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olden Spoon Investment Portfolio RAW novel - Chapter (302)
금수저 투자백서 302화(302/308)
302. 저기 저희가 타고 갈 비행기가 보이네요.
“속옷하고 와이셔츠는 열 벌씩 챙겨서 큰 트렁크 안에 들어있고. 혹시 몰라서 정장도 예비로 하나 더 넣어뒀어요.”
“어. 그래.”
아내의 말소리에 최호근 부장이 양치질을 하고 있다가 욕실 문 사이로 머리만 삐죽 내밀어 대답했다.
앞치마를 한 아내는 거실에 대형 여행용 캐리어를 펼쳐 놓고 새로 사서 포장도 뜯지 않은 와이셔츠를 차곡차곡 쌓으며 계속 말을 이었다.
“귀찮다고 두세 번씩 입지 말고 숙소에 돌아오면 꼭 세탁기에 넣고 빨면서 항상 새 걸로 챙겨 입어요. 알겠죠?”
“에이. 이틀 정도는 괜찮은데. 딱히 냄새도 안 나.”
“냄새가 안 나긴.”
아내가 그럴 줄 알았다는 듯 눈을 흘겼다.
“구겨지고 때 묻은 와이셔츠를 입고 다니면 사람이 얼마나 추레하게 보이는지 알아요.”
뾰족하게 올라간 눈초리에 최호근 부장이 입맛을 다시며 대꾸했다.
“알았어. 매일 갈아입으면 되잖아.”
“혼자 가는 것도 아니고 부하직원들하고 같이 떠나는 해외 출장인데. 흐트러진 모습을 보이면 안 될 거 아니에요.”
“거 참. 알았다고. 내가 뭐 열 살 먹은 아이야.”
“애면 시키는 대로 말이라도 들으니까 차라리 낫지.”
괜히 여기서 더 대꾸했다간 잔소리가 길어진다는 걸 알았기에 최호근 부장은 대충 고개를 끄덕이고 흘려넘겼다.
“세탁 잘하고 깔끔하게 하고 다닐 테니까 염려하지 마.”
영 미덥지가 않은 태도였지만 멀리 태평양 건너 미국으로 장기 출장을 가는 날인데 괜히 기분을 상하게 해 봤자 좋을 게 없을 것 같았다.
결국 아내도 이쯤에서 잔소리를 그만두곤 짐을 마저 챙기며 혹시 빠진 것이 없나 다시 확인했다.
캐리어 뚜껑을 닫고 지퍼를 잠근 뒤 바퀴를 굴려 아파트 현관에 가져다 놓자 때마침 최호근 부장이 안방에서 옷을 갈아입고 나왔다.
“근데 정말 캐리어 하나로 되겠어요? 한 달 일정이지만 상황에 따라서 더 늘어날 수도 있다면서요.”
걱정스럽게 묻는 아내와 달리 최호근 부장이 대수롭지 않게 대답했다.
“무슨 이민을 가는 것도 아니고. 이걸로도 충분해.”
최호근 부장은 괜찮다고 했지만 아내 눈에는 짐을 너무 작게 챙겨가는 것 같아 자꾸 마음에 걸렸다.
사실 원래는 같은 사이즈의 대형 캐리어를 하나 더 사놨는데 짐이 너무 많다는 최호근 부장의 불평에 어쩔 수 없이 반으로 줄인 거라 아내는 더욱 걱정됐다.
“편하게 입을 수 있는 옷하고 속옷이랑 양말 좀 몇 개 더 챙겨갈래요? 틈새에 끼워 넣으면 어떻게든 들어갈 것 같은데.”
“이 정도면 됐어. 그리고 정 부족하면 거기서 사서 써도 되잖아.”
“아니면 입맛이 안 맞을 수도 있으니까 고추장이랑 김치라도.”
“그런 거 잘못 가져갔다가 공항에서 반입이 안 된다고 하면 더 골치 아프니까 그냥 놔둬.”
뭐든 하나라도 더 챙겨 주려고 고민하는 아내의 모습을 보니 저러다 진짜 캐리어가 터질 때까지 쑤셔 넣을 것만 같았다.
“출장 때문에 연말을 나 없이 애들하고만 보내야 하는데 미안해서 어떻게 해.”
최호근 부장이 얼른 화제를 돌리자 아내가 콧잔등을 살짝 찡그렸다.
