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olden Spoon Investment Portfolio RAW novel - Chapter (325)
금수저 투자백서 325화(325/332)
325. 이런 걸 보고 호미로 막을 걸 가래로 막는다고 하지.
“7.4에 30개 솔드(sold)!”
“오케이. 던!”
뉴욕 외환시장이 열린 가운데 엘도라도 펀드 외환 트레이딩 팀은 타일러 팀장의 지휘 아래 바쁘게 거래를 이어가고 있었다.
“BOT에서 바트화 매수 주문을 대거 내고 있습니다!”
와이셔츠 소매를 걷어 올리고 머리에 헤드셋을 쓴 타일러 팀장이 방금 말한 트레이더를 쳐다보며 물었다.
“액수가 얼마나 돼?”
“3억 아니 3억 6천만 달러가 조금 넘습니다.”
일어서 있던 타일러 팀장은 대답을 들으며 상체를 숙여 앞에 있는 모니터를 확인했다.
태국 중앙은행인 BOT가 매수 주문을 내긴 했지만 바트화 매도 물량이 워낙 많다 보니 마치 넓은 바다에 잉크 한 방울을 떨어뜨린 것처럼 순식간에 거래가 체결되어 버리고는 그대로 묻혀 버렸다.
당장 엘도라도 펀드가 오늘 하루 동안 뉴욕 외환시장에서만 팔아치운 바트화가 6억 달러를 넘겼으니 그럴 수밖에 없었다.
“상승세를 누르기에 터무니없이 부족한 액수라는 걸 모르지 않을 텐데도, 겨우 이것밖에 못 내놨다는 건 더 이상 방콕 이외의 외환시장에서는 적극적으로 환율을 방어할 여력이 없다는 뜻이겠군.”
헤지펀드들의 공세에 맞서 그동안 공동전선을 펼쳐 주던 홍콩과 싱가포르, 말레이시아가 과도한 외환 소모를 견디지 못하고 발을 빼 버렸기에 혼자 버텨내는 것이 힘에 부치는 건 당연한 일이었다.
그걸 증명이라도 하듯 달러당 24바트까지 끌어 올렸던 환율이 다시 아래로 미끄러져 어느새 28바트를 향해 가고 있었다.
그런데도 환율 방어를 위해 태국 중앙은행이 바트화 매수에 쓰는 달러는 시간이 갈수록 점점 액수가 줄어들고 있었다.
어느새 태국 중앙은행이 낸 매수 주문은 흔적도 없이 다 삼켜져 버린 채 온통 바트화 매도뿐인 모니터 화면을 보며 타일러 팀장이 짙은 미소를 지으면서 혼잣말을 내뱉었다.
“이제 곧 끝나겠군.”
***
이틀 뒤.
방콕 시내에 자리한 총리 관저 집무실에 세 사내가 모여 앉아 있었다.
현재 태국이 처한 급박한 상황을 보여주듯 방 안 분위기는 무겁게 가라앉아 있었다.
연신 줄담배를 피워대던 기디카엠 총리가 반쯤 피운 담배를 크리스털 재떨이에 비벼 끄며 물었다.
“정말 다른 방법은 없는 거요?”
그러자 초췌한 얼굴로 오른편 소파에 앉아 있던 차트차이 재무장관이 힘없는 목소리로 대답했다.
“이미 할 수 있는 수단을 다 썼지만 더 이상은 무리입니다.”
“일본에 도움을 요청한 건 어떻게 됐소.”
차트차이 재무장관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스미모토와 산와를 비롯한 일본 은행들이 보유하고 있는 외채 만기를 연장해 주는 것 외에 정부 차원의 구제금융 지원은 어렵다는 통보를 받았습니다.”
마지막 희망이었던 일본마저 자신들을 외면했다는 사실에 기디카엠 총리는 절망감을 감추지 못했다.
역시나 어두운 얼굴을 한 와리트 중앙은행장이 침통하게 입을 열었다.
“이제 남은 외환보유고가 80억 달러 정도뿐입니다. 지금 상태로 달러를 계속 소진한다면 길어봐야 나흘 안에 전부 바닥이 나 버릴 겁니다.”
작년 연말까지만 해도 380억 달러나 됐던 외환보유고가 환율을 방어하느라 순식간에 녹아내려 겨우 그것밖에 남지 않은 거였다.
차트차이 재무장관은 착잡한 표정으로 기디카엠 총리를 설득했다.
“이제 환율이 문제가 아니라 최악의 경우 디폴트를 선언해야 될지도 모르는 상황입니다.”
“하아.”
탄식을 터트리며 마른세수를 한 기디카엠 총리는 한참을 고민하다가 마지못해 입을 뗐다.
“변동환율제를 도입하면 모든 문제가 해결되는 거요.”
