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olden Spoon Investment Portfolio RAW novel - Chapter (33)
금수저 투자백서 33화(33/231)
33. 파티를 연다는데 안 갈 이유가 없지 않겠어요.
미국 뉴욕 맨해튼.
하늘 높이 솟아 있는 마천루들이 즐비하게 늘어선 맨해튼 한쪽.
푸른 이스트강을 옆에 끼고 우뚝 서 있는 랜드마크인 원 뉴욕 플라자 빌딩 31층에 엘도라도 펀드 사무실이 위치해 있었다.
깔끔한 니트 목폴라에 롱코트를 걸친 석원이 안으로 들어서자 한쪽 벽에 설치된 커다란 시장 상황판과 함께 십여 명의 트레이더들이 바쁘게 움직이고 있는 트레이딩 플로어가 눈에 들어왔다.
띠리리릭!
“엑슨 2천 주 리미트로 매수!”
“오케이, 확인하고 연락줘.”
“USX 코퍼레이션 지금 얼마야?”
“홀딩! 홀딩!”
책상을 가득 채운 여러 대의 모니터에서 쏟아지는 숫자들과 잠시도 쉬지 않고 끊임없이 울려대는 전화벨 소리가 마치 전쟁터를 연상시키듯 활기에 가득 차 있었다.
각자 자리에 앉아 시선을 모니터에 고정하거나 수화기를 귀에 대고 주문을 넣느라 바쁜 트레이더들의 모습에 석원은 자신도 모르게 가슴이 뜨거워지며 강한 아드레날린이 몸속에서 뿜어져 나오는 기분이 들었다.
“멋지네.”
무엇보다 검투사들이 콜로세움 위로 올라가 치열한 대결을 벌이고 있는 것 같은 이곳이 그를 위한 펀드라는 사실에 짜릿한 희열마저 느껴졌다.
“오셨습니까.”
그때 회색 정장을 입은 랜든이 웃는 얼굴로 다가왔다.
“활기차네요.”
석원은 여전히 트레이딩 플로어에서 시선을 떼지 않은 채 대꾸했다.
그러자 옆으로 와서 나란히 선 랜든이 활발하게 움직이며 거래를 이어가는 트레이더들의 모습을 눈에 담으며 말했다.
“그렇지요. 정신이 없기도 하지만 이렇게 나와서 보고 있으면 트레이더들이 뿜어내는 뜨거운 열기와 역동성에 저도 모르게 몸이 후끈 달아오르곤 합니다.”
어떤 기분인지 알겠다는 듯 석원이 작게 머리를 끄덕였다.
“안으로 들어가시죠.”
랜든의 말을 들은 그는 몸을 돌려 따로 만들어둔 자신의 개인 사무실로 걸음을 옮겼다.
그동안 주인 없이 비어 있었으나 꾸준히 관리해둔 덕에 커다란 통유리창 너머로 푸른 이스트강과 선착장이 내려다보이는 사무실은 깨끗하게 유지되고 있었다.
방안을 가볍게 둘러본 석원은 이내 자연스러운 몸짓으로 한쪽에 놓인 응접용 세트 상석에 앉았다.
한 사람이 앉을 수 있는 크고 편안한 소파는 마치 석원의 몸에 맞춘 것처럼 딱 들어맞았다.
랜든이 오른쪽 자리에 자리하자 투피스 정장을 입은 검은 머리의 날씬한 백인 여성이 노크를 하며 들어왔다.
비서 업무를 맡은 데이지였다.
“앤드루 씨가 오셨습니다.”
“들어오라고 해요.”
데이지가 옆으로 비켜서자 정장 바지에 와이셔츠를 입고 베이지색 멜빵을 한 앤드루가 안으로 들어왔다.
자리에서 일어난 석원이 가까이 다가온 앤드루에게 먼저 손을 내밀며 반가운 듯 말했다.
“바쁜데 부른 건 아닌지 모르겠네요.”
“괜찮습니다. 아무리 일이 많아도 보스께서 오셨는데 얼굴을 보여야죠.”
앤드루는 처음보다 한결 부드러워진 태도로 그를 대했다.
석원이 파운드 숏배팅으로 큰 수익을 올렸다는 건 알았지만 내심 실력보다는 운이 좋았을 거라고 조금은 가볍게 여겼었다.
그랬던 앤드루가 석원에 대한 평가를 확 바꾸게 된 건 이번에 NCR 건을 진행하면서부터였다.
