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olden Spoon Investment Portfolio RAW novel - Chapter (65)
금수저 투자백서 65화(65/231)
65. 일단은 경고를 해주는 게 맞겠지.
[국내 서른 개 증권사 내년부터 환전 업무 허가11일 재정경제원은 내년 3월부터 외국환은행과 마찬가지로 국내 서른 개 증권사들도 국내외 주식투자와 관련한 환전업무를 취급할 수 있도록 허가한다고 발표했다.
그동안 은행이 독점하던 외국환 업무를 다른 금융기관에도 단계적으로 허용하기로 한 외환제도 개편방안에 따른 조치이다.
하지만 안정적인 환전업무 취급을 위해 증권사들 가운데 자기자본이 1천억 원 이상이고 경영평가가 B급 이상인 서른 개 사만 업무를 허용하기로 했다.
당초 재경원은 외국계 증권사의 경우 차후로 예정된 증권거래법 개정 때 국제업무를 허가할 수 있는 근거를 따로 마련하면 별도의 충족 요건을 맞춘 곳에 한해 환전업무를 허용할 계획이었다.
그러나 환전업무의 불편함을 호소하는 외국인 투자자들의 강력한 요청에 계획을 바꿔 이번에 모두 허가를 내주기로 결정했다.
이에 따라 국내외 주식 투자자는 외국환은행에 증권사 명의의 주식투자용 원화예금 및 외화예금 계정을 통해 주식 투자 자금을 직접 송금할 수 있게 됐다.
증권사들은 환전액의 0.4%인 수수료를…….]
개인 사무실 책상 앞에 혼자 앉아 있던 석원은 신문에 실린 기사를 읽고는 살짝 미간을 찡그렸다.
“동해 페레그린 증권은 이번에 같이 허가를 받기 어려울 줄 알았는데 예상을 깨고 환전업무를 따냈네.”
동해 페레그린 증권은 홍콩 증권사인 페레그린이 작년에 동해그룹과 합작으로 설립한 한국 현지 법인이었다.
내로라하는 회사들을 제치고 동해그룹이 첫 번째 합작증권사를 세울 수 있었던 건 노기훈 전 대통령의 며느리가 우용갑 동해그룹 회장의 딸이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썩어도 준치라더니. 정권이 바뀌었지만 그래도 아직 영향력이 남아 있는 모양이군.”
취임과 동시에 지난 정권 인사들이 대거 물갈이됐지만 방대한 정부 관료 조직을 한꺼번에 싹 다 갈아치우는 건 불가능한 일이었다.
“위탁수수료 수입이 작년보다 2천 353.9%나 늘어나 증권사들 가운데 증가율 1위를 기록 중이라고 하던데. 거기다 환전업무까지 할 수 있게 된다면 성장세가 더욱 가팔라지겠네.”
기사가 실린 신문을 손가락으로 두드리면서 석원은 동해 페레그린 증권에 대한 떨떠름한 감정을 표출했다.
홍콩 페레그린 증권과 동해그룹의 전폭적인 지원을 받으며 빠르게 성장하는 모습이 상당히 놀랍긴 했다.
그렇지만 아직은 업계에서 열 손가락 안에 들어가는 대형 증권사인 대흥 증권을 위협할 정도는 아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석원이 신경을 곤두세우며 경계심을 드러내는 건 바로 회귀 전에 동해 페레그린 증권이 대흥그룹을 몰락시키는 기폭제 역할을 했기 때문이었다.
“아직 일이 벌어지려면 시간이 조금 남았지만 사건이 터지기 전에 미리 예방하는 것이 뒷수습보다 낫겠지.”
잠시 고민하던 석원은 결정을 내린 듯 혼잣말을 내뱉었다.
그러고는 책상 한쪽에 놓인 전화 수화기를 집어 들고는 다이얼 버튼을 눌렀다.
연결음이 들리고 얼마 있지 않아 차분한 여자 목소리가 들렸다.
[대흥방직 상무실 비서 김상희입니다. 무엇을 도와드릴까요?]“형님 지금 자리에 있어요?”
