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olden Spoon Investment Portfolio RAW novel - Chapter (41)
금수저 투자백서 41화(41/231)
41. 두 사람도 주식을 좀 사 두는 게 어때요.
뉴욕 맨해튼.
원 뉴욕 플라자 건물 31층, 커다란 통유리창 너머로 확 트인 이스트강 전경이 내려다보이는 대표실 소파에 석원을 가운데 두고 랜든과 앤드루가 마주 보며 앉아 있었다.
“말씀하셨던 시스코에 대한 기업 보고서입니다.”
석원이 앞에 놓인 서류철을 집어서 펼치는 걸 보며 앤드루가 차분히 말을 이었다.
“보고서에도 적혀 있지만 미 국방성과 보잉 그리고 HP, 제너럴 일렉트릭 같은 대형 고객들을 다수 보유한 내실있는 기업입니다. 작년 한 해 3억 달러의 연 매출을 올렸을 정도로 꾸준히 수익을 늘려가고 있기도 하고요. 올해부터는 최근 추세에 발맞춰 인터넷 기반 시스템을 고객들에게 제공하기 시작했다고 하더군요.”
맞은편에 있던 랜든이 찻잔을 내려놓으며 물었다.
“많이 못 들어본 회사 같은데 뭘 하는 곳인가?”
“라우터(router)를 만들어서 파는 회사입니다.”
생소한 단어에 랜든이 미간을 좁히며 앤드루를 봤다.
“라우터라고?”
“그쪽은 제 전공이 아니라서 자세히는 모르지만 단어 뜻 그대로 대형 서버는 물론이고 컴퓨터들을 서로 연결시켜 주는 기계 장치라고 하더군요.”
라우터(router)의 명사형 route는 길 또는 경로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었다.
“네트워크 연결 장치라…… 그렇군.”
설명을 들은 석원은 왜 시스코가 닷컴 버블의 상징 같은 회사가 됐는지 이해가 됐다.
인터넷 열풍이 전 세계를 휩쓸 때 필수적인 네트워크 장비를 거의 장악하다시피 한 회사이니 주가가 폭등하지 않으면 그게 더 이상한 일이었다.
‘골드러시 시대에 청바지를 파는 회사라는 거네. 이거 완전 닷컴 버블 판 엔비디아잖아.’
석원은 보고서를 무릎 위에 내려놓고는 앤드루의 이야기를 계속 들었다.
“하지만 최근 크레센도 커뮤니케이션즈라는 회사를 9천 7백만 달러에 인수하면서 주가가 크게 폭락한 상태입니다.”
“주가가 하락한 이유가 뭐예요?”
석원의 물음에 앤드루가 대답했다.
“간단합니다. 연매출이 천만 달러에 지나지 않는 회사는 너무 비싸게 샀다는 겁니다.”
“단순 계산을 해도 인수 대금을 뽑는데 십 년 이상이 걸리니 주가가 떨어질만 하네요.”
랜든의 말에 앤드루도 같은 생각이라는 듯 머리를 끄덕였다.
“시스코 경영진도 바보가 아닐 텐데 뭣 때문에 그렇게 높은 가격을 주고 크레센토 커뮤니케이션즈를 인수한 거죠.”
“회사에서 밝힌 이유는 크레센토 커뮤니케이션즈의 우수한 네트워크 스위칭 기술을 확보함으로서 기존에 강점을 가진 라우터와 합쳐져 큰 시너지 효과가 기대할 수 있다고 합니다.”
“네트워크 스위칭 기술이라는 게 뭐죠?”
“대형 컴퓨터에서만 할 수 있었던 작업을 일반 퍼스널 컴퓨터에서도 가능하도록 해줘 라우터보다 속도가 빠르고 우수한 성능의 네트워킹 허브를 구축하는 거라고 하더군요.”
설명을 듣는 순간 석원은 바로 촉이 왔다.
“이건 악재가 아니라 엄청난 호재네요.”
“예?”
의아한 얼굴로 쳐다보는 두 사람을 보며 석원이 이유를 말해줬다.
“지금까지 컴퓨터는 대학이나 회사에서 주로 사용됐었죠.”
“아무래도 쓰는데 비용이 많이 들어가다 보니 그랬지요.”
“하지만 최근 몇 년간 가격을 낮춘 퍼스널 컴퓨터 보급이 늘어나면서 일반 가정에서 개인들이 컴퓨터를 사용하는 경우가 많아지지 않았어요.”
