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olden Spoon Investment Portfolio RAW novel - Chapter (339)
금수저 투자백서 339화(339/340)
339. 바로 기사를 흘려요.
어슴푸레 날이 밝아오기 시작한 이른 아침.
조사를 끝마친 석원과 일행은 석창근 변호사와 함께 경찰서 건물을 걸어 나왔다.
“정당방위인 데다가 증인도 확실하고 무엇보다 사용된 흉기인 잭나이프가 상대방 중 한 사람이 항상 가지고 다니던 물건이라는 것이 확인됐으니 문제가 될 일은 없을 겁니다.”
한쪽 손에 서류가방을 든 석창근 변호사는 건장한 체격의 보커스를 힐끔 쳐다보곤 차분히 말을 이었다.
“상대가 크게 다치긴 했어도 정당방위가 인정되면 형사 처벌을 받진 않을 겁니다. 민사 소송을 해올 수도 있겠지만 범인들이 미군 자녀들이라는 점을 고려할 때 쉽지는 않을 테고요.”
“미군 관련 범죄가 사회적으로 이슈가 되는 걸 주한미군 사령부에서 꺼려할 거란 거죠.”
양손을 바지 주머니에 찔러 넣은 석원의 말에 석창근 변호사가 작게 머리를 끄덕였다.
“그렇습니다. 가뜩이나 불평등한 SOFA 협정을 개정해야 된다는 이야기가 많은데. 이번 일이 자칫 그런 여론을 부추길 수도 있으니까요.”
SOFA 협정은 한미주둔군 지위 협정(Status of Forces Agreement)의 줄임말로 여기에 따라 주한 미군의 구성원 및 군속 그리고 그들의 가족이 한국 내에서 범죄를 저지를 경우에 미국이 우선적으로 수사와 재판 권한을 가졌다.
“범인들 신병 확보와 조사를 경찰이 아니라 미군 CID가 하고 있겠네요.”
CID는 미육군 범죄 수사국의 약칭이었다.
“그런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재판도 미군 쪽에서 진행될 수 있겠네요?”
“거기까진 좀 더 지켜봐야 되겠지만 그럴 가능성을 완전히 배제할 수는 없을 겁니다.”
석원이 석창근 변호사를 보며 물었다.
“한국에서 재판이 이뤄진다면 그놈들 형량이 얼마나 나올 것 같아요.”
그러자 부장 검사 출신인 석창근 변호사는 잠깐 생각을 해보곤 대답했다.
“두 사람 다 19세 미만이라 소년법의 적용을 받아 같은 범죄 행위를 저지른다고 해도 성인에 비해 관대한 처벌을 받도록 되어 있습니다. 그걸 감안해 볼 때 많이 받아봤자 징역 1년을 넘기기 힘들고 그나마도 집행유예로 풀려나올 가능성이 클 겁니다.”
“살인미수죄가 적용된다고 해도 그 정도밖에 안 되는 거예요?”
시선을 받은 석창근 변호사는 작게 머리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그렇습니다. 성인이라면 징역 20년의 중형까지 선고가 가능하지만 소년범일 경우에는 정말로 피해자가 목숨을 잃지 않는 이상 형량을 크게 줄여주는 것이 관례니까요.”
석원이 노골적으로 미간을 찡그렸다.
“피해자가 죽어야 중형을 받는다니 정말 어처구니가 없는 법이네요.”
“설령 납득이 안 되는 부분이 있더라도 그게 법이니까요.”
부장 검사로 재직할 때 범죄를 저질렀지만 소년범이라 집행유예로 풀려난 범인이 얼마 있지 않아 강도 살인을 저지른 아픈 기억이 있던 석창근 변호사는 씁쓸한 표정을 지었다.
“이번 사건이 이슈가 돼 시끄러워질 것 같으면 미군 쪽에서 두 범인을 본국으로 보내버리겠죠?”
“그럴 수도 있습니다. 조금 전에 말씀하셨다시피 화제가 돼서 미군 측에 득될 것이 전혀 없을 테니까요.”
“그렇다면 언론에 이번 사건을 슬쩍 흘려서 기사화가 되도록 손을 썼으면 하는데 가능하겠어요.”
석원의 물음에 석창근 변호사가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못 할 건 없습니다만 그렇게 되면 SOFA 협정에 따라 범인들을 본국에서 재판을 받도록 한다며 미국으로 보내버릴 수 있는데. 그래도 괜찮겠습니까?”
그러자 석원이 씨익 흰 이를 드러내며 웃었다.
“그거야말로 원하는 바예요.”
영문을 알 수 없는 이야기에 석창근 변호사는 이해가 안 된다는 듯 눈썹을 좁혔다.