그러자 차트차이 재무장관이 몸을 앞으로 당겨 앉으며 대답했다.
“더 이상 환율 방어를 하지 않아도 되니 남은 외환보유고를 지킬 수 있을 겁니다. 하지만 1년 내에 돌아오는 단기 외채 규모가 450억 달러나 되는 걸 생각하면 외환위기를 완전히 해소하기 위해서는 IMF의 지원이 필요합니다.”
“꼭 IMF에 손을 벌려야만 하는 거요?”
이야기를 들은 기디카엠 총리가 내키지 않는다는 듯 부정적인 태도를 보였다.
바트화 절하도 정치적으로 큰 타격이었지만 IMF 구제금융까지 받는다면 그날로 연립 내각이 무너지는 건 물론이고 기디카엠 총리의 정치 생명도 끝이라고 봐야 했기 때문이었다.
그걸 바로 알아차린 차트차이 재무장관은 망설이는 기디카엠 총리를 붙잡고 재차 설득했다.
“구제금융을 받지 않는다면 변동환율제를 도입한다고 해도 그리 큰 효과를 보지 못할 뿐만 아니라 오히려 혼란이 더 커질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끝내 미련을 버리지 못한 기디카엠 총리는 일단 문제를 뒤로 미루려고 했다.
“우선 변동환율제부터 도입하고 그러고 나서도 상황이 호전되지 않는다면 그때 다시 IMF 구제금융 지원을 고려해 봅시다.”
이야기를 들은 차트차이 재무장관은 속으로 크게 탄식했다.
바트화 방어를 포기하기로 한 이상 엉킨 매듭을 한 번에 풀어야지 찔끔찔끔 뒤로 물러선다면 나중에 떠안아야 될 부담만 더 커질 뿐이었다.
그렇다고 억지로 구제금융 신청을 강요할 수도 없었기에 차트차이 재무장관은 내심 한숨을 내쉬었다.
맞은편에 자리한 와리트 은행장 역시 착잡한 표정으로 고개를 절레 흔들었다.
차트차이 재무장관은 제발 우려하는 상황에 빠지지 않길 바라며 안주머니에서 흰 봉투를 하나 꺼내 기디카엠 총리 앞에 내려놨다.
“이게 뭔가?”
기디카엠 총리가 미간을 좁히며 물었다.
차트차이 재무장관은 모든 걸 내려놓은 사람처럼 담담한 낯으로 물음에 대답했다.
“사직서입니다.”
“아니 자네.”
눈썹을 찌푸린 기디카엠 총리의 시선을 받으며 차트차이 재무장관은 차분한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불과 며칠 전까지 바트화 절하는 절대 없을 거라고 장담했는데. 갑자기 태도를 바꾼다면 국민들의 비난과 분노가 크지 않겠습니까.”
“…….”
“조금이라도 성난 국민들을 다독이고 혼란스러운 상황을 수습하기 위해서는 누구든 바트화 방어 실패를 책임지는 사람이 필요할 겁니다.”
말뜻을 알아차린 기디카엠 총리가 팔짱을 낀 채 지그시 차트차이 재무장관을 바라봤다.
“자네가 바트화 절하의 책임을 지고 사임하겠다는 건가?”
“그렇습니다.”
차트차이 재무장관이 씁쓸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재무부 수장으로서 환투기 세력의 공격을 미연에 방지하지 못하고 작금의 위기를 초래한 잘못이 있는 건 분명하니까요.”
엔저 현상과 함께 시작된 경기 침체가 기폭제가 되어, 전임 내각 때부터 키워온 경제 거품이 터져 버린 것이 환투기 세력들의 공격 빌미가 되었다는 걸 모두가 알고 있었다.
오히려 차트차이 재무장관은 문제가 터지기 전에 속으로 크게 곪은 태국 경제를 개혁하기 위해 부단히 노력해 왔었다.
그걸 잘 알고 있는 기디카엠 총리였지만 만약 차트차이 재무장관이 책임을 지고 사퇴한다면 자신한테 쏟아질 비난을 조금이나마 줄일 수 있었기에 곧바로 사임을 만류하는 말이 나오질 않았다.
잠시 침묵하던 기디카엠 총리는 이내 작게 헛기침을 하고는 차트차이 재무장관이 내민 사직서를 받아들었다.
“자네 뜻이 정 그렇다면 어쩔 수 없지. 그동안 고생 많이 했네.”
어느 정도 예상은 했지만 한번 만류하는 시늉이라도 하지 않고 냉큼 사임을 받아들이는 모습에 차트차이 재무장관은 내심 쓴웃음을 지었다.
‘이제 앞으로가 문제군.’
양어깨를 무겁게 짓누르던 부담에서 벗어나자 홀가분한 기분이 드는 한편 앞으로 태국 경제가 어떻게 될지 걱정되는 마음에 가슴이 답답해졌다.
