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olden Spoon Investment Portfolio RAW novel - Chapter (313)
금수저 투자백서 313화(313/332)
313. 이왕이면 주식으로 인수 대금을 지급했으면 좋겠네.
펜트하우스에서 나온 석원은 수행원들과 함께 엘리베이터를 타고 곧장 오늘 만남 장소인 플라자 호텔 비즈니스 미팅룸으로 향했다.
센트럴 파크가 내려다보이는 커다란 통유리창과 원목 가구들로 고급스럽게 꾸며진 비즈니스 미팅룸에 도착하자 랜든이 펀드 고문 변호사와 함께 먼저 와 있었다.
창문을 등 뒤에 두고 앉아 얼마쯤 기다리자 플라자 호텔 총지배인인 맥그리거의 안내를 받으며 마이크로소프트 인사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몸을 일으킨 석원은 큰 키에 금테 안경을 낀 크리스토퍼 알렉산더 대표에게 다가가 미소 띤 얼굴로 인사를 건넸다.
“어서 오십시오. 뉴욕까지 오시게 해서 죄송하군요.”
알렉산더 대표는 그가 내민 손을 맞잡으며 싱긋 웃어 보였다.
“아닙니다. 그보다 급한 일이 있다고 하신 건 잘 처리하셨는지 모르겠군요.”
웃는 낯으로 뼈있는 말을 던지는 알렉산더 대표에게 석원은 눈썹 하나 까딱이지 않고 능청스레 대꾸했다.
“예. 양해해주신 덕분에 좋은 결과를 얻을 수 있었습니다.”
먼저 가볍게 도발을 해봤던 알렉산더 대표는 철벽처럼 끄떡없는 모습에 속으로 혀를 찼다.
‘역시 젊지만 만만치 않은 상대군.’
그는 내심 이번 협상이 쉽지 않겠다고 직감했다.
가볍게 인사를 나눈 양측은 기다란 원목 테이블을 가운데 두고 나란히 서로 마주 보는 형태로 앉았다.
유니폼을 입은 호텔 직원들이 차를 가져다주고는 맥그리거 총지배인과 함께 문을 닫고 미팅룸 밖으로 나가자 석원이 여유로운 얼굴로 먼저 말문을 열었다.
“바쁘실 테니 바로 본론으로 들어가도록 할까요.”
“그렇게 하도록 하죠.”
맞은편에 앉은 알렉산더 대표가 작게 머리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핫메일 인수를 원하신다고요.”
석원이 뒤로 몸을 기댄 채 양손으로 깍지를 낀 자세로 물었다.
“제안서를 보냈다시피 핫메일 지분 100%를 3억 달러에 매입하고 싶습니다.”
회사를 인수할 때 경영권을 가진 대주주 지분만 매입하는 한국과 달리 미국은 매수자가 전체 지분을 사들이도록 정해져 있었다.
“우선 회사를 매각하는 건 긍정적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거 다행이군요.”
“하지만 계약서에 서명하려면 가격이 맞아야 되겠지요.”
역시나 그럴 줄 알았다는 듯이 알렉산더 대표가 말했다.
“저희가 제시한 인수 가격이 마음에 안 드시는 모양이군요.”
“솔직히 그렇습니다.”
“그럼 얼마를 받길 원하시는 건지 말씀해 보시죠.”
그러자 석원이 기다렸다는 듯이 대답했다.
“적어도 5억 달러는 받아야 될 것 같군요.”
미리 들어서 담담한 랜든 등과 달리 석원의 말에 마이크로소프트측 인사들은 놀란 기색을 감추지 못했다.
“5억 달러라니…….”
“허어.”
특히 알빈 CFO는 말도 안 된다는 표정을 지었고 알렉산더 대표 역시 미간을 찡그리며 불쾌한 티를 드러냈다.
“너무 욕심이 과하시군요.”
순식간에 미팅룸 분위기가 가라앉았지만 석원은 태연한 자세였다.
“그렇게 생각하십니까?”
“아직 2년도 채 되지 않은 벤처 회사 몸값이 5억 달러라면 누구나 다 그렇게 말할 것 같습니다만.”
알렉산더가 대표가 굳은 얼굴로 말을 받았다.
그러자 석원이 의외라는 것처럼 어깨를 으쓱였다.
“다른 사람은 몰라도 마이크로소프트를 창업한 알렉산더 대표께서 그렇게 말씀하시니 제가 오히려 더 당황스럽네요.”
알 수 없는 대답에 알렉산더 대표가 눈썹을 꿈틀거렸다.
“넷스케이프도 창업한 지 얼마 안 된 신생 벤처였지만 나스닥 상장 당시 12억 달러짜리 회사로 평가받았었죠. 물론 지금은 그보다 시가총액이 비교도 안 될 정도로 훨씬 커졌지만 말입니다.”
“…….”
“야후 역시 주가가 폭등해 상장 첫날에만 시가총액이 8억 4천 8백만 달러로 치솟았죠.”
알렉산더 대표를 똑바로 바라보면서 석원이 말을 이었다.
