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olden Spoon Investment Portfolio RAW novel - Chapter (322)
금수저 투자백서 322화(322/332)
322. 나머지 옵션 두 개도 발동되는 건 아니겠지?
잔잔한 피아노 연주곡이 흐르는 넓은 펜트하우스 안.
[SET : 587 ( 32)]소파에 홀로 앉은 석원은 한쪽 손에 위스키가 든 언더락 잔을 든 채 노트북 화면 위에 띄워진 태국 SET지수 차트를 보며 중얼거렸다.
“환투기 세력의 공격을 막아낸 건 분명 좋은 일이긴 하지만 그렇다고 태국 경제와 증시에 호재이기만 한 건 아니지.”
아니 오히려 큰 악재에 가까웠다.
당장 바트화가 오르면서 가뜩이나 어려운 기업들의 수출 경쟁력이 약화됐을 뿐만 아니라 기준 금리를 19.5%로 갑자기 높이는 바람에 대출 이자 부담까지 커지고 말았다.
“거기다가 아직 헤지펀드들의 바트화 공격이 완전히 끝난 것이 아닌데다 이번 사태로 태국 경제의 취약성이 만천하에 드러나 버리고 말았지.”
그뿐만 아니라 환율을 방어하느라 그나마 있던 외환보유고마저 크게 줄어들어 버려 언제 다시 시한폭탄이 터질지 모르는 불안한 상황이니 투자자들이 취할 행동은 하나밖에 없었다.
“바로 위험 자산인 주식을 팔고 안전 곳으로 돈을 옮기는 거지. 그리고 안전 자산이라고 하면 금하고 달러 아니겠어.”
다른 때 같으면 기준 금리도 크게 올랐으니 은행으로 돈이 들어갔을 테지만 아무리 이자를 많이 준다고 해도 바트화 가치가 하락할 것이 불을 보듯 뻔한데 적금을 하는 건 바보 같은 짓이었다.
“뭐 한 50%씩 바트화 가치가 떨어지는 것보다 더 높은 이자를 준다면 또 모르겠지만 말이야.”
결국 바트화를 방어하기 위해 취한 조치가 증시 폭락과 함께 달러 환전 수요를 폭발시켜 가뜩이나 부족한 태국의 외환보유고를 더욱 줄어들게 만드는 부메랑으로 돌아온 거였다.
“여기에 무려 870억 달러에 이르는 태국 기업들의 외화 부채 문제까지 수면 위로 올라오면 불안감은 더욱 증폭될 수밖에 없겠지.”
이처럼 모든 것들이 바트화 절하를 가리키고 있었기에 조지 해밀턴을 비롯한 헤지펀드들이 이대로 물러설 리가 절대 없었다.
“그리고 다음번에는 아무리 홍콩과 다른 동남아 중앙은행들이 지원 사격을 해준다고 해도 태국이 버텨낼 수가 없을 거야.”
그렇게 태국을 쑥대밭으로 만들고 큰 수익을 거둔 환투기 세력들은 거기에 만족하지 않고 다른 동남아 국가들을 차례대로 무너뜨린 다음에 마지막으로 한국에 탐욕스러운 이빨을 들이밀 터였다.
눈동자를 차갑게 가라앉힌 채 딸그락 얼음 소리를 내며 위스키를 한 모금 마시고 내려놓은 석원은 노트북 옆에 놔둔 휴대폰을 집어 들었다.
저장된 번호를 찾아 통화 버튼을 누르고는 연결음을 들으며 소파 등받이에 몸을 기댔다.
그대로 잠시 기다리자 엘도라도 펀드 일본 지사장인 존 포터가 전화를 받았다.
[보스. 안 그래도 연락을 드리려고 했습니다.]석원은 노트북 화면에 시선을 주며 물었다.
“태국 SET 지수를 확인했겠죠?”
[물론입니다.]포터 지사장이 웃음 섞인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옵션 계약을 할 때까지만 해도 1,300포인트를 넘기려고 했던 SET지수가 이렇게 한순간에 무너져 내릴 줄은 정말 몰랐습니다.]“일본 증권사들의 반응은 어때요?”