아직 거래가 끝나진 않았지만 석원의 뛰어난 안목과 식견을 확인한 앤드루는 요행이 아니라 실력이었음을 인정하게 된 거였다.
“차는 뭘로 가져다 드릴까요?”
“커피 부탁해요.”
“알겠습니다. 두 분은요?”
“우리도 커피로 통일하지.”
“설탕 없이 진하게 부탁해.”
앤드루가 덧붙인 말에 데이지가 고개를 끄덕이며 밖으로 나갔다.
랜든과 마주 보는 쪽에 앉은 앤드루는 들어올 때부터 옆구리에 끼고 있던 얇은 서류철을 석원에게 내밀었다.
“이게 뭐예요?”
“올해 첫 거래 시작 이후 지난 이 주일간 성과서입니다.”
NCR 주식 매집에 사용한 10억 달러와 별개로 살로몬브라더스에 있는 포지션을 담보로 1억 달러를 추가로 받아 앤드루와 트레이딩 팀이 자율적으로 투자할 수 있도록 했다.
서류철을 받아서 펼친 석원은 안에 든 성과서를 천천히 훑어봤다.
“수익률이 8.8%라니 나쁘지 않네요.”
현재 미국 연준의 기준 금리가 3%인 걸 고려할 때 엄청 좋은 건 아니었지만 그래도 평타 이상은 친 거였다.
석원의 이야기에 앤드루가 어깨를 으쓱였다.
“NCR 지분 매집으로 단번에 54%가 넘는 수익을 낸 보스에 비하면 부끄러운 성적입니다.”
서류철을 덮어 앞에 있는 탁자에 내려놓은 그는 몸을 뒤로 기대며 말했다.
“FTC 심사가 진행 중인 사안이니 아직 확정된 수익이 아니잖아요.”
FTC(Federal Trade Commission), 연방거래위원회는 독과점과 불공정 거래를 규제하는 대통령 직속 기구였다.
이곳에서 처리하는 대표적인 업무가 바로 기업 간의 합병과 매수(M&A) 사전심사였다.
그러자 단정히 머리를 빗어넘긴 앤드루가 씨익 미소를 지으며 말을 받았다.
“처음에 부정적인 반응이 있었지만 얼마 안 가서 수그러들었고, 무엇보다 FTC 심사가 순탄하게 진행되고 있으니 승인은 시간문제이지 않겠습니까.”
마주 앉아 있던 랜든도 끼어들며 말을 보탰다.
“저 역시 같은 생각입니다. 걸리는 것이 있었다면 FTC에서 벌써 어떤 식으로든 말이 나왔을 겁니다.”
“맞습니다. 최근 NCR 주가만 봐도 결과를 예상할 수 있을 겁니다.”
크게 급등했다가 주저앉았던 NCR 주가는 M&A가 성사될 가능성이 커지자 다시 반등해서 현재 인수가인 주당 105달러를 오르내리고 있었다.
“말이 나온 김에 FTC 심사는 언제쯤 나올 것 같아요?”
석원의 물음에 랜든이 바로 대답했다.
“이대로 별다른 변수가 나오지 않는다면 늦어도 3월에는 결과가 나올 겁니다.”
“길게 끌지 않아서 다행이네요.”
그때 노크를 하고 들어온 데이지가 쟁반에 가져온 커피잔을 세 사람 앞에 내려놓고는 다시 나갔다.
석원은 찻잔을 들어 진한 원두향이 피어오르는 커피를 한 모금 마셔봤다.
딱히 기대하지 않았는데 의외로 데이지의 커피 타는 솜씨가 제법이라 그의 눈가가 기분 좋게 휘어졌다.
“그럼 슬슬 다음 투자는 어떻게 할지 준비해둬야겠네요.”
그러자 앤드루가 금테 안경 너머로 눈을 반짝이며 물었다.
“투자처를 생각해두신 곳이 있으십니까?”
랜든 역시 기대 섞인 시선으로 그를 쳐다봤다.
소파에 몸을 기댄 석원은 입가에 의미심장한 미소를 그리며 대답했다.
“요즘 스페인과 이탈리아 채권에 흥미가 가더군요.”
조금은 뜬금없는 이야기에 두 사람이 동시에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채권이라고 하셨습니까?”
“맞아요.”
“갑자기 왜…….”
그때 맞은편에 앉아 있던 앤드루가 뭔가를 떠올리고는 그를 봤다.
“혹시 먼데일 파트너스처럼 장단기 금리차를 노리시는 겁니까?”
