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olden Spoon Investment Portfolio RAW novel - Chapter (293)
금수저 투자백서 293화(293/294)
293. 하실 말씀이 있으시다는 게 뭡니까?
아직 정오도 되지 않았는데 최고 기온이 34도까지 올라가는 무더위에 가만히 서 있기만 해도 숨이 턱턱 막힐 것 같았다.
아지랑이가 피어오르는 쭉 뻗은 아스팔트 서킷 위를 코를 찌르는 듯한 고무 타는 냄새와 함께 노란색 황소 한 마리가 요란한 엔진 소리를 내며 무섭게 질주하고 있었다.
아스팔트에 바짝 붙어서 폭발하듯 강한 스피드로 내달리고 있는 스포츠카의 정체는 바로 람보르기니 디아블로 SE30 Jota였다.
그냥 일반 모델이 아니고 람보르기니 창립 30주년을 기념해서 제작된 스페셜 에디션(Special Edition)으로 94년부터 95년까지 딱 150대만 만들어진 한정판이었다.
최고 출력 603마력을 낼 수 있도록 개조한 5.7리터 V12 엔진을 탑재하고 경량화를 위해 각종 편의 장비를 빼고 값비싼 카본을 써서 일반 모델과 비교해 약 200kg가 가벼웠다.
한마디로 디아블로 중에서도 가장 강한 엔진을 가진 오직 달리기 위해서 만들어진 레이싱 머신이었다.
몸에 딱 붙는 레이싱복을 입고 머리에 헬멧을 쓴 석원은 양손으로 핸들을 꽉 붙잡은 채 눈을 부릅뜨고 정면을 주시했다.
귀를 찢는 마찰음과 함께 타이어 고무가 타는 냄새가 온몸의 신경을 바짝 곤두세우게 만들었다.
끼이이익. 끼이익!
연속 코너를 돌아 나오려는 순간 오버스티어가 나며 핸들을 꺾은 각도보다 차가 더 안쪽으로 꺾였다.
그대로 코스를 이탈해 버리려는 찰나.
석원은 재빨리 핸들을 느슨하게 되돌려 아슬아슬하게 코너를 무사히 빠져나왔다.
순간 짜릿한 쾌감이 척추를 타고 올라오며 몸속에서 아드레날린이 마구 뿜어져 나오는 것 같았다.
쓰고 있는 헬멧 너머로 쭉 뻗은 직선 구간이 펼쳐지자 그는 가속페달을 있는 힘껏 밟았다.
그러자 양쪽 귀를 멍멍하게 울리는 엔진 소리가 한층 더 폭발하듯 커지면서 차가 미친 듯이 앞으로 튀어 나갔다.
순식간에 속도계 바늘이 시속 300km/h를 넘기며 중력이 운전석에 앉은 그의 몸을 짓눌렀다.
포악한 맹수처럼 으르렁거리는 엔진의 거친 울림을 따라 석원의 심장 역시 빠르게 고동쳤다.
금방 직선 구간이 끝나고 다음 커브가 나오자 브레이크를 밟으면서 기어를 다운시켰다.
핸들링과 함께 차가 코너 중심에 거의 다다르자 그는 재빨리 브레이크에서 발을 떼고 다시 가속페달을 밟았다.
그러자 다시 속력이 붙은 차는 코스 안쪽에서 바깥쪽으로 미끄러지듯 밀려 나가며 회전 구간을 그대로 빠져나왔다.
“그래 바로 이거지!”
라인을 제대로 타며 평소보다 빠르고 간결하게 코너를 돈 석원은 잔뜩 상기된 얼굴로 크게 환호성을 내질렀다.
그러고는 더욱 신이 나 기어를 올리면서 가속페달을 밟고 있는 발에 힘을 줬다.
그 어떤 잡생각도 하지 않고 오직 운전에만 집중한 채 두려움 속에 풀악셀을 밟아 차와 자신을 한계까지 몰아붙이면서 트랙을 도는 짜릿함은 무엇과도 비교할 수가 없는 쾌감이었다.
