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olden Spoon Investment Portfolio RAW novel - Chapter (330)
금수저 투자백서 330화(330/332)
330. 정말…… 그렇게 될 거라고 확신하는구나.
“달러를 팔면 안 된다고 했냐?”
박태홍 회장이 의아한 얼굴로 쳐다보자 머리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네. 쓰는 것이 아니라 지금은 여유 자금이 있다면 최대한 많이 달러로 바꿔놔야 될 때예요.”
그러자 맞은편에 앉아 있던 박진형 사장이 미간을 좁히며 대화에 끼어들었다.
“작년까지만 해도 1달러에 826원 정도였던 환율이 897원까지 올라와 엄청 비싸졌는데. 이 가격에 환전을 더 해둬야 된다는 거야?”
“그래. 겨우 71원밖에 안 올라서 싼 지금이 달러를 모아둘 마지막 기회일 테니까 말이야.”
“897원이 싸다고?”
납득이 되지 않는 듯 박진형 사장이 미간에 패인 주름을 더욱 깊게 만들었다.
박태홍 회장 역시 담배를 입에 문 채 눈빛으로 설명을 재촉했다.
“태국을 시작으로 동남아 국가들 사이에 외환위기가 번지고 있다는 건 알고 계실 거예요.”
“설마 지난번에 말한 것처럼 한국도 그 나라들 같이 외환위기를 겪게 될 거라는 거냐?”
박태홍 회장이 정색한 표정으로 물었다.
“예. 언제 닥치게 될지 시기에 차이가 있을 뿐 결코 환투기 세력의 공격을 피할 순 없을 거예요.”
석원은 약간의 망설임도 없이 확신에 찬 목소리로 단언했다.
무조건 외환위기가 찾아올 거라고 석원이 못을 박듯 이야기하자 두 사람은 당혹감을 감추지 못했다.
반사적으로 설마 그럴 리가 있겠냐는 생각이 들었지만 지금까지 놀라운 통찰력을 보여준 석원의 말이었기에 그냥 흘려들을 수가 없었다.
“한세와 삼오그룹의 부도로 상황이 안 좋은 건 맞지만 그래도 외환위기라니. 그건 너무 나간 거 아니야.”
큰아들의 말에 박태홍 회장도 같은 생각이라는 표정을 지었다.
지난번에 석원이 외환위기를 경고한 적이 있었지만 그건 말 그대로 경각심을 심어주기 위한 거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동남아 국가들이 도미노처럼 위기를 겪고 있는데 왜 한국은 무풍지대라고 생각하는 거야? 난 그게 더 이해가 안 되는데.”
“그거야 태국이나 필리핀하고 달리 한국은 아시아의 네 마리 용이라고 불릴 정도로 성공적인 경제성장을 이룩한 국가잖아. 그래서 얼마 전에 당당히 OECD에도 가입했고 말이야.”
그러자 석원이 고개를 가로저으면서 말했다.
“OECD에 가입했다고 선진국이 된 건 아니지.”
“…….”
“단지 그동안 수출을 비롯해 여러 가지 부분에서 특혜가 주어지던 개발도상국에서 벗어나 선진국의 문턱에 들어선 거라고 하는 것이 더 정확할 거야.”
석원은 어깨를 으쓱이고는 시니컬한 태도를 보였다.
“오히려 지금처럼 경기가 안 좋을 때 수출을 하면서 받았던 특혜들이 사라져 버렸으니까. OECD 가입은 호재가 아니고 악재에 더 가깝다고 봐야 할 거야.”
가만히 이야기를 듣고 있는 두 사람을 보면서 석원이 계속 설명을 이었다.
“오랫동안 이어지던 3저 호황이 끝나자 수출이 줄어들면서 경제성장이 둔화되고, 그로 인해 경상수지 적자가 크게 늘어난 상태에서 호황기에 과잉투자를 한 것이 부메랑이 되어 돌아온 게 태국이 외환위기를 겪게 된 결정적인 이유에요.”
석원은 팔짱을 낀 채 손가락 사이에 담배를 끼우고 있는 박태홍 회장을 보며 슬쩍 눈썹을 치켜 올렸다.
“어디서 많이 들어본 스토리 아니에요.”
그러자 박태홍 회장이 낮게 침음성을 내뱉으며 대답했다.
“한국하고 비슷하구나.”
“그 전부터 과도한 차입경영으로 문제가 있긴 했지만 한세그룹이 무너지게 된 건 침체기에 들어선 철강 업황을 무시하고 부채를 끌어와 당진에 지은 제철소가 제대로 운영되지 않았기 때문이란 걸 알고 계실 거예요.”
“…….”
“이렇게 과잉투자를 해서 곤란을 겪고 있는 곳이 한세그룹 하나뿐일까요? 전 아니라고 생각해요.”
부채를 끌어와 마구잡이로 사업을 확장시키는 것이 당연하게 여겨지던 때였기에 차입경영을 하지 않는 곳을 찾아보기가 오히려 힘들 정도였다.
