라 구체적인 증거를 가지고 폭로한 것이 분명했다.
“도대체 어떤 놈이 입을 함부로 놀린 거야.”
우호근이 사나운 눈빛을 번들거리며 물었다.
“조금 전 터진 일이라 그것까진 아직 파악하지 못했습니다.”
오상현 과장의 말에 우호근이 이를 빠득 갈았다.
“누군지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말고 꼭 찾아내라고 해.”
“예.”
상대가 누구든 가만두지 않을 분위기에 오상현 과장 역시 굳은 얼굴로 대답했다.
부속실로 들어간 우호근은 황급히 몸을 일으킨 비서실 직원들이 인사를 하는 걸 무시하고 지나쳤다.
그러고는 곧장 안쪽에 있는 원목으로 만들어진 문 앞에 섰다.
“후.”
긴장한 모습으로 넥타이를 고쳐매고 재킷 단추도 똑바로 다 채운 우호근은 숨을 한번 크게 들이마셨다가 내쉬고는 한쪽 팔을 들어 가볍게 노크했다.
그런 뒤 손잡이를 잡고 문을 열어 안으로 들어갔다.
“아버…….”
휘익! 와장창!
두터운 카펫이 깔린 회장실에 발을 들여놓자마자 커피잔이 날아와 벽에 부딪치며 산산이 부서졌다.
“이 망할 자식! 믿고 맡겼더니 날 속이고 이딴 짓을 벌여!”
우용갑 회장이 방안이 쩌렁쩌렁 울릴 정도로 크게 노성을 터트렸다.
그대로 발걸음을 멈춘 우호근이 고개를 들어서 보자 화가 나서 붉으락푸르락한 얼굴로 노려보는 우용갑 회장을 가운데 두고 전해철 비서실장과 그룹 핵심 임원들이 소파에 앉아 있었다.
그중에서 새하얗게 질린 얼굴로 안절부절못하고 있는 권승섭 동해상호신용금고 사장을 본 우호근은 우용갑 회장이 이미 모든 걸 다 알아차렸다는 걸 깨닫고 입술을 질끈 깨물었다.
“외국 투자자를 새로 잡았다고 하더니 그게 신용금고에서 몰래 빼돌린 돈이었어!”
연신 손바닥으로 앉아 있는 소파 팔걸이를 내려치며 쏟아내는 호통에 우호근이 시선을 똑바로 마주 보며 대답했다.
“지분 싸움에서 승기를 굳혀 미도파 백화점 경영권을 확실히 가져오기 위해서는 불가피한 선택이었습니다.”
전혀 반성하는 기색을 보이지 않는 우호근의 대답에 우용갑 회장이 기가 막힌지 헛바람을 내뱉었다.
“사고를 쳐놓고 뭘 잘했다고 얼굴을 빳빳이 드는 거야!”
“여기서 물러선다면 지금까지 쏟아부은 것들이 모두 허사가 되는데 그렇게 할 수는 없지 않습니까.”
우호근은 머리를 숙이는 대신 강하게 반박했다.
그런 우호근의 모습에 전해철 비서실장은 작게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절레 흔들었고 모여 있던 임원들 역시 놀란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아무리 그래도 상황을 이 지경까지 만들어 놓고 저렇게 뻔뻔스레 굴 줄은 몰랐기 때문이었다.
특히 우용갑 회장의 충격은 더 컸는데 금방이라도 터질 듯이 얼굴이 시뻘겋게 달아올라 쓰러지진 않을까 걱정이 될 정도였다.
“저 천둥벌거숭이 같은 놈을 아들이라고 믿고 일을 맡긴 내가 미쳤지!”
우용갑 회장은 분노와 실망감에 몸을 부들부들 떨었다.
얼마 전에도 혈압 때문에 큰일이 날뻔한 걸 떠올린 전해철 비서실장은 그런 모습을 보고 황급히 우용갑 회장을 진정시켰다.
