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olden Spoon Investment Portfolio RAW novel - Chapter (67)
금수저 투자백서 67화(67/231)
67. 왜 채권 숏을 치고 있는 거지.
뉴욕 맨해튼 매디슨 애비뉴 555.
매일 요란한 전화벨과 목이 터져라 고함을 질러대는 트레이더들의 목소리로 시끄럽던 트레이딩 데스크였지만 크리스마스 연휴를 앞두고 있어서인지 오늘은 한가한 분위기가 흘렀다.
넓은 사무실 곳곳에 크리스마스 트리와 장식이 놓여져 있는 가운데 다들 얼마 전 받은 연말 보너스를 어떻게 쓸 건지 웃는 얼굴로 떠들어댔다.
“이것 좀 봐봐. 정말 쌔끈하게 잘 빠졌지 않아?”
포지션을 일찌감치 다 정리하고 여유롭게 시간을 때우고 있던 흑발에 통통한 체격인 퀀텀 펀드 트레이더 레이는 옆자리에 앉은 동료가 불쑥 내민 팸플릿을 건네받았다.
“어. 이거 포르쉐 911이잖아.”
팸플릿 위에 인쇄된 멋들어진 자동차 사진을 본 레이가 눈을 동그랗게 뜨며 물었다.
“흐흐흐. 어때? 장난 아니지?”
레이의 반응에 금발 곱슬머리인 토니가 히죽거리는 표정을 지었다.
“이거 이번에 나온 신형 모델이지?”
그러자 토니가 머리를 끄덕거리면서 신이 나 말했다.
“맞아. 그중에서도 286마력 공랭식 엔진을 얹은 카레라 S야.”
“이야. 정말 멋진데.”
911 특유의 디자인을 그대로 잘 살리면서도 헤드라이트를 눕혀 더욱 날렵하게 보이는 모습에 레이는 감탄을 터트리며 물었다.
“연말 보너스 받은 걸로 이걸 사려고?”
그러자 토니가 우쭐한 표정으로 어깨를 으쓱 올렸다.
“벌써 계약했지.”
“꽤 비싸지 않았어?”
“이것저것 옵션을 넣으니까 8만 달러 정도 되더라고.”
“그 정도면 할 만한데.”
“너도 한 대 사.”
“그럴까?”
“포르쉐잖아. 이걸 몰고 클럽에 가면 날씬한 미녀들이 줄을 설 거라고!”
토니가 살살 부추기자 레이도 솔깃한 표정을 지으며 손에 든 팸플릿을 유심히 쳐다봤다.
두 사람뿐만 아니라 대부분의 트레이더들이 두둑하게 받은 연말 보너스로 비싼 명품이나 스포츠카를 사거나 애인하고 따뜻한 휴양지로 여행을 떠날 생각에 들떠 있었다.
저금리로 인해 올해 내내 주식과 채권 시장이 뜨겁게 달아오른 덕분에 월가 전체가 이처럼 흥청망청 보너스 잔치를 벌였다.
커다란 통유리창 너머로 높이 솟은 맨해튼 마천루들이 보이는 널찍한 사무실 소파에 앉아 있던 퀀텀펀드 CIO인 로드니가 손에 든 서류를 내려놓으며 입을 뗐다.
“이 건은 이대로 처리하도록 하게.”
그러자 왼편 소파에 자리한 치프 매니저 이안이 머리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알겠습니다.”
품 안에서 만년필을 꺼내 서명한 로드니는 결재판을 덮으며 물었다.
“내일부터 연휴인데 올해 연말은 어디서 보낼 계획인가?”
결재판을 챙겨 무릎 위에 올린 이안이 여유로운 얼굴로 말했다.
“가족들과 카리브해 별장에서 크리스마스를 보낼 생각입니다.”
“그러고 보니 바하마에 자네 별장이 있다고 했지.”
“네. 재작년에 갔을 때 아내가 마음에 들어 해서 아예 별장을 한 채 장만했습니다.”
“잘했어. 아열대성 기후에 멋진 해변이 펼쳐져 있어서 푹 쉬고 오기에 거기만큼 좋은 곳도 없거든.”
