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olden Spoon Investment Portfolio RAW novel - Chapter (298)
금수저 투자백서 298화(298/308)
298. 다들 내일 당장 여권부터 만들도록 해.
“이건 이대로 처리하도록 해요.”
“알겠습니다.”
결재판을 돌려준 석원은 뒤로 몸을 기대면서 책상 앞에 서 있는 최호근 부장을 봤다.
“참 운용 자금을 전부 달러로 바꿔 놓으라고 지시한 건 다 끝냈어요?”
시선을 받은 최호근 부장이 한쪽 손으로 결재판을 든 채 대답했다.
“예. 그렇지 않아도 보고를 드리려고 했는데 엄 이사님의 도움을 받아 어제 오후에 환전을 모두 마쳤습니다.”
“얼마나 나왔어요?”
“최근 환율이 올라서 달러로 바꾸니 2억 944만 3천만 달러가 됐습니다.”
액수를 들은 석원이 작게 머리를 끄덕였다.
“그동안 운용 자금을 많이 불렸네요.”
“사장님께서 찍어주셨던 세 종목에서 수익이 크게 난 덕분입니다. 그게 아니었다면 이렇게까지 액수가 많이 늘어나진 않았을 겁니다.”
최호근 부장이 미소를 지으며 공을 석원한테 돌렸다.
사실 틀린 말도 아니었는데 세 종목 가운데 제일 수익률이 낮은 한국이동통신도 50%나 올랐고, 에스원 같은 경우에는 4만 2천 원에 샀던 주식을 23만 6천 원에 팔아 무려 550%나 되는 수익을 냈으니 그럴만했다.
놀랍다는 말 밖에 나오지 않을 정도로 대단한 수익률을 기록했지만 석원은 대수롭지 않다는 듯 반응했다.
“나 혼자 한 것이 아니라 최 부장과 팀원들이 함께 노력해서 이루어 낸 결과 아니겠어요.”
물론 자신과 팀원들이 별도로 매매를 해서 올린 수익도 포함되어 있었지만 석원이 한방에 벌어들인 돈에 비하면 비교하기 부끄러울 정도로 작았다.
그런데도 모두가 함께 만들어낸 성과라고 해주는 석원의 말에 최호근 부장은 내심 크게 감동을 받았다.
“갑자기 개별로 트레이딩 중이던 것까지 전부 포지션을 정리하라고 해서 많이 당황스러웠을 거예요.”
“솔직히 처음에는 의아한 생각이 들었지만 얼마 안 있어서 증시가 좀처럼 힘을 못 쓰며 계속 빠지는 걸 보고 역시 타이밍을 기가 막히게 맞추신다고 감탄했습니다.”
실제로 신규통신 사업자 선정 기대를 엎고 상승을 거듭하던 증시는 정부 발표가 나오자 고점을 찍고 떨어져 계속 하락 중이었다.
“엔화가 절하되면서 수출 여건이 안 좋아졌고 주력 품목 중 하나인 DRAM 가격까지 계속 하락 중인 걸 감안해 볼 때 한동안 증시가 살아나긴 힘들 거예요.”
“저 역시 그렇게 생각합니다.”
걱정스러운 표정을 짓는 최호근 부장을 보며 석원이 말했다.
“이럴 때는 잠시 시장을 관망하면서 다음 상승 사이클을 기다리는 것도 좋은 방법이겠죠.”
“맞는 말씀입니다.”
최호근 부장은 고개를 끄덕여 동의하곤 농담처럼 덧붙였다.
“그나저나 참 신기하군요. 사장님의 말을 듣고 있으면 여의도 바닥에서 수십 년을 구른 고수와 대화하고 있는 느낌이 가끔 듭니다.”
나이에 걸맞지 않은 노련함은 최호근 부장마저 감탄할 정도였다.
“하하. 칭찬으로 받아들일게요.”
내심 뜨끔한 석원이 어색한 미소를 지었다.
“참. 여권은 가지고 있어요?”
자연스럽게 화제를 돌리자 갑작스러운 물음에 살짝 의아한 표정을 지으며 최호근 부장이 대답했다.
“예. 있습니다.”
88 서울 올림픽 이후로 해외여행 전면 자유화가 실행되고 한국의 경제 수준이 높아지면서 해외여행 붐이 일어 가깝고 경비가 싼 동남아를 다녀오는 사람들이 많았다.
‘오죽했으면 신문과 방송에서 폭증하는 해외여행을 경상 수지 적자의 이유 중 하나로 꼽을 정도니 말을 다했지.’
석원은 짧게 떠오른 생각을 지우고는 최호근 부장을 보며 말했다.
