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olden Spoon Investment Portfolio RAW novel - Chapter (287)
금수저 투자백서 287화(287/294)
287. 스미모토 상사가 드디어 항복했습니다!
일본 도쿄도 주오구 스미모토 상사 본사.
쏴아아.
새벽에 급히 회사로 달려 나왔던 스기하라 부장은 와이셔츠 소매를 걷어붙인 채 아무도 없는 화장실에서 찬물로 세수를 했다.
수도꼭지를 잠그며 고개를 들다가 앞에 있는 거울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보곤 스기하라 부장이 씁쓸한 표정을 지었다.
널뛰기를 하는 구리 가격 때문에 며칠 내내 신경이 바짝 곤두선 채 제대로 잠을 자지 못해 얼굴이 까칠했으며 눈동자는 붉게 충혈되어 있었다.
게다가 면도도 하지 못하고 급하게 나오다 보니 턱수염도 지저분하게 나 있었다.
지치고 피곤에 찌든 모습을 보고 있자 문득 자신이 이길 수 없는 싸움을 하고 있는 건 아닌가 하는 불안감이 엄습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그는 구리 시장을 한 손에 쥐고 주무르는 포식자였지만 지금은 수십 마리의 굶주린 하이에나 떼에 둘러싸여 살아남기 위해 발버둥치는 사냥감에 불과했다.
지난 몇 주간은 그에게 말 그대로 악몽의 연속이었다.
구리 가격 하락을 막기 위해 필사적으로 노력했지만 중국 업체들의 뒤통수와 엘도라도 펀드가 날린 묵직한 한방에 모든 것이 허사로 돌아갈 위기에 처했다.
현물 20만 톤을 사들이고 추가로 선물을 매수하면서 가까스로 2천 600달러가 깨지는 걸 막아내긴 했으나 마지막 한 방울까지 쥐어짠 거였다.
이미 손실이 감당하기 어려울 정도로 불어나 버린데다가 이제는 더 이상 싸울 힘도 남아 있지 않았다.
“이대로 모든 걸 내던지고 어디론가 숨어 버렸으면 좋겠네.”
스기하라 부장이 힘 빠진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엄청나게 늘어난 손실도 문제였지만 이제는 감추기 힘들 정도로 일이 너무 커져 버려 이토 사장을 비롯한 경영진이 언제 상황을 눈치챌지 모른다는 불안감이 그를 더욱 초조하게 만들었다.
거기다 엘도라도 펀드의 공격이 이걸로 끝났다고 장담하기 어려웠고 중국 업체들도 언제 또 추가로 구리 현물을 내다 팔지 가늠하기 힘들었다.
처음 예측과 다르게 구리 가격이 꺾여 떨어지기 시작했을 때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고 가지고 있던 물량을 털어내며 포지션을 바꿨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이 불쑥 들었다.
하지만 이미 돌이키기에는 너무 멀리 와 버렸기에 후회를 해봤자 부질없는 짓이었다.
“앞으로 얼마나 더 버틸 수 있을까. 일주일 아니 이틀…….”
하루하루 피가 마르는 듯한 상황에 스기하라 부장은 차라리 모든 것이 다 드러나 어서 이 지옥에서 벗어났으면 좋겠다는 생각까지 들었다.
그때 허리에 차고 있던 삐삐가 소리를 내며 울리자 꺼내서 액정을 확인해 본 스기하라 부장은 사무실 번호가 찍혀 있는 걸 보고 얼굴을 구겼다.
“잠깐 숨돌릴 틈도 안 주는군.”
스기하라 부장은 세면대에 양손을 짚고 기대서서 크게 한숨을 내쉬었다.
이번엔 또 무슨 일인지 확인하는 것이 두려웠다.
빨리 사무실로 돌아가야 했지만 무거운 발걸음이 차마 떨어지질 않았다.
