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olden Spoon Investment Portfolio RAW novel - Chapter (62)
금수저 투자백서 62화(62/231)
62. 별로 소소해 보이지 않는데요.
미국 뉴어크 리버티 국제공항(Newark Liberty International Airport).
구름 한 점 없이 날씨가 맑고 쾌청한 가운데 넓은 주기장 한쪽에 새하얀 동체를 가진 걸프스트림 IV 비즈니스 제트기 한 대가 세워져 있었다.
넓고 쾌적한 비즈니스 제트기 내부는 부드러운 가죽 소파와 원목 가구로 고급스럽게 꾸며졌다.
멀리 확 트인 활주로와 줄지어 세워진 여객기들이 보이는 둥근 방풍창을 사이에 두고 석원이 랜든하고 마주 앉아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차입 비용을 비롯한 수수료와 세금을 모두 제하고 최종적으로 191억 8천만 달러의 수익을 확정했습니다.”
회색 정장을 깔끔하게 차려입은 랜든이 설명과 함께 얇은 서류철을 내밀었다.
푹신한 시트에 편안히 몸을 기댄 석원은 서류철을 받아 안에 든 결산서를 훑어보고는 만족한 미소를 지었다.
“기대한 만큼 수익률이 나쁘지 않네요.”
비교적 차분한 반응에 랜든이 머리를 절레 흔들었다.
“나쁘지 않은 정도가 아니라 엄청난 잭팟이지요. 전 수익 금액을 보고 잘못 본 건 아닌지 몇 번이나 확인했었는데 어떻게 그리 태연하십니까. 역시 대단하십니다.”
만약 랜든이었다면 기뻐서 방방 뛰어다니고도 남을 금액이었다.
“이런 것이 그릇 차이인가 봅니다.”
“놀라긴 나도 마찬가지예요.”
“아닌 것 같습니다만.”
가볍게 미소 짓고 있는 저 얼굴이 어떻게 놀란 표정이란 말인가.
랜든은 농담하지 말라는 것처럼 힐끔 곁눈질하고는 다시 입을 열었다.
“레버리지를 잔뜩 키워서 740억 달러가 넘는 거액을 돌릴 때는 혹시라도 문제가 생길까 봐 조마조마했는데, 수익 금액을 보니 그동안 마음을 졸인 것이 단번에 날아가는 것 같습니다.”
무려 10배가 넘는 레버리지였다.
그만큼 수익을 극대화시킬 수 있었으나 자칫 조금만 삐끗해 채권 가격이 떨어진다면 그 순간 손실이 천문학적으로 불어나 단번에 엘도라도 펀드를 파산시켜 버릴 수도 있었다.
그러니 한시도 긴장을 놓지 못하고 노심초사할 수밖에 없었다.
‘올해까지는 저금리가 이어진다는 걸 알고 있는 나도 매일 채권 가격을 확인하는 걸로 하루를 시작했을 정도니까. 다른 사람들은 더 말할 필요도 없겠지.’
아마 모르긴 해도 틈날 때마다 채권 시세를 살피며 안절부절못했을 터였다.
“포지션을 전부 정리해서 후련한 마음이 듭니다만 한편으로는 이런 높은 수익을 다시 올릴 수 있을지 아쉽기도 하군요.”
랜든이 시원섭섭한 표정으로 말했다.
그런 랜든과 달리 그는 전혀 미련이 없는 듯 담담한 모습이었다.
“확실히 너무나도 달달한 돈벌이이긴 했지만 뭐든 시작이 있으면 끝이 있는 법이니까. 그렇게 아쉬워할 필요 없어요.”
그러자 랜든이 슬쩍 주위를 둘러보고는 목소리를 낮춰 물었다.
“정말로 예상하시는 대로 연준이 기준 금리를 올릴까요?”
“물론이에요.”
석원이 탁자 위에 놓인 위스키 잔을 집어 들자 달각하며 안에 든 각얼음이 부딪치는 소리가 났다.
“백악관에서는 싫어하겠지만 인플레이션을 제일 두려워하는 연준이니 분명 그럴 거예요.”
그동안 나름 연준의 움직임과 채권 시장 상황을 살펴보며 금리 인상 가능성을 가늠해봤던 랜든의 표정이 무거워졌다.
“저희는 손을 털고 나왔지만 여전히 채권에 많은 레버리지가 걸려 있는데 말씀대로 된다면 충격이 아주 크겠습니다.”
“지금까지 흥청망청 파티를 벌여온 만큼 후유증 역시 적지 않겠죠.”
“하긴 헤지펀드들이 너나없이 뛰어들면서 채권 시장에 버블이 잔뜩 부풀어 오른 상태이긴 하지요.”
채권 버블이 만들어지는데 엘도라도 펀드도 적지 않은 영향을 끼쳤다.
기준 금리를 올린다면 상당한 충격이 있겠지만 그렇다고 채권 시장 전체가 붕괴하는 일은 없을 터였다.
‘연준도 그걸 믿고 예방적 금리 인상을 단행하려는 것이기도 하지.’
