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olden Spoon Investment Portfolio RAW novel - Chapter (61)
금수저 투자백서 61화(61/231)
61. 이제 존버만 하면 되겠네.
서울 한남동.
주말이라 편하게 면바지에 반 팔 폴로 티셔츠를 입은 박태홍 회장은 서재 소파에 혼자 앉아 평소 아끼는 난초 잎을 부드러운 천으로 하나하나 정성 들여 닦아내고 있었다.
잎 하나를 조심스럽게 잡고 먼지를 닦아내자 매끄러운 윤기가 살아났다.
박태홍 회장은 화려한 꽃보다 강인한 생명력과 내적 아름다움을 지닌 난초를 좋아했다.
홀로 고고하게 피어 청초하면서도 그윽한 향기를 풍기는 난초의 모습은 마치 재벌가 오너라는 타이틀 뒤에 숨겨진 어려움과 매 순간 힘든 결정들을 내려야 하는 자신의 모습하고 겹쳐 더욱 마음이 끌렸다.
바쁘게 그룹을 이끌어 가면서도 이렇게 홀로 조용히 난초를 닦는 시간은 그에게 평온과 위안을 선사했다.
창문 너머로 서재를 비추는 밝은 햇살에 붉은색 난초 꽃잎이 더욱 아름답게 보였다.
꼼꼼히 난초 잎을 모두 깨끗하게 닦아낸 박태홍 회장의 얼굴에는 평온한 미소가 번졌다.
“좋군.”
흡족해하며 난초를 감상하고 있을 때 조덕례 여사가 쟁반을 들고 서재 안으로 들어왔다.
“난초 손질하고 계셨어요?”
조덕례 여사가 탁자 위에 올려진 난초를 힐끔 쳐다보면서 물었다.
“식물이라고 물만 주면 되는 게 아니야. 관심을 주면서 세심하게 보살펴야 안 죽고 제대로 크지.”
박태홍 회장이 난초를 얼마나 좋아하는지 잘 알았기에 조덕례 여사는 그러려니 하며 잣을 띄운 수정과가 든 흰 대접을 내려놓고 빈 소파에 앉았다.
“그만하고 이거나 좀 드셔보세요.”
“수정과구만.”
“군산댁을 시켜서 꿀을 듬뿍 넣어 만들었는데 맛이 어떤지 보라고 가져왔죠.”
박태홍 회장은 난초 잎을 닦던 천을 내려놓고 흰 대접을 들어 수정과를 한 모금 마셨다.
“으음, 달달한 것이 괜찮네.”
“저도 먹어 보니 잘 만들어졌더라고요. 커피만 너무 마셔도 몸에 안 좋으니까 집에선 이걸로 대신 드셔요.”
“그러지 뭐.”
박태홍 회장은 수정과가 입맛에 잘 맞았는지 꿀떡거리며 그릇을 다 비워 버렸다.
그때 밖에서 노크 소리가 나더니 큰아들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아버지. 저 진형이입니다.”
“들어와라.”
박태홍 회장이 흰 대접을 내려놓자 장남인 박진형 상무가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왔다.
“두 분이 같이 계셨네요.”
오랜만에 보는 큰아들의 얼굴에 조덕례 여사가 반가운 얼굴로 몸을 일으켰다.
“중국 출장을 다녀왔다면서?”
“네. 지난주가 외할아버지 생신이셨는데 참석하지 못해서 죄송해요.”
“일이 바쁘면 어쩔 수 없지. 그래도 나중에 따로 전화는 드렸다면서.”
“생신날 아침에 안부 인사도 드릴 겸 해서요. 시간이 부족해서 짧게 끝낸 게 죄송할 따름이죠.”
“그게 어디니. 잘했어.”
모자간의 대화를 지켜보고 있던 박태홍 회장이 짧게 헛기침을 하며 중간에 끼어들었다.
“큰 애하고 잠시 할 이야기가 있으니까 당신은 좀 나가 있어.”
“알았어요.”
빈 대접을 들고 일어선 조덕례 여사가 큰아들을 보며 물었다.
“점심은 아직 안 먹었지?”
“네.”