“그래요.”
먼데일 파트너스는 이름 그대로 먼데일이라는 유명 투자자가 설립한 헤지펀드였다.
1979년에 만들어진 상당히 오래된 펀드였는데 채권 거래를 주 종목으로 했다.
“그러고 보니 먼데일 파트너스가 채권으로 상당한 재미를 봤다는 이야기를 저도 들었습니다.”
랜든도 생각나는 게 있는지 번쩍 고개를 쳐들었다.
“듣기로는 수익이 꽤 짭짤했다고 하던데.”
“작년에만 수수료 공제 후 48%의 수익률을 올렸다고 해서 한동안 화제가 됐었죠.”
앤드루가 덧붙여 설명하자 랜든이 짧게 휘파람을 불었다.
“휘우, 그게 정말인가? 펀드 운영 규모가 수십억 달러라고 알고 있는데 48%라니 소문이 난 것도 당연하군.”
크게 재스처를 취하며 랜든이 놀라워하자 그가 담담하게 말했다.
“정부 아니 연준이 가져가라고 주머니에 달러를 듬뿍 찔러 주고 있으니 돈을 벌 수밖에 없지 않겠어요.”
먼데일 파트너스가 수익을 내는 방법은 아주 간단했다.
저축대부조합 사태로 인한 불황에 연방준비위원회가 급히 기준 금리를 대폭 내리며 대응하자 먼데일 파트너스는 아주 싼 이자에 손쉽게 단기 차입금을 대규모로 빌렸다.
그렇게 확보한 자금으로 이자가 높은 장기 채권을 대량 매집해 금리차를 가져간 거였다.
‘장기 채권을 1억 달러 매수해 2%만 차익이 나도 2백만 달러를 먹는 거지.’
여기서 그치지 않고 먼데일 파트너스는 확보한 채권을 담보로 대출을 받아 다시 장기 채권을 사들이는 식으로 무한 반복을 해서 레버리지를 최대한 크게 키웠다.
‘차입투자는 월가에서 기본 디폴트값 아니겠어.’
거기다가 경제가 심각한 불황에 빠지는 걸 막기 위해 연준이 기준 금리를 추가로 내려 버리자 장단기 금리차뿐만 아니라 보유한 장기 채권 가격이 올라 시세 차익까지 거두게 됐다.
‘말 그대로 꿩 먹고 알 먹고를 한 거지.’
덕분에 먼데일 파트너스는 최근 몇 년간 기록적인 수익률을 올리며 보너스 파티를 벌이고 있었다.
“다른 헤지펀드들도 먼데일 파트너스를 따라 채권 투자에 나서 상당히 재미를 보고 있다던데 우리도 빠질 수 없지 않겠어요.”
습관처럼 금테 안경을 치켜올린 앤드루가 신중하게 말했다.
“먼데일 파트너스의 수익률이 놀라울 정도인 건 사실이지만 기본적으로 장단기 금리차를 먹는 겁니다. 즉 투자금 규모가 일정 수준 이상은 넘어야 만족할 만한 수익을 거둘 수 있을 겁니다.”
“그렇겠죠. 레 버리지를 일으킨다고 해도 투자금이 커야 수익을 더욱 불릴 수 있을 테니까요.”
석원은 턱에 손을 대고 잠시 생각하더니 툭 내던졌다.
“30억 달러 정도면 되겠어요?”
“예?”
깜짝 놀랄 액수에 앤드루뿐만 아니라 랜든 역시 눈을 크게 뜨고 쳐다봤다.
그러다 황급히 정신을 차린 랜든이 몸을 앞으로 당겨 앉으며 물었다.
“어디서 그 많은 돈을 구하신 겁니까?”
그러자 석원이 대수롭지 않게 대답했다.
“이제 충분히 올라온 것 같아 영국 런던 FTSE 100 지수에 넣어둔 포지션을 청산하기로 했어요.”
그제야 자금의 출처를 알아차린 랜든이 아, 하고 납득한 표정을 지었다.
“그러셨군요. 하긴 FTSE 100 지수가 많이 오르긴 했지요.”
파운드화에 이어 FTSE 100 지수 상승에 베팅한 석원은 추가로 30.1%의 수익을 올릴 수 있었다.
이렇게 짧은 기간 영국에서 벌인 단 두 번의 투자로 보유 자금이 5억 7천만 달러로 몇 곱절이나 크게 늘어났다.
“NCR 지분 매수에 들어가 있는 자금을 빼고 3억 달러를 담보로 살로몬 브라더스에서 열 배 레버리지를 받기로 했어요.”