그러자 앤드루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 덕분에 PC를 조립해서 파는 델 컴퓨터가 작년에 포춘 세계 500대 기업 중 하나로 들어가기도 했지요.”
석원은 씨익 미소를 지으면서 말했다.
“앞으로 네트워킹 시장에서 기업간 거래도 늘어나겠지만 일반 소비자를 상대로 한 서비스 역시 폭발적으로 성장할 거라는 뜻일 거예요.”
확신에 찬 석원과 달리 앤드루는 살짝 회의적인 반응이었다.
“PC 보급이 늘고 있는 건 맞지만 통신 사용료가 상당한데 일반 가정에서 보편적으로 사용하기엔 무리가 있지 않겠습니까.”
“맞습니다. 비용이 예전에 비해 많이 낮아졌다지만 개인이 쓰기에는 부담이 되는 게 사실이니까요. 무엇보다 컴퓨터 통신을 연결한다고 해도 돈만 비싸지 딱히 이용할 것이 없지 않습니까.”
랜든 역시 앤드루의 이야기에 동의하며 비슷한 견해를 내놨다.
이때까지만 해도 온라인 게임은 고사하고 제대로 된 웹브라우저 하나 없던 개척기였으니 그렇게 생각하는 것도 어쩌면 당연한 반응이었다.
“지금 당장은 그렇지만 앞으로는 많이 달라질 거예요. 내 생각엔 시스코 경영진도 그걸 알고 미리 PC 보급에 발맞춰서 필요한 기술을 가진 회사를 인수한 걸 거예요.”
아직 인터넷의 엄청난 파급력을 잘 모르는 두 사람은 이야기를 듣고도 이게 얼마나 큰 호재인지 깨닫지 못했다.
아무리 설명을 해줘도 지금은 와 닿지 않을 터였기에 석원은 대충 넘어가며 물었다.
“그래서 지금 시스코 주가가 얼마에요?”
앤드루가 시선을 받으며 대답했다.
“주당 20달러대를 유지하다가 10.88달러까지 떨어져 있습니다.”
“거의 반토막이 난 거네요.”
“네. 시가 총액 역시 31억 달러로 크게 줄어든 상태입니다.”
역시나 아직 본격적으로 닷컴 버블이 생기기 전이라서 그런지 시가 총액이 그리 크지 않았다.
“주주 구성은 어떻게 되어 있죠.”
“경영진과 불화로 창업자 부부가 재작년에 가지고 있던 지분을 전량 매각하고 떠난 이후로 기관 투자자들이 과반이 넘는 주식을 소유하고 있습니다.”
석원이 보고서에 첨부된 주주 구성표를 확인하자 지배적 대주주가 없이 대여섯 군데의 기관 투자자들이 골고루 지분을 나눠 가지고 있는 걸 알 수 있었다.
“NCR 지분 매각 수익금 중에 따로 떼어 놓으라고 한 돈이 있었죠.”
랜든이 살짝 몸을 살짝 돌려 석원을 보면서 대답했다.
“네. 지시하신 대로 1억 달러를 빼서 보스 개인 계좌로 옮겨 놨습니다.”
“그걸로 시스코 주식을 매입하도록 해요.”
눈을 동그랗게 뜨며 랜든이 되물었다.
“1억 달러를 전부 다 말씀이십니까?”
“그래요.”
“시스코를 좋게 보시는 건 알겠습니다만 그래도 한 번에 너무 많은 돈을 넣으시는 것 아닙니까.”
“저 역시 그렇게 생각합니다. 말씀대로 한다면 단번에 3대 주주가 되시는 겁니다.”
현재 주가 기준으로 1억 달러면 3%가 넘는 시스코 지분을 매입할 수 있었다.
그러면 5%와 4%를 나눠서 들고 있는 기관 투자자들에 이어 석원이 3대 주주로 들어가는 거였다.
우려하는 두 사람과 달리 석원은 진정으로 아쉽다는 듯 한숨을 흘렸다.
“마음 같아서는 주식을 더 사서 최대 주주가 되고 싶은데 그러지 못해서 안타깝네요.”
충고를 듣고도 매입액을 줄이기는커녕 오히려 한술 더 뜨는 모습에 두 사람은 황당한 기색을 감추지 못했다.