힘들고 싫은 기분에 스기하라 부장이 망설이고 있을 때 다급한 발소리와 함께 벌컥 화장실 문이 열렸다.
“스기하라 부장님!”
올해 입사한 신입 사원이 와이셔츠 차림으로 뛰어들어와 스기하라 부장을 보곤 숨을 헐떡이며 말했다.
“부장님. 여기 계셨습니까.”
“무슨 일이라도 있어?”
나약해진 마음을 얼른 감추며 스기하라 부장이 애써 태연하게 물었다.
그러자 신입 사원이 사색이 된 얼굴로 외쳤다.
“갑자기 매도 주문이 쏟아지면서 구리 현물 가격이 2천 6백 달러를 깨고 아래로 폭락 중입니다!”
눈을 크게 부릅뜬 스기하라 부장은 이내 욕설을 내뱉으며 화장실을 뛰어나갔다.
“이런 젠장!”
돌아온 사무실은 그 사이 마치 폭탄이라도 떨어진 것처럼 여기저기서 전화가 빗발치고 고함소리가 난무하면서 온통 혼란에 휩싸여 있었다.
따르릉! 따르릉!
“뉴욕 상황을 체크 해봐!”
“뭐! 매도 주문이 또 나왔어. 정말 미치겠네.”
“CNMC에서 3만 톤을 추가로 내놨다고 중국 이 자식들 도대체 왜 이러는 거야!”
유색광업집단 유한공사(CNMC)는 중국 국영 광산 회사로 세계 톱3 안에 들어가는 구리 생산 업체 중에 하나였다.
머리가 반쯤 벗겨진 하시모토 비철사업부 본부장이 잔뜩 굳은 얼굴로 책상을 쾅 내리쳤다.
“빌어먹을 중국놈들 같으니라고!”
계속해서 구리 현물을 쏟아내 불난 집에 부채질을 하고 있는 CNMC와 중국 업체들의 행동에 분통을 터트리던 하시모토 본부장은 막 사무실로 들어오는 스기하라 부장을 발견하곤 거친 걸음으로 다가갔다.
“상황이 이런데 자리를 비우고 어딜 가 있었던 거야!”
하시모토 본부장이 짜증스런 목소리로 소리쳤다.
사무실 한쪽에 설치된 대형 시세판에 띄워진 국제 구리 현물 가격을 멍하니 바라보던 스기하라 부장은 넋이 반쯤 나간 얼굴로 더듬거리며 대답했다.
“화, 화장실에 있었습니다.”
“쯧!”
크게 혀를 찬 하시모토 본부장이 대형 시세판을 손으로 가리켰다.
“구리 시세가 박살 나는 중인 거 봤지. 헤지 펀드들이 숏을 치는데 빌어먹을 중국 놈들까지 현물을 대거 내다 팔고 있어서 당분간 구리 가격이 반등하기 힘들어 보이니까. 손해가 나더라도 당장 보유하고 있는 물량을 모두 털어내도록 해!”
그러자 스기하라 부장이 눈에 띄게 당황하면서 그를 돌아봤다.
“네? 그러면 손해가 너무 큽니다!”
“그럼 어쩌자는 거야?”
하시모토 본부장이 이맛살을 찌푸리며 다그쳤다.
“여기서 물러선다면 구리 시장에서 그동안 저희가 누리던 지위를 잃게 될 수도 있습니다. 그러니 매물을 받아내면서 버틴다면 한차례 소나기가 지나간 뒤에 분명 가격이 바닥을 찍고 다시 반등할 겁니다.”
그러자 하시모토 본부장이 마뜩잖은 표정을 지었다.
“무슨 말을 하는지 모르지 않지만 상황이 너무 안 좋아. 그러니까 손실이 더 커지기 전에 어서 물량을 처분해.”
단호하게 지시를 내리는 말에 스기하라 부장의 눈동자가 크게 흔들렸다.
“조금만 더 버티면 됩니다. 한 번만 절 믿고 맡겨주십시오!”