하지만 세상일은 뜻대로 되지 않는 경우가 많고 악재는 한꺼번에 닥치는 법이었다.
아직 크게 부각 되진 않았지만, 미국과 일본의 무역 분쟁으로 인한 엔화 강세 우려 그리고 예상보다 강한 인플레이션 압력 등 곳곳에 예상치 못한 지뢰들이 널려 있었다.
이 모든 것들이 헤지펀드들이 일으킨 과도한 레버리지하고 복잡하게 엮여 있어, 한 곳에서 문제가 발생하면 순식간에 연쇄적으로 폭발해 채권 시장 전체에 파멸적인 재앙을 초래할 수 있었다.
‘연준의 금리 인상이 바로 끔찍한 죽음의 소용돌이를 일으키는 도화선이 되어 버렸지.’
채권 대학살이라는 말을 할 정도로 금리 인상의 충격파는 랜든이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파괴적이고 절망적인 결과를 초래했다.
어차피 얼마 뒤면 알게 될 일이었기에 석원은 굳이 그걸 짚어주지 않고 그냥 넘어갔다.
“예정대로 숏 포지션을 계속 쌓아가고 있겠죠?”
“예. 꾸준히 약정을 늘려나가는 중입니다.”
작게 머리를 끄덕인 석원은 위스키 잔을 내려놓으며 말했다.
“앤드루한테 엔화 롱 포지션을 새로 구축하라고 해요.”
뜻밖의 지시에 랜든이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엔화가 오를 거라고 보시는 겁니까?”
“계속 늘어나는 무역 적자에 미국과 일본의 분위기가 심상치 않다는 건 알고 있을 거예요.”
“물론입니다. 무역 불균형을 해소하기 위해 지난 4월부터 미일 양국간 협상을 벌이고 있지 않습니까.”
최근 미국 정가와 경제계에서 가장 핫한 이슈로 떠오르고 있는 것이 바로 미일 무역협상이었다.
“가장 큰 쟁점이 자동차 수입 문제인데 이건 쉽사리 타협점을 찾기 어려울 거예요.”
랜든이 동의하듯 머리를 끄덕였다.
“단순히 미국산 자동차와 부품 수입 확대를 종용하는 걸 넘어 구체적인 수입량을 제시하고 일본 정부가 이행을 보증까지 하라니 받아들이기가 힘들겠죠.”
“맞아요. 하지만 백악관 역시 무리한 요구라는 걸 알면서도 양보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죠.”
“전미 자동차 노조를 말씀하시는 겁니까?”
“그래요.”
전미 자동차 노조(United Auto Workers)는 수십만 명의 조합원을 거느린 미국에서 두 번째로 크고 영향력이 있는 노동조합이었다.
“일본 자동차 수입이 늘어나면서 심각한 타격을 입은 곳이 바로 디트로이트와 북부 러스트 벨트 지역이잖아요.”
“그쪽 경기가 많이 안 좋기는 하죠.”
“내년에 있을 중간 선거를 앞두고 전통적으로 민주당의 텃밭인 러스트 벨트를 수성하고 전미 자동차 노조를 달래려면 강경책으로 나갈 수밖에 없을 거예요.”
“하긴 연이은 정책 실패로 가뜩이나 여론이 안 좋은데 북미자유무역협정 비준안에 서명하는 바람에 지지율이 바닥을 기고 있으니 마음이 급하긴 할 겁니다.”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은 미국, 캐나다, 멕시코 북미 3개국을 하나의 경제 블록으로 묶는 자유무역협정이었다.
NAFTA 발효로 인해 관세가 대폭 낮아지고 수출입이 편해지면서 경제가 크게 성장하는 밑거름이 됐다.
하지만 그에 따른 부작용도 있었는데 자연스럽게 미국 내 제조업체들이 값싼 노동력을 찾아 대거 멕시코로 공장을 이전하면서 일자리 감소와 임금 하락이라는 악영향이 발생했다.
‘민주당의 핵심 지지층이 바로 노동계층인데 이런 상황에서 지지율이 오를 리가 없지.’
실제로 야당인 공화당은 백악관이 미국 노동자들의 일자리를 빼앗았다며 맹비난을 퍼붓고 있었다.
“실책을 만회하기 위해서라도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일본 정부를 강하게 압박할 거예요.”
“설마. 의도적으로 엔고를 유도할 거란 말씀입니까?”
눈을 동그랗게 뜬 랜든의 시선을 받으며 석원이 머리를 끄덕였다.
“엔이 오르면 수입 가격이 높아져 자연스럽게 무역 적자가 줄어들고 일본 정부한테도 압력을 가할 수 있으니 안 쓸 이유가 없는 카드지 않겠어요.”
“말씀을 듣고 보니 충분히 가능한 시나리오인 것 같습니다.”
해볼 만한 베팅이라고 판단한 랜든은 몸을 앞으로 당겨 앉으며 물었다.
“포지션을 얼마나 걸까요?”
미리 생각해둔 것이 있던 석원은 망설임 없이 대답했다.
“채권도 투자해야 되니까 소소하게 80억 달러만 걸도록 하죠.”