“소년법이 적용되는 한국보다 미국에서 재판이 이루어진다면 훨씬 더 무거운 형이 나오지 않겠어요.”
“확실히 미국이 범죄 행위에 대해 엄격한 처벌을 내리긴 하지만 한국에서 벌어진 범죄인 데다가 자국민이 관련되어 있는 사건이다 보니 오히려 더 낮은 형량이 선고될 수도 있습니다. 거기다 미국에서 재판이 열리면 거리도 멀고 무엇보다 경제적인 문제 때문에 피해자가 직접 참석하기도 어려워 더욱 흐지부지 사건이 뭉개질 가능성도 있고 말입니다.”
석창근 변호사가 회의적인 태도로 말했다.
아무리 미국이라도 팔은 안으로 굽을 수밖에 없을 테니 당연한 이야기였다.
하지만 석원은 대수롭지 않게 흘려넘겼다.
“경제적인 문제라면 내가 해결할 수 있으니까. 넘어가고 피해자한테 소송을 대리해주는 것에 대한 동의서만 받아줘요.”
“……사장님께서 피해자를 돕겠다는 말씀이십니까?
석창근 변호사가 뜻밖이라는 표정을 지었다.
“그래요.”
“…….”
잠시 말없이 물끄러미 쳐다본 석창근 변호사는 이내 납득이 안 된다는 얼굴로 물었다.
“미국에서 소송을 진행한다면 비용이 만만치 않게 들어갈 텐데. 굳이 이러시는 이유라도 있으십니까?”
뒤에 보커스와 함께 서 있던 주근성 역시 궁금하다는 눈빛이었다.
별다른 설명을 듣지 않아 돌아가는 상황을 잘 모르긴 했지만, 칼든 놈한테 찔릴 뻔한 걸 구해줬으니 그것만으로 할 일은 다 한 거 아닌가 싶었다.
“마음에 안 들어서요.”
“그게 무슨…….”
석창근 변호사가 눈매를 살짝 좁혔다.
“만약 어제 매장에 우리가 있지 않았다면 피해자는 어떻게 됐을 것 같아요.”
“……!”
석원은 착 가라앉은 목소리로 실제 벌어졌을 일들을 얘기했다.
“십중팔구 화장실 안에서 범인들한테 처참하게 난자를 당해 목숨을 잃었을 거예요. 자신이 왜 칼에 찔려야 되는지 이유도 모른 채 말이에요.”
석창근 변호사는 얼굴을 굳히며 낮게 침음성을 내뱉었다.
“한 사람의 목숨을 앗아가고도 놈들은 소년범이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저지른 죄와 비교해 턱없이 약한 처벌을 받게 되겠죠.”
어깨를 으쓱인 석원은 냉소적인 태도로 계속 말을 이었다.
“그나마도 국내에서 기소가 되지 않고 미국으로 떠나 버린다면 아무런 처벌을 받지 않고 뻔뻔하게 살아가지 않겠어요.”
“…….”
“반면 피해자는 사건 당일 있었던 일을 잊지 못하고 평생의 트라우마로 남게 되겠죠.”
법조계에 있으면서 가해자보다 피해자들이 더욱 큰 고통을 받으며 살아가는 모습을 많이 봤었기에 석창근 변호사는 무겁게 머리를 끄덕였다.
“죄를 지었으면 합당한 죗값을 치르도록 해야되지 않겠어요.”
“맞는 말씀입니다.”
석창근 변호사는 석원의 말에 동의했다.
그러고는 명색이 부장 검사 출신이면서도 범인들이 솜방망이 처벌을 받게 되는 걸 대수롭지 않게 여긴 자신이 부끄럽게 느껴졌다.
“미국에서는 미성년이라고 해도 살인미수죄라면 10년 이상 중형이 내려진다고 들었어요.”
“사건에 따라 다르지만 보통은 그런 걸로 알고 있습니다.”
석원은 눈동자를 차갑게 빛내며 말했다.
“한국에서 재판을 받지 않고 미국으로 가게 되면 자길 놓아준 한국 경찰과 검찰을 조롱하며 희희낙락하겠지만 얼마 있지 않아 지옥에 스스로 걸어 들어갔다는 걸 깨닫게 될 거예요.”
관할권 문제를 비롯해 미국에서 재판을 진행하려면 여러 가지 걸림돌이 많았지만 석원이라면 어렵지 않게 해결할 수 있을 거란 생각이 들었다.
‘돈으로 해결되지 않는 일은 없는 법이지 특히 미국에서는 더욱 그렇고 말이야.’
의도가 뭔지 알게 된 석창근 변호사는 새삼스러운 시선으로 그를 쳐다보며 말했다.
