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olden Spoon Investment Portfolio RAW novel - Chapter (290)
금수저 투자백서 290화(290/294)
290. 드디어 스티브 놀런이 다시 복귀하는군.
“이건 원안대로 처리하라고 해요.”
책상 앞에 선 한지성에게 결재 서류를 넘겨준 석원은 의자 등받이에 몸을 기대며 물었다.
“참. 독일 미크로나스 사에서 개발한 DSP칩은 구해서 디지털 웨이브에 보내줬어요?”
“예. 지시하신 대로 샘플 서른 개를 구해 항공편으로 공수해 오는 중입니다. 늦어도 내일까지는 전달이 될 겁니다.”
만족스러운 대답에 석원이 작게 머리를 끄덕였다.
“더 필요한 것이 있으면 한 대리가 알아서 챙겨주도록 해요.”
“그러겠습니다.”
한지성은 결재 서류를 한쪽 손에 든 채 말을 이었다.
“더 하실 말씀이 없으면 나가보겠습니다.”
“그래요.”
한지성이 살짝 고개를 숙였다가 바로 하고는 방을 나가자 그는 손을 뻗어 책상에 설치된 인터폰 버튼을 눌렀다.
[말씀하십시오. 사장님.]“커피 한 잔 가져다주겠어요?”
[알겠습니다.]버튼에서 손을 뗀 석원은 책상 위에 놓인 보고서를 들고 펼쳤다.
얼마 안 있어 노크를 하며 나성미가 쟁반을 가지고 들어와 원두향이 진하게 풍기는 머그컵을 내려놨다.
“커피 가져왔습니다.”
“고마워요. 잘 마실게요.”
석원이 미소 띤 얼굴로 말하자 나성미도 눈을 휘며 마주 웃었다.
“별말씀을요. 더 필요한 건 없으세요?”
“괜찮아요.”
이내 나성미가 빈 쟁반을 가지고 나가자 석원은 따뜻한 머그컵을 들고 의자에서 일어나 창가로 걸어갔다.
커다란 통유리창 너머로 높다랗게 지어진 고층 건물들을 바라보며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벌써부터 이렇게 더운 걸 보니 올해 여름은 많이 덥겠네.”
도시의 번화한 풍경을 감상하면서 여유롭게 커피를 마시고 있을 때 위이잉하며 진동벨이 울리는 소리가 났다.
몸을 돌려 책상으로 걸어간 석원은 머그컵을 내려놓고는 대신 휴대폰을 들어 전화를 받았다.
[미스터 박. 오랜만입니다.]수화기 너머에서 묵직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바로 상대가 누군지 알아차린 석원은 살짝 의아한 얼굴로 말했다.
“캘리포니아는 지금 밤일 텐데 놀런 씨가 어쩐 일이십니까.”
[긴히 할 이야기가 있는데 통화가 가능합니까.]왠지 진지한 분위기에 석원이 더욱 궁금한 표정을 지었다.
“괜찮습니다. 용건이 뭔지 말씀해 보시죠.”
[며칠 전에 올해 2/4분기 실적 보고서를 전달받으셨을 겁니다.]랜든이 보내준 애플의 2분기 실적 보고서를 머릿속으로 떠올리며 이야기를 계속 들었다.
[많은 개발비를 투자한 여러 프로젝트를 취소시키고 한 해 동안 거의 6천 명이 넘는 임직원들을 정리해고하는 강도 높은 구조조정을 단행했는데도 불구하고 1억 달러나 되는 적자를 내며 실적을 좀처럼 반등시키지 못하고 있는 걸 확인하셨겠지요.]발생한 적자 대부분이 스티브 놀런을 비롯한 전임자들이 싸질러 놓고 떠난 똥을 처리하는 과정에서 발생한 비용인 걸 알고 있었지만 석원은 굳이 입 밖으로 꺼내진 않았다.
‘그러고 보니 임시 CEO를 맡고 있는 제프 콜리어의 임기가 한 달 남짓밖에 남지 않았군.’
계속해서 누적된 적자에 애플은 급기야 자본잠식 직전까지 가며 회사가 부도날 위기에 몰렸다.
그러자 다급해진 애플 이사회는 기존 경영진을 전격 해고하고 이사로 있던 제프 콜리어를 임시 CEO로 임명해 500일간 회사를 맡겼다.
물론 그동안 성과를 내면 보너스와 함께 연임을 시켜준다는 조건이 걸려 있었다.
‘돈줄이 바짝 마른 상태에서 골드만삭스를 통해 6억 6,100만 달러나 되는 회사채를 발행하는 데 성공해 회사 재정에 숨통을 터줬으니 그것만으로도 상당한 성과를 냈다고 할 수 있지.’