“급하게 매입하면 평단가가 튀어 오를 수 있으니까 시간을 두고 천천히 주식을 매집하도록 해요. 물론 그렇다고 시간을 너무 오래 끌지는 말고.”
이미 마음을 굳힌 듯한 모습에 앤드루는 랜든과 시선을 주고받다가 어쩔 수 없다는 듯 대답했다.
“알겠습니다.”
뒤로 몸을 기댄 석원이 두 사람을 보며 느긋하게 말했다.
“앞으로 성장 가능성이 큰 회사니까 두 사람도 주식을 좀 사 두는 게 어때요.”
“아, 네.”
랜든이 어색하게 웃으며 대답을 얼버무렸고 앤드루 역시 생각해 보겠다고만 말했다.
‘정말 알다가도 모르겠군.’
내심 머리를 절레절레 흔들던 앤드루는 순간 정말로 시스코가 크게 성장하는 건 아닐까 의심했다.
석원이 저렇게 자신만만해하니 혹시나 하는 마음이 들었던 거였다.
하지만 앤드루는 이내 말도 안 되는 헛꿈이라며 부정했다.
‘에이 그럴 리가 있겠어. IT에 투자할 거면 차라리 델 컴퓨터를 사고 말지.’
곧 닷컴 버블이라는 엄청난 광풍이 불어닥치는 걸 꿈에도 상상하지 못한 앤드루의 상식으로는 PC 보급 확대로 고속 성장을 이어가고 있는 델 컴퓨터가 시스코보다 훨씬 전망이 밝아 보였다.
* * *
시간이 흘러 화창한 5월.
구름 한 점 없이 하늘이 맑은 가운데 하버드 대학교 캠퍼스에는 화려한 꽃들이 만발해 있었다.
고풍스러운 벽돌 건물들과 부드러운 햇살이 비추는 넓은 잔디밭에는 졸업식을 축하하러 모인 가족과 친구들로 가득했다.
긴 검은색 학사복과 모자를 쓰고 도열한 졸업생들은 무대 위에 선 하버드 대학 총장의 축하 연설을 경청했다.
“존경하는 교수진 그리고 자랑스러운 졸업생 여러분!
오늘 여러분은 우리 하버드 대학에서의 학업을 성공적으로 마치고 졸업하는 뜻깊은 날입니다.
그동안 졸업생 여러분들의 노고와 성취를 진심으로 축하합니다.
지난 몇 년 동안 여러분은 본 대학에서 많은 것을…… 졸업생 여러분의 앞날에 행운을 빌면서 각자가 품은 꿈과 목표를 이루기를 진심으로 기원합니다.
다시 한번 여러분들의 졸업을 진심으로 축하합니다!”
짝짝짝! 짝짝짝!
길게 끌지 않고 짧게 끝난 연설에 졸업생들이 열정적으로 박수를 쳤다.
그러자 총장이 내려간 무대 위로 사회자가 다시 나와 다음 순서를 진행했다.
“그럼 지금부터 졸업장 수여를 시작하겠습니다.”
무대 한쪽에 나와 있던 밴드가 연주를 하며 축하 분위기를 띄우는 가운데 사회자가 호명하는 순서대로 졸업생들이 줄을 지어 한 명씩 무대로 올라와 학장에게 졸업장을 받았다.
모여 있던 가족들은 그런 모습을 지켜보며 감격에 찬 표정을 지었는데 그중에는 한국에서 날아온 박대홍 회장 부부도 있었다.
학사복과 모자를 쓴 석원이 호명돼 무대로 올라가자 조덕례 여사가 옆에 있는 남편의 팔을 잡고 흔들었다.
“여보! 우리 석원이 차례인가 봐요.”
“나도 보고 있어.”
근엄하게 서 있던 박태홍 회장이 약간 퉁명스럽게 대답했지만 얼굴엔 흐뭇한 미소가 가득했다.
“이봐 추 과장. 사진은 잘 찍고 있지?”
박태홍 회장이 고개를 돌려 함께 온 추세영 과장을 향해 물었다.
“예. 회장님!”
라이카 필름 카메라를 손에 들고 연신 셔터를 누르던 추세영 과장이 곧바로 대답했다.
“그래. 그래. 남는 건 사진뿐이니까 빠뜨리지 말고 다 찍게.”
“알겠습니다!”
