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olden Spoon Investment Portfolio RAW novel - Chapter (38)
금수저 투자백서 38화(38/231)
38. 새로 만들었다는 헤지펀드 이름이 뭐예요?
서울 마포구, 대흥그룹 본사.
“회장님은 안에 계신가.”
부속실 문을 열고 들어온 길성호 비서실장이 딱딱하게 굳은 얼굴로 묻자 추세영 과장이 엉거주춤 일어나며 대답했다.
“네.”
대답을 들은 길성호 비서실장은 성큼 걸음을 옮겨 안쪽에 있는 문 앞으로 가서는 노크를 했다.
원목으로 된 문을 열고 회장실 안으로 들어갈 때까지 숨을 한껏 들이 참고 있던 추세영 과장은 문이 닫히자 그제야 살 것 같다는 얼굴을 했다.
“후아. 표정이 심상치 않아 보이던데 무슨 일이지?”
“그러게요. 실장님이 저런 얼굴을 하신 거 거의 못 본 것 같은데.”
이채연이 추세영 과장의 말에 동의하며 고개를 끄덕거렸다.
책상에 앉아 있던 정윤경 대리도 걱정스러운 시선으로 꽉 닫힌 회장실 문을 바라보다가 한쪽 손을 들어 뿔테 안경을 고쳐 썼다.
“중요한 일이 있으신 것 같으니까. 부르시기 전에는 들어가지 않도록 주의해요.”
“예, 대리님.”
비서실 막내인 이채연도 분위기를 의식한 듯 평소와 달리 얌전한 태도로 어깨를 움츠렸다.
한편 마호가니로 만들어진 널찍한 책상 앞에 앉아 서류를 읽고 있던 박태홍 회장은 안으로 들어오는 길성호 실장을 보며 몸을 뒤로 기댔다.
“급히 보고드릴 일이 있습니다.”
길성호 비서실장이 가까이 다가와 말했다.
경직된 얼굴을 본 박태홍 회장은 뭔가 일이 벌어졌음을 직감하고 손에 든 서류를 내려놨다.
“무슨 일인데 자네 얼굴이 그런가?”
그러자 길성호 비서실장이 심각한 목소리로 이야기를 했다.
“오늘 오전에 윤진우 육군 참모총장과 도경탁 기무사령관이 전격 교체됐다고 합니다.”
“……!”
생각지도 못한 소식에 박태홍 회장은 눈을 크게 떴다.
“그게 정말인가!”
얼마나 놀랐는지 의자 등받이에서 몸을 떼며 되묻는 말에 길성호 비서실장이 무겁게 머리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그렇습니다. 저도 처음 이야기를 듣고 믿기지 않아 재차 확인해봤습니다만 틀림없는 사실이었습니다.”
“이런…….”
박태홍 회장은 당혹감을 감추지 못했다.
그만큼 해임된 윤진우 육군 참모총장과 도경탁 기무사령관의 존재감이 컸기에 그럴 수밖에 없었다.
“이미 해임 절차가 모두 끝났고, 비 하나회 출신 장성들이 임명장을 받고 지휘권을 인수했다고 합니다.”
“허어. 번갯불에 콩 볶아 먹는 것도 아니고 그야말로 속전속결로 끝내버렸구만.”
“아무래도 하나회의 반발을 우려해 신속하게 일을 처리한 것 같습니다.”
같은 생각이라는 듯 박태홍 회장이 작게 머리를 끄덕였다.
“그렇겠지. 두 사람을 날려 버렸다는 건 대통령이 하나회를 인정하지 않겠다고 선전포고를 한 것이나 마찬가지일 테니 말이야.”
“맞습니다. 그 때문인지 청와대를 지키는 30, 33경비단에 비상 경계령이 내려졌다고 합니다.”
수도방위 사령부 예하의 30, 33경비단은 청와대 외곽과 북악산 그리고 인왕산 일대를 지키는 대통령 경호 부대였다.
이들 부대에 비상 경계령이 내려졌다는 건 그만큼 청와대가 바짝 긴장하고 있다는 뜻이었다.
“12.12 사태가 다시 재현되는 걸 우려하는 거겠지.”
“하나회가 작정하고 반기를 든다면 군사 쿠데타를 일으키는 것이 결코 불가능한 일은 아닐 테니까요.”
박태홍 회장이 앞에 놓인 찻잔을 집어 한 모금 마시려다가 차갑게 식어 있자 다시 내려놓으며 말했다.
“당장 수방사령관과 특전사령관만 해도 하나회 소속이지.”
“그렇습니다. 두 사람뿐만 아니라 군단장과 사단장급 주요 보직을 차지하고 있는 하나회 인사들만 해도 열 손가락이 부족할 정도입니다.”
육군 전체를 하나회가 장악하고 있다고 해도 무방할 정도였다.
“대통령이 이런 상황을 모르지 않을 텐데. 그럼에도 숙청을 강행한다는 건 그만큼 자신이 있다는 건가.”