거기다가 스티브 놀런이 창업한 넥스트를 인수해 애플이 다시 살아날 수 있는 밑바탕을 만든 걸 감안하면 충분히 연임될 자격이 있었다.
하지만 스티브 놀런은 그걸 원하지 않았다.
‘애초에 애플을 자신의 분신처럼 생각하고 있으니 다른 사람이 회사를 경영하는 모습을 절대 그냥 두고 볼 수 없을 테지.’
애플에 대한 스티브 놀런의 집착은 유명했기에 석원은 어렵지 않게 그가 무슨 이야기를 하려는지 알아차릴 수 있었다.
아니나 다를까 놀런이 성격처럼 직설적인 어투로 원하는 바를 이야기했다.
[지난번에도 이야기했지만, 애플에 대한 이해가 전혀 없고 앞으로 어떻게 나아가야 될지 방향성을 제시하지 못하는 제프 콜리어 체제하에서는 애플에게 미래는 없을 겁니다.]석원이 휴대폰을 귀에 댄 채 대꾸했다.
“제프 콜리어의 연임을 반대하는 겁니까?”
놀런은 지체 없이 대답하며 목소리에 힘을 주어 강조했다.
“그 사람이 누굽니까?”
대충 어떤 대답이 돌아올지 예상하며 묻자 놀런이 스스럼없이 말했다.
[바로 납니다.]놀런은 자신에 찬 목소리로 단언했다.
[내가 다시 회사를 맡게 된다면 세상을 바꾼 애플을 다시 한번 위대한 기업으로 만들 수 있습니다.]결과를 알고 있었지만 놀라울 정도로 자신에 대한 확신과 믿음이 강한 스티브 놀런의 모습에 석원은 대단하다는 듯 머리를 절레 흔들었다.
[다음 달에 열리는 이사회에서 제프 콜리어 대신 내가 새롭게 CEO가 될 수 있도록 힘을 보태줬으면 합니다.]놀런이 태연한 목소리로 대놓고 도움을 요청했다.
스티브 놀런이 가지고 있던 주식 150만 주를 사들인 이후 꾸준히 애플 지분을 늘려온 석원은 현재 10%를 보유한 대주주가 되어 있었다.
당연히 이사회에 미치는 입김 역시 강해 스티브 놀런이 CEO로 복귀하기 위해서는 그의 지원이 절대적으로 필요했다.
그 때문인지 놀런은 자신이 CEO가 되면 1년 안에 회사를 정상화시켜 놓겠다고 호언장담했다.
애플의 부활이 스티브 놀런의 손에 달려 있다는 걸 누구보다 잘 알고 있던 석원은 큰 고민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좋습니다. 제 의결권을 놀런 씨한테 위임하도록 하죠. 그럼 되겠습니까.”
시원스런 대답에 오히려 스티브 놀런이 약간 당황한 듯한 모습으로 되물었다.
[진심입니까?]“처음부터 놀런 씨가 있는 애플을 보고 지분을 매수했다고 이야기했을 텐데요. 그 생각엔 지금도 변화가 없습니다. 위기에 처한 애플을 다시 부활시킬 적임자가 놀런 씨라는 것에 저 역시 같은 생각입니다.”
그러자 스티브 놀런은 석원의 적극적인 지지에 고무된 반응을 보였다.
[그렇게 봐줘서 고맙습니다.]석원은 이번 기회에 자연스럽게 애플 지분을 늘리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는 판단을 내리고는 넌지시 말을 던졌다.
“원한다면 놀런 씨가 CEO로 복귀한 이후 CB 형태로 2억 달러를 더 투자할 의사가 있습니다.”
전환사채 또는 CB로 불리는 Convertible Bond는 채권 형태로 발행되지만 약정한 기한이 지나고 나서 채권자가 원할 경우 미리 붙여진 조건에 따라 주식으로 바꿀 수 있는 권리가 붙은 회사채를 뜻했다.
재정 상태가 좋지 않은 애플 입장에서 2억 달러는 가뭄의 단비 같은 돈이었기에 놀런이 반색하며 물었다.
[정말 그렇게 해줄 수 있습니까?]석원은 미소를 짓고 말했다.
“회사 상황이 많이 어려운 만큼 빨리 정상화를 시키려면 여유 자금이 충분히 있어야 되지 않겠습니까.”
예상치 못한 지원까지 얻게 된 놀런은 잔뜩 힘이 실린 목소리로 기쁨을 드러냈다.
[안목이 뛰어난 걸로 높이 평가받는 미스터 박이 거액을 투자해 준다면 애플에 부정적인 시장의 시선을 상당수 씻어낼 수 있을 겁니다.]“저도 그렇게 되길 바랍니다.”
원래는 CEO로 복귀한 스티브 놀런이 크리스토퍼 알렉산더 마이크로소프트 창업자와 윈도우 관련 특허 소송에 합의하고 1억 5천만 달러를 투자받는 것이었으나 그것을 석원이 대신하게 됐다.