이마가 살짝 벗겨진 추세영 과장은 회장의 지시에 한층 기합을 넣고는 한 장면이라도 놓칠세라 연신 셔터를 눌러댔다.
벌써 필름을 두 통이나 썼지만 어깨에 멘 가방에 아직 안 쓴 필름 열 통이 더 준비되어 있었기에 추세영 과장은 열과 성의를 다해 사진을 찍었다.
“축하하네.”
둥근 통 안에 든 졸업장과 함께 꽃다발을 건넨 학장이 먼저 손을 내밀어 악수를 하며 말했다.
“감사합니다.”
석원은 얼굴에 가득 미소를 머금은 채 손에 쥔 졸업장을 들고 무대를 내려왔다.
전생과 현생을 통틀어서 처음으로 받은 대학 졸업장이었기에 뿌듯함과 기쁨을 감출 수가 없었다.
자꾸만 위로 올라가는 입꼬리를 주체하지 못하고 웃고 있을 때.
역시나 학사모를 쓴 로이가 뒤에서 그의 어깨를 가볍게 툭 치며 말했다.
“안 어울리게 그 감동에 가득 찬 표정은 뭐냐.”
석원은 고개를 돌려 로이를 보더니 감개무량한 표정을 지었다.
“힘들 것 같더니 그래도 같이 졸업은 하네.”
“아 말도 하지 마. 학점 구멍난 거 메꾸려고 얼마나 고생했는지 알지? 진짜 숨도 못 쉬고 데굴데굴 굴렀다니까.”
로이가 생각하기도 싫다는 듯 진저리를 쳤다.
“그러게 평소에 잘해 두라니까.”
“쳇. 됐어. 어차피 난 벼락치기가 체질이니까.”
다 망한 것 같은데 어떻게든 꾸역꾸역해내는 걸 보면 그것도 실력이었다.
“어찌 됐건 이제 정말 끝이네. 캘리포니아로 간다고 했지?”
“응. 썬 마이크로 시스템즈에 취업이 확정됐거든.”
“늦었지만 축하한다. 너 정도 실력이라면 거기서도 잘 해낼 수 있을 거야.”
석원이 한쪽 손을 내밀자 로이도 장난기 짙은 얼굴로 미소를 지으며 덥석 손을 맞잡았다.
“고맙다. 졸업해도 가끔씩 연락하고 지내자고. 룸메이트 인연이 어디 보통이냐.”
“물론이지.”
그러다 문득 생각났다는 듯 석원이 말했다.
“내가 저번에 부탁한 거 안 잊었지?”
“아, 그거? 염려 마. 일이 생기면 바로 연락할게.”
“꼭 부탁한다.”
잠시 뒤 석원과 동기들이 다 함께 학사모를 일제히 하늘 높이 집어던지는 걸로 졸업식 행사가 모두 끝났다.
“와아아!”
“드디어 해방이다!”
“졸업이다!”
함성을 내지른 졸업생들은 찾아온 가족들과 함께 캠퍼스에서 사진을 찍으며 뒤풀이를 즐겼는데 석원 역시 마찬가지였다.
“자 찍겠습니다. 이쪽을 봐 주십시오. 하나 둘 셋!”
오늘을 위해 만반의 준비를 해온 추세영 과장은 삼각대까지 세워 놓고는 마치 프로 사진작가로 빙의한 듯 열정을 불태웠다.
찰칵하는 소리가 나자 학사복을 입은 석원을 가운데 두고 아내와 같이 양쪽에 서 있던 박태홍 회장이 오늘따라 더 훤칠해 보이는 막내아들을 보며 말했다.
“타지에서 공부하는 게 쉽지 않았을 텐데 수고했다.”
“다 두 분이 뒷바라지를 해주신 덕분이죠.”
조덕례 여사는 석원을 보면서 대견하다는 얼굴로 손을 꼭 잡았다.
“이제 정말 다 컸구나.”
금방이라도 눈물을 흘릴듯한 모습에 다른 때 같으면 한마디 했을 박태홍 회장도 오늘은 그냥 가만히 있었다.
“석원 군.”
그때 익숙한 목소리가 말을 걸며 다가왔다.
양쪽 패널에 벨벳 트리밍과 소매에 가로로 세 개의 벨벳 바가 장식된 박사복을 입은 프랭크 교수였다.
