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olden Spoon Investment Portfolio RAW novel - Chapter (31)
금수저 투자백서 31화(31/231)
31. 대물이라니…… 설마…….
얼마나 굶었는지 어미 고양이는 사료를 두 그릇이나 게눈감추듯 먹어 치웠다.
배가 부르자 경계심이 조금 누그러졌는지 더 이상 하악질을 하지 않는 어미 고양이를 보면서 석원이 흐뭇하게 중얼거렸다.
“녀석. 그래, 밥 계속 얻어먹으려면 눈에서 힘 좀 빼라.”
데크 앞에 쪼그려 앉아 머리 위를 올려다보자 어느새 하늘에 구름이 잔뜩 끼어 있었다.
“오늘 밤에는 눈도 많이 내리고 추워진다던데 괜찮을까 몰라.”
걱정됐지만 괜히 어설프게 건드리면 어미 고양이가 혼자 도망쳐 버리거나 새끼들을 데리고 다른 곳으로 옮겨 갈 수도 있었기에 일단은 그냥 놔두기로 했다.
“목마르지?”
빈 사료 그릇에 물을 떠서 넣어주자 기다렸다는 듯 어미 고양이가 혀를 할짝거리며 물을 먹었다.
그 모습을 보면서 미소를 지은 석원은 이내 몸을 일으켜 집 안으로 돌아갔다.
한 손에 사료 봉지를 들고 현관문을 열고 들어설 때 앞치마를 한 군산댁이 종종걸음으로 다가와 말했다.
“안 그래도 부르러 가려던 참이었는데 마침 들어오시네요.”
“무슨 일이라도 있어요?”
“회장님께서 찾으세요.”
“아버지가요?”
의아하게 쳐다보자 군산댁이 재촉하며 말했다.
“서재에 계시니까 얼른 들어가 보세요.”
“…….”
형하고 길성호 비서실장과 함께 회삿일을 논의하고 있을 텐데 갑자기 자신을 왜 찾는 건지 석원은 머리를 갸웃거렸다.
‘뭐 들어가 보면 알겠지.’
“알았어요.”
석원은 가지고 있던 사료 봉지를 대신 군산댁한테 맡기고는 서재로 발걸음을 옮겼다.
똑똑.
가볍게 문을 노크하자 안에서 묵직한 박태홍 회장의 목소리가 들렸다.
“들어와라.”
문을 열고 서재 안으로 들어가자 소파에 박태홍 회장을 가운데 두고 형인 박진형 상무와 길성호 비서실장이 양쪽으로 마주 앉아 있었다.
“부르셨다면서요.”
“그래. 자리에 앉거라.”
석원은 박태홍 회장의 말에 따라 비어 있는 형 옆자리에 잠자코 엉덩이를 붙이고 앉았다.
“이제 너도 졸업하면 그룹에 들어와서 일할 테니 미리 알아두라고 불렀다.”
그 말에 길성호 비서실장과 형의 시선이 석원에게 모아졌다.
나중에 딴소리를 못 하도록 졸업 후 귀국해 그룹에 들어오는 걸 아예 공개적으로 못 박아 버리자 석원은 내심 입맛을 다셨다.
앞에 놓인 찻잔을 들어 향이 진한 커피를 한 모금 마신 박태홍 회장은 길성호 비서실장을 향해 눈짓했다.
“하던 이야기를 계속하지.”
“알겠습니다.”
길성호 비서실장은 시선을 바로 하고는 한쪽 손으로 금테 안경을 고쳐 썼다.
“알고 계시다시피 며칠 전 끝난 대선에서 패배하고 정계 은퇴를 선언한 김재춘 민평당 총재가 다음 달쯤 영국으로 연수를 떠날 계획이라고 합니다.”
“잠깐 외유를 나가는 것이 아니고?”
박태홍 회장의 물음에 길성호 비서실장이 바로 대답했다.
“예. 케임브리지 대학에 신청한 코스를 다 밟는다면 최소 반년은 영국에서 체류할 걸로 보입니다.”
“흐음. 짧은 시간은 아니군.”
작게 머리를 끄덕이며 박태홍 회장이 말을 이었다.