“그것보다는 하나회를 지금 정리하지 않으면 꼭두각시로 전락할지도 모른다는 불안감 때문에 무리하는 걸 수도 있을 겁니다.”
“취임식 전에 있었던 최구창 전 국방부 장관의 발언을 이야기하는 거군.”
“예.”
팔짱을 낀 채 몸을 뒤로 기댄 박태홍 회장은 무겁게 머리를 끄덕였다.
“하긴 먼저 선을 심하게 넘기는 했지.”
자신이 대통령이라도 군 통수권자에게 대놓고 도전하는 하나회를 그냥 두고만 볼 수는 없었을 터였다.
낮은 침음성을 내뱉으며 박태홍 회장이 말했다.
“결과가 어떻게 나오든 한동안 정국이 살얼음판을 걷겠군.”
박태홍 회장은 지난번 석원이 했던 이야기를 떠올리고선 눈매를 깊게 가라앉혔다.
“설마 했는데 막내 녀석의 예상대로 됐군.”
그러자 길성호 비서실장도 그날 나눴던 대화를 상기하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앞날을 내다보는 작은 도련님의 선견지명이 정말 대단합니다.”
“하나회 청산을 맞췄으니 금융실명제도 정말로 전격 실시될 수 있겠어.”
“그건…….”
길성호 비서실장의 표정이 심각하게 변했다.
하나회 청산이 정국을 뒤흔들 큰 사건이라면 금융실명제는 그룹에 직접 영향을 끼치는 일이기 때문이었다.
길성호 비서실장이 심각한 얼굴로 앞에 서 있는 가운데 박태홍 회장은 손끝으로 책상을 툭툭 두드리며 잠시 고심했다.
그러다 다시 고개를 들며 말했다.
“지난번에 준비해 두라고 했던 계획이 있지.”
“네.”
“그걸 실행하도록 해.”
지시를 받은 길성호 비서실장이 살짝 얼굴을 굳히며 말을 받았다.
“하나회 하나만으로도 충격이 큰데 설마하니 금융실명제까지 손을 대겠습니까.”
“어려울 거라고 생각했던 하나회 청산도 시작했는데 뭐를 못 하겠나. 그리고 단순히 금융 거래의 투명성을 위한 것이 아니라는 막내의 말을 벌써 잊었나?”
“전 정권과 하나회 인사들을 정리하는 도구로 사용될 거라는 이야기 말씀이십니까.”
“그래. 부정부패 청산만큼 자극적이고 국민들의 지지를 이끌어낼 수 있는 명분도 없지.”
틀린 말이 아니었기에 처음에 부정적이던 길성호 비서실장도 납득할 수밖에 없었다.
“석 달 안에 서둘러서 모든 작업을 끝내도록 해.”
길성호 비서실장이 난감한 얼굴로 박태홍 회장을 봤다.
“가뜩이나 차명으로 된 지분과 비자금을 실명 전환 시키는 데 들어가는 비용이 큰 데. 너무 급하게 일을 진행한다면 손해가 더 커질 겁니다.”
“아깝지만 일이 닥치기 전에 정리를 끝내려면 감수할 수밖에.”
“올해 안에 금융실명제를 실시할 거라고 예상하시는 겁니까?”
아무리 그래도 너무 빠른 게 아닐까 했으나 박태홍 회장의 생각은 달랐다.
“그래. 미국처럼 대통령을 두 번 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딱 5년밖에 못하지 않나. 그러니 분명 힘이 제일 센 임기 첫해에 골치 아프고 부담되는 일들을 전부 털어내 버리려고 할 거야.”
박태홍 회장은 확신하는 말투로 또 다른 근거를 내밀었다.
“게다가 전 정권 인사들과 하나회를 숙청하는 데 써먹으려면 가능한 빨리 실행하는 게 낫지 않겠나.”
“말씀을 듣고 보니 그렇군요.”
길성호 비서실장의 생각에도 박태홍 회장의 추측이 그럴듯해 보였다.
“그러니 고래 싸움에 새우 등 터진다고 괜히 불똥이 튀지 않으려면 다소 손해를 보더라도 그 전에 정리해놓는 것이 나을 거야.”
“알겠습니다. 바로 계획을 진행시키도록 하겠습니다.”
길성호 비서실장이 허리를 바로 세우며 대답했다.
“차명 재산 문제로 신문에 나나 그룹 이름이 오르내리는 일이 없게 은밀하게 작업을 해야 해.”
“명심하겠습니다.”
“그리고 하나회 문제도 어떻게 진행되는지 모든 촉각을 곤두세우고 살펴봐.”
“예.”
곧바로 몸을 돌린 길성호 비서실장은 서둘러 회장실을 나갔다.
혼자가 된 박태홍 회장은 끄으응 하고 앓는 소리를 내뱉으며 머리에 손을 얹었다.
“이런 건 맞추지 않았으면 했는데 이번에도 석원이 녀석 말대로 됐군.”
생각할수록 골치가 아프고 저절로 한숨이 나올 상황이었다.