“혈압에 좋지 않으니 흥분을 가라앉히십시오.”
그러자 우용갑 회장이 더 열이 올라 목소리를 높였다.
“저놈 하는 꼴을 보고 내가 진정하게 됐어!”
“주치의가 또 쓰러지시면 큰일이니 각별히 주의하라고 했지 않았습니까.”
“저 자식이 사고 치는 꼴을 계속 보고 있느니 차라리 빨리 눈이라도 감아 버리는 게 낮지!”
그러면서 우용갑 회장은 여전히 문 앞에 서 있는 우호근을 사납게 노려봤다.
머리끝까지 화가 나 있는 모습에 전해철 비서실장은 걱정을 감추지 못하면서도 더이상 뭐라고 말을 하지 못했다.
“네놈이 싸질러 놓은 똥을 이제 어떻게 치울 거냐?”
우용갑 회장이 눈에 힘을 주며 다그치듯 물었다.
“야당 의원이 어떻게 대출 사실을 알아냈는지는 모르겠지만 국내가 아니라 외국에 있는 회사들이니 제대로 된 조사를 하기가 어려울 겁니다.”
“바깥에 있는 페이퍼 컴퍼니는 그렇다고 쳐도 신용금고는 어떻게 할 거냐! 조금만 살펴봐도 부실한 대출이었다는 것이 금방 드러날 것 아니냐.”
우용갑 회장의 말대로 잠시 시간을 끄는 미봉책이지 근본적인 해결책은 되지 못했다.
그러자 우호근이 한쪽에 앉아 있는 권승섭 동해상호신용금고 사장을 힐끗 쳐다보곤 건조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M&A 자금 마련을 위한 계획적 불법 대출이 아니라 내부 심사 과정에서 일어난 실수나 직원의 개인적 일탈 행위로 무마시킨다면 불똥을 피해갈 수 있을 겁니다.”
대놓고 자신을 희생양으로 삼겠다는 이야기에 권승섭 사장의 얼굴에서 핏기가 싹 사라졌다.
“그. 그게 무슨…… 전 그저 상무님께서 하라는 대로 따랐을 뿐이지 않습니까.”
덜덜 떨리는 목소리로 항변하는 권승섭 사장을 우호근이 차갑게 쳐다봤다.
“미안하지만 그룹을 위해서 권 사장이 총대를 매줘야겠어요. 대신 비싼 변호인단을 꾸려서 형량을 최대한 낮게 받을 수 있도록 해줄 테니 걱정하지 말도록 해요.”
“네? 아니. 이건 말이 안 되지 않습니까. 어떻게 저만…….”
졸지에 모든 책임을 뒤집어쓰게 된 권승섭 사장은 식은땀을 흘리며 고개를 돌려 상석에 앉아 있는 우용갑 회장을 보면서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매달렸다.
“회. 회장님.”
하지만 우용갑 회장은 굳은 얼굴로 잠시 침묵하다가 이내 가라앉은 목소리를 냈다.
“자네가 희생을 좀 해줘야겠네.”
그러자 권승섭 사장은 하늘이 무너지기라도 한 것처럼 절망한 표정을 지었다.
이 모든 일을 꾸민 우호근이 책임을 지고 처벌을 받아야 했지만 참석한 임원 가운데 어느 누구도 그런 이야기를 입 밖으로 꺼내지 않았다.
전해철 비서실장 역시 자포자기한 모습의 권승섭 사장을 보면서 쓴 입맛을 다셨다.
그때 바깥이 소란스러워지는가 싶더니 급한 노크 소리와 함께 비서실 직원이 당황한 얼굴을 한 채 안으로 들어왔다.
“무슨 일이야!”
우용갑 회장이 짜증을 내며 버럭 소리쳤다.
죄송하다는 듯 고개를 숙인 비서실 직원은 옆에 서 있는 우호근을 힐끔 쳐다보곤 말을 더듬으며 입을 뗐다.