이안이 작게 미소를 지으며 물었다.
“CIO님은 어딜 가실 생각이십니까?”
“아이들이 스키를 타고 싶다고 해서 올해는 스위스로 갈 거네.”
“아아, 그렇군요. 저는 작년에 스위스 마테호른을 보러 갔었는데 눈 덮인 설경이 정말 멋있었지요. 아내는 추워서 싫어했지만요. 왜 한겨울에 더 추운 곳으로 휴가를 와야 하느냐며 투덜대더라고요.”
“그거 안타깝군. 아무튼 루체른에서 신년까지 머물다가 올 생각이야. 휴가 잘 보내고 내년에 보세.”
“CIO님도 즐거운 휴가가 되시길 바랍니다.”
인사하고 몸을 일으키려던 이안은 문득 든 생각에 로드니를 보며 말했다.
“참, 저번에 엘도라도 펀드를 잘 지켜보라고 하셨던 거 말입니다.”
소파 등받이에 몸을 기대고 있던 로드니가 살짝 관심을 보였다.
“왜. 특이한 움직임이라도 있나?”
“얼마 전에 보유한 채권을 전부 처분했다고 말씀드렸지 않습니까.”
“그랬지.”
로드니가 작게 머리를 끄덕이며 말했다.
“정확한 퍼센티지는 알 수 없지만 수익률이 상당하다고 했던 거 같은데.”
“그렇습니다. 다른 헤지펀드들보다 한발 빨리 유럽채권을 쓸어 담은 덕분에 크게 재미를 본 걸로 알고 있습니다.”
“중간에 스페인과 이탈리아 등이 금리를 낮추면서 장단기 금리차뿐 아니라 장기채 시세 차익까지 거뒀으니 그럴 거야.”
퀀텀 펀드에서 먼저 유럽 채권을 낚아채지 못한 것이 아쉬운지 이안이 입맛을 다셨다.
“그런 걸 보면 엘도라도 대표가 참 운이 좋은 것 같습니다.”
“글쎄 운만으로는 이런 결과를 만들어 낼 순 없지.”
“처음부터 이렇게 될 걸 염두에 둔 베팅이었다는 말씀이십니까?”
“그게 아니라면 그렇게 과감한 투자를 하긴 어렵겠지.”
정확한 액수까지는 몰랐지만 엘도라도 펀드가 레버리지를 일으켜 수백억 달러 규모로 채권 투자를 한 걸 두 사람은 알고 있었다.
아무리 레버리지가 당연시된다고 해도 확신이 없다면 무모할 정도로 위험한 투자였다.
“정말 운이었다고 해도 그게 여러 번 반복되면 그것도 실력이야.”
“그렇긴 합니다.”
이안이 수긍하는 표정을 지었다.
“짐작이 맞다면 보통 결단력과 배짱이 아니군요.”
솔직히 감탄하던 이안은 지난번에 로드니한테 들은 이야기를 생각해내며 말했다.
“엘도라도 펀드 대표가 아직 서른도 안 된 애송이라고 하지 않으셨습니까?”
“올해 하버드를 졸업했다고 하더군.”
로드니는 뉴욕에서 열린 투자 설명회에 참석했다가 우연히 만났던 석원의 얼굴을 떠올렸다.
자신감 있고 올곧게 바라보던 눈빛이 인상적이라 여전히 기억에 남아 있었다.
“그런 애송이가 이런 투자 판단을 내렸을 리는 없을 테고. 예전에 골드만에서 일했던 앤드루가 선임 치프로 있다고 들었는데, 그 친구의 실력이 이렇게 대단할 줄은 몰랐군요.”
그러자 팔짱을 낀 채 앉아 있던 로드니가 잠시 생각하더니 고개를 흔들었다.
“꽤 실력이 있는 친구였지만 그 정도는 아니었어.”
“그럼 저희가 모르는 다른 실력자가 그쪽에 있다는 말씀입니까?”