사진을 다 찍을 때까지 기다리고 있었던 듯, 그는 주름진 눈매를 부드럽게 휘면서 손을 내밀었다.
“졸업을 축하하네.”
“감사합니다.”
존경할 만한 은사였기에 석원도 곧바로 손을 맞잡으며 영어로 대답했다.
“바로 귀국하는 건가?”
“아직 정리할 것이 남아 있어서 며칠 더 머물다가 떠날 생각입니다.”
“그렇군.”
프랭크 교수는 미련이 가득한 시선으로 그를 쳐다봤다.
“함께 연구하면 학계에 큰 획을 그을 인재인데 정말 아쉬워. 지금이라도 대학원에 진학할 생각이 없나?”
“죄송합니다.”
혹시해서 물어본 거였지만 역시나였다.
“후우 어쩔 수 없군. 대신 학교에서 못 보더라도 자주 연락하며 지내도록 하세.”
“그러면 저야 영광이지요.”
“아 그리고 이번에 함께 적은 논문은 연말쯤에 정리를 끝내고 정식으로 발표할 걸세.”
“분명 좋은 성과가 있을 겁니다.”
“나도 그렇게 생각하네.”
프랭크 교수는 확신에 찬 얼굴로 자신 있는 미소를 지었다.
그때 옆에 있던 박태홍 회장이 슬쩍 끼어들며 그에게 물었다.
“석원아. 이분은 누구시냐?”
“저희 학교 교수님이세요. 노벨 경제학상을 수상하신 분이기도 하고요.”
“뭐! 노벨상을 받은 분이라고?”
“네.”
박태홍 회장이 깜짝 놀란 표정을 지었다.
대충 어떤 말이 오갔는지 짐작한 듯 프랭크 교수가 인자한 얼굴로 박태홍 회장 부부를 보며 말했다.
“자네 부모님이신가?”
“그렇습니다.”
프랭크 교수는 먼저 예의를 갖춰 박태홍 회장에게 인사를 했다.
“처음 뵙겠습니다. 필립 프랭크라고 합니다.”
그러자 박태홍 회장도 얼른 영어로 대꾸하며 그와 악수를 했다.
“교수님이셨군요. 이거 인사가 늦어서 죄송합니다.”
“하하, 아닙니다. 이렇게 훌륭한 아드님을 두셔서 든든하시겠습니다.”
프랭크 교수가 석원을 힐끗 쳐다보며 말하자 박태홍 회장의 입꼬리가 저절로 위를 향했다.
“그동안 많은 제자들을 가르쳤지만 그중에서도 특출한 인재라 옆에 두고 싶은 마음에 대학원 진학을 권했는데 아쉽게도 뜻을 이루지 못했습니다. 앞으로 학계에 큰 대들보가 될 수 있는 인재인데 정말 아까운 일이라 계속 미련이 남는군요.”
프랭크 교수는 진심이 듬뿍 묻어나는 얼굴로 칭찬을 늘어놨다.
그 와중에도 계속 힐끔거리며 석원의 표정을 살피는 것이 지금이라도 대학원에 가겠다고 하면 곧장 납치라도 해갈 기세였다.
그러자 실룩실룩 입이 귀에 걸린 박태홍 회장은 호탕하게 웃음을 터트렸다.
“하하하! 과분한 칭찬이십니다.”
“아닙니다. 마음 같아서는 지금이라도 석원 군을 붙잡고 싶은데 뜻이 워낙 확고해서 어쩔 수가 없군요.”
노벨상을 받았다고 하는 저명한 학자가 노골적으로 막내아들을 탐내하는 모습을 목도한 박태홍 회장은 뿌듯하고 기쁜 마음을 감추지 못했다.
대놓고 금칠을 해주는 말에 석원이 쑥스러운 표정을 짓고 있자 프랭크 교수가 웃음기가 담긴 눈짓으로 박태홍 회장 몰래 살짝 윙크를 날렸다.
교수 생활을 오래했기에 학부모들이 제일 듣기 좋아하는 이야기가 뭔지 몸으로 익히고도 남았다.
물론 지금 프랭크 교수는 진심이 반 이상이긴 했지만 말이다.
뒷머리를 긁적인 석원은 프랭크 교수의 칭찬에 좋아 넘어가기 직전인 부모님을 보며 그냥 모르는 척 어색한 미소를 지으며 서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