***
넓은 펜트하우스 침대에 혼자 누워 있던 석원은 시끄럽게 울리는 휴대폰 벨소리에 몸을 뒤척이며 잠에서 깨어났다.
석원은 상체를 일으켜 세우면서 옆으로 손을 뻗어 휴대폰을 집어 들고는 전화를 받았다.
“여보세요.”
[보스. 접니다.]전화를 건 사람은 랜든이었다.
석원이 침대 옆 협탁 위에 풀어둔 롤렉스 시계를 집어서 시간을 확인하자 새벽 4시가 막 넘어가고 있었다.
“이 시간에 무슨 일이에요?”
자다 깬 탓에 평소보다 더욱 낮은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조금 전에 태국 중앙은행이 그동안 달러에 고정시켰던 환율 제도를 포기한다고 발표했습니다.]순간 정신이 번쩍 든 석원이 눈썹을 치켜올리며 되물었다.
“그게 정말이에요?”
[그렇습니다. 지금 CNBC에서 속보를 내보내고 있으니 확인해보십시오.]석원은 곧바로 침대에서 나와 탁자 위에 있던 리모컨으로 벽에 설치된 텔레비전을 켰다.
그러자 때마침 기디카엠 총리가 기자회견을 하는 영상이 나오고 있었다.
[…….그런 이유로 미국 달러화를 중심으로 환율을 고정시키는 복수통화 바스켓 방식에서 변동환율로 환율제도를 변경하기로 결정했습니다.]번쩍이는 카메라 플래쉬 세례를 받으며 잠시 이야기를 멈춘 기디카엠 총리는 이내 침통한 얼굴로 말을 계속 이었다.
[아울러 올해 정부 예산을 10% 삭감하는 긴축 재정을 실행하는 것과 함께 자금난을 겪고 있는 16개 시중 은행을 통폐합시켜 금융 시장을 안정화시키는 데 총력을 다하겠습니다. 그리고 외국인 투자를 유도하기 위해 지금 이 시간부터 19.5%인 기준 금리를 21%로 인상하도록 할 겁니다. 당분간은 고통스러우시겠지만 경제 안정을 위한 어쩔 수 없는 조치라는 걸 이해해주시고 내각을 믿고 따라와 주시기 바랍니다.]발언을 끝내자 모여 있던 기자들이 의자에서 일어나 득달같이 질문을 쏟아냈지만 기디카엠 총리는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은 채 함께 나와 있던 와리트 태국 중앙은행장과 함께 그대로 회견장을 벗어났다.
그러자 스튜디오로 화면이 바뀌며 금발 여자 앵커가 기디카엠 총리의 발표 내용을 정리해서 알려주는 것을 보면서 석원이 입가에 미소를 지었다.
“외환시장 반응은 어때요?”
그의 물음에 기다렸다는 듯 랜든이 잔뜩 흥분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발표가 나오자마자 27.70 바트에서 32.55바트로 무려 19.6%나 환율이 폭락해 버렸습니다!]그동안 아래를 받쳐주던 태국 중앙은행이 환율 방어에서 완전히 손을 떼 버렸으니 바트화가 폭락해 버리는 건 당연한 일이었다.
[갑작스러운 기디카엠 총리의 환율 포기 발표에 화들짝 놀란 태국 기업이 앞다퉈서 달러 매수에 나서고 있어 한동안 바트화가 추가로 더 떨어질 것으로 보입니다.]“태국 기업과 은행들이 1년 내에 갚아야 되는 단기 외채가 450억 달러가 넘어가니까 달러 확보에 혈안이 될 테죠.”
[그것 때문인지 태국이 디폴트를 선언할 수도 있다는 소문이 돌면서 국채 시장에서 태국채 가격이 곤두박질치고 있습니다.]“보유한 외화보다 상환해야 되는 부채가 더 많으니까 그런 우려가 충분히 나올 수 있을 거예요.”
외화가 바닥나 환율 밴드를 풀어 버린 건 어쩔 수 없었다고 해도 IMF에 도움을 요청하지 않은 채 금리 인상만으로 외국 자본이 다시 들어오길 기대하는 건 너무 낙관적인 선택이었다.
‘이런 걸 보고 호미로 막을 걸 가래로 막는다고 하지.’
환투기 세력들의 공격에 한국 정부 역시 비슷하게 미적대다가 상황을 더 크게 악화시켰으니 남 욕할 처지는 아니었다.
어찌됐건 한 가지 분명한 건 바트화가 여기서 더 폭락할 거라는 거였다.
눈동자를 반짝인 석원은 손에 든 휴대폰을 고쳐쥐며 말했다.
“아직 더 먹을 것이 남았으니까 바트화 숏포지션을 이대로 계속 유지하라고 해요.”
[알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