이안이 고개를 갸웃거리며 쳐다보자 로드니는 자신도 모르게 석원의 얼굴이 머릿속에 다시 떠올랐다.
한눈에 보통이 아니라는 걸 느꼈지만 그래도 석원의 나이가 너무 젊었다.
‘설마.’
로드니는 생각을 애써 부정하며 속으로 중얼거렸다.
‘누군가 옆에서 도와주는 뛰어난 조력자가 있는 거겠지.’
그게 아니라면 짧은 기간 동안 이런 투자 성과를 내는 것이 말이 안 됐다.
“누가 투자를 주도하는지는 모르지만 이런 뛰어난 실력을 가진 인물이라면 오래 가지 않아 정체가 알려지게 되겠지.”
이안이 동의하듯 머리를 끄덕였다.
“어떤 자인지 정말 궁금하군요.”
그건 로드니 역시 궁금하긴 마찬가지였다.
팔짱을 푼 로드니는 등받이에 몸을 기댄 채 이안에게 시선을 줬다.
“그보다 하려던 이야기가 뭐였나?”
그러자 이안이 원래 용건을 떠올리곤 자세를 바로했다.
“보유한 채권을 전부 처분하더니 얼마 전부터 엘도라도 펀드가 숏 포지션을 쌓고 있는 걸 포착했습니다.”
예상치 못한 이야기에 로드니가 미간을 좁히며 되물었다.
“채권에 숏을 치고 있다는 건가?”
“그렇습니다.”
“물량이 얼마나 되지?”
“그것까진 확인하지 못했습니다만 쌓고 있는 포지션이 작지 않은 건 분명합니다.”
파생 투자에서 포지션과 규모가 노출되는 건 치명적이었기에 정확한 정보를 파악하는 건 어려운 일이었다.
그나마 엘도라도 펀드가 채권에 숏을 치고 있다는 걸 알아낸 것도 퀀텀 펀드였기에 가능한 거였다.
“채권을 팔고 숏 포지션을 잡다니 설마 기준 금리가 오를 거라고 판단하는 건가.”
퀀텀 펀드의 투자를 총괄하는 CIO답게 로드니는 석원의 의도를 바로 파악했다.
그러자 이안이 회의적인 반응을 보였다.
“저금리가 계속 이어질 수는 없겠지만 아무런 조짐도 없는데 갑자기 기준 금리를 올리겠습니까. 더군다나 내년에는 중간 선거가 예정되어 있어 설령 연준이 금리 인상을 고려한다고 해도 백악관에서 틀어막을 겁니다.”
“하긴 선거를 앞두고 금리를 올리는 건 자살행위나 마찬가지지.”
“맞습니다.”
분명 말이 안 되는 일이었지만 이상하게 찝찝한 기분을 좀처럼 떨쳐 낼 수 없었다.
“그런데 왜 채권 숏을 치고 있는 거지.”
의문이 가득한 물음에 이안이 어깨를 으쓱였다.
“저도 그게 도저히 납득이 안 되는 행동이라 이렇게 보고를 드리는 겁니다. 어쩌면 여러 번 도박성 짙은 베팅에 성공하다 보니 자신감에 넘쳐 오판한 건지도 모르지요.”
“과연 그럴까.”
왠지 다른 뭔가가 있는 것 같았지만 그렇다고 뚜렷하게 떠오르는 건 없었다.
한쪽 손으로 턱을 매만지며 한참을 고심해도 결론이 나지 않자 로드니는 고개를 들며 말했다.
“일단 엘도라도 펀드를 계속 주시하다가 또 특이한 움직임이 있으면 바로 보고하게.”
“알겠습니다.”
* * *
“누가 또 내 뒷담화를 하나.”
늦은 밤 본가 정원에 서 있던 석원이 살짝 눈가를 찡그리며 손가락으로 귀를 후볐다.
그러다 야옹거리는 소리에 아래를 내려다보자 고등어 태비 한 마리와 삼색이 두 마리가 꼬리를 바짝 든 채 발밑에서 어서 밥을 달라며 보채고 있었다.