“별로 소소해 보이지 않는데요.”
랜든이 황당한 표정을 지으며 그를 봤다.
“얼마 전까지 채권 수백억 달러어치를 굴렸던 걸 생각하면 그리 많은 것도 아니잖아요.”
“하하.”
틀린 이야기는 아니었기에 랜든은 머리를 절레 흔들며 헛웃음을 내뱉었다.
“이거 참. 보스 옆에 있다 보니 자꾸 심장이 쫄려서 제 명에 못 죽겠습니다.”
“짜릿하고 스릴 있어서 좋지 않아요?”
석원의 농담에 랜든이 가슴팍에 손을 얹고 고개를 가로저었다.
“제 인생의 모토는 얇고 길게 사는 겁니다. 예쁜 아내랑 오순도순 살다가 증손자까지 보고 가야죠.”
“그럼 너무 심심하잖아요. 심장이 두근거려야 살아가는 맛이 있지.”
“쓸데없이 가슴이 두근거리면 병원엘 가야죠. 그보다 또 지시하실 것이 있으십니까?”
“그게 끝이에요.”
“다행이군요. 여기서 더 놀랄 일이 있으면 정말 심장에 무리가 갔을 겁니다.”
랜든이 하하 웃으며 너스레를 떨었다.
“랜든이 없으면 펀드 운영이 안 되는데 건강을 해치면 안 되죠. 다음에 올 때 몸에 좋은 보약을 지어줘야겠네요.”
“보약까지 먹여가며 일을 시키겠다니 악덕 고용주가 되실 셈이십니까.”
그러자 석원이 짐짓 섭섭하단 얼굴로 눈매를 축 늘어뜨렸다.
“펀드 성과가 좋아서 이번 연말에 특별 보너스를 더 얹어줄까 생각하고 있었는데. 악덕 고용주 소리를 듣다니 생각을 다시 해봐야겠는데요.”
“아니 무슨 그런 말씀을! 농담인 거 아시잖습니까.”
얼른 태도를 바꾸는 모습에 석원이 푸흡 웃음을 터트렸다.
“나도 장난이었어요.”
“정말 보스께는 못 이기겠습니다.”
랜든이 항복의 표시로 양손을 살짝 들어 보였다.
“그럼 전 이만 내리도록 하겠습니다. 한국까지 조심해서 가십시오.”
“일이 생기면 수시로 연락하도록 해요.”
“알겠습니다.”
시트에서 몸을 일으키던 랜든은 문득 떠오른 생각에 멈춰 서며 말했다.
“참, 큰 수익을 올렸는데 이참에 편하게 오고 가실 수 있도록 전용기를 하나 구입하시죠.”
“있으면 편할 것 같긴 한데.”
석원이 잠깐 고민하는 표정을 지었다.
“당장 급한 건 아니니까 이번 배팅까지 끝내고 천천히 생각해보죠.”
“그러십시오.”
랜든은 고개 살짝 숙여 정말로 인사를 하곤 비즈니스 제트기에서 내렸다.
그러자 늘씬한 스튜어디스가 기다렸다는 듯 옆으로 다가와 물었다.
“이제 이륙해도 되겠습니까?”
“그렇게 해요.”
석원이 머리를 끄덕이자 스튜어디스가 웃는 얼굴로 말했다.
“알겠습니다. 그럼 안전벨트를 착용해주십시오.”
좌석에 있는 안전벨트를 찾아 착용하는 걸 확인한 스튜어디스는 뒤로 걸어가 탑승구를 닫았다.
둥근 방풍창 너머로 보이는 공항 풍경을 바라보며 얼음이 든 위스키를 한 모금 마시고 있을 때 짧은 진동과 함께 동체 양쪽에 달린 제트 엔진 시동이 걸렸다.
이내 석원이 탑승한 비즈니스 제트기는 천천히 움직여 주기장을 빠져나왔다.
관제탑의 지시를 받아 잠시 대기하던 비즈니스 제트기는 쭉 뻗은 활주로를 최대 출력으로 내달리다가 힘차게 지상을 박차고 하늘 높이 떠올랐다.
한참을 위로 계속 상승하던 비즈니스 제트기가 순항 고도에 도달했는지 수평 비행을 하기 시작했다.
그러자 스튜어디스가 승객 칸으로 다시 돌아와 말을 걸었다.
“이제 안전벨트를 푸셔도 됩니다. 혹시 더 필요하신 게 있으신가요?”
“이거랑 같은 걸로 한 잔 더 부탁해요.”
석원이 마시던 위스키 잔을 살짝 들어 보였다.
“알겠습니다.”
스튜어디스가 자리를 떠나자 석원은 푹신한 좌석 시트에 편안히 몸을 기댄 채 고급스럽게 꾸며진 전용기 내부를 눈으로 슥 훑었다.
“정말 한 대 사 버릴까.”
석원이 이번에 번 돈에 비하면 전용기 한 대 정도는 사치라고 할 수도 없었다.
머릿속 천칭이 점점 한쪽으로 기우는 것을 느끼며 남은 위스키를 천천히 삼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