몇 번 전화를 건 적이 있었기에 여비서가 바로 목소리를 알아보고 대답했다.
[잠깐만 기다려 주시겠습니까.]수화기를 귀에 댄 채 잠깐 기다리자 얼마 있지 않아 여비서의 음성이 다시 들렸다.
[지금 연결해드리겠습니다.]짧은 신호음 끝에 형인 박진형 상무가 전화를 받았다.
[여보세요.]“형, 나야.”
[사무실로 전화를 다 하고 어쩐 일이야.]석원은 손에 든 수화기를 고쳐 쥐며 말했다.
“오늘 저녁에 시간 돼?”
[왜.]“괜찮으면 밥이나 같이 먹었으면 해서.”
그러자 무슨 생각을 했는지 박진형의 목소리가 약간 굳어졌다.
[정말 무슨 일이라도 있는 거야?]“그런 건 아니고. 할 이야기가 좀 있어서 그래.”
[전화로 하면 안 되는 거냐?]“그건 좀 그래서…… 바쁘면 꼭 오늘이 아니라도 돼.”
박진형은 잠시 말이 없더니 뭔가 부스럭거리는 소리를 냈다.
[잠깐 있어 봐.]비서를 불러서 스케줄을 확인해 본 박진형은 몇 분이 더 지난 후에야 다시 입을 열었다.
[명동에 괜찮은 일식당이 있는데 어때?]“좋지. 돈은 형이 내는 거지?”
장난스러운 말투에 박진형이 어이없다는 듯 피식 웃었다.
[이번에 큰 수익을 올려 인센티브를 두둑하게 받았다고 들었는데 밥 얻어먹을 생각부터 하냐.]“형은 앞으로 그룹을 물려받을 후계자잖아. 가오가 있지 설마 동생한테 밥 얻어먹으려는 건 아니지?”
[하여간 말이나 못 하면. 알았으니까 5시까지 명동에 있는 해풍에서 보자.]“알았어.”
통화를 끝내고 수화기를 내려놓은 석원은 팔짱을 낀 채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설득하기 쉽지 않겠지만 그래도 일단은 경고를 해주는 게 맞겠지.”
그때 밖에서 노크 소리가 나자 석원은 상념을 지우며 말했다.
“들어와요.”
문을 열고 들어온 최호근 과장이 책상 앞으로 다가와서 섰다.
“말씀하셨던 투자금이 방금 계좌로 입금됐습니다.”
최호근 과장이 내민 얇은 서류철을 받아서 펼친 석원은 안에 든 입금 확인증을 보곤 작게 머리를 끄덕였다.
“지난번에 지시한 대로 오광산업과 천호 제강에 절반씩 나눠서 투자하도록 해요.”
최호근 과장이 바로 대답하지 않고 머뭇거리자 그가 의아한 눈빛으로 쳐다봤다.
“왜 그래요?”
“아닙니다.”
“딱 보니 뭔가 할 이야기가 있는 것 같은데. 괜찮으니까 말해봐요.”
그러자 최호근 과장은 잠시 주저하다가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최근 주가수익배율(PER)이 낮은 종목에 대한 관심이 커지면서 수혜를 크게 받고 있는 오광산업 주식을 추가 매입하시는 건 충분히 납득이 됩니다.”
가만히 이야기를 듣고 있는 석원의 표정을 힐끔 쳐다보고는 최호근 과장이 말을 이었다.
“그런데 저PER 주식도 아니고 매출 역시 신통치 않은 천호제강에 500억 원이나, 그것도 장기로 투자하시는 건 한 번 더 재고해 보시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오광산업하고 달리 천호제강은 계획대로 주식을 사들인다면 단번에 대주주가 되어 버릴 정도로 규모가 작은 회사였다.
당연히 관심을 크게 받는 종목이 아니다 보니 평소 시장에서 거래되는 물량 역시 그리 많지 않았다.
그 때문에 자칫 잘못해서 기대한 만큼 주가가 오르지 않는다면 손절하기도 어려운 골칫거리가 될 가능성이 컸기에 최호근 과장이 우려를 나타낼 만도 했다.