“무려 세 번이나 대권에 도전했다가 떨어지다니 참 속이 정말 쓰리겠어.”
“군사정권을 끝내고 처음으로 들어서는 민간 대통령을 뽑는 선거였기에 충격이 더 클 겁니다.”
“그럴 거야.”
특히나 선거 내내 박빙의 승부를 이어가다가 마지막에 분위기가 기울어지면서 패배했기에 더욱 충격과 허탈감이 컸다.
“민평당은 곧 새 총재를 선출하며 어수선한 당내 분위기 수습에 나설 걸로 보입니다.”
가만히 이야기를 듣고 있던 박진형이 입을 떼며 끼어들었다.
“이러면 김재춘 총재는 이제 완전히 정계에서 은퇴했다고 봐도 되지 않겠습니까.”
“글쎄 과연 그럴까.”
소파에 몸을 파묻은 박태홍 회장이 부정적인 반응을 보였다.
“인간이 쫓는 욕망 중에 가장 집착하는 것이 권력욕이다. 그런데 그걸 이렇게 쉽게 내려놓으려고 하겠냐.”
“하지만 다시는 정치를 하지 않겠다고 공개적으로 선언했고 아예 국외로 오랫동안 떠나 있는다고 하지 않습니까.”
박태홍 회장이 착 가라앉은 눈으로 반박하는 큰아들을 보며 말했다.
“손바닥 뒤집듯 바뀔 수 있는 것이 정치인의 말이다. 그리고 영국으로 간다지만 상황에 따라서 언제든지 돌아올 수 있는 것이지.”
“…….”
“무엇보다 외국에 나가 있고 새 총재를 뽑는다고 해도 동교동계가 당권을 장악하고 있는 이상, 민평당은 여전히 김재춘 총재의 영향력 안에 있다고 봐야될 거다.”
김재춘 총재가 거주하는 것이 마포구 동교동이었기에 그를 따르는 계파 정치인들을 동교동계라고 불렀다.
반대로 이번에 대통령이 된 김성규 당선인의 계파는 상도동계라고 했다.
“그럼 김재춘 총재가 다시 정계로 복귀하실 거라고 보시는 겁니까?”
큰아들의 물음에 박태홍 회장이 머리를 끄덕였다.
“뱉어놓은 말이 있으니 당분간은 거리를 두겠지만 분명 다음 대선 전까지 돌아올 거다.”
실제로 김재춘 전 총재는 1년이 채 되지 않아 거듭되는 민평당 중진들의 간청을 받아들여 영국에서 돌아와 정계 복귀를 했다.
그러고 15대 대통령 선거에 출마해서 네 번째 도전 끝에 결국 대권을 거머쥐었다.
이런 미래를 알고 있던 석원은 자신처럼 회귀한 것도 아닌데 앞날을 정확히 꿰뚫어 보는 박태홍 회장의 혜안에 내심 감탄했다.
‘역시 이만한 기업을 이끌어가는 사람의 안목은 다르네.’
하긴 무능력했다면 물려받은 회사를 재계 서열 30위의 대기업으로 성장시킬 수 없었을 터였다.
“어찌 됐건 그건 차후의 일이고 지금 당장 신경 써야 되는 건 새 대통령이지.”
박태홍 회장은 길성호 비서실장에게 시선을 주며 말했다.
“여의도에 인수위원회가 만들어질 예정이라고 했지.”
“그렇습니다. 한재준 전 장관이 인수위원장으로 내정돼 크리스마스 전에 인수위를 출범시킬 것으로 보입니다.”
박진형이 차분한 목소리로 말을 보탰다.
“간단하게 업무 보고를 받는 정도로 그친 현 대통령하고 달리 이번 인수위는 정부 업무는 물론이고 예산 집행까지 세세하게 파악할 계획이라고 하더군요.”
이야기를 들은 박태홍 회장은 살짝 눈썹을 찌푸렸다.
“어느 정도 예상은 했지만 시작부터 아주 빡빡하게 나오는군.”
“같은 여당이지만 32년 만에 군사 정권을 끝내고 군부 출신이 아닌 민간인 대통령으로 바뀐 것이니 정부 관료들의 군기를 잡으려는 것 아니겠어요.”
