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olden Spoon Investment Portfolio RAW novel - Chapter (301)
금수저 투자백서 301화(301/308)
301. 그럼 뉴욕에서 보도록 하죠.
11월 5일 오전 10시 30분, 강원도 인제군 북면 용대리 창바우 마을 인근 야산.
급격히 떨어진 날씨에 칼바람이 매섭게 불어오는 가운데 위장복을 입은 일단의 군인들이 자동소총으로 무장한 채 조심조심 엄폐물을 이용해 가면서 가파른 산비탈을 오르고 있었다.
바로 같은 날 새벽에 보름 넘게 행방이 묘연하다가 아군 매복조에 걸려 교전을 벌이고 도주한 북한 무장공비 잔당을 추격 중인 특공 연대 병력과 특전사 병사들이었다.
을지부대 수색중대원인 원기훈 상병은 안 그래도 험한 산비탈을 사주 경계까지 하면서 올라가려니 숨이 턱까지 차올랐다.
“헉헉. 빌어먹을 공비 새끼들.”
너무 힘들어 입에서 절로 욕이 튀어나왔다.
그런 와중에도 원기훈 상병은 언제든지 사격할 수 있도록 손가락을 방아쇠에 건 채 사방을 경계하는 걸 늦추지 않았다.
이른 아침에 벌어진 교전에서 기무부대 장교들이 저격을 당해 여러 명의 사상자가 발생했고, 바로 두세 시간 전에도 아군 병사 6명이 부상을 입고 후송됐기에 긴장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자신도 죽거나 다칠지 모른다는 불안감이 없다면 거짓말이겠지만 그것보다는 여기서 조금만 가면 휴전선이었기에 무장공비들을 또다시 놓친다면 지금까지 희생된 수많은 전우들의 복수를 해줄 수 없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다들 독이 바짝 올라 있었다.
원기훈 상병 역시 마찬가지였는데 특히나 직전에 있었던 교전에서 동기가 허벅지에 총상을 입은 탓에 더욱 복수심을 불태웠다.
잎이 다 떨어져 앙상한 가지를 드러낸 나무들 사이로 총구를 앞으로 내민 채 천천히 전진하고 있을 때.
조금 떨어진 바위 옆 가시덤불 아래 시커먼 무언가가 움직이는 것이 눈에 잡혔다.
“어?!”
눈을 크게 뜬 원기훈 상병이 뭐라고 소리를 치려는 것과 동시에 가시덤불에 숨어 있던 무장공비가 M-16 자동소총을 발사했다.
타타탕!
“컥!”
첫 번째와 두 번째 탄환은 옆에 있는 소나무에 박혔지만 마지막 한 발이 원기훈 상병의 몸을 꿰뚫었다.
가슴팍을 때리는 강한 충격에 그는 신음을 내뱉으며 뒤로 쓰러졌다.
“적이다!”
“쏴!”
타탕! 타타탕! 타탕! 탕!
화들짝 놀란 아군 병사들은 엄폐물을 찾아 민첩하게 움직이면서 바로 대응 사격을 가했다.
“씨팔! 원 상병이 당했다.”
“11시 방향에 있는 나무덤불 쪽이야. 놓치지 말고 다 죽여 버려!”
바로 앞에서 전우가 당하는 걸 본 국군 병사들은 거의 눈이 뒤집혀서는 마구 자동소총을 갈겨댔다.
콩 볶는 듯한 총성과 함께 수류탄 터지는 폭음이 조용하던 산골짜기를 뒤흔들며 요란하게 가득 울려 퍼졌다.
피슝! 피슝! 타타탕! 탕! 탕!
꽈아앙!
섬뜩한 바람 소리를 내며 총탄이 격렬하게 빗발치는 가운데 적이 쏜 총탄에 맞아 처음 쓰러진 원기훈 상병은 흙바닥에 널브러진 채 거칠게 호흡을 내뱉고 있었다.
“허어억. 헉.”
숨을 쉴 때마다 가슴 쪽에서 극심하게 느껴지는 고통에 얼굴을 찡그린 원기훈 상병은 이대로 죽을지도 모르겠다는 불길한 생각이 들었다.
순간 머릿속에서 그리운 부모님의 얼굴과 상병 말호봉을 달 때까지 고무신을 거꾸로 신지 않고 기다려준 애인의 얼굴이 주마등처럼 떠오르자 감정이 부글부글 끓어올랐다.
“젠장할!”
이대로 생을 끝마치기엔 너무 억울했다.
욕설을 내뱉는 그의 두 눈에서 뜨거운 눈물이 줄줄 흘러내렸다.
하필이면 오늘따라 유달리 구름 한 점 없이 맑고 화창한 하늘이라 더욱 살고 싶다는 마음이 간절하게 들었다.
그때 흙바닥에 누워 있는 원기훈 상병의 머리 위로 그림자가 드리워지면서 선임인 중대 위생병이 얼굴을 들이밀었다.