“천호제강에 투자하는 이유는 이미 지난번 회의 때 설명해 줬을 텐데요.”
“부산과 창원, 양산에 보유한 공장부지 가치 말씀이십니까?”
“그래요.”
최호근 과장이 회의적인 태도를 보이며 말했다.
“말씀하셨던 대로 공장부지 가치가 낮게 평가된 건 사실이지만 다른 곳으로 공장을 옮기지 않는 한 현금화될 일이 없지 않습니까. 설사 공장을 이전한다고 해도 세 곳 다 전용주거지역이거나 공단 내에 위치해 있어 다른 용도로 전용이 어려운 상태더군요. 이러면 부지를 판다고 해도 매각 차익이 크지 않을 겁니다.”
조목조목 따지며 투자 계획을 반박하는 걸 들으면서도 석원은 전혀 화를 내거나 기분 나쁜 표정을 짓지 않았다.
오히려 천호제강이 보유한 공장부지의 용도와 회사 재무 상태를 꼼꼼히 확인해 본 듯한 모습에 내심 크게 만족하고 있었다.
단순히 시키는 것만 하며 등에 업혀 갈 생각을 하지 않고 능동적으로 움직이면서 할 말은 하는 태도가 더 마음에 들었기 때문이었다.
‘제법이네.’
속으로 최호근 과장에 대한 평가를 살짝 높인 석원은 긴장한 얼굴로 앞에 서 있는 상대를 보며 말했다.
“조사를 열심히 한 것 같은데 한 가지 놓친 게 있어요.”
“그게 뭡니까?”
“아직 알려지진 않았지만 곧 발표될 지하철 2호선 노선이 부산 공장을 지나가고 바로 앞에 역도 생길 계획이라는 거예요.”
전혀 생각지도 못한 이야기에 최호근 과장이 눈을 동그랗게 떴다.
“그게 정말입니까?”
시선을 받은 석원은 입가에 미소를 머금은 채 머리를 끄덕였다.
“그래요. 발표가 나오면 공장부지 가치가 지금보다 크게 뛸 거라는 건 굳이 말하지 않아도 알겠죠.”
지하철이 지나가는 것하고 없는 건 천지차이였다.
더군다나 부산 공장은 주거지역 안에 위치해 있어 공장을 옮기고 대규모 아파트 단지로 개발한다면 부동산 가치를 훨씬 더 높일 수 있었다.
이런 개발 정보를 어떻게 알아낸 거지하고 의문을 가지던 최호근 과장은 이내 석원의 뒷배경을 떠올리곤 바로 납득했다.
‘재벌 3세라면 이런 개발 정보를 알고 있다고 해도 그리 이상한 일은 아니지.’
그는 양손으로 깍지를 낀 채 최호근 과장을 보며 물었다.
“이게 시장에 알려지면 어떻게 될 것 같아요.”
“투자자들의 주목을 끌어 주가가 상승하겠군요.”
“정답이에요.”
석원이 칭찬하듯 흰 이를 드러내고 웃으며 말을 이었다.
“소외 받아 저평가되고 있다가 이런 호재가 터지며 자산주로 관심을 받게 되면 그 순간 뻥 하고 위로 튀어 오르는 거죠.”
“그럼 장기 투자가 아니라 단기로 수익을 보고 폭락하기 전에 빠져 나와야 되는 것 아닙니까.”
제법 날카로운 지적이었지만 석원은 머리를 가로저었다.
“반짝하고 끝날 종목이라면 그래야 되겠지만 난 상승세가 아주 오래 이어질 거라고 봐요.”
“얼마나 갈 거라고 예상하십니까.”
석원이 손가락을 하나 들어 보였다.
“최소 1년, 길면 2년까지 상승세가 지속될 거예요.”
“그렇게나 길게 간다는 말씀입니까?”
회의적인 반응을 보이는 최호근 과장과 달리 석원은 확신에 찬 얼굴로 말했다.
“그래요.”
부동산 가치 상승이 분명 주가에 호재인 건 사실이었다.