‘오죽했으면 10대 그룹 가운데 가장 빚이 적은 곳의 부채 비율이 300%를 훌쩍 넘겼겠어, 그런 상황이면 말 다 했지.’
10대 그룹은 말할 것도 없고 웬만한 기업들마다 건설과 전자, 상사 등을 다 계열사로 두고 있을 만큼 돈이 된다고 하면 전부 손을 댔으니, 얼마나 과잉, 중복 투자가 심했는지 알 수 있었다.
이런 걸 비꼬아서 나온 말이 바로 문어발 경영이었다.
“경제가 호황이고 유동성이 차고 넘칠 때는 문제가 없지만, 지금처럼 돈줄이 일시에 말라 버린다면 과도하게 쌓인 부채는 독약으로 변해 그룹의 목줄을 조이게 될 거예요.”
박태홍 회장은 흰 담배 연기를 내뱉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네 말대로 요즘 전경련 모임에 나가면 다들 부채 때문에 앓는 소리만 해대고 있지.”
“그나마 국내 은행을 통해 자금을 조달한 곳은 사정이 낫겠지만 낮은 이율에 혹해 외화대출을 받은 회사들은 높아진 이자에다 환차손까지 감당해야 하니 더욱 어려운 상황일 거예요.”
박진형 사장도 여기저기서 들은 말이 있는 듯 공감한다는 표정을 지었다.
“환율 때문에 원금과 이자가 앉은 자리에서 8% 넘게 뛰어 버렸으니 나 같아도 당혹스러울 거야.”
“아까도 이야기했지만 겨우 8%밖에 안 오른 거지.”
석원이 박진형 사장을 힐끔 쳐다보며 말을 정정했다.
“만약 정부와 한국은행이 개입하지 않았다면 환율이 더 크게 뛰었을 거야. 그동안 외환보유고가 크게 줄어서 2백억 달러를 겨우 턱걸이할 정도밖에 안 남은 게 그 증거일 테고.”
박태홍 회장이 그래도 설마 하는 표정으로 말했다.
“네 말대로 확실히 우려스러운 상황이기는 하지만 정부에서 외국인 투자를 유치하기 위해 자본 시장을 추가로 조기 개방했고 이번 달에는 무역수지 적자 폭이 줄어들 거라고 하던데. 그러면 여건이 조금 나아지지 않겠냐.”
그러자 석원이 단호하게 말했다.
“아니요. 오히려 그게 더 악수가 될 거예요.”
“?”
“지금 들어오는 외국 자본들이 건전한 돈이라면 말씀하신 것처럼 상황을 호전시킬 수 있겠죠. 하지만 안타깝게도 대부분 단기 차익을 노리는 핫머니들이라는 것이 문제예요.”
석원은 목소리에 힘을 주며 재차 설명했다.
“만약 국내 상황이 어려워질 조짐이 보인다면 환차손을 보지 않으려고 제일 먼저 돈을 가지고 한국을 빠져나갈 것이 분명해요. 그렇게 되면 가뜩이나 부족한 외환보유고를 이들이 크게 갉아 먹어 버리면서 사태를 더욱 어렵게 만들어 버리는 트리거가 될 거예요.”
국내에 들어와 있는 외국인 자금이 한꺼번에 썰물 빠지듯 빠져나가는 것을 상상해 본 박태홍 회장은 자신도 모르게 침음성을 내뱉었다.
박진형 사장 역시 상황이 심각하다는 걸 깨닫고 안색을 굳혔다.
석원은 그런 두 사람을 보면서 약간 가라앉은 목소리로 말했다.
“오늘 오기 전에 들은 소식인데 산업은행을 비롯한 시중 은행들이 종금사들한테 빌려줬던 외화자금을 급히 회수하고 있다고 해요.”
눈썹을 찡그린 박태홍 회장이 몸을 앞으로 당겨 앉으며 물었다.
“은행들이 달러를 거둬들이고 있다고?”
“네. 한세와 삼오그룹 부도로 이율이 올라 외화차입 비용이 비싸진 데다가 환율까지 뛰어 부담이 커지니까. 많이 늦었지만 부랴부랴 은행들도 리스크 관리에 들어간 거죠.”
“으음.”
“달러가 부족해진 종금사들이 어쩔 수 없이 외화자금 결제를 위해 은행들로부터 초단기 외화콜 자금을 조달하면서 하루하루를 넘기고 있다고 해요.”
그러자 박진형 사장이 놀란 듯 되물었다.
“다른 곳도 아니고 종금사가 하루짜리 초단기 자금으로 겨우 연명하고 있다니. 그게 사실이야?”
“그래. 그걸로도 부족해서 급격히 늘어난 달러 이자를 충당하기 위해 가지고 있는 자산을 급히 매각 중이라고 들었어. 환율 상승으로 환차손을 크게 입었는데 보유한 자산을 처분하는 과정에서 이중으로 손실을 보고 있는 거지.”
박태홍 회장은 어느새 필터 앞까지 다 타들어 간 담배를 크리스털 재떨이에 비벼 끄며 중얼거렸다.