“이거 한동안은 바짝 엎드려 있는 것이 상책이겠군.”
박태홍 회장은 한바탕 몰아칠 태풍 속에서 어떻게 하면 살아남는 건 물론이고 이득을 취할 수 있을지 깊은 고민에 잠겼다.
* * *
매사추세츠주 케임브리지.
앞치마를 입은 여자 아르바이트생이 텀블러를 건네주며 말했다.
“여기 아메리카노 샷 두 개 추가하신 거 나왔습니다!”
“고마워요.”
봄기운에 부쩍 따뜻해진 날씨에 얇은 바람막이 하나만 걸친 석원은 텀블러를 받아들고는 야외 테이블에 앉았다.
3월도 거의 다 지나가 햇볕이 드는 자리에 있으면 살짝 더운 느낌마저 들 정도였다.
“졸업식도 이제 두 달밖에 안 남았나.”
누구하고 다르게 필요 학점을 충분히 채운데다 프랭크 교수를 돕는 걸로 졸업 논문을 대신하기로 했기에 부담 없이 홀가분했다.
다른 학생들이 논문 준비에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것과 비교하면 엄청난 사치였다.
게다가 수업도 두 개밖에 안 들어서 여유가 많던 석원은 느긋하게 시간을 보내며 다른 일을 할 수 있었다.
“어디 보자.”
텀블러에 든 아메리카노를 한 모금 마시며 석원은 오전에 소포로 받은 한국 일간지를 가방에서 꺼내 펼쳐 들었다.
그러자 1면에 실린 기사가 단번에 그의 시선을 끌었다.
[전격적인 수뇌부 교체에 陸軍 충격에 휩싸여이틀 전 전격적으로 진행된 육군 참모총장과 기무사령관 경질에 육군 관계자들은 충격 속에 당혹감을 감추지 못하는 분위기다.
이날 경질은 국방부 발표와 거의 동시에 당사자들에게 해임 통보가 갔을 정도로 전격적으로 이뤄져 육군본부에서는 발표 직전까지도 전혀 감을 잡지 못한 걸로 알려졌다.
오늘 취임 후 첫 기자회견을 가진 전덕재 국방부 장관은 육군 참모총장과 기무사령관의 경질은 청와대에서 대통령하고 조찬을 가진 뒤 결정이 이루어졌다고 밝혔다.
그리고 이번 인사는 군내 부조리 척결 등 현재 구상 중인 군 개혁방안의 일환으로 이루어진 것임을 강조했다.
이번 일이 군내 요직을 독점하고 있는 하나회를 겨냥한 것이냐는 기자의 질문에 전 장관은 “모든 걸 편을 가르는 시각에서 바라보면 안 되며 이제는 구원과 갈등에서 탈피해야 할 때”라는 이야기로 답변을 대신했다.
한편…….]
“적당히 물러날 때를 알았어야지. 애초에 욕심이 너무 과했어.”
군사정권이 막을 내리고 문민정부가 시작되는데 군부 내에 있던 사조직인 하나회가 계속 유지되며 권력을 이어갈 거라는 생각 자체가 과욕이었다.
국내의 우려와 달리 오랜 권력에 취해 설마 자신들을 건드리지 못할 거라는 자만심을 가졌던 하나회는 허무할 정도로 힘없이 숙청됐다.
혹시라도 원래 역사와 다르게 흘러가는 건 아닌지 살짝 불안한 마음이 들긴 했지만 석원은 머리를 가로저으며 중얼거렸다.
“한국에서 내가 딱히 개입한 일도 별로 없는데 설마 그러겠어.”
그러고는 한국에 있는 아버지를 떠올리며 말했다.
“내 이야기를 흘려듣지 않으셨다면 하나회를 청산하는 걸 보셨으니 금융실명제에 대한 대비를 해 두시겠지.”
그러면 다행이지만 만약 무시하고 가만히 있었을 땐 나중에 상당한 곤욕을 치르게 될 터였다.
그때 갑자기 울린 벨 소리에 석원은 옆자리에 놔둔 백팩에서 핸드폰을 꺼내 전화를 받았다.
“여보세요.”
[보스, 랜든입니다. 지금 통화 가능하십니까?]“괜찮으니 말해요.”
[다른 것이 아니라 채권 관련해서 투자 제안이 하나 들어와서 연락을 드렸습니다.]“뭔데 그래요.”
석원의 물음에 랜든이 바로 대답했다.
[살로몬 브라더스 차익거래팀에 있던 치프와 시니어급 직원 여러 명이 얼마 전에 독립해 헤지펀드를 설립했는데 거기서 투자 제안을 해왔습니다.]“……!”
이야기를 듣는 순간 머릿속에 한 단어를 떠올린 석원은 뒤로 기대고 있던 몸을 바로 했다.
“새로 만들었다는 헤지펀드 이름이 뭐예요?”
[롱텀캐피털매니지먼트입니다.]대답을 듣자마자 석원은 자신도 모르게 들고 있던 핸드폰을 꽉 움켜쥐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