“뭐 혼자 놀러 가는 것도 아니고 일 때문에 미국에 가는 거니까 어쩔 수 없죠.”
“으응. 그래. 어쩔 수 없지. 이게 다 회사 때문이라니까.”
사실 집에서 벗어나 자유 시간을 가지게 될 걸 생각하면 자꾸만 웃음이 새어 나오려고 했지만 최호근 부장은 혼신의 힘을 발휘해 겨우 눌러 참았다.
대신 미안함 가득한 얼굴로 눈썹을 늘어뜨리며 말했다.
“대신 돌아올 때 선물 사 올 테니까 필요한 거 있으면 말해.”
“무슨 선물이에요. 그냥 다치지 말고 무사히 잘 돌아오기만 해요.”
“비싼 것도 괜찮으니까 말해 봐.”
그러자 아내가 최호근 부장을 슬쩍 쳐다보더니 이야기를 했다.
“그러고 보니 같은 동 엄마들이 갈색병인가 하는 화장품이 그렇게 좋다던데…….”
“갈색병?”
“꼭 사 오라는 건 아니고. 근데 그게 주름도 없애주고 피부를 탱탱하게 만들어준다고 하더라고요. 면세로 구입하면 백화점보다 저렴하기도 하고.”
반짝거리는 아내의 눈빛을 보니 깜박하고 안 사왔다가는 한동안 아니 꽤 오랫동안 바가지를 긁힐 게 틀림없었다.
유부남답게 본능적으로 깨달은 최호근 부장은 어색하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좋다는데 당연히 사 와야지. 갈색병이라고 했지?”
“아이 참. 너무 비싸면 안 사와도 돼요. 브랜드 이름은 에스티로더인데 공항 면세점이나 백화점에 가면 있을 거예요. 그리고 이왕이면 제일 큰 용량으로 사 오는 거 알죠? 비싸도 그게 더 경제적이거든요.”
아내가 좋아하는 표정을 숨기지 않은 채 미리 준비해 둔 것처럼 술술 말을 해대는 걸 보고 최호근 부장이 속으로 헛웃음을 흘렸다.
‘이럴 줄 알았지. 그냥 흘려듣고 안 사면 큰일 날 뻔했네.’
사은품이나 샘플 같은 거 주면 꼭 다 챙겨오라는 아내의 말을 들으며 최호근 부장이 물었다.
“당신 화장품 말고 다른 건 또 필요한 거 없어?”
“참. 어제 애들이 부탁한 것들도 잊지 말고 꼭 사와야 돼요.”
“바비 인형 세트랑 워크맨 말이지.”
“그래요. 애들이 엄청 기대하는지 오늘 학교 가기 전에도 아빠한테 꼭 다시 말해달라고 신신당부를 하더라니까요.”
토끼 같은 두 아들과 딸을 떠올리며 최호근 부장이 대답했다.
“까먹지 않고 사 올 테니까 기다리고 있으라고 해.”
그러다 문득 벽에 걸린 시계를 쳐다본 최호근 부장이 자리를 털고 일어섰다.
“이제 슬슬 나가봐야겠어.”
“직원들은 공항에서 만나기로 했다고 그랬죠?”
“응.”
최호근 부장이 소파에 걸쳐둔 코트를 걸치며 고개를 끄덕거렸다.
코트 어깨 위를 손으로 털어주던 아내가 막 현관에서 배웅하려던 찰나 갑자기 생각났다는 것처럼 물었다.
“참. 여권하고 비자는 잘 챙겼죠?”
“물론이지.”
최호근 부장은 대답하며 안주머니에 손을 넣었다가 아무것도 잡히는 것이 없자 당황한 표정을 지었다.
“어?”
그러자 아내도 덩달아 눈을 동그랗게 떴다.
“없어요?”
“아니. 분명 여기에 있을 텐데…….”
가슴을 더듬거리던 최호근 부장이 헉 소리를 내며 황급히 안방으로 뛰어들어갔다.
“아차! 잘 챙겨놓는다고 안방 서랍에 넣어두고 꺼내는 걸 깜박했어.”
허둥대는 남편의 뒷모습을 보면서 아내가 양팔을 허리에 올리고 머리를 절레 흔들었다.
“저러니까 내가 물가에 내놓은 애처럼 걱정이 안 될 수가 없지.”
아내가 한숨을 푹 내쉬었다.
* * *
김포 국제공항 국제선 청사.