“그럼 집에서 먹고 가렴. 네가 좋아하는 꽃게탕을 해놨어.”
“예, 그럴게요.”
조덕례 여사는 살짝 미소 짓고는 서재를 나갔다.
원목으로 만든 문이 닫히자 박태홍 회장이 소파를 가리키며 말했다.
“멀뚱히 서 있지 말고 거기 앉아라.”
“예.”
박태홍 회장은 탁자 위에 놓인 난초를 옆으로 치우고는 오른편 소파에 앉은 큰아들을 보며 물었다.
“중국에 직접 가 보니 분위기가 어떤 것 같더냐?”
“따로 자세히 보고서를 써서 올리겠지만 중앙정부뿐만 아니라 각 성의 지방 정부들도 외자 유치에 아주 적극적이었습니다.”
채산성이 계속 떨어지자 결국 박태홍 회장은 고민 끝에 상황이 더 안 좋아지기 전에 국내 면방 공장을 인건비가 싼 중국으로 옮기기로 결정했다.
공장 이전을 본격적으로 추진하기 전에 사전 답사 차원에서 큰아들을 중국에 보내 현지 상황을 살펴보도록 했다.
“특히 그중에서도 동북 3성 지방 정부들이 가장 좋은 조건을 제시했습니다.”
“동북 3성이라면 북한 땅과 맞닿아 있는 지역을 말하는 거냐?”
“그렇습니다.”
중국의 최동북부에 위치한 지린성과 랴오닝성 그리고 헤이룽장성을 합쳐서 흔히 동북 3성이라고 불렀다.
박태홍 회장이 콧잔등을 살짝 찡그리며 큰아들을 봤다.
“거긴 1공장이 있는 선전하고 완전 반대편에 있는 곳 아니냐.”
“맞습니다. 동북 3성을 대표하는 대도시인 심양과 선전 사이의 거리가 대략 2,300㎞쯤 되니 아주 멀리 떨어져 있지요.”
“설마 거길 공장 이전 후보지로 생각하는 건 아니겠지?”
시선을 받은 박진형 상무는 차분히 대답했다.
“처음에는 저도 부정적이었습니다만 지금은 진지하게 검토해 볼만 하다고 생각 중입니다.”
회의적이었지만 박태홍 회장은 일단 이야기나 한번 들어보자는 생각에 팔짱을 낀 채 물었다.
“그렇게 보는 이유가 뭐냐?”
그러자 박진형 상무가 자세를 고쳐 앉으며 사뭇 진지하게 말했다.
“공장을 중국으로 이전하려는 가장 큰 이유가 생산비를 낮추기 위해서이지 않습니까.”
“그렇지.”
“1공장이 있는 선전도 임금이 국내의 절반도 안 될 정도로 낮지만, 대표적인 낙후지역으로 꼽히는 동북 3성은 중국 내에서도 인건비가 저렴한 지역입니다.”
“흐음.”
“거기다가 한국하고 거리상으로 아주 가까운 데다가 다롄 항구를 통해 생산품을 수월하게 운송할 수 있는 이점도 있지요.”
가만히 이야기를 듣고 있는 박태홍 회장의 표정을 슬쩍 살핀 박진형은 설명을 마저 이어갔다.
“동북 3성에는 말이 통하는 조선족들이 200만 명이나 집단 거주하고 있어. 이들을 직원으로 채용한다면 공장을 가동하는 것이 다른 곳보다 훨씬 수월할 겁니다.”
“해외 공장을 운영하는데 가장 큰 걸림돌이 의사소통 문제이기는 하지.”
“맞습니다.”
실제로도 선전에 첫 해외 공장을 만들 때 국내 파견 직원들과 중국 현지 노동자 간에 말이 통하지 않아 상당한 어려움을 겪었다.
“마침 선전을 방문 중이었던 랴오닝성 지방 정부 고위 관리가 소문을 듣고 직접 찾아와 대화를 가졌습니다. 그 자리에서 공장 유치에 대한 높은 의지를 보이며 상당히 매력적인 조건을 제시했습니다.”
박태홍 회장이 관심을 보이며 물었다.