“전 핫메일이 방금 언급한 두 곳에 절대 뒤지지 않은 유망한 회사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마이크로소프트에서도 몸값이 더 비싸지기 전에 핫메일을 인수하려는 것 아닙니까?”
여기서 아니라고 하면 자신들의 안목이 나쁘다고 하는 꼴이었고 그렇다고 인정하면 매수 가격을 올려 줄 수밖에 없었으니 완전 진퇴양난이었다.
시작부터 석원의 교묘한 언변에 말려든 걸 깨달은 알렉산더 대표는 내심 쓴웃음을 지었다.
하지만 이대로 끌려갈 순 없었기에 알렉산더 대표가 침착하게 대꾸했다.
“핫메일이 좋은 회사라는 건 인정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5억 달러는 납득하기 어려운 액수군요.”
“글쎄요. 전 지금 바로 상장을 하더라도 그만한 가치를 인정받을 수 있다고 봅니다.”
그러자 옆에서 듣고 있던 알빈 CFO가 참지 못하고 중간에 끼어들었다.
“그건 대표님 혼자만의 생각이시지 시장의 평가가 그런 건 아니지 않습니까.”
“정말 그럴까요?”
석원이 씨익 한쪽 입꼬리를 말아 올렸다.
왠지 의미심장한 말에 알렉산더 대표가 얼굴을 굳히는 가운데 발끈한 알빈 CFO가 몸을 앞으로 기울이며 추궁하듯 물었다.
“다른 매수자가 있다는 말씀이십니까?”
“그건 대답하기 곤란하군요.”
알빈 CFO의 성급한 물음에 석원이 여유를 부리며 대답했다.
그런 모습을 본 알렉산더 대표와 마이크로소프트 쪽 인사들은 우려하던 대로 넷스케이프가 인수 경쟁에 뛰어들었다고 지레짐작했다.
“3억 5천 달러면 만족하겠습니까.”
아랫입술을 질끈 깨문 알렉산더 대표가 다시 제안하자 석원이 표정에서 웃음기를 싹 지우고 말했다.
“제가 분명히 5억 달러라고 말씀드렸을 텐데요.”
그 밑으로는 가격을 떨어트릴 생각이 없다는 말투에 알렉산더 대표는 어이가 없어 헛웃음을 터트렸다.
“그 돈이면 차라리 MSN에 더 투자하는 것이 나을 것 같군요.”
“뭐 그럴지도 모르죠. 하지만 그러는 사이에 경쟁 상대는 몇 발자국 더 앞서 나가 있을 테니 따라잡기가 더욱 힘들겠지요.”
석원은 느긋하게 앉은 자세를 바꾸며 말을 이었다.
“저보다 훨씬 잘 아시겠지만 하루가 다르게 빠른 속도로 발전하는 것이 바로 IT 업종이지요. 그리고 한번 시장을 선점하면 그걸 다시 빼앗아 오는 데 몇 배의 노력과 돈이 필요한 법이고요.”
“…….”
“문제는 그렇게 투자를 하더라도 원하는 결과를 얻을 수 있다는 보장이 없다는 것 아니겠습니까.”
칼자루를 쥔 쪽은 자신이라는 걸 확실히 알려주듯 석원이 턱을 살짝 치켜들고는 거만한 눈빛으로 상대를 쳐다봤다.
“무게추가 한쪽으로 쏠려 시장을 장악하게 되면 2, 3등은 아무 의미가 없어지게 된다는 걸 이미 컴퓨터 운영체계를 통해 아주 잘 알고 계실 거라 생각합니다만.”
매킨토시를 앞세운 애플과의 경쟁에서 승리해 운영체계를 거의 독점하게 되면서 마이크로소프트가 오늘날의 거대 IT 기업으로 성장할 수 있었던 것을 꼬집어서 말하자 알렉산더 대표는 아무런 반박을 하지 못한 채 떨떠름한 표정을 지었다.
분명 터무니없는 액수라고 생각했지만 한번 시장이 기울어져 주도권을 빼앗기게 되면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 누구보다 잘 알았기에 알렉산더 대표는 자리를 박차고 일어날 수가 없었다.
함께 온 마이크로소프트 임원들 역시 곤혹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침묵이 길어지는 가운데 석원은 여전히 느긋한 태도를 유지한 채 찻잔을 들어 커피를 마셨다.
그러고는 고심에 찬 표정을 짓고 있는 알렉산더 대표에게 슬쩍 혹할 만한 미끼를 던졌다.
“인수금액이 커서 곤란하다면 부담을 덜 수 있는 방법이 하나 있습니다.”
아니나 다를까 알렉산더 대표가 슬쩍 눈을 들고 관심을 보였다.
“그게 뭡니까?”
“인수 대금 일부를 마이크로소프트 주식으로 대체하는 겁니다.”
이어진 말에 알렉산더 대표가 미간을 좁혔다.
“때마침 IT붐을 타고 증시가 활황이니 M&A 자금 마련을 위해 몇억 달러를 유상 증자한다고 해도 주가에 아무런 영향을 주지 않을 겁니다.”