“저. 그게…… 남부 지검에서 사람들이 찾아왔습니다.”
“남부 지검이라고?”
우용갑 회장이 와락 이맛살을 찌푸리며 쳐다보자 비서실 직원이 눈치를 보면서 대답했다.
“그렇습니다.”
“남부 지검에서 여길 뭐하러 온 거야?”
“여. 영장을 가지고 왔다고 합니다.”
“뭐야!”
우용갑 회장이 눈썹을 치켜올리는 것과 동시에 문이 벌컥 열리며 사내 세 명이 허락도 없이 들어왔다.
“회의 중이셨던 것 같은데 잠시 실례하겠습니다.”
“당신들 누구야!”
우호근이 눈을 부라리면서 묻자 정장 차림에 뿔테 안경을 쓰고 앞에 선 사내가 검사 신분증을 꺼내 한 손에 들고 말했다.
“남부지검 금융조사 1부에서 나왔습니다.”
“……!”
차가운 눈빛으로 우호근을 똑바로 쳐다보며 사내가 말을 이었다.
“우리가 왜 왔는지는 우호근 씨 본인이 가장 잘 알고 있을 겁니다.”
그러고는 안주머니에서 영장을 꺼내 펼쳐서 보여줬다.
“보성 통신 주가조작 혐의로 우호근 씨를 체포하겠습니다. 묵비권을 행사할 수 있고 지금부터 하는 발언은 법정에서 불리하게 사용될 수 있으며…… 변호인을 선임하지 못할 경우 국선 변호인이 선임될 겁니다. 물론 돈이 많으시니 전관예우를 받는 빵빵한 변호인단을 꾸리겠지만 말이죠.”
얼굴이 빳빳하게 굳은 우호근을 보며 사내가 냉소적으로 말했다.
“오면서 라디오 뉴스를 들으니까 조만간 혐의가 하나 더 추가될 것 같던데. 그러면 집행유예로 빠져나가기가 쉽지 않을 겁니다.”
우호근이 사납게 노려봤지만 이런 일을 한두 번 겪어 본 것이 아니었기에 사내는 함께 온 수사관들을 보며 손을 까닥였다.
“뭐하고 있어요. 용의자를 체포해요.”
“예.”
건장한 몸집의 수사관 두 명이 앞으로 나서며 양쪽에서 팔을 붙잡았다.
“이거 놔! 내가 누군지 알고 이러는 거야. 너희들 다 뒈지고 싶어!”
우호근이 거칠게 저항했지만 고작 그 정도로는 벗어날 수 없었다.
“어허. 가만히 있으세요.”
“자꾸 이러면 다칩니다.”
운동으로 다져진 수사관들은 우호근의 어깨를 꽉 누르며 단번에 제압하고는 손목에 차가운 수갑을 채웠다.
“아버지! 그냥 보고만 계시지 말고 뭐라도 해주세요. X팔 이거 놓으라고!”
우호근은 급기야 욕까지 퍼부으며 계속 발버둥을 쳐댔다.
하지만 결국 수사관들의 힘에 이기지 못해 밖으로 질질 끌려 나갔다.
“아버지! 아버…….”
“거. 정말 시끄럽네.”
영장을 가지고 왔던 사내가 귓구멍을 후비며 중얼거렸다.
악악 소리를 지르면서 끌려가는 모습이 얼마나 보기 흉한지 차마 눈뜨고는 못볼 꼴이었다.
“저놈이 결국 회사를 말아먹는군.”
우용갑 회장은 힘없이 소파에 기대앉아 손바닥으로 얼굴을 덮으며 한탄했다.
모지리 아들놈 때문에 대체 이게 무슨 꼴이란 말인가.
우용갑 회장은 눈앞이 깜깜해지는 기분에 이를 꽉 악물었다.
* * *
며칠 뒤.
[동해상호신용금고 320억 불법 대출 의혹 사실로 확인
남부지검 금융조사 1부는 지난번 국회 대정부 질문에서 불거진 동해상호신용금고 불법 대출 의혹이 사실로 드러났다고 밝혔다.