우연히 서킷을 한번 타봤다가 그런 즐거움을 맛본 석원은 왜 사람들이 위험한 익스트림 스포츠를 즐기는지 이유를 알 수 있었다.
혼자 마음껏 달릴 수 있도록 서킷을 통째로 빌린 석원은 요란한 엔진소리를 내며 신나게 질주를 이어갔다.
아드레날린이 마구 분비되는 쾌감을 느끼며 그렇게 서킷을 몇 바퀴나 돌다가 체력이 부칠 때쯤 되어서야 천천히 속력을 줄이면서 트랙을 빠져나와 피트로 돌아왔다.
피트 앞에 완전히 차를 멈춰 세운 석원은 윙도어를 위로 열고 운전석에서 내렸다.
“후우.”
숨을 뱉으며 쓰고 있던 헬멧을 벗자 머리카락이 온통 땀에 흠뻑 젖어 있었다.
진하게 풍기는 고무 타는 냄새에 아래를 내려다보자 오늘 새로 교체한 타이어가 아스팔트에 잔뜩 갈려 있었다.
“저건 더 이상 못 쓰겠네.”
석원이 웃으며 고개를 흔들었다.
신이 나서 속도를 내며 달렸더니 하루도 안 돼 새 타이어를 너덜너덜하게 만들어 버렸다.
헬멧을 옆구리에 끼고 서서 장갑을 벗고 있을 때 서킷과 어울리지 않는 정장 차림을 한 한지성이 빠른 걸음으로 다가와 수건과 작은 생수통을 건넸다.
목이 많이 말랐던 석원은 생수 뚜껑을 따고는 그대로 입에 가져가 벌컥벌컥 소리를 내며 단번에 거의 반을 마셔 버렸다.
“랩타임은 얼마나 나왔어요?”
석원은 그제야 갈증이 좀 가시는 것을 느끼며 손등으로 입가에 묻은 물기를 닦으면서 물었다.
“2분 15초가 나왔습니다.”
“지난번보다 4초가 더 당겨졌네요.”
만족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하는 말에 한지성이 진지하게 말했다.
“이제 선수로 출전하셔도 될 것 같은 실력이십니다.”
“하하. 그 정도는 아니에요.”
석원은 손에 든 헬멧을 한지성한테 건네주고는 수건으로 얼굴의 땀을 닦아냈다.
그러고는 남은 생수를 마저 다 마시는데 앞에 선 한지성이 말을 꺼냈다.
“트랙을 돌고 계실 때 뉴욕에 있는 랜든 씨한테서 전화가 왔었습니다.”
“그래요?”
손을 내밀고 살짝 까딱이자 한지성이 맡아두고 있던 석원의 휴대폰을 안주머니에서 꺼내 두 손으로 내밀었다.
휴대폰을 건네받은 석원은 익숙하게 단축번호를 눌러 랜든에게 전화를 걸었다.
[여보세요.]석원은 걸음을 옮겨 한쪽에 있는 파라솔 테이블로 가서 앉으며 말했다.
“나예요. 전화를 했었다면서요?”
[네. 서킷에 계시다고 하던데 랩타임은 잘 나오셨습니까.]“나쁘지 않은 수준이죠.”
석원은 가볍게 웃으면서 까만 레이밴 선글라스를 꺼내 썼다.
뜨겁게 내려쬐는 햇빛 때문에 도저히 맨눈으로는 앉아 있을 수가 없을 정도였다.
[다른 건 아니고 지난번에 알아보라고 하신 람보르기니에 대한 조사가 끝나 보고를 드리려고 연락을 드렸습니다.]석원은 의자 등받이에 몸을 기댄 채 늘씬하고 날렵한 차체를 뽐내며 피트 앞에 세워져 있는 디아블로 SE30 Jota를 감상하듯 바라보며 말했다.
“조금 더 시간이 걸릴 줄 알았는데 빨리 끝났네요.”
[보스 지시인데 최우선으로 처리해야 되지 않겠습니까.]너스레를 떠는 말에 석원이 피식 웃었다.