“원기훈 괜찮아? 어딜 맞은 거야.”
피가 나오는 걸 보면 총상 부위가 어딘지 모르겠냐고 울컥 짜증이 치솟았지만 어쨌든 자길 도와주러 온 사람이었기에 힘겹게 더듬거리며 말했다.
“가…… 가슴을 맞은 것 같습니다.”
그러자 위생병이 여전히 빗발치고 있는 총탄을 피해 상체를 최대한 숙인 채 능숙한 손길로 입고 있던 방탄복을 벗겼다.
안에 입은 전투복 야상과 상의까지 전부 벗겨낸 위생병이 이내 놀란 표정을 지었다.
“응?!”
“마…… 많이 심각한 겁니까?”
그걸 본 원기훈 상병이 누운 채 울먹거렸다.
위생병은 고개를 돌려 눈물범벅이 된 얼굴을 보더니 피식 웃었다.
“그래. 인마. 국군 병원에 입원해서 몇 달은 탱자탱자 놀 수 있었는데 고작 이 정도 상처로는 힘들겠네.”
사람이 죽어가는데 웃음이 나오냐 싶어 열이 뻗친 원기훈 상병이 이를 꽉 악물었다.
“지금 죽게 생겼는데 그런 농담이 나오십니까!”
“발끈하는 걸 보니 멀쩡하네.”
위생병이 킬킬 웃으며 다시 그의 부상 부위를 살폈다.
“시퍼렇게 멍이 들고 가슴뼈에 금이 가거나 부러진 것 같지만 관통상 같은 건 아니니까 염려하지 마.”
“예? 부. 분명히 총에 맞았는데 어떻게.”
얼떨떨한 표정으로 묻자 위생병이 옆에 벗어둔 방탄복을 턱으로 가리켰다.
“저게 널 살렸어. 중대에 있던 구형 방탄복을 입고 나왔으면 최소한 중상이었을 텐데 운이 좋은 줄 알아.”
그러고 보니 작전에 투입되기 직전 어디서 지원물품이 들어왔다며 장비가 바뀌었던 게 기억났다.
베트남전에 사용했다던 구형 방탄복 대신 방탄 플레이트가 들어간 미군이 쓰는 최신 방탄복을 지급 받아 착용하고 나왔는데 설마 그게 자신의 목숨을 살릴 줄이야.
“그, 그럼 저 안 죽는 겁니까? 우리 미혜 다시 볼 수 있는 거예요?”
“미혜가 누군데. 애인이냐?”
“크흡. 예.”
코를 쿨쩍이며 대답하자 위생병이 그 와중에도 애인 생각이 났냐며 놀려댔다.
“그래. 하지만 갈비뼈가 부러졌을 수도 있으니까. 움직이지 말고 그대로 누워 있어.”
여전히 교전이 계속 이어져 날카로운 총성과 폭음이 연달아 울리고 있었지만 꼼짝없이 이대로 죽는 줄 알았던 원기훈 상병은 살았다는 기쁨에 눈물을 흘렸다.
* * *
[합동참모본부는 어제 오후 5시를 기해 지난 9월 18일 강릉지역으로 침투한 북한 무장공비 소탕 작전에 투입됐던 모든 작전부대를 원대 복귀시켜 정상적인 부대 임무를 수행토록 지시했다고 발표했습니다.이로써 북한 상어급 잠수함 발견으로 시작된 무장공비 소탕 작전은 공비침투 51일 만에 사실상 종료되게 됐습니다.
이번 소탕 작전 과정에서 북한 무장공비는 13명이 사살되고 11명이 피살, 1명이 생포된 반면 아군은 대령급 등 장교 2명과 하사관 1명 그리고 사병 2명 등 모두 5명이 전사하고 19명이 부상하는 피해를 입었습니다.
한편 합참은 공비 잔당 가운데 아직 행방이 확인되지 않은 한 명은…….]
넥타이를 매며 출근 준비를 하다 마침 뉴스가 나오는 걸 보고 리모컨으로 소리를 키운 석원이 안도한 표정을 지었다.
“드디어 작전이 종료됐네.”
좌초한 잠수함에 타고 있던 13명의 무장공비 가운데 아직 한 명을 잡지 못했지만 그동안 소탕 작전을 벌인다고 국민들이 감수해야 했던 불편과 경제적 피해를 생각한다면 이쯤에서 마무리하는 것이 맞았다.
이어서 나온 아군 사상자 숫자를 보며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얼마나 도움이 될지 걱정했었는데. 원래 역사보다 전사를 둘이나 줄일 수 있어서 정말 다행이야.”
신형 방탄복을 구입해서 한국으로 공수해 오는 데 수천만 달러를 쓴 것에 비해 두 명밖에 살리지 못했으니 수지타산이 안 맞는다고 할 수도 있었다.