이번 사건과 관련 검찰은 권승섭 사장을 비롯한 관련자 다섯 명을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위반혐의로 구속해 조사를 벌이고 있다.
아울러 이번 사건이 동해그룹 우용갑 회장의 장남인 우호근 상무의 지시로 이루어진…….]
동해상호신용금고 관련 기사가 큼지막하게 실린 오늘자 조간신문이 탁자 위에 펼쳐져 있었다.
장남인 박진형 방직 사장과 길성호 비서실장을 양옆에 두고 앉은 박태홍 회장은 둘째 아들을 잠시 말없이 바라보다가 물었다.
“이것도 네가 손을 쓴 거냐?”
박진형 사장과 길성호 비서실장도 궁금하다는 눈으로 그를 쳐다봤다.
시선을 받은 석원은 어깨를 가볍게 으쓱였다.
“주가조작까지는 머릿속에 있던 거지만 이건 예상 밖이었어요. 솔직히 우호근이 이렇게까지 멍청할 줄은 몰랐어요.”
그러자 길성호 비서실장이 금테안경을 고쳐쓰며 물었다.
“그럼 국회 대정부 질문에서 동해상호신용금고 폭로가 나온 것이 우연이 겹친 거란 말씀이십니까?”
석원은 입가에 옅은 미소만 지은 채 대답을 하지 않았다.
그걸 보고 이번 일 역시 그의 손길이 닿았다는 걸 눈치챈 박태홍 회장이 허어하며 탄성을 내뱉었고 박진형 사장과 길성호 비서실장 역시 놀란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증감원 비리 스캔들과 주가조작 사건에 동해 페레그린 증권이 연관된 사실이 드러났고 이번에 상호신용금고 사건까지 터졌으니 더 이상 미도파 백화점에 대한 적대적 M&A를 계속할 수 없을 거예요.”
석원은 그런 눈빛들을 아무렇지 않게 흘려넘기며 말했다.
“당장 제 코가 석자인데 남의 떡을 넘볼 정신은 없을 테지.”
작게 머리를 끄덕인 박태홍 회장이 한결 여유로워진 목소리로 이야기했다.
그러자 장남인 박진형 사장이 말을 보탰다.
“맞습니다. 특히나 이번 사건은 미도파 백화점 지분 매수 자금과 얽힌 일이니 더욱 입장이 곤란해졌을 겁니다.”
“그래. 네 말이 맞아.”
길성호 비서실장 역시 미소를 지으며 이제야 한시름 놓았다는 표정을 지었다.
“이렇게 되면 작은 사장님이 말씀하셨던 대로 동해그룹에서 요구한 임시 주총이 흐지부지 끝나게 되겠군요.”
“암. 그렇지.”
박태홍 회장이 흡족하면서도 대견해하는 눈빛으로 석원을 바라봤다.
“그럼 이제 이걸로 동해그룹과의 싸움은 일단락된 거구나.”
그러자 석원이 한쪽 입꼬리를 올리며 의미심장하게 웃었다.
“아니요. 지분 싸움 때문에 입은 손해가 얼마나 큰데 이렇게 끝낼 수는 없죠.”
“으응?”
박태홍 회장과 두 사람이 의아한 듯 그를 쳐다봤다.
“상대가 먼저 싸움을 건 가해자이니 피해보상금을 이자까지 쳐서 받아내야죠.”
“그게 가능하겠냐?”
흥미가 돋은 박태홍 회장이 몸을 앞으로 당겨 앉았다.
“물론 순순히 보상을 해주지 않으려고 하겠지만 그렇게 할 수밖에 없도록 만들어야죠. 그러려고 동해 유량 지분을 사둔 거니까요.”
석원은 흰 이를 드러내고 웃으며 말했다.
이젠 동해그룹이 처맞을 각오를 해야 할 때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