[포뮬러 원에도 다시 출전하고 히트 모델인 디아블로를 출시했지만 계속 누적되는 적자에 크라이슬러가 2년 전에 람보르기니를 4천만 달러에 매각한 건 알고 계실 겁니다.]“그때 인수한 사람이 당시 인도네시아 대통령의 막내아들이라고 해서 꽤 화제가 됐잖아요.”
[맞습니다. 대통령의 아들이자 사업가인 후아드 수다르만이 소유한 메가테크가 지분 100%를 소유하고 있다가. 작년에 말레이시아 기업인 마이콤과 인도네시아에 있는 V파워 두 회사가 각각 40%와 60%씩 지분을 넘겨받아 나눠서 보유하고 있는 상태입니다.]살짝 미간을 좁히며 석원이 물었다.
“그럼 람보르기니 소유권이 그새 다른 곳으로 넘어간 거예요?”
[그건 아니고 두 회사 역시 후아드 수다르만이 가지고 있는 곳이라 그냥 지분 명의만 바뀌었다고 생각하시면 될 겁니다.]“아. 그래요.”
포르쉐, 페라리와 함께 최고급 스포츠카 브랜드의 대명사로 불리는 람보르기니가 창업자 가문의 손을 떠나 천덕꾸러기처럼 이리저리 팔려 다니는 신세라니 참 아이러니했다.
‘차량 가격은 억 소리가 나오지만 수작업으로 생산해 1년에 몇 대 못 만드는 걸 생각하면 적자를 내는 것이 당연한 걸 수도 있겠지.’
히트 모델인 디아블로(Diablo)마저 1990년에 처음 출시되어 2001년에 단종될 때까지 겨우 2천 884대밖에 만들어지지 않은 것만 봐도 수익성이 얼마나 나쁜지 알 수 있었다.
실제로 람보르기니는 크라이슬러에 인수되기 전에 한차례 파산을 하기도 했었다.
[그동안 만성 적자에 시달리던 람보르기니였지만 인수 이후에 문제가 되던 비싼 원가를 절감하고 인력 감축 등 강력한 구조조정을 실행해 적자를 크게 줄여 내년쯤부터는 흑자 전환도 기대해 볼 수 있을 거라고 합니다.]그 사이 한지성이 테이블 위에 얼음이 든 레모네이드를 가져와 올려놨다.
안 그래도 더운 날씨인 데다가 한바탕 땀을 흘렸으니 수분보충이 필요할 것 같아 일부러 준비해준 거였다.
석원은 한지성에게 고맙다는 뜻으로 고개를 살짝 끄덕이고는 의외라는 표정을 지었다.
“단순히 든든한 뒷배만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니라 후아드 수다르만의 경영 능력이 괜찮은 모양이네요.”
[결과를 보면 그런 것 같습니다.]석원이 그냥 심심해서 람보르기니에 대해 알아보라는 지시를 내리진 않았을 터였기에 랜든이 슬쩍 목소리를 낮춰 물었다.
[수다르만 쪽에 람보르기니를 매각할 의향이 있는지 한번 의사를 타진해 볼까요?]그러자 석원이 빨대로 레모네이드 컵 안에 있는 얼음을 휘저으며 대답했다.
“만약 매수한다면 예상 가격이 얼마 정도 될 것 같아요?”
[글쎄요. 정확한 건 협상을 해봐야 알 수 있겠지만 예상대로 올해 흑자 전환에 성공한다면 브랜드 가치까지 고려해 최소 1억 5천만 달러는 줘야 되지 않겠습니까.]“그러면 인수 2년 만에 3배가 넘는 차익을 내는 거네요.”
[그만큼 군살을 모두 덜어내고 구조조정을 잘 끝냈다는 뜻 아니겠습니까.]“하긴 미국 자동차 빅3 중에 하나인 크라이슬러도 못하고 손을 든 일을 해냈으니 대단하긴 하죠.”
[맞습니다.]회사 가치를 크게 깎아 먹던 적자가 해소됐다면 몸값이 크게 오르는 건 당연했다.
[얼마에 팔 생각이 있는지 수다르만 쪽에 인수 의향서를 보내 볼까요?]석원은 햇빛을 받아 차체가 반짝이는 모습이 더욱 멋들어진 디아블로 SE30 Jota를 잠깐 쳐다보며 고심하다가 말했다.