[아직 아무런 연락이 없습니다만 보나마나 다들 패닉에 빠져 있을 겁니다. 달달하게 수수료만 챙길 줄 알았던 계약으로 무려 10억 달러를 털리게 생겼으니 말입니다.]잔뜩 신이 난 듯한 모습에 석원 역시 휴대폰을 귀에 댄 채 옅은 미소를 지었다.
“지금은 10억 달러지만 곧 30억 달러로 늘어날 거예요.”
석원이 포터 지사장의 말을 정정하자 휴대폰 너머에서 놀란 듯 숨을 들이켜는 소리가 들려왔다.
[인도네시아와 한국 증시도 폭락할 거라는 말씀이십니까.]“그게 아니라면 비싼 수수료를 주고 옵션 계약을 왜 했겠어요?”
당연하다는 말투에 포터 지사장은 가능하겠냐는 말이 목구멍까지 올라왔으나 차마 입 밖으로 꺼내진 못했다.
태국 증시도 600포인트를 깨고 내려가긴 어려울 거라고 봤는데 석원의 예측대로 되어 버렸기 때문이었다.
잠시 말이 없던 포터 지사장이 이내 다시 입을 열었다.
[정말 말씀대로 된다면 계약을 맺은 일본 증권사들이 완전히 뒤집혀 버리겠군요.]“그렇겠죠. 어쨌든 옵션 조항이 충족됐으니 계약대로 10억 달러씩 지급 요구를 하도록 해요.”
석원이 마치 저녁 메뉴를 이야기하듯 태연하게 지시를 내렸다.
[알겠습니다.]“계약서에 요구를 하면 일주일 안에 수익금을 지급해주도록 명시되어 있죠.”
[그렇습니다.]손에 든 휴대폰을 고쳐쥐며 석원이 다시 말했다.
“그럼 수익금이 들어오면 일본 지사 계좌에 넣어두고 있다가 뉴욕 본사의 지시에 따라 도쿄 외환 시장에서 바트화 숏을 잡도록 해요.”
[이번에는 포지션을 바꾸시는 겁니까?]헤지펀드들이 재차 바트화 공격에 나설 거란 걸 예상했는지 놀라지 않는 모습에 석원은 흡족한 표정을 지었다.
“가진 패를 이번에 다 꺼내쓴 데다가 태국의 경제 상황을 보면 결코 지금 환율을 유지할 수 없을 테니까요.”
확신에 찬 석원의 말에 포터 지사장도 동의했다.
[맞는 말씀입니다. 이번에도 홍콩과 싱가포르, 말레이시아가 도와주지 않았다면 태국은 공격을 버텨내지 못했을 겁니다.]“그랬을 거예요.”
[들리는 소문에 퀀텀 펀드를 비롯한 헤지펀드들이 2차 공격을 위한 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미국채를 대량매도하고 있다고 하더군요.]정말인지는 알 수 없지만 실제로 최근 미국채 가격이 약세를 보이고 있었다.
[태국 정부가 항복할 가능성이 높다면 이자율이 낮은 엔화 자금을 빌려서 투자금을 더 키우는 건 어떻겠습니까?]“엔 캐리트레이드를 하자는 거예요.”
[그렇습니다.]엔 캐리트레이드(Yen carry trade)는 이자가 낮은 일본에서 대출을 받아 금리가 더 높은 국가에 투자해 이익을 내는 투자 방법을 가리켰다.
장기 침체로 인해 다른 선진국들에 비해 일본의 금리가 낮은데다가 달러 대비 엔화 가격마저 쌌기에 많은 글로벌 투자자들이 엔 캐리트레이드를 적극 활용하고 있었다.
‘이번에 바트화 공격에 나선 헤지펀드들도 상당수가 이자가 작은 엔화 자금을 끌어다 쓰고 있다고 했었지.’
앤드루한테 들었던 정보를 떠올리며 석원이 말했다.
“엔화를 빌려서 투자하는 건 이번엔 그렇게 수익이 크지 않을 거예요.”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포터 지사장이 의아한 기색을 내보이자 석원은 언더락 잔을 손에 들고 입으로 가져가며 대답했다.