‘이걸로 크리스토퍼 알렉산더와 마이크로소프트의 자산이 크게 줄어들게 되겠네.’
석원이 속으로 웃으며 생각했다.
그가 이렇게 과할 정도로 스티브 놀런을 밀어주는 건 애플의 화려한 부활과 성공에는 시대의 아이콘으로 열광적인 팬덤을 거느린 스티브 놀런의 역할이 절반 이상을 차지했기 때문이었다.
물론 연달아 혁신적인 제품을 만들어내며 IT 붐을 이끌어 간 것도 있지만 스티브 놀런의 이미지와 캐릭터는 그야말로 독보적이었다.
‘스티브 놀런이 없는 애플은 절대 상상할 수 없지.’
훗날 스티브 놀런이 투병을 하다 일찍 사망한 이후에도 남겨둔 유산만으로 애플이 십여 년 넘게 세계 최고의 기업이라는 독보적인 지위를 계속 유지할 수 있었던 것만 봐도 그의 존재감이 얼마나 깊고 강했는지 알 수 있었다.
‘그런데 원래 역사와 달라진 상황 때문에 스티브 놀런이 크리스토퍼 알렉산더와 화해를 하지 않고 예전처럼 대립각을 세우면 어쩌지.’
문득 그런 생각이 든 석원은 그의 자존심을 건드리지 않도록 주의하며 조심스레 말했다.
“회사 사정이 어려운 만큼 윈도우와 관련된 특허권 분쟁을 마이크로소프트하고 원만하게 해결하는 것이 여러모로 이득일 겁니다.”
그러자 까칠할 것 같았던 놀런의 반응이 예상외였다.
[애플을 나가 있는 동안 나도 많은 것을 느끼고 깨달았습니다. 그렇지 않아도 경영을 맡게 되면 제일 먼저 그 문제부터 해결할 생각이었으니 걱정하지 마십시오.]별다른 반발 없이 순순히 대답하는 모습에 석원은 놀란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애플에 대한 집착은 여전했지만, 예전의 독선과 아집으로 가득했던 스티브 놀런이 한 번의 아픔을 겪으며 성장했다는 걸 확인할 수 있었다.
[미스터 박 덕분에 재정 압박을 어느 정도 해소할 수 있게 됐으니. 조금 더 유리하게 마이크로소프트와 협상을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바늘 하나 들어갈 것 같지 않았던 원래 모습과 달리 많이 유들유들해진 태도에 석원은 긍정적인 표정을 지었다.
“넷스케이프와 브라우저 전쟁을 벌이느라 마이크로소프트가 다른 곳에 신경 쓸 여력이 없는 상태인 걸 잘 이용한다면 좋은 결과를 얻을 수 있을 겁니다.”
[참고하도록 하지요.]그 뒤로도 한참 동안 더 이야기를 나누고 통화를 끝낸 석원은 휴대폰을 귀에서 뗐다.
그러고는 엉덩이를 책상에 기대고 선 채 한쪽 손으로 턱을 매만지며 중얼거렸다.
“드디어 스티브 놀런이 애플의 선장으로 다시 복귀하는군.”
석원은 앞으로 스티브 놀런과 애플이 만들어내 세상을 변화시킬 제품들을 떠올리며 잔뜩 기대를 부풀렸다.
더불어 애플이 다시 부활해 세계 최고의 기업으로 성장해 나가면서 자연스럽게 수십 수백 배로 커질 지분 가치를 생각하니 밥을 안 먹어도 배가 부른 기분이었다.
“어떤 테크트리를 타서 전 세계 시총 1위 기업이 되는지 알고 있지만, 그냥 놔두면 알아서 돈을 벌어다 줄 텐데 굳이 힘들게 내가 나설 필요는 없지.”
석원이 씩 웃으며 입가에 짙은 미소를 지었다.
재주는 스티브 놀런이 부리고 돈은 석원이 버는 꼴이었다.
하지만 대주주인 석원이 뒤를 든든히 받쳐주면 스티브 놀런 역시 다른 걸 신경 쓰지 않고 안정적으로 오롯이 애플 경영에만 집중할 수 있으니 서로한테 윈윈이 되는 거였다.
“곧 파산할 거라는 부정적인 시선이 팽배한 지금이 애플 주가가 제일 쌀 때니까. 이참에 지분을 왕창 더 늘려서 최대 주주 자리를 꿰차는 것도 나쁘지 않겠네.”
지지 의사를 확실히 표시한 만큼 그가 지분을 크게 늘린다고 해도 스티브 놀런이 경계하진 않을 터였다.
석원은 생각난 김에 곧바로 휴대폰을 다시 들고 뉴욕에 있는 랜든에게 전화를 걸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