박진형의 말대로 어디든 우두머리가 교체되면 먼저 기강 잡기에 나서는 것이 보통이었다.
“하긴 3당 합당을 해서 원하는 대통령에 당선됐지만 굴러들어온 돌 입장일 테니. 기존에 기득권을 쥔 쪽들을 눌러놓을 필요가 있겠지.”
3당 합당은 국회의원 선거에서 과반수 확보에 실패한 집권 여당이 당시 제2, 3야당이었던 민의당과 공민당을 합당해 새롭게 공정당을 창당한 사건이었다.
이로 인해 충청과 TK, PK 지역에 기반을 둔 거대 여당이 탄생하게 됐다.
이번 대선에서 당선된 김성규 후보는 당시 제2야당이었던 민의당 총재였다.
‘독재 타도를 외치다가 어느 날 갑자기 반대편과 살림을 합친 꼴이 됐기에 이걸로 김성규 당선인이 엄청난 비난을 받았지.’
어찌 됐건 유력한 야권 대권 주자로 일평생 라이벌 관계였던 민평당 김재춘 총재한테 밀리던 상황에서 상대를 밀어내고 먼저 대통령이 됐으니 김성규 당선인 입장에서는 결정적인 신의 한 수였다.
단순한 기강 잡기 정도로 생각하며 인수위 문제를 넘어가려던 박태홍 회장은 큰아들과 나란히 앉아 있는 석원의 표정이 굳어 있는 걸 발견하고 슬쩍 물음을 던졌다.
“석원이 네 생각은 어떠냐.”
조용히 대화를 듣고 있던 석원은 갑작스러운 질문에 약간 당황하며 말했다.
“저요?”
“그래. 표정을 보니 마음에 걸리는 게 있는 것 같은데 편하게 이야기해봐.”
그러자 박진형과 길성호 비서실장도 고개를 돌려 석원을 쳐다봤다.
세 사람의 시선이 부담스럽긴 했지만, 석원은 이내 평정심을 되찾고 잠시 생각을 정리했다.
“짧은 소견이지만 상황을 너무 가볍게 보고 있는 것 같아요.”
큰 기대를 하지 않고 물었는데 뜻밖의 대답이 나오자 박태홍 회장의 얼굴에 흥미가 서렸다.
“그게 무슨 뜻이지?”
“정치 9단이라고 불리며 오랫동안 험난한 정치판에서 살아남은 김성규 당선인이잖아요. 그런데 단순히 기강 잡기나 하려고 이러진 않을 거예요.”
“그럼 다른 꿍꿍이가 숨겨져 있을 거란 뜻이냐?”
“예. 분명 그럴 거예요.”
석원이 확신에 찬 태도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옆에 있던 박진형이 살짝 미간을 찡그리더니 동생의 말에 제동을 걸었다.
“지난번보다 인수위 구성이 커지고 보고 내용이 많아진 것뿐인데 과한 거 아니야.”
길성호 비서실장 역시 따로 입을 열지는 않았지만, 박진형의 말에 동조하는 눈빛이었다.
“단순히 업무를 인수인계 받고 내년에 열릴 취임식을 준비하는 정도만 한다면 그렇겠지.”
소파에 둘러앉아 있는 세 사람을 보며 석원이 말을 이었다.
“이번 인수위의 진짜 목적은 정권 출범과 동시에 신속하게 정부 각 부처를 장악하기 위한 사전 정지작업을 하려는 것이 분명해요.”
“그거야 당연하지.”
박진형은 대수롭지 않다는 투로 대답했고 박태홍 회장 역시 뭔가 대단한 것이 있을 줄 기대했다가 실망한 기색이었다.
하지만 석원은 두 사람의 반응에 아랑곳하지 않고 사뭇 진지한 얼굴로 이야기를 계속했다.
“만약 큰일을 터트리기 전에 걸림돌을 치우는 거라면요?”
의미심장한 어조에 박태홍 회장이 눈썹을 모았다.
“큰일이라니. 당선인이 뭘 하려고 한다는 거냐.”