“엔 캐리트레이드는 기본적으로 저금리와 싼 엔화가 유지되어야 수익을 낼 수 있는 거잖아요.”
그러자 눈치가 빠른 포터 지사장이 곧바로 말뜻을 알아차렸다.
[엔화가 비싸져 수익을 내더라도 이윤을 상당 부분 갉아먹을 거라고 보시는 겁니까.]“그래요. 내 예상이 맞다면 태국이 흔들릴수록 안전 자산 수요가 늘어나 엔화 환율이 지금보다 10% 이상 오를 거예요. 그러니까 지금은 엔 캐리트레이드가 크게 매력이 없어요.”
달러, 파운드와 함께 대표적인 기축 통화 중 하나로 쓰이는 게 바로 엔화였기에 위기가 발생하면 가치가 크게 상승하는 것이 그동안 보여온 패턴이었다.
미처 거기까진 생각을 못 했던 포터 지사장이 낮게 탄성을 내뱉었다.
[정말 그렇군요. 엔화 변동까지 예상했어야 됐는데 면목이 없습니다.]“글로벌 경제가 점점 하나로 묶이고 있는 상황 속에서 어느 한 곳에 문제가 발생하면 그 여파가 예전보다 더욱 크고 넓게 퍼진다는 걸 잊지 말도록 해요.”
[예. 명심하겠습니다.]위스키를 홀짝인 석원은 손에 든 언더락 잔을 가볍게 흔들며 물었다.
“참. 엔고 이야기가 나와서 생각난 건데 CDS 옵션 수익을 제외하고 일본 지사에 여유 자금이 얼마나 있어요.”
[여기저기 투자해둔 자금을 빼면 825억 5천만엔 정도가 있습니다.]“달러로 환산하면 6억 5천만 달러 정도 되네요.”
[그렇습니다.]작게 머리를 끄덕인 석원은 소파에 몸을 파묻은 채 담담하게 말했다.
“그럼 그걸 증거금으로 해서 니케이 선물을 최대한 많이 매도하도록 해요.”
예상치 못한 지시에 포터 지사장이 깜짝 놀라 되물었다.
[니케이도 폭락할 거라고 보시는 겁니까?]그러자 석원이 입가에 짙은 미소를 지었다.
“일본은 스스로 아시아이길 부정하지만 동남아 국가들이 흔들리면 일본 역시 악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을 거예요.”
[아. 그렇군요. 태국을 비롯한 동남아 국가에 가장 많은 투자를 한 곳이 일본이니 당연한 일이겠습니다.]“거기다 기껏 엔저 덕분에 기업들이 호황을 맞이하고 있는데. 갑자기 엔고로 돌아서면 수출이 어려워질 테니 증시에 악재이지 않겠어요.”
[확실히 상방보다는 하방이 많이 열려 있겠군요.]수익을 낼 찬스라는 생각이 들자 포터 지사장의 태도가 적극적으로 변했다.
[레버리지는 얼마나 쓸까요?]“돈을 딸 것이 확실한 판이니까. 레버리지를 최대한 써서 풀베팅을 하도록 해요.”
[지시대로 진행하겠습니다.]포터 지사장이 의욕에 찬 목소리로 대답했다.
통화를 끝내고 휴대폰을 다시 내려놓은 석원은 유리잔에 남은 위스키를 깔끔하게 비우고는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일본 증권사들이 날아온 지급 요구서를 보고 어떤 반응을 보일지 직접 구경하지 못해서 정말 아쉽네.”
***
일본 도쿄 주오구 니혼바시, 노무라 증권 본사.
최상층에 위치한 사장실 안은 분위기가 무겁게 가라앉은 가운데 침묵에 잠겨 있었다.
태국 SET 지수 폭락으로 인해 난데없이 10억 달러나 되는 거액의 손실이 발생해 버렸으니 그럴 만도 했다.
상석에 자리한 야마카와 히로시 사장은 이맛살을 찌푸리며 짜증 가득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러니까 엘도라도 펀드하고 맺은 CDS 옵션 계약으로 인해 10억 달러의 손실이 났다 이건가?”