“…….”
“주주들 역시 반대는커녕 무섭게 성장하고 있는 핫메일을 인수한다면 오히려 크게 환영하겠죠. 그만큼 마이크소프트의 벨류에이션이 높아지는 거니까요.”
나쁘지 않은 방법이었지만 석원이 마이크로소트프의 대주주이기도 한걸 떠올린 알렉산더 대표는 혹시 다른 마음을 품고 있는 건 아닌지 의심하며 눈을 가늘게 떴다.
그걸 눈치채기라도 한 듯 석원이 피식 웃으며 설명을 덧붙였다.
“다른 오해가 있을까 봐 미리 밝히지만 이번 거래로 제가 보유한 마이크로소프트 지분이 늘어나더라도 경영에 간섭하는 일 없이 지금까지처럼 투자자로 남아 있을 겁니다.”
분명 석원이 지금까지 투자한 기업의 경영에 관여한 적은 없었지만, 앞으로도 그럴 거라곤 장담할 수 없었기에 알렉산더 대표는 의심의 눈초리를 쉽게 거두지 않았다.
잠시 뚫어질 듯 석원을 쳐다보던 알렉산더 대표는 약간 가라앉은 목소리로 입을 뗐다.
“이 자리에서 바로 결정하기 어려운 문제인 것 같으니 하루 동안 생각을 정리한 뒤에 내일 다시 만나 이야기를 나누는 게 어떻겠습니까.”
석원 역시 오늘 바로 단판에 결정할 수 있을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았기에 선뜻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시죠.”
“그럼 다시 연락하겠습니다.”
알렉산더 대표가 먼저 몸을 일으키며 말했다.
차례대로 인사를 나눈 알렉산더 대표와 마이크로소프트 인사들이 미팅룸을 떠나자 랜든은 다시 자리에 앉은 석원을 보며 물었다.
“알렉산더 대표가 요구를 받아들일까요?”
그러자 석원은 방금 상대편 사람들이 나간 문을 힐끗 쳐다보곤 다시 눈을 돌렸다.
“고민이 되겠지만 비싸다는 걸 알면서도 결국 핫메일을 살 수밖에 없을 거예요.”
확신에 찬 말투에 랜든이 눈동자를 반짝였다.
“경쟁사인 넷스케이프가 핫메일을 가져가지 못하게 막기 위해서라도 그렇게 할 거라는 말씀이군요.”
석원은 옅은 미소를 지으며 턱을 까딱였다.
“맞아요. 알렉산더 대표라면 자신들이 독점하고 있는 운영체계보다 앞으로 인터넷 시장이 훨씬 더 큰 돈벌이가 될 거라는 걸 알고 있을 테니까. 더욱 욕심을 내지 않을 수가 없죠.”
“불과 2년 만에 900만 달러를 2억 달러로 불리시다니 정말 놀랍다는 말 밖에 나오지 않는군요.”
랜든이 대단하다는 얼굴로 감탄했지만 석원은 들뜬 기색 없이 차분하게 대꾸했다.
“아직 계약서에 서명하지 않았으니 수익이 얼마나 날진 모르는 거죠.”
“마이크로소프트 입장에서는 경쟁 상대한테 넘어가는 걸 막기 위해서라도 핫메일을 인수할 수밖에 없을 테니. 약간의 조율을 하더라도 최소한 15배는 넘게 벌 수 있을 것 아닙니까?”
랜든이 신뢰가 가득 담긴 눈빛으로 말하자 그도 딱히 부인하진 않았다.
“보스께서 제안하신 대로 인수 대금 일부를 주식으로 대체한다면 가지고 계신 마이크로소프트 지분이 상당히 늘어나겠군요.”
“앞으로 더 크게 성장했으면 했지 떨어질 주식은 아니니까. 나야 나쁠 것이 없지만 알렉산더 대표가 과연 그렇게 할지는 모르겠네요.”
그러자 말뜻을 알아차린 랜든이 작게 머리를 끄덕였다.
“경영권 때문에 보스의 지분이 늘어나는 걸 꺼려할 거라는 말씀이시군요.”
석원이 뒤로 몸을 기대며 말을 받았다.
“그리고 마이크로소프트가 현금이 없는 회사도 아니니까. 굳이 자신의 지분을 희석시키는 일은 하지 않으려고 할 수도 있어요.”
유상 증자를 하게 된다면 알렉산더 대표가 본인의 돈을 넣으며 참여하지 않는 이상 창업자 지분율이 낮아질 수밖에 없었다.
“하긴 말씀을 듣고 보니 그렇군요.”
어느 쪽을 선택하든 그로서는 큰 이득이었기에 느긋한 표정을 지었다.
그러면서도 한편으론 몇 년 뒤에 IT 버블을 탄 마이크로소프트가 5천억 달러가 넘는 시가총액을 기록하며 IBM을 밀어내고 전 세계 시가총액 1위 기업이 된다는 걸 떠올린 석원은 내심 입맛을 다시며 중얼거렸다.
‘이왕이면 주식으로 인수 대금을 지급했으면 좋겠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