“조금 전 말씀하셨던 것처럼 합당을 하긴 했지만 김성규 당선인은 청와대와 기존 기득권층 입장에서 보면 굴러들어온 돌 같은 존재이지 않겠어요.”
석원은 계속 말해보라는 것처럼 지그시 쳐다보는 박태홍 회장과 눈을 맞췄다.
“이런 상황에서 당선인이 꼭두각시 대통령이 안 되려면 걸리적거리는 박힌 돌들을 먼저 말끔하게 치워 버리려고 할 거예요.”
“흠.”
논리적인 설명에 어느새 듣고 있던 박진형과 길성호 비서실장의 표정이 진지해졌다.
박태홍 회장 역시 한쪽 손으로 턱을 매만지면서 경직된 얼굴로 귀를 기울였다.
“그리고 오랫동안 함께 민주화 운동을 하던 동지들에게 배신자 소리까지 들으며 대통령이 된 만큼 취임과 동시에 뭔가를 보여주려고 하겠죠.”
“구체적으로 뭘 한다는 건지 짐작이 가는 부분이라도 있냐.”
“국민들이 가장 원하면서 동시에 큰 파급력을 줄 수 있는 거라면 숙군(肅軍)과 부정부패 척결일 거예요.”
“!”
박태홍 회장은 단번에 정색한 얼굴로 되물었다.
“숙군이라면 설마 하나회를 정리할 거라는 말이냐.”
“예.”
망설임 없는 대답에 박태홍 회장이 표정을 돌처럼 딱딱하게 굳혔다.
다른 두 사람 역시 마른침을 꿀꺽 삼키며 소스라치게 놀란 얼굴을 감추지 못했다.
12.12사태를 일으켜 지금까지 군사정권이 이어지도록 만든 것이 바로 군부 사조직인 하나회였으니 그럴 수밖에 없었다.
다들 충격에 빠진 것과 달리 석원은 태연하게 말했다.
“당선자가 대통령으로서 제대로 권한을 행사하려면 군권을 장악하고 있는 하나회를 제일 먼저 청산해야될 거예요.”
잠시 이야기를 곱씹어 본 박태홍 회장은 이내 심각해진 얼굴로 낮게 침음성을 내뱉었다.
“으음. 그대로 내버려 둔다면 언제 다시 쿠데타를 일으킬지 모른다는 불안감을 안고 가야될 테니. 충분히 그럴 수 있겠구나.”
“하지만 하나회가 순순히 숙청을 당하고 있을까요.”
너무나도 엄청난 이야기였기에 박진형의 목소리도 잔뜩 굳어 있었다.
“그렇다면 대통령의 힘이 가장 센 정권 초에 전광석화처럼 신속하게 정리하려고 들 거야.”
석원이 대답하자 박태홍 회장 역시 작게 머리를 끄덕였다.
“네 말대로 손을 대려면 그때가 가장 적기일 거다.”
단순히 기강 잡기처럼 보였던 게 사실은 큰일을 위한 밑밥을 깐 거였다.
만약 석원의 날카로운 지적이 아니었으면 아무것도 모른 채 그냥 흘려넘길 뻔했다.
“그러니까 인수위의 진짜 목적이 하나회 처리다, 이거냐.”
“네. 다른 것들도 있겠지만 그게 가장 큰 덩어리 중 하나인 건 틀림없을 거예요.”
“하나회 하나만으로도 온 나라가 뒤집어질 일인데 뭐가 또 있을 거라고?”
박태홍 회장이 이맛살을 찌푸렸다.
“그렇죠. 아마…….”
무심결에 대답하려던 석원은 문득 떠오른 생각에 멈칫했다.
혹시 지금 이 대화로 인해 미래가 틀어지는 건 아닐지 뒤늦게 걱정이 된 거였다.
석원이 갑자기 입을 다물자 박태홍 회장이 답답한 듯 재촉했다.
“왜 말을 하려다가 말아.”
“그게…….”
잠깐 고민했지만 아예 말을 꺼내지 않았다면 모를까 이미 내친 걸음이었기에 그냥 다 이야기해 버리기로 했다.
‘아버지 역시 다른 재벌들처럼 차명으로 된 주식과 비자금을 가지고 있겠지.’