하지만 사람 목숨은 간단하게 돈으로 계산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윤기훈 상무를 통해 지원해준 신형 방탄복 덕분에 목숨을 잃을 뻔한 병사 여러 명이 살 수 있었다는 감사 인사를 국방부에서 해왔다는 이야기를 듣고 석원은 돈을 쓰길 정말 잘했다고 생각했다.
“무장공비 소탕 작전도 종료됐으니 한결 마음 편하게 미국으로 갈 수 있겠어.”
그렇게 중얼거렸을 때 테이블 위에 올려둔 휴대폰이 울렸다.
액정에 뜬 번호를 확인하고 석원이 전화를 받자 곧바로 랜든의 목소리가 들렸다.
[좋은 아침입니다. 보스.]“뉴욕은 밤 아니에요?”
[그래도 서울은 아침이지 않습니까.]능청스러운 대답에 석원이 피식 웃었다.
“목소리가 밝은 걸 보니까 애플과 협상이 잘 됐나 보네요.”
[예. 5년 만기에 이자는 8%를 받는 조건으로 2억 달러어치의 CB를 발행하기로 스티브 놀런과 최종 합의를 했습니다.]스티브 놀런은 자신이 원하던 대로 최대 주주가 된 석원의 지지를 받아 몇 달 전 열린 이사회에서 제프 콜리어를 밀어내고 애플 CEO로 복귀했다.
그러자 석원은 약속했던 대로 재무 상황이 어려운 애플에 2억 달러를 빌려주기로 해 다시 돌아온 스티브 놀런에게 힘을 실어줬다.
“만기 때 얼마에 주식 전환을 할 수 있도록 했어요?”
전환사채, 즉 CB(convertible bond)는 채무자가 원할 경우 현금이 아닌 주식으로 바뀔 수 있는 권리를 가진 채권이었다.
당연히 애플이 지금부터 얼마나 화려한 부활을 하게 되는지 너무나도 잘 알고 있던 석원은 처음부터 무조건 CB를 주식으로 바꿀 생각을 하고 있었다.
그러다 보니 이자보다는 전환 가격이 더 중요했다.
[5년 뒤에 주당 7달러에 주식으로 전환할 수 있습니다.]스티브 놀런이 석원한테 주당 15달러에 팔았던 애플 주가는 그동안 계속 내리막길을 이어가다가 급기야 파산 위기에 몰리면서 주당 8달러까지 떨어져 있었다.
사실 그의 눈에는 황금 덩어리가 휴지 가격에 거래되고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스티브 놀런이 회사를 재정비한 뒤에 새로운 애플 컴퓨터를 출시하면 때마침 부풀어 오를 IT 버블을 타고 애플 주가도 고공행진을 이어갈 터였다.
‘여기에 비장의 카드인 MP3 플레이어까지 내놓으면 애플 주가는 말 그대로 불을 뿜게 될 테지.’
5년 뒤 몇 백%가 올라 있을 애플 주식을 고작 주당 7달러라는 헐값에 바꿀 수 있는 권리를 확보한 것에 석원은 휴대폰을 귀에 댄 채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었다.
“수고했어요.”
[아닙니다. 벼랑 끝에 몰려 있는 애플의 상황을 생각하면 더 조건을 후려칠 수 있었지만 적당한 선에서 합의하라는 보스의 말씀에 이 정도로 마무리를 지었습니다.]랜든은 살짝 아쉬운 기색이었다.
“앞으로 길게 보고 함께 갈 기업인데 서로 감정이 상해서 좋을 것이 없지 않겠어요. 이것만 해도 충분히 만족스런 조건이에요.”
[마음에 드셨다니 다행입니다.]대답한 랜든이 다시 밝은 목소리로 물었다.
[예정대로 이번 주에 뉴욕으로 오시는 겁니까?]“그래요. 이번에는 꽤 오래 머물게 될 것 같네요.”
[그러면 이렇게 통화를 한다고 밤잠을 줄이지 않아도 되니 저야 좋지요.]랜든의 농담에 석원도 웃으며 말을 받았다.
“참. 이쪽 직원들을 몇 명 함께 데려가는 건 알고 있죠?”
[물론입니다. 말씀대로 직원들이 지낼 숙소를 마련해뒀고 앤드루한테도 머무는 동안 월스트리트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잘 알려주라고 말해놨습니다.]“앞으로 한국에서 트레이딩을 전담할 인재들이니까 신경 써서 가르치라고 해요.”
[알겠습니다.]“그럼 뉴욕에서 보도록 하죠.”
통화를 끝내고 휴대폰을 귀에서 뗀 석원의 눈에 이제 한 달 밖에 남지 않은 1996년 탁상 달력이 들어왔다.
석원은 무겁게 가라앉은 눈동자로 달력을 지그시 바라보다가 복잡한 심경을 담아 중얼거렸다.
“엄청난 쓰나미가 아시아를 덮칠 날이 정말 얼마 안 남았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