“그런 생각이시라면 말씀대로 일을 진행하도록 하겠습니다.”
석원은 흡족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이곤 이내 작게 하품을 했다.
“밤을 샜더니 좀 피곤하네요. 구체적인 건 나중에 다시 만나서 이야기하죠.”
“예. 그렇게 하시지요.”
먼저 계단을 내려가자 석창근 변호사가 뒤에서 살짝 고개를 숙였다가 바로 했다.
석원은 경찰서 야외 주차장 한쪽에 세워진 벤츠 대형세단 뒷좌석에 올라탔다.
잠시 뒤 석원이 탄 벤츠가 미끄러지듯 경찰서 정문을 빠져나가는 걸 지켜보며 석창근 변호사가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여러 재벌 3세들을 만나봤지만 정말 특이한 사람이군.”
그렇게 말하면서도 석창근 변호사의 표정은 귀찮아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의욕에 넘치고 있었다.
* * *
다음 날 아침.
회사에 출근한 석원은 습관대로 책상 한쪽에 가지런히 놓인 조간신문을 펼쳐서 실려 있는 기사들을 천천히 훑어봤다.
[이태원에서 흉기를 휘두른 10대 미국인 두 명이틀 전 이태원에 위치한 모 햄버거 가게 화장실에서 10대 미국인 두 명이 여자 친구와 식사를 하러 왔던 대학생한테 흉기를 휘두른 사건이 발생했다.
전혀 일면식도 없던 피해자에게…… SOFA 규정에 따르면 미군이나 군속 또는 그들의 가족 가운데 생활비의 2분의 1을 보조받는 자에 대해서는 미군에서 수사를 하도록 하고 있다.
이에 따라 현재 경찰이 아닌…….]
이태원 사건 기사가 꽤 비중있게 나와 있는 걸 보곤 석원이 만족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일 처리하는 솜씨가 나쁘지 않네.”
이렇게 언론에서 보도하며 이슈화가 되면 부담을 느낀 주한미군이 가해자 두 명을 미국으로 보내 사건을 서둘러 덮으려고 할 것이 분명했다.
“회귀 전에 주한미군이 수사권을 포기하고 가해자들을 경찰에 인도한 건 피해자가 처참하게 살해당했기 때문이었지.”
그렇지 않았다면 선례를 만들지 않기 위해서라도 절대 먼저 수사권을 포기 안 했을 터였다.
“대충 사건을 덮어 버리지 못하도록 만들려면 펜타곤이 무시하기 어려울 만한 로펌을 선임해서 압박을 가해야 되겠지.”
펜타곤(pentagon)은 워싱턴에 있는 미 국방부 청사의 명칭이자 흔히 국방부를 부르는 별명으로 불리기도 했다.
“변호사 출신인 랜든이라면 어떤 로펌이 좋을지 잘 알고 있을 테니까. 전화를 해서 맡겨야 되겠군.”
그때 진동벨이 울리자 석원은 책상 위에 놔둔 휴대폰을 집어 들었다.
통화 버튼을 누르고 전화를 받자 익숙한 포터 지사장의 목소리가 들렸다.
[접니다. 보스.]“전화를 한걸 보니 옵션 수익금이 전부 입금된 모양이죠?”
[예. 네 증권사마다 10억씩 해서 총 40억 달러가 전부 들어왔습니다.]포터 지사장이 웃음기 섞인 음성으로 말했다.
“지난번에 이야기한 대로 뉴욕 본사 계좌로 송금하도록 해요.”
[알겠습니다. 그리고 옵션 계약 관련 기사는 어떻게 할까요?]“크게 떨어졌던 주가가 살짝 반등하는 분위기죠?”
[예. 네 증권사 모두 낙폭이 점차 줄어드는가 싶더니 어제 장 막판부터는 저가 매수세가 슬슬 들어오는 모습입니다.]석원은 보고 있던 신문을 내려놓으면서 뒤로 몸을 기댔다.
“마침 숏 포지션 구축이 다 끝났으니까. 머뭇거릴 것 없이 바로 기사를 흘려요.”
[말씀대로 하겠습니다.]그렇게 잠시 더 이야기를 나누고 통화를 끝낸 석원은 마우스를 움직여 모니터에 일본 4대 증권사 주가창을 나란히 띄웠다.
공매도한 것이 제대로 먹혀 주가가 많이 떨어져 있는 상태였다.
“가뜩이나 옵션 계약으로 손해를 봐서 속이 상당히 쓰릴 텐데. 주가까지 박살 나 버리고 주주들의 항의가 쏟아지면 정말 죽을 맛이겠군.”
그래도 어쩔 수 있나? 받아들여야지.
석원은 씩 웃으며 한쪽 입꼬리를 위로 말아 올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