“아니. 일단 그냥 놔둬요.”
[람보르기니를 인수하실 생각이 있으시다면 흑자 전환에 성공하기 전에 매각 협상을 시작해 가져오는 것이 여러모로 유리할 겁니다.]“알고 있어요. 하지만 곧 핫딜이 뜰 텐데 굳이 지금 비싸게 살 이유는 없지 않겠어요.”
아시아 금융위기에 한국도 큰 고통을 겪었지만 수다르만이 있는 인도네시아 역시 IMF 긴급 구제 금융을 받고 전체 GDP의 13%가 증발해 버리는 심각한 타격을 입었다.
‘경제 위기를 맞게 되면 굳이 내가 먼저 제안하지 않아도 자금 압박을 해소하기 위해 수다르만이 비핵심 사업인 람보르기니 매각에 나설 수밖에 없을 거야.’
당연히 먼저 팔라고 하는 것보다 상대가 매물로 내놓는 것이 훨씬 더 싸게 회사를 가져올 수 있었다.
‘그렇다면 핫딜이 뜰 때까지 장바구니에 넣어두고 인수 대금으로 쓸 돈을 그동안 굴려서 불리는 게 훨씬 이득이지.’
곧 금융위기라는 엄청난 쓰나미가 한국을 비롯한 아시아 각국을 휩쓸어 버릴 예정이었기에 혼란을 잘만 이용한다면 인수 대금 1억 5천만 달러를 서너 배는 너끈히 뻥튀기할 수 있을 터였다.
[핫딜이 뜬다니.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무슨 홈쇼핑 상품도 아니고 갑자기 핫딜이라니 이해할 수가 없었다.
랜든이 의아해하자 석원은 휴대폰을 든 채 씨익 흰 이를 드러내며 웃었다.
“곧 알게 될 거예요.”
* * *
미국 뉴욕주 웨체스터 카운티(Westchester County).
허드슨 강과 인접해 있어 금융 중심지인 맨해튼으로 통근하기가 쉬운 웨체스터 카운티는 월스트리트에서 근무하는 금융맨들이 선호하는 부촌 중 하나였다.
헤지펀드의 전설로 불리는 조지 해밀턴도 이곳에 별장을 가지고 있었다.
검은색 롤스로이스 한 대가 철문을 지나 높다란 담장으로 둘러싸인 별장으로 들어갔다.
분수가 있는 잘 손질된 정원을 옆으로 빙 돌아 본채 앞에 롤스로이스가 멈춰 섰다.
그러자 기다렸다는 듯이 정장을 차려입은 중년의 집사가 나와 롤스로이스에서 내린 로드니를 맞이했다.
“어서 오십시오. 로드니 씨.”
안면이 있는지 작게 머리를 끄덕인 로드니는 집사의 안내를 받아 본채 안으로 걸음을 옮겼다.
푹신한 카펫이 깔린 긴 복도를 지나 끝에 있는 응접실로 들어가자 편한 복장을 한 조지 해밀턴이 엔틱한 디자인의 소파에 앉아 서류를 읽고 있다가 고개를 들었다.
“왔구만. 이리 와서 앉게.”
로드니는 겉옷을 벗어 집사한테 건네주고는 비어 있는 맞은편 소파에 앉았다.
“자네도 한잔하겠나?”
조지 해밀턴이 탁자 위에 놓인 언더락 잔을 턱으로 가리키며 물었다.
“그러죠.”
로드니의 말을 들은 집사가 새 술잔을 가져와 둥근 얼음을 넣고는 위스키를 반쯤 채워 그의 앞에 내려놓은 뒤 인사하고 자리를 떠났다.
문이 닫히자 로드니가 먼저 입을 열어 물었다.
“하실 말씀이 있으시다는 게 뭡니까?”
“급한 성격은 여전하군.”
조지 해밀턴이 손에 든 서류를 내려놓으면서 피식 웃었다.
그러고는 이내 진지한 얼굴로 물었다.
“태국 바트화(baht)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