그러자 나카무라 본부장과 나란히 앉은 우사미 상무가 연신 식은땀을 흘리며 대답했다.
“그. 그렇습니다.”
대답을 하기 무섭게 야마카와 사장이 앉아 있던 소파 팔걸이를 손바닥으로 세게 내려치며 버럭 고함을 내질렀다.
“일이 터지기 전에 위약금을 줘서라도 계약을 해지했어야지. 도대체 리스크 관리를 어떻게 하는 거야!”
얼마나 화가 많이 났는지 방 안이 쩌렁쩌렁 울리는 호통에 우사미 상무는 어깨를 움츠리고는 시선도 제대로 맞추지 못한 채 고개를 푹 숙였다.
“제 판단 실수로 회사에 큰 손해를 끼쳐 면목이 없습니다.”
“잘못을 한 걸 알긴 아는군.”
야마카와 사장이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
찌르는 듯한 시선에 몸을 살짝 떤 우사미 상무는 이 순간이 너무 굴욕적이어서 쥐구멍이라도 있다면 찾아 들어가고 싶은 심정이었다.
나카무라 본부장 역시 가시방석에 앉은 듯 불편하긴 마찬가지였다.
거듭 생각하자 혈압이 오르는지 넥타이 매듭을 거칠게 아래로 잡아당긴 야마시타 사장이 인상을 쓰며 물었다.
“이것 말고도 엘도라도 놈들하고 맺은 계약이 두 개 더 있다고 했지.”
그러자 우사미 상무가 눈치를 보며 대답했다.
“한국 코스피와 인도네시아 증시에 옵션이 걸려 있습니다.”
야마시타 사장은 못마땅한 얼굴로 두 사람을 쳐다보며 던지듯이 말을 내뱉었다.
“당장 두 개 다 해지를 해!”
“죄송합니다만…… 그럴 수가 없습니다.”
곤혹스러운 표정을 지은 나카무라 본부장이 머뭇거리며 대답했다.
“뭐야? 지금 내 지시를 못 따르겠다는 거야!”
야마시타 사장이 눈썹을 홱 치켜올리자 나카무라 본부장이 황급히 손을 내저었다.
“그, 그게 아니고 위약금이 걸려 있어 해지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대체 위약금이 얼마나 되기에?”
“그것이…….”
나카무라 본부장은 식은땀을 흘리며 바로 대답하지 못했다.
야마시타 사장의 얼굴이 점점 일그러지는 것을 본 우사미 상무가 옆에서 힘없는 목소리로 대신 말했다.
“……옵션 약정 금액의 80%를 위약금으로 지급하도록 되어 있습니다.”
“80%면 16억 달러를 줘야 된다는 거야!”
“그. 그렇습니다.”
어처구니가 없다는 듯 헛웃음을 터트린 야마시타 자상이 이내 사납게 두 사람을 노려보며 소리쳤다.
“그딴 계약을 하다니 정신이 있는 거야!”
이만한 계약을 우사미 상무 독단으로 체결할 수는 없으니 당연히 야마시타 사장의 결재를 받았던 사안이었다.
하지만 지금 그런 말을 했다가는 불벼락이 떨어질 게 뻔했다.
게다가 어찌됐든 엘도라도 펀드와 옵션 계약을 맺은 건 우사미 상무의 결정으로 이루어진 거였기에 묵묵히 질책을 들을 수밖에 없었다.
한참 동안 화를 내며 성질을 부린 야마시타 사장은 거칠어진 호흡을 고르면서 이마를 짚었다.
“설마 나머지 옵션 두 개도 발동되는 건 아니겠지?”
날 선 목소리로 묻자 우사미 상무가 다급히 대답했다.
“태국이 이례적이었던 거지 그럴 일은 없을 겁니다.”
“두 사람을 위해서라도 그래야 될 거야.”
야마시타 사장이 차갑게 대꾸했다.
고개를 숙이고 있던 나카무라 본부장은 어쩐지 불길한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그러나 그렇다고 아직 위험한 낌새도 없는데 16억 달러나 되는 거액의 위약금을 주고 옵션 계약을 해지하자고 할 수는 없었기에 주저하다 그냥 입을 다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