택시에서 내린 최호근 부장은 커다란 캐리어를 끌고 사람들로 붐비는 로비로 들어와서는 일행을 찾아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부장님!”
익숙한 목소리에 고개를 왼쪽으로 돌리자 정환엽 과장을 비롯한 직원들이 먼저 와서 모여 있었다.
“다들 일찍 왔네.”
캐리어를 끌고 다가간 최호근 부장이 미소 띤 얼굴로 말하자 평소보다 더 들떠 보이는 정환엽 과장이 히죽거리며 깐죽댔다.
“부장님이 제일 꼴찌라고요. 꼴찌.”
“나 참. 간만에 꼬투리 하나 잡았다 이거냐? 평소에 지금처럼 좀 일찍 다녀봐.”
쯧쯧 혀를 찬 최호근 부장이 손끝으로 정환엽 과장의 얼굴을 가리켰다.
“그리고 그 선글라스는 뭐냐?”
“으흠. 어떻습니까.”
정환엽 과장이 어깨를 으쓱거리며 선글라스를 살짝 치켜올렸다.
“좀 멋있어 보이죠. 딱 영웅본색에 나오는 주윤발 아닙니까?”
“주윤발 같은 소리하고 있네. 실내에서 누가 선글라스를 끼고 다녀. 쪽팔리니까 당장 벗지 못해?”
하지만 정환엽 과장은 최호근 부장의 구박에도 꿋꿋하게 버텼다.
“쯧쯧. 뭘 모르시네. 영화도 못 보셨어요? 미국 애들 보면 선글라스를 기본 아이템으로 장착하고 다니잖아요.”
“걔넨 미국 사람이고 넌 한국인이잖아.”
“저 오늘부터 명예 미국인 하기로 했습니다.”
“저런 미친놈…….”
최호근 부장은 머리가 아픈 듯한 손으로 이마를 짚고 신음했다.
“저놈하고 한 달 넘게 밤낮으로 붙어 있을 생각을 하니 벌써부터 골이 지끈거리네.”
그러자 함께 있던 홍재희와 유석현이 얼굴을 마주 보며 키득거렸다.
“두 분은 밖에 나와서도 똑같네요.”
“사이가 좋은 건지 나쁜 건지.”
어쨌든 오늘도 어김없이 정환엽 과장과 한바탕 투닥거린 최호근 부장이 일행을 모아놓고 목소리를 높여 물었다.
“다들 여권이랑 비자는 안 빠뜨리고 잘 챙겨왔지?”
“네.”
“물론입니다.”
홍재희와 유석현이 나란히 대답하자 정환엽 과장도 코트 안주머니에서 여권을 꺼내 들어 보였다.
“혹시 까먹고 올까 봐 어젯밤부터 껴안고 잤다니까요.”
헤헷, 하고 웃는 모습에 최호근 부장이 인상을 찡그리며 입맛을 다셨다.
“넌 그냥 여권을 빠뜨리고 오지 그랬냐.”
“와 너무하다. 저만 떨어뜨려 놓고 가시게요!”
서운하다는 듯 외치는 말에 최호근 부장은 아쉽다는 표정을 대놓고 드러내며 무언으로 긍정했다.
애들도 아니고 붙어만 있으면 투덕거리는 두 상사의 모습에 홍재희가 작게 한숨을 내쉬고 끼어들었다.
“부장님. 그런데 오늘 저희가 타고 갈 비행기가 뭔지 아세요?”
“글쎄. 나도 그냥 김포 공항으로 1시까지 오라는 이야기만 들어서 모르겠는데.”
그러자 홍재희가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
“기체 번호랑 출발 시간을 알아야 수화물을 부칠 수 있을 텐데 어쩌죠.”
“그 전에 항공권부터 발급받아야 되는 거 아닙니까? 사람이 이렇게 많은데 시간이 될지 모르겠네요.”
까딱 잘못하면 수속을 늦게 밟아 비행기를 놓칠 수도 있었으니 걱정이 될만도 했다.
바쁘게 움직이는 사람들 사이에서 대형 캐리어를 든 일행들만이 우두커니 서서 뭘 해야 할지 모르는 형국이었다.
결국 최호근 부장이 아무래도 안 되겠다는 듯 먼저 나섰다.
“비서실에 전화를 해볼 테니까 잠깐 기다리고 있어 봐.”
그러고는 공중전화 부스를 찾아 고개를 돌릴 때 누군가 다가와 말을 걸었다.
“안 늦게 시간에 맞춰 모두 오셨네요.”