“잘됐네요. 얼마 뒤에 미국으로 장기 출장을 떠날 예정인데. 그때 자금운용부 부서원들도 같이 데려갈까 해요.”
전혀 생각지도 못한 이야기에 최호근 부장이 눈을 동그랗게 떴다.
“저희 부서원들을 전부 다 말씀이십니까?”
“그래요. 내가 개인적으로 뉴욕에 따로 자금 운용사를 하나 운용 중이라는 건 지난번에 이야기한 적이 있죠.”
“예.”
최호근 부장이 고개를 끄덕였다.
“성과를 초과 달성해줬으니 포상도 겸해서 세계 금융의 중심지라는 월스트리트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직접 보고 느끼는 시간을 가졌으면 해요.”
증권맨에게 월스트리트는 꿈이자 최종목표와도 같은 거였기에 최호근 부장은 상기된 얼굴로 두근거리는 마음을 감추지 못했다.
“부서 전체가 자리를 비우게 되면 그동안 업무를 전혀 할 수 없을 텐데요.”
그러면서도 살짝 걱정스런 목소리로 말하자 석원이 어깨를 으쓱였다.
“포지션을 다 정리한 상태라 딱히 바쁜 일은 없잖아요.”
“그건 그렇습니다만.”
바쁜 일이 없는 정도가 아니라 석원의 지시로 개인 트레이딩까지 중단한 상태였기에 다들 그냥 할 일 없이 자리만 지키고 있을 뿐이었다.
처음엔 팀원들도 일이 없으니 여유로워서 좋다며 환호했지만 그것도 하루 이틀이지, 이젠 다들 좀이 쑤셔서 죽으려고 했다.
‘아니. 정 과장은 예외지.’
원래 농땡이 부리기 좋아하는 정환엽 과장은 요즘 아주 살판이 난 모습이었다.
콧노래까지 부르며 싱글벙글 웃고 다니는 탓에 뒤통수를 후리고 싶은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그래. 사장님 말씀이 맞아.’
어차피 당분간 시장에서 발을 빼고 있기로 했기에 그냥 시간만 허비하는 것보단 미국을 다녀오는 게 훨씬 나은 일일 터였다.
아니, 나은 정도가 아니라 반드시 붙잡아야 할 좋은 기회였다.
아무리 해외여행이 편해졌다고 해도 태평양을 건너 미국에 가는 것 자체가 쉽지 않은 일인 데다 무엇보다 월스트리트 트레이더들이 거래하는 모습을 생생하게 직접 눈으로 보고 느낄 수 있다니 생각만 해도 가슴이 들떴다.
‘그것도 개인 사비가 아니라 회삿돈으로 말이야. 절대 놓칠 수 없지.’
딱히 정환엽 과장이 놀고먹는 꼴이 보기 싫어서 그런 건 절대 아니었다.
최호근 부장은 살짝 고개를 숙이며 기꺼이 석원의 제안을 받아들였다.
“좋은 기회를 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그러자 석원이 미소 지으며 말했다.
“최선을 다해 열심히 일해준 보상이라고 생각해요. 그리고 월스트리트를 경험한 팀원들이 시야가 넓어져서 돌아온다면 회사에도 이득이지 않겠어요.”
“뭐든 하나라도 더 배워 올 수 있도록 하겠습니다.”
“연수라고 하지만 포상 휴가의 의미도 있으니까. 너무 무리하진 말고 그냥 가벼운 마음으로 구경을 하고 온다고 생각해요.”
“그래도 비싼 돈을 쓰고 미국까지 가는 건데 뭐라도 건져와야 되지 않겠습니까.”
딱히 강요할 생각은 없지만 뉴욕에 가서 얼마나 알찬 시간을 보내느냐 하는 건 각자의 마음가짐과 역량에 달린 거였기에 석원은 더 이상 말을 하지 않았다.
“그런데 미국에는 얼마나 계실 생각이십니까?”
최호근 부장이 들뜬 얼굴로 물었다.
“글쎄요. 정확한 건 가봐야 알겠지만 일단 한 달 정도는 머물 예정이에요.”
“그럼 저희들은…….”
예상보다 긴 체류 기간에 최호근 부장이 살짝 말끝을 흐렸다.
“중간에 변동이 있을 수 있겠지만 최소 한 달은 머문다고 생각하고 준비를 하도록 해요.”
“하. 한 달이나요?”
놀란 얼굴로 되묻자 석원이 턱을 쓰다듬던 손을 멈추고 미안한 듯 말했다.
“아. 최 부장은 가족이 있어서 그렇게 오래 집을 비우는 건 힘들 수도 있겠네요.”