하지만 최호근 과장은 아무리 그렇다고 해도 1년 이상 길게 투자 심리를 부추길 일은 아니라고 생각했다.
분명히 머릿속으로는 그렇게 생각했지만 주가 상승을 자신하는 석원의 모습을 보고 있으니 그가 모르는 뭔가가 또 있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찌 됐건 지금보다 주가가 더 올라갈 호재가 있는 건 확실하니까. 최소한 고점에 물릴 일은 없겠지.’
손해는 안 보겠다는 판단에 최호근 과장은 우려를 거뒀다.
“그런 일이 있는 줄도 모르고 제 생각이 짧았습니다.”
“아니에요. 앞으로도 다른 의견이 있으면 부담가지지 말고 언제든지 말해요.”
혹시라도 기분을 상하게 만들었을까 봐 내심 마음을 졸이던 최호근 과장은 전혀 그런 기색이 없는 석원의 모습에 안도했다.
“그럼 이만 나가보겠습니다.”
최호근 과장은 머리를 꾸벅 숙였다가 바로 하고는 밖으로 나갔다.
푹신한 의자에 몸을 기댄 석원은 최호근 과장이 나간 문을 물끄러미 바라보면서 중얼거렸다.
“능력도 괜찮고 무엇보다 할 말은 하는 성격인 게 나쁘지 않아.”
윗사람 눈치만 보면서 비위를 맞추려고 애쓰는 유형을 그는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
그런 사람은 가까이 둬봤자 좋을 것이 없었다.
“강단도 있어 보이고…… 앞으로 계속 옆에 두고 일을 시켜도 나쁘지 않을 것 같네.”
석원이 씩 웃는 것과 동시에 밖에 있던 최호근 과장은 왠지 모를 오한에 몸을 떨었다.
* * *
높게 솟은 고층 건물들 사이로 뉘엿뉘엿 노을이 지고 있는 늦은 오후.
붉게 물든 하늘 아래 사람들로 붐비는 명동 거리에는 네온사인들이 하나둘씩 불을 밝히며 화려한 야경을 만들어 냈다.
외제차가 흔하지 않던 시절이었기에 검은색 BMW 540i 한 대가 사람들의 시선을 받으며 고급 일식당 주차장으로 들어섰다.
운전석 차문을 열고 석원이 내리자 젊은 직원이 얼른 다가와 공손하게 차 키를 건네받았다.
직원한테 주차를 맡긴 그는 성큼 걸음을 옮겨 일식당 안으로 들어갔다.
흑단색 타일이 깔린 가게 입구에는 일본식 정원이 작게 꾸며져 있었는데 인공적으로 만든 물길을 따라 물 흐르는 소리가 나는 것이 나름대로 정취가 있었다.
‘형이 좋아할 만한 가게긴 하네.’
조용하면서 분위기가 차분한 게 딱 박진형의 취향이었다.
내부 또한 홀 테이블 없이 널찍한 통로를 가운데 두고 양쪽으로 룸이 있는 구조라 남들의 시선을 신경 쓰지 않고 편하게 대화를 나누며 식사할 수 있는 곳이었다.
“어서 오세요.”
깔끔한 투피스 유니폼을 입은 여종업원이 카운터에서 미소 띤 얼굴로 그를 맞이했다.
“일행이 있으신가요?”
“박진형으로 예약이 되어 있을 텐데.”
“아, 박 상무님 일행이시군요. 절 따라오십시오.”
미리 전달받은 것이 있었는지 여종업원은 카운터에서 나와 복도 안쪽에 있는 VIP룸으로 석원을 안내했다.
“일행분이 오셨습니다.”
가볍게 노크를 한 여종업원이 나무로 된 미닫이문을 부드럽게 열었다.
그러자 다다미가 깔린 널찍한 방 안에 형인 박진형이 혼자 앉아 있는 것이 보였다.
“왔냐.”
간단한 안주 몇 개를 두고 술잔을 기울이고 있던 박진형이 고개를 돌려 석원을 쳐다보곤 짧게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