“구체적으로 어떤 조건을 제시하더냐?”
“랴오닝성의 성도인 선양 인근에 25만 평 규모의 공장 부지를 55년간 무상으로 제공할 뿐만 아니라, 도로와 상하수도를 비롯한 인프라를 지방 정부에서 전부 깔아주겠다고 약속했습니다.”
사회주의국가인 중국은 원칙적으로 모든 땅은 국가나 지방 정부 것이고 개인이 소유할 수 없도록 되어 있었다.
대신 용도에 따라 40년, 70년 등 일정 기간 동안 토지를 쓸 수 있는 이용권을 받아 사용할 수 있도록 했다.
“25만 평이라면 청주 공장의 두 배가 넘는 크기구나.”
“거기에 더해 법인세를 10년간 50% 감면해 준다고도 했습니다.”
마지막 말에 박태홍 회장은 눈을 반짝이며 솔깃한 표정을 지었다.
“정말 그렇게 해준다고 하더냐?”
시선을 받은 박진형은 머리를 끄덕이며 바로 대답했다.
“예. 랴오닝성 지방 정부가 공장 유치에 상당히 적극적이라 협상을 통해 제시한 것보다 조건을 더 유리하게 얻어 낼 수 있을 것 같았습니다.”
“그렇단 말이지.”
박태홍 회장은 한쪽 손으로 깨끗하게 면도한 턱을 매만지며 잠시 고심하다가 이내 다시 입을 뗐다.
“임원들과 논의를 해보고 어떻게 할지 결정을 내리도록 하자.”
“네.”
쉽게 결정할 수 있는 문제는 아니었기에 박진형은 군말 없이 따랐다.
“그건 그렇고 오늘 널 오라고 한 건 따로 미리 알려줄 일이 있어서다.”
안 그래도 내일 출근하면 출장 보고를 하러 갈 텐데, 본가로 따로 부른 이유가 궁금하던 차였기에 박진형은 귀를 쫑긋 세우고 이야기를 들었다.
“연말쯤에 대흥 창투를 증시에 상장할 계획이라는 건 너도 알고 있을 거다.”
“네.”
“상장 전에 내가 가진 대흥 창투 지분 중에 15%를 둘째한테 증여해줄 생각이다.”
“……!”
전혀 생각하지 못했던 말에 박진형은 깜짝 놀랐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금방 표정을 수습하고는 박태홍 회장을 보며 조심스럽게 물었다.
“석원이한테 금융 계열사들을 물려주실 생각이신 겁니까?”
박태홍 회장은 가라앉은 시선으로 큰아들을 바라봤다.
“왜 그렇게 생각하냐?”
“석원이를 본사가 아닌 증권에 입사시키고 이번에 창투 지분까지 넘겨주신다고 하니 그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둘째 녀석이 유독 뛰어나긴 해도 큰아들 역시 그에 못지않은 통찰력과 준수한 경영 능력을 가지고 있었다.
박태홍 회장은 내심 흡족해하면서도 겉으론 그런 기색을 전혀 내비치지 않은 채 유심히 큰아들의 얼굴을 살폈다.
혹시나 둘째에게 금융 계열사를 떼어주는 것에 불만이라도 가질까 봐 살짝 걱정됐기 때문이었다.
“앞으로 더 지켜봐야 되겠지만 큰 문제가 없다면 그럴 생각이다.”
“그러시군요.”
박진형은 별다른 표정 변화 없이 대꾸했다.
“서운하냐?”
소파에 몸을 기댄 박태홍 회장이 대뜸 그렇게 묻자 박진형은 약간의 머뭇거림도 없이 머리를 가로저었다.
“아닙니다. 석원이도 아버지 자식이지 않습니까.”
다행히 그 모습에 거짓은 없어 보였다.
박태홍 회장은 내심 안도하며 사뭇 진지한 목소리로 말했다.
“가화만사성이라는 말처럼 집안이 화목해야 바깥일도 잘 된다는 걸 절대 잊지 말도록 해라.”
“명심하겠습니다.”
대답하는 큰아들을 물끄러미 쳐다보던 박태홍 회장이 곧장 다음 말을 꺼냈다.