“아닙니다! 오히려 좋습니다!”
“……?”
다급하게 양손을 흔드는 걸 보고 석원이 의문을 띄웠다.
“흠흠.”
머쓱한 얼굴로 짧게 헛기침을 한 최호근 부장이 곧장 말을 덧붙였다.
“가족한테는 미안하지만 회사 업무의 일환이니까 이해해 줄 겁니다.”
최호근 부장은 혹시라도 자신을 빼놓고 갈까 봐 간절한 눈빛으로 그를 쳐다봤다.
“아. 그래요.”
회귀 전에 가정을 꾸려봤던 석원이었기에 왜 저런 표정을 짓는지 금방 이해가 됐다.
석원은 최호근 부장의 애타는 마음을 읽고 피식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비자는 회사에서 단체로 신청할 거니까 그렇게 알고 필요한 서류를 준비해둬요. 우선 부서원들한테 여권부터 전부 발급해 놓으라고 말해놔요.”
“예! 알겠습니다.”
최호근 부장이 환한 얼굴로 어느 때보다 힘차게 대답했다.
잠시 후 사장실을 나와 한 손에 결재판을 들고 사무실로 돌아가는 최호근 부장의 발걸음이 아주 가벼웠다.
한 달 동안 집을 벗어나 자유로운 생활을 마음껏 즐길 생각을 하니 저도 모르게 헤실헤실 웃음이 지어지고 휘파람이 절로 나왔다.
“후후.”
그렇게 웃으며 사무실로 들어선 최호근 부장의 눈에 오늘도 어김없이 농땡이를 부리고 있는 정환엽 과장의 모습이 보였다.
아예 구두까지 벗어두고 삼선 슬리퍼를 신은 발을 까딱거리면서 의자에 앉아 컴퓨터로 지뢰찾기 게임을 하고 있는 걸 보고 있으니 여기가 회사인지 저놈 집 안방인지 모를 정도였다.
평소 같으면 당장 미간을 찡그리고 결재판으로 뒤통수를 한 대 때린 뒤 잔소리를 퍼부었겠지만 오늘은 그러지 않았다.
뒤로 다가간 최호근 부장은 허리를 숙이며 결재판을 든 팔을 정환엽 과장의 어깨에 척하고 올려놨다.
“재밌냐?”
“히익!”
헉하고 숨소리를 삼킨 정환엽 과장이 얼른 마우스를 움직여 게임창을 닫았다.
“부. 부장님!”
정환엽 과장은 말을 더듬거리면서 황급히 변명을 늘어놨다.
“노. 놀고 있던 거 아닙니다! 진짜 조금 전까지 열심히 일하고 있었는데 머리 식힌답시고 딱 한 판한 거뿐이에요!”
하는 꼴을 보니 딱 한 판이 아니었던 거 같지만 최호근 부장은 아무려면 어떻냐는 기분으로 너그럽게 대꾸했다.
“포지션을 다 정리해서 당장 급하게 할 일도 없는데 뭐 그럴 수 있지. 이런 때가 아니면 우리가 언제 여유를 부려보겠냐.”
“진짭니다, 믿어주십쇼…… 예?”
정환엽 과장이 멍청한 표정으로 눈을 깜빡였다.
과장씩이나 돼서 부하 직원들 앞에서 모범은 못 보이고 대체 뭘 하는 거냐고 또 한바탕 불호령이 떨어질 줄 알았는데 너무 뜻밖의 반응이라 할 말을 잃어버렸다.
놀란 건 다른 직원들 역시 마찬가지였는데 오늘은 남색 투피스 정장을 입고 가슴께에 브로치를 달아 멋을 부린 홍재희가 유석현을 보며 낮은 목소리로 속삭였다.
“부장님이 왜 저러시죠.”
“그러게요. 정 과장님 농땡이 부리는 걸 코앞에서 보고 그냥 넘어갈 분이 아닌데.”
둘 다 이상하다며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정환엽 과장도 똑같은 생각을 한 듯 벌떡 의자에서 일어나더니 한쪽 손을 뻗어 최호근 부장의 이마에 손을 올렸다.
“부장님. 혹시 어디 몸이라도 안 좋으십니까?”
“뭐?”
“진짜 뭐라도 잘못 먹으신 건…… 아니면 머리를 세게 부딪쳤다거나.”
그러자 최호근 부장이 결재판으로 정환엽 과장의 손을 찰싹 쳐내며 인상을 썼다.
“뭔 소리야.”
“평소에 안 하던 행동을 하시니까 그러죠. 사람이 갑자기 바뀌면 갈 때가 다 된 거라던데!”