“아랫돌을 빼서 윗돌을 괴고 있는 꼴이로구나.”
석원은 박태홍 회장 쪽으로 상체를 약간 틀어 진지한 눈빛으로 말했다.
“이런 상태로는 결코 오래 버틸 수가 없을 거예요.”
“그렇겠지.”
박태홍 회장 역시 고개를 끄덕였다.
“상황이 이런데 태국을 비롯한 동남아 국가들을 뒤흔들고 있는 환투기 세력들이 한국을 그냥 두고 볼 리 없죠. 언제일지 시기가 문제일 뿐 틀림없이 탐욕에 찬 이빨을 들이밀 거예요.”
“그래서 달러를 꽉 쥐고 있으라고 하는 거냐.”
“네. 그때가 되면 달러가 그 무엇보다 귀중해질 테니까요.”
이내 아무런 말없이 한참을 고민한 박태홍 회장은 이내 결정을 내렸는지 다시 입을 뗐다.
“당장 이자 몇 푼 아끼는 것보다 네 말대로 달러를 계속 가지고 있는 게 나을 것 같구나.”
“잘 생각하셨어요.”
원하던 대답에 석원이 살짝 안도한 표정을 지었다.
그때 문득 떠오른 생각에 박태홍 회장이 불쑥 물음을 던졌다.
“네 생각에 환율이 얼마까지 오를 것 같으냐?”
큰아들인 박진형 사장도 궁금하다는 듯 덩달아 눈길을 보냈다.
석원은 잠시 생각하고는 대답했다.
“최고 1달러에 2천 원까지 갈 수도 있을 거예요.”
“……!”
생각지도 못한 대답에 박태홍 회장이 깜짝 놀라며 되물었다.
“2천 원이라고 했냐?”
“네.”
담담하게 머리를 끄덕이는 석원과 달리 두 사람은 기겁하며 입을 쩍 벌렸다.
달러당 897원도 비싸다고 난리인데 환율이 지금보다 두 배 넘게 더 오를 거라고 하니 그럴 만도 했다.
“2천 원이라니! 환율이 그렇게 뛰려면 국가가 부도나는 정도의 충격이 있어야 될까 말까인데 너무 높게 잡은 거 아니야?”
박진형 사장이 있을 수 없는 일이라는 듯 그렇게 말했지만 석원은 웃음기가 싹 빠진 얼굴로 진지하게 대답했다.
“외환보유고가 몽땅 바닥나 외채 상환요구가 쏟아져도 갚을 달러가 없다면 할 수 있는 거라곤 모라토리엄을 선언하는 방법뿐이겠지. 그러면 부도나 난 것이나 다름없지 않겠어.”
모라토리엄(Moratorium)은 국가가 외채 이자나 원금을 지급할 수 없는 상태에 놓였을 때 일시적으로 모든 채무의 상환을 중지하는 것을 가리켰다.
석원의 입에서 충격적인 단어가 나오자 박진형 사장은 그대로 몸이 굳어 버렸다.
박태홍 회장 역시 눈을 부릅뜨고는 물었다.
“정말 거기까지 갈 수 있다고 보는 거냐?”
석원은 놀란 두 사람의 반응을 보며 담담하게 말했다.
“작년 기준으로 우리나라가 갚아야 될 총외채가 1천 45억 달러에요. 그 가운데 1년 안에 상환해야 되는 단기 외채가 절반이 넘죠.”
자신도 모르게 마른침을 꿀꺽 삼키는 박태홍 회장을 석원이 살짝 곁눈질했다.
“가지고 있는 외환보유고가 고작 200억 남짓밖에 안 되는데. 채무 연장이 안 되고 전부 상환을 요구받는다면 최악의 경우 지난번에 말씀드린 것처럼 흑자 도산이 나 버릴 수도 있지 않겠어요.”
예전부터 석원이 꾸준히 해오던 이야기들이 바로 이걸 뜻한 거라는 걸 알아차린 박태홍 회장은 경악에 찬 표정을 지었다.
“정말…… 그렇게 될 거라고 확신하는구나.”
석원은 박태홍 회장의 시선을 피하지 않고 그대로 마주 보며 씁쓸하게 대꾸했다.
“이제는 돌이키기 어려운 구간을 이미 지나쳐 버린 상태라 여기서 멈춰 세우기는 힘들 거예요. 그나마 할 수 있는 거라곤 피해를 최소화하면서 앞으로 닥칠 폭풍우 속에서 살아남기 위해 노력하는 것뿐이죠.”
그 어느 때보다 진지한 석원의 모습에 박태홍 회장은 얼굴을 찡그린 채 생각이 많아진 표정을 지었다.
박진형 사장 역시 심각하게 가라앉은 눈빛을 하고 있었는데 그만큼 석원이 한 이야기가 충격적이었기 때문이었다.
거기다 지난번과 달리 실제로 태국을 비롯한 동남아 국가들이 외환위기를 맞아 큰 시련을 겪고 있었기에 이젠 더 이상 경고의 차원을 넘어서 코앞의 현실로 닥쳤음을 직면한 기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