경영권 유지와 상속세 절감을 위해 재벌들이 재산 상당 부분을 차명으로 해두는 건 이때까지만 해도 당연한 일이었다.
‘오늘 일로 손해를 보지 않고 미리 차명 재산을 온전히 다 양성화시켜 놓을 수 있다면 나중에 찾아올 위기를 대비하기가 한결 수월해질 거야.’
결정을 굳힌 석원은 대답을 기다리는 박태홍 회장을 보며 말했다.
“부정부패 척결의 일환으로 분명 금융실명제를 실행할 가능성이 높을 거예요.”
“……!”
이미 충분히 놀랐다고 생각했던 박태홍 회장은 충격에 또다시 눈을 크게 부릅떴다.
박진형과 길성호 비서실장 역시 입을 벌린 채 그를 쳐다봤다.
“지, 지금 금융실명제라고 하셨습니까.”
길성호 비서실장이 당황했는지 말까지 더듬으면서 물었다.
“그래요.”
이때까지만 해도 가명이나 다른 사람 명의를 빌려 금융 거래를 하는 게 불법이 아니었다.
국민 저축률을 높이기 위해 용인한 거였지만 탈세를 비롯해 여러 가지 문제점들이 많았다.
“오래전에 금융실명제법이 통과되기는 했지만 부작용이 너무 커서 사실상 폐기된 것이나 다름없지 않습니까.”
법이 만들어진 지 무려 10년이나 지났지만 유보 상태로 정부 캐비닛 안에 들어가 먼지를 뒤집어 쓰고 있으니 그렇게 말할 만도 했다.
‘금융실명제가 실행되면 재벌뿐만 아니라 당장 정치인 본인들도 곤란해지니 차일피일 미루는 것이 당연하지.’
애초에 금융실명제법이 만들어진 것도 대통령 친인척인 장영자, 이철희 부부가 벌인 어음 사기 사건으로 인해 민심이 크게 동요하자 억지로 떠밀리듯 제정된 거였다.
“엄밀히 말하면 폐기가 아니라 대통령 권한으로 실행이 유보된 상태인 거죠.”
“…….”
“그러니까 반대로 당선자가 마음만 먹는다면 언제든지 독단적으로 법을 전격 실행할 수도 있지 않겠어요.”
충격에 말문을 잃은 길성호 비서실장은 이내 애써 부정하듯 고개를 흔들었다.
“금융실명제를 실시하면 당선인 본인한테도 좋을 것이 없을 텐데 설마 자해 행위를 하겠습니까.”
정치를 오랫동안 해온 만큼 김성규 당선인 역시 정치 자금 문제에서 자유로울 수 없었다.
‘털어서 먼지가 안 나는 사람은 없는 법이니까.’
더군다나 막대한 액수의 대선 자금까지 엮여 있으니 더욱 껄끄러울 터였다.
“길 실장 말이 맞다.”
박태홍 회장이 무겁게 가라앉은 목소리로 말했다.
“정확한 건 말해줄 수 없지만 이번 대선에 우리 그룹도 당선자 쪽에 적지 않은 비자금을 건네줬지. 아마 다른 그룹들도 금액만 다르지 상황은 다 비슷할 거야. 그런데 만약 이런 일들이 밖으로 다 드러난다면 이번 정권은 시작부터 크게 흔들리게 될 거다.”
“예,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박진형이 머리를 끄덕이며 동의했다.
동생의 날카로운 식견엔 감탄했지만 아무리 그래도 대통령이 설마 그런 짓을 벌이겠냐는 생각이었다.
“살을 내주고 뼈를 취한다는 말이 있지요. 설령 도덕성에 상처를 입더라도 더 큰 대물을 잡아낼 수 있다면 당선인은 오히려 이득이라고 여길 겁니다.”
“대물이라니…….설마…….”
불길한 예감을 느낀 박태홍 회장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전임 대통령 둘이라면 대물이라고 부르기에 충분하지 않겠어요.”
태연하게 말하는 석원과 달리 다른 세 사람의 얼굴은 핏기가 싹 사라진 채로 경악에 가득 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