“가긴 어딜 가 이 녀석아!”
눈썹을 치켜올린 최호근 부장이 괘씸하다는 듯 그를 째려봤다.
“이 자식이 멀쩡한 사람을 보내려고 그러네. 아주 매를 벌어요. 벌어.”
그러자 정환엽 과장이 오히려 안도한 표정을 지으며 가슴을 쓸어내렸다.
“이제 우리 부장님 맞는 것 같네. 그러게 왜 어울리지 않게 너그러운 상사 흉내를 내고 그러십니까.”
“이게 정말!”
최호근 부장이 손에 든 결재판으로 정환엽 과장의 어깨를 후려쳤다.
“아. 아파요!”
“아프라고 때리는 거야. 이놈아!”
그렇게 평상시처럼 정환엽 과장과 한바탕 투닥거린 최호근 부장은 몸을 돌려 부하 직원들을 둘러보면서 손뼉을 쳤다.
“자. 잠깐 주목!”
시선이 한데 모인 것을 확인한 최호근 부장이 큰소리로 물었다.
“여권 없는 사람 손 들어봐.”
그러자 홍재희와 유석현이 살짝 손을 들었다.
“저요.”
“저도 없습니다.”
그때 정환엽 과장이 그 새를 참지 못하고 촉새처럼 끼어들었다.
“갑자기 여권은 왜 물으시는데요?”
최호근 부장은 이맛살을 대뜸 찌푸렸다가 이내 한숨을 쉬며 중얼거렸다.
“어휴. 좋은 날 내가 참아야지.”
그런 반응에 궁금증이 더 커졌는지 정환엽 과장이 고개를 갸웃거리며 연신 재촉했다.
“정말 왜 그러시는 건데요? 뜬금없이 여권 조사를 하시니까 궁금하잖습니까.”
“넌 여권 있냐?”
“당연히 없죠.”
당당한 대답에 최호근 부장이 더욱 골치 아프다는 표정을 지었다.
“쟤들은 그렇다고 쳐도 넌 여태 여권 하나 안 만들어두고 뭐했어.”
“딱히 외국에 나갈 일도 없는데 비싸게 돈을 들여서 왜 만들어요.”
하긴 틀린 말은 아니었기에 최호근 부장이 입맛을 다시곤 부하 직원들을 둘러봤다.
“암튼 다들 내일 당장 여권부터 만들도록 해.”
“네?”
“갑자기요.”
웅성거리는 틈을 타 정환엽 과장이 재빨리 물었다.
“여권은 왜요. 저희 단체로 외국이라도 나갑니까?”
최호근 부장은 자꾸 부담스럽게 들이대는 정환엽 부장의 얼굴을 밀어내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상황에 따라 더 길어질 수는 있는데. 일단 한 달 일정으로 사장님을 따라 뉴욕으로 연수를 가게 됐어.”
말을 하기 무섭게 다들 깜짝 놀란 표정을 지으며 떠들어댔다.
“와 뉴욕이요!”
“진짜예요? 세상에. 진짜 미국에 가는 거예요!”
정환엽 과장도 눈을 동그랗게 뜨더니 믿기지 않는 듯 되물었다.
“회사 근처에 있는 뉴욕 호프가 아니라 진짜 미국, 그러니까 아메리카에 있는 뉴욕을 간다고요?”
“그래. 사장님이 그동안 다들 고생했다고 포상 휴가를 겸해서 보내주시는 거니까 감사하게 생각해.”
농담이 아니라 진짜라는 걸 알게 된 직원들은 다들 반색하며 기뻐했다.
“뉴욕이라니! 저 해외여행은 처음이에요!”
“나도요.”
“휴가로 뉴욕을 가다니.”
“크으. 역시 우리 사장님은 정말 화끈하시다니까!”
다들 좋아서 어쩔 줄을 몰라하는 와중에 정환엽 과장 혼자 심각한 표정을 지었다.
“부장님. 매우 중대한 문제가 있습니다.”
“보나마나 또 쓰잘데기 없는 거겠지.”
“아뇨. 진짜 중요하다니까요?”
“그래 그래. 뭔데?”
정환엽 과장이 턱에 손을 괴면서 가라앉은 목소리로 말했다.
“뉴욕 맛집은 대체 어떻게 찾아야 할까요.”
“…….”
“여행은 역시 먹는 게 제일 중요한데. 아 그리고 하루에 한 끼는 꼭 김치를 먹어야 돼요. 김치 없으면 느끼한 게 안 내려가서.”
최호근 부장은 진심으로 이놈을 조져야 할지 말야아 할지 고민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