지금까지 고생한 것들이 죄다 물거품이 되어 사라질 위기였다.
스기하라 부장이 시키는 대로 하지 않고 계속 고집을 부리자 하시모토 본부장은 짜증 난다는 듯 눈썹을 치켜올렸다.
“시키면 시키는 대로 할 것이지 왜 이렇게 말이 많은 거야! 어서 보유 물량을 매도해!”
하지만 스기하라 부장은 성난 목소리에도 불구하고 바로 대답을 하지 않고 머뭇거렸다.
“내 말이 안 들려!”
그러자 더욱 인상을 쓰며 하시모토 본부장이 재차 매도를 재촉했다.
두 사람이 언성을 높이자 어느새 직원들의 시선도 이쪽으로 쏠린 상태였다.
더 이상 손실을 숨길 수 없다는 것을 깨닫고 모든 걸 포기한 스기하라 부장은 어깨를 축 늘어뜨린 채 힘없는 목소리로 대답했다.
“……가지고 있는 물량이 너무 많아 지금 매도하면 손실이 너무 큽니다.”
지금까지 구리 거래를 스기하라 부장 혼자서 처리하며 나중에 사후 보고만 받아왔기에 정확한 재고 물량을 몰랐던 하시모토 본부장은 화가 난 얼굴로 양손을 허리에 올렸다.
“대체 구리 현물을 얼마나 가지고 있는데 그러는 거야?”
스기하라 부장은 입을 우물거리다가 마지못해 대답했다.
“배…… 백사십만 톤을 보유 중입니다.”
그 말에 하시모토 본부장이 경악에 찬 표정을 지었다.
하시모토 본부장은 혹시 잘못 들었나 싶어 진땀을 흘리며 황급히 되물었다.
“지금 백사십만 톤이라고 했나?”
주위에 있던 직원들 역시 예상을 훌쩍 뛰어 넘는 엄청난 구리 재고에 다들 화들짝 놀라며 기겁하는 표정이었다.
“……그렇습니다.”
스기하라 부장이 차마 얼굴을 들지 못하고 푹 숙인 채 대답했다.
그제야 엄청 심각한 상황이라는 걸 알아차린 하시모토 본부장이 새하얗게 핏기가 가신 얼굴로 목에 핏대를 세우며 소리쳤다.
“자네 미쳤나! 물량을 그렇게 많이 떠안고 있으면서 나한테 보고를 안 할 수가 있어!”
입이 열 개라도 할 말이 없었던 스기하라 부장은 모든 걸 체념한 듯 고개를 떨궜다.
“죄송합니다.”
하시모토 본부장은 충격과 분노에 몸을 부들부들 떨며 다그치듯 물었다.
“손해가 얼마나 난 거야!”
“……선물을 매수한 것까지 더 하면 오백억엔, 아니 천억엔까지 손실을 각오해야 될지도 모릅니다.”
상상을 초월하는 손실액에 하시모토 본부장은 입을 떡 벌린 채 경악을 금치 못했다.
함께 있던 직원들 역시 소스라치게 놀란 얼굴로 스기하라 부장을 쳐다봤다.
눈치 없이 울리는 전화벨 소리를 제외하면 사무실 전체가 소름 끼치는 정적에 휩싸였다.
하시모토 본부장과 비철금속 사업부 직원들이 충격에서 헤어나오지 못하는 가운데 스기하라 부장은 머리를 숙인 채 두 눈을 질끈 감았다.
지금껏 애써 쌓아온 그의 경력도 여기서 끝이라는 듯 우르르 무너지는 소리가 들리고 있었다.
* * *
다음 날 아침.
네이비색 정장을 입은 석원이 수행 비서인 한지성과 함께 밖으로 나오자 빌라 앞에 벤츠 대형 세단을 세워놓고 기다리던 주근성이 얼른 머리를 숙였다.
“좋은 아침이에요.”