“연말 인사 때 노 사장이 은퇴해 자문역으로 물러날 거다.”
“……!”
처음 듣는 말에 큰아들이 놀란 표정을 짓는 가운데 박태홍 회장이 담담하게 말을 이었다.
“그때 함께 대흥 방직 사장으로 발령이 날 테니. 그렇게 알고 미리 준비해 두도록 해라.”
그룹의 모태이자 주력 계열사인 대흥 방직 사장으로 임명하는 건 큰아들인 박진형이 그룹 후계자 자리에 한층 더 가까워졌다는 의미였다.
박진형은 들뜬 마음을 애써 가라앉히고는 차분하게 대답했다.
“실망시켜 드리지 않게 최선을 다 하겠습니다.”
“그래.”
박태홍 회장은 그런 큰아들의 모습이 만족스러운 듯 머리를 끄덕였다.
“높은 자리에 올라가는 만큼 책임 또한 커진다는 걸 잊지 말고 정진하도록 해라.”
“예.”
* * *
미국 뉴욕 플라자 호텔 피트니스 센터.
커다란 통유리창 밖으로 햇살이 쏟아져 들어오는 가운데 가벼운 복장을 한 석원이 런닝머신 위를 뛰고 있었다.
5번가의 화려한 고층 빌딩과 센트럴 파크의 초록빛 숲, 그리고 거리를 오가는 사람들을 내려다보면서 운동을 하자 뉴욕의 활기찬 에너지가 그대로 전해지는 것 같아 기분이 상쾌했다.
그렇게 빠른 속도로 30분 넘게 런닝머신 위를 달리자 온몸이 땀으로 흠뻑 젖어 티셔츠가 착 달라붙으면서 근육질인 석원의 몸매가 그대로 드러났다.
천천히 속도를 줄이며 런닝머신을 멈춘 석원은 타월로 얼굴에 맺힌 땀을 닦아내며 살짝 거칠어진 호흡을 골랐다.
벤치 위에 놔둔 물통을 집어 목을 축이고 있을 때 핸드폰이 울리며 전화가 왔음을 알렸다.
“여보세요.”
[드류 에반스입니다. 통화 가능하십니까?]상대방의 이름을 들은 순간 석원의 눈에 이채가 떠올랐다.
석원은 주변에 아무도 없는 걸 확인하곤 벤치에 앉아 핸드폰을 귀에 가까이 댔다.
“말해 보세요”
[정말로 경영에 간섭하지 않고 투자자로 계실 겁니까.]“회사에 문제가 생기거나 기대 이하의 실적을 보인다면 개입하겠지만 그전에는 드류 씨를 지지한다고 약속하죠.”
잠시 아무런 말이 없던 드류 에반스가 이내 묵직한 목소리로 원하던 이야기를 했다.
[앞으로 3년간 현재 경영진의 자리를 보장해주신다면 손을 잡도록 하죠.]석원은 생각할 것도 없다는 듯이 바로 대답했다.
“그러죠.”
빠른 대답에 한순간 말문이 막힌 듯 잠시 침묵이 흘렀다.
[조금은 고민을 하실 줄 알았는데 금방 대답을 하셔서 솔직히 당황스럽군요.]“이미 실력이 검증되고 회사를 누구보다 잘 이끌 경영진이 스스로 남아준다는데 마다할 이유가 있겠어요.”
마지막까지 작은 불안과 의심을 남겨뒀던 드류 에반스는 석원의 이야기에 비로소 꺼림칙한 기분을 털어낼 수 있었다.
[성장 가능성을 보고 투자하셨다는 말씀이 진심이셨군요.]“물론이죠. 전력으로 밀어줄 테니 도움이 필요하면 언제든 연락해요.”
[말씀만으로도 고맙습니다.]좋은 분위기로 통화를 끝낸 석원은 입가에 미소를 지은 채 핸드폰을 귀에서 뗐다.
“황금알을 낳는 거위의 배를 가르게 되면 어쩌나 걱정했는데 이걸로 깔끔하게 해결됐군. 이제 돈 복사가 되길 기다리면서 존버만 하면 되겠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