그러자 앤드루가 흰 이를 드러내며 활짝 웃었다.
“그 정도면 만족하실만한 수익률을 얻기에 충분합니다.”
“좋아요. 다음 주 안으로 거래 계좌를 열어주기로 했으니까. 살로몬 브라더스 쪽하고 이야기해서 거래를 진행시키도록 해요.”
“알겠습니다.”
그때 랜든이 의아한 얼굴로 끼어들었다.
“그런데 보스. 왜 미국이 아니라 스페인과 이탈리아 채권을 사들이시려는 겁니까?”
거래 규모나 여러 가지 측면에서 미국 채권이 훨씬 손대기 수월했기에 앤드루도 궁금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미국 채권이 거래하기 쉽긴 하지만 그만큼 경쟁자들도 많잖아요.”
실제로 먼데일 파트너스의 성공을 보고 다른 헤지펀드들도 너나 할 것 없이 채권 투자에 뛰어들면서 경쟁이 치열해지고 수익률 또한 처음부터 낮아졌다.
“아무리 사이즈가 크다고 해도 피자 하나를 먹으려고 여러 명이 몰려들어 박 터지게 싸우는 곳에 끼어드는 것보단 다른 데서 기회를 찾는 게 더 낫죠.”
“으음. 확실히 경쟁이 치열하긴 하지요.”
앤드루가 살짝 얼굴을 굳히며 그의 말에 동의했다.
“그리고 이유는 하나 더 있어요. ERM 위기를 어느 정도 벗어난 유럽 국가들이 유럽 단일 통화 발행을 추진 중인 건 알고 있죠?”
“예.”
“안 그래도 그 얘기로 시끌시끌하더군요.”
두 사람이 머리를 작게 끄덕였다.
헤지펀드들의 공격에 영란은행이 무릎을 꿇는 치욕스러운 검은 수요일을 겪은 영국이 ERM에서 이탈하자 유럽 공동 통화 추진에 비상등이 켜지며 잠시 흔들렸었다.
하지만 독일과 프랑스를 중심으로 혼란을 빠르게 수습한 유럽공동체(EC)는 경제가 하나로 통합되어 있지 않아 외부의 공격에 속수무책으로 당했다는 판단을 내리고 유럽 단일 통화 발행에 더욱 박차를 가했다.
“ERM 위기의 근본 원인이기도 했지만 단일 통화를 만들려면 먼저 유럽 각 국가들의 금리를 동일하게 맞추는 작업이 우선적으로 이루어져야 될 거예요. 그러려면…….”
“인플레이션이 높아 다른 유럽 국가들에 비해 금리를 높이 유지해온 스페인과 이탈리아 중앙은행이 금리를 내릴 수밖에 없겠군요!”
랜든이 탄성을 내뱉었다.
나름 그동안 금융 공부를 많이 했는지 안목이 넓어져 있었다.
전문가인 앤드루보다 의도를 빨리 알아차린 모습에 내심 제법이라고 생각하며 석원이 계속 말을 이었다.
“인플레이션으로 인해 12%대로 기준 금리를 유지하고 있는 스페인과 이탈리아가 기준점인 독일에 맞추려면 4% 넘게 금리를 낮춰야만 할 거예요.”
머릿속으로 빠르게 계산을 끝낸 앤드루가 눈을 번뜩이며 말했다.
“그런 수익률이라면 미국보다 유럽으로 가는 것이 훨씬 낫겠군요.”
“그렇죠.”
석원은 두 사람의 얼굴을 쳐다보며 입매를 크게 휘었다.
“단일 통화 발행과 금리 조정 계획을 전혀 숨기지 않고 모두 드러낸 채 파티를 연다는데. 참여 안 할 이유가 없지 않겠어요.”
“군침 도는 음식과 매력적인 아가씨들이 가득한 파티로군요. 절대 빠질 수 없지요.”
“맞는 말씀입니다.”
랜든이 맞장구를 치자 앤드루 역시 새로운 사냥감을 앞에 둔 사냥꾼처럼 짙게 웃었다.
이미 두 사람의 머릿속엔 어떻게 해야 수익을 더 극대화시킬 수 있을지 계산기가 돌아가고 있었다.
“판을 깔아놨으니 제대로 즐겨보자고요.”
석원은 손에 쥔 찻잔이 샴페인으로 바뀔 날을 기대하며 커피를 단숨에 꿀꺽 삼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