몸을 돌려 쳐다보자 석원의 수행비서인 한지성이 회색 코트를 입고 다가오는 것이 보였다.
“한 대리.”
그렇지 않아도 공항에 도착했는데 어떤 비행기를 타야 할지 몰라 당황해하고 있던 최호근 부장이 반색했다.
한지성 대리는 가볍게 목례를 하곤 일행들이 가지고 있는 짐들을 눈으로 훑었다.
“짐은 그게 다 입니까?”
“티켓을 찾고 수화물을 부쳐야 하는데 타고 갈 비행기가 뭔지 몰라서 아무것도 못하고 있었다니깐.”
냉큼 나선 정환엽 과장의 말에 한지성 대리가 살짝 웃으며 말했다.
“그러실 것 같아 제가 왔습니다. 다들 절 따라오세요.”
그렇게 말하며 한지성 대리가 앞장서서 걸어가자 최호근 부장과 직원들도 주섬주섬 각자 짐을 챙겨 뒤를 따랐다.
특히 유일한 여직원인 홍재희는 무슨 챙겨갈 짐이 그렇게 많은지 자기 몸만 한 캐리어를 두 개나 가져와서 유석현이 하나를 대신 끌고 가줘야만 했다.
사람들로 붐비는 넓은 로비를 가로질러 한지성 대리를 따라가던 홍재희는 줄이 길게 늘어서 있는 항공사 데스크들을 그냥 지나쳐 가버리자 의아한 얼굴로 고개를 갸웃거렸다.
“저 한 대리님! 여기서 티켓팅을 해야 되는 거 아니에요?”
그러자 한지성이 항공사 데스크 쪽을 힐끗 쳐다보곤 가볍게 말했다.
“보통은 그런데 저흰 그럴 필요 없습니다.”
“네?”
“일단 가보시면 압니다.”
한지성이 입가에 묘한 미소를 띠고 앞으로 계속 걸음을 옮겼다.
홍재희뿐만 아니라 다른 일행들도 의아하긴 마찬가지였지만 일단 앞서가는 한지성을 쫓아 움직였다.
그대로 출국 심사를 받고 출국장으로 들어간 일행은 곧장 넓은 활주로가 보이는 주기장으로 나왔다.
“엥.”
“여기 진짜 맞아요?”
“저희 뭔가 바깥으로 그냥 나와 버린 것 같은데.”
다들 어리둥절해 하는 가운데 한지성 대리가 대기 중인 미니버스를 가리켰다.
“자. 이 버스를 타시면 됩니다.”
일단 짐을 가지고 올라타긴 했지만 출발한 미니버스가 주기장을 가로질러 가자 정환엽 과장이 더 참지 못하고 의문을 폭발시켰다.
“저기 한 대리. 지금 어딜 가는 가야?”
“비행기를 타러 간다고 말씀드렸지 않습니까.”
“네에? 다른 승객들은 어디 있는데요.”
홍재희의 물음에 한지성 대리가 미소를 지었다.
“다른 승객들은 없습니다.”
“?”
다들 그게 뭔 소리냐는 표정으로 한지성을 쳐다봤다.
최호근 부장이 뭐라고 물으려는 순간 한지성 대리가 한 손을 들어 왼편 창문을 가리켰다.
“저기 저희가 타고 갈 비행기가 보이네요.”
그러자 최호근 부장과 직원들이 일제히 고개를 돌려 한지성 대리가 가리킨 곳을 쳐다봤다.
“와아.”
노턴 블루와 크리스탈 화이트의 투톤 컬러로 동체가 도색되어 있는 미끈하게 잘 빠진 석원의 전용기가 세워져 있는 걸 본 홍재희가 눈을 크게 뜨고 감탄했다.
“저. 저걸 타고 간다고요?”
정환엽 과장이 말까지 더듬으며 흥분한 표정을 짓자 한지성 대리가 그런 반응을 보일 줄 알았다는 듯 담담하게 대꾸했다.
“네. 사장님이 소유하신 전용기를 타고 미국으로 갈 겁니다.”
항공기에 대해 잘 모르는 사람이 봐도 엄청 비싸 보이는 비즈니스 제트기가 석원의 개인 전용기라는 말에 최호근 부장과 직원들은 다시 한번 충격을 받았다.
게다가 곧 저기에 자기들도 타게 될 거라는 말을 듣자 너무 놀라 입을 다물지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