석원은 미소를 지으며 주근성이 열어주는 차문으로 뒷좌석에 올라탔다.
문을 닫고 보닛을 돌아서 운전석에 앉은 주근성은 룸미러로 뒤에 있는 석원을 보며 말했다,
“그럼 출발하겠습니다.”
푹신한 가죽 시트에 몸을 기댄 석원이 작게 고개를 끄덕이자 주근성이 가속 페달을 밟고 부드럽게 차를 출발시켰다.
“디지털 웨이브 안병석 사장님이 시간이 괜찮으실 때 한번 회사로 와주셨으면 한다고 연락을 해왔습니다.”
한지성이 조수석에 앉은 채 몸을 뒤로 돌려 말하자 석원이 의아한 표정을 했다.
“무슨 일로 그러는 거예요?”
“개발 중인 MP3 플레이어 시제품이 만들어졌다고 합니다.”
석원이 눈을 동그랗게 뜨고 되물었다.
“진짜 그렇게 말했어요?”
“네. 분명히 들었습니다.”
석원은 깜짝 놀란 표정을 한 채 속으로 날짜를 세어봤다.
원래대로라면 내년 말쯤에나 나올 MP3 플레이어 시제품이 벌써 만들어졌다고 하니 그럴 만도 했다.
‘내가 개입하면서 개발 시점이 더 빨라진 건가.’
그것 말고는 다른 의심할 만한 다른 변수가 없었다.
실제로 석원이 원래보다 많은 개발비를 지원해 준 덕분에 안병석 사장은 돈 걱정 없이 마음껏 MP3 플레이어 개발에 집중할 수 있었다.
그뿐만 아니라 MP3 관련 원천 기술을 마음껏 사용할 수 있도록 해주는 건 물론이고 상세 자료까지 제공하자 개발에 더욱 가속도가 붙었다.
거기에 안병석 사장과 디지털 웨이브의 젊고 패기 넘치는 연구진의 열정이 더해져서 개발에 들어간 지 불과 몇 개월도 되지 않아 시제품을 만들어내는 쾌거를 이룬 것이다.
생각지도 못한 희소식을 들은 석원은 기쁜 표정을 지으며 물었다.
“오전에 임원 회의를 제외하면 딱히 중요한 일정은 없죠?”
한지성이 손에 든 다이어리를 확인하곤 말했다.
“오후 2시에 저희가 투자한 조상범 바이러스 연구소 경영진과 회의가 있습니다.”
“거긴 내가 꼭 참석할 필요는 없으니까 윤 상무한테 대신 가라고 해요.”
그의 말대로 크게 중요한 자리는 아니었기에 한지성이 고개를 끄덕이며 스케줄을 수정했다.
“알겠습니다.”
“그럼 오후 일정은 전부 취소하고 안 사장한테 연락해서 오늘 바로 찾아간다고 해요.”
“네.”
세계 최초의 MP3 플레이어는 어떤 모습일지 기대에 찬 표정을 짓고 있을 때 품속에서 위잉하는 진동벨이 울렸다.
석원은 최근에 새로 바꾼 휴대폰을 손에 들고 전화를 받았다.
반으로 접을 수 있는 데다 가벼운 무게로 얼마 전에 출시되어 큰 센세이션을 일으키고 있는 모토로라 스타택이었다.
“여보세요.”
[보스! 스미모토 상사가 드디어 항복했습니다!]휴대폰을 타고 랜든의 들뜬 목소리가 들렸다.
“그게 무슨 말이에요?”
[어제 오후부터 더 이상 구리 가격을 방어하지 않고 관망하는 것 같더니. 조금 전부터 스미모토 상사가 포지션을 바꿔 보유한 현물과 선물을 매도하기 시작했습니다.]본능적으로 스기하라 부장의 일탈 행위가 드디어 드러났다는 걸 직감한 석원이 눈에 이채를 띠었다.
“그거 정말 좋은 소식이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