어미 삼색이는 서너 걸음 떨어진 곳에서 앞발을 모으고 앉아 마치 잘한다는 듯이 새끼들을 쳐다보고 있었다.
바로 작년에 우연히 발견해 먹이를 줬던 길고양이와 새끼들이었다.
육묘를 하며 몇 달 편하게 먹이를 얻어먹더니 정원 나무 데크 아래에 새끼들하고 아예 자리를 잡고 정착을 해 버린 거였다.
원래는 새끼가 다섯 마리였는데 두 마리는 죽고 이렇게 세 마리가 살아남았다.
“미야옹.”
“냐앙.”
석원이 잠시 딴생각에 빠진 것을 알아차린 듯 새끼들이 앞발로 다리를 툭툭 치며 보챘다.
“끄응. 이제 날 아주 밥 셔틀로 생각하나 보네.”
석원은 가져온 고양이용 습식 캔을 따서 널찍한 사기 접시에 담아 내려놓으며 투덜거렸다.
“알았으니까 그만 좀 야옹거려. 시끄럽게 하다가 아버지가 화를 내시면 다 쫓겨나는 거야.”
“미양.”
“냥.”
용케도 대답 비슷한 걸 한 새끼 고양이들이 그릇에 머리를 박고 참치를 먹기 시작했다.
그러자 뒤에 있던 어미 고양이도 어슬렁 다가오더니 한 자리를 차지하고 먹이에 입을 댔다.
“어미랑 덩치가 비슷해진 걸 보니 이 녀석들도 다 컸나 보네.”
석원이 한쪽에 있는 파라솔 테이블 의자에 앉아 고양이들을 지켜보고 있을 때 갑자기 주머니에서 휴대폰 벨소리가 울렸다.
고양이들이 깜짝 놀라 고개를 치켜들었다가 이내 귀를 쫑긋거리며 다시 먹이를 먹는 걸 보고 석원이 통화버튼을 눌러 전화를 받았다.
“여보세요.”
[보스, 접니다.]휴대폰을 통해 들리는 랜든의 목소리에 석원이 뒤로 몸을 기대며 말했다.
“마이애미로 휴가를 간다고 하지 않았어요.”
“뭔지 말해 봐요.”
[지시하신 대로 JP모건을 비롯한 대형 은행들에 대한 공매도를 모두 끝냈습니다.]“수고했어요.”
채권 시장이 붕괴되면 헤지펀드들한테 과도한 레버리지를 제공한 월가 대형 은행들에도 충격이 미칠 수밖에 없었다.
당연히 그런 기회를 놓칠 리가 없었던 석원은 월가 대형 은행들에 대한 공매도를 지시했다.
[지난번에 벌어들인 수익을 몽땅 다 털어 넣었는데 떨리지 않으십니까.]석원은 찹찹거리는 소리를 내며 접시를 핥고 있는 고양이들을 내려다보면서 느긋하게 대답했다.
“곧 몇 배로 불어서 다시 돌아올 텐데 뭐가 걱정이에요.”
[저는 혹시라도 일이 잘못될까 봐. 불안해서 잠도 오지 않을 지경입니다.]“그런 일은 없을 테니까 마음 놓고 휴가나 즐기다 와요.”
그러자 랜든이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하긴 이제는 다시 되돌리기에 너무 늦었지요.]랜든은 스스로 다짐하듯 일부러 밝은 목소리를 내며 말했다.
[이번에도 보스의 베팅이 성공할 거라 믿습니다.]“그렇게 될 거예요. 내년엔 시작부터 아주 바쁘게 움직여야 될 테니까 미리 푹 쉬어둬요.”
[알겠습니다. 보스도 즐거운 크리스마스를 보내십시오.]그러곤 랜든이 전화를 끊었다.
휴대폰을 내려놓은 석원은 어느새 먹이를 다 먹고 무릎 위로 폴짝 뛰어 올라온 새끼 삼색이의 털을 살살 쓰다듬어주며 입가에 짙은 미소를 지었다.
“내년이 되면 월가 전체가 엘도라도 펀드라는 이름을 뇌리에 또렷이 새기게 될 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