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olden Spoon Investment Portfolio RAW novel - Chapter (70)
금수저 투자백서 70화(70/231)
70. 정말 달달하군요.
대표실을 나와 트레이딩 플로어에 들어서는 순간 후끈 달아오른 뜨거운 열기가 느껴졌다.
요란한 전화벨 소리가 끊임없이 울려대고 와이셔츠 소매를 걷어 올린 트레이더들이 크게 고함을 내지르거나 바쁜 목소리로 통화를 하고 있었다.
따르릉! 따르릉!
“이거 뭐야. 고작 25bp를 올린 건데 왜 이렇게 격렬하게 반응하는 거야?”
“회사채 상황도 확인해 봐!”
전쟁터가 따로 없는 가운데 석원과 함께 나온 앤드루가 거래를 컨트롤하기 위해 황급히 자리로 돌아갔다.
그러자 흑발의 젊은 트레이더가 앤드루를 보고는 다급히 말했다.
“10년 만기 미 국채금리가 11bp 급등하고 있습니다!”
“2년물 상황은 어때?”
겉옷을 벗어 의자에 아무렇게나 던져 놓으며 앤드루가 물었다.
“28bp 넘게 오르고 있습니다.”
“정책 금리 변동에 민감한 2년물답게 바로 크게 반응하네요.”
랜든과 함께 뒤로 다가와 선 석원의 말에 앤드루가 책상에 설치된 뚱뚱한 CRT모니터를 확인했다.
국채 거래 상황이 띄워진 화면에는 충격을 받은 시장의 모습을 보여주듯 초록색 숫자들이 정신없이 움직이고 있었다.
숫자를 빠르게 훑어보고 상체를 바로 세운 앤드루는 몸을 돌려 그를 봤다.
“낙폭이 적지 않지만 아직 폭락이라고 할 정도는 아닙니다.”
그러자 팔짱을 끼고 선 석원이 느긋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이제 겨우 첫 번째 방아쇠가 당겨진 것뿐이니까. 조급해할 필요 없어요.”
“…….”
“모니터를 온통 채우고 있는 매물이 바로 시장이 흔들리고 있다는 증거니까요.”
확실히 연준이 인상한 기준 금리 폭에 비해 더 격렬한 반응을 보이고 있었기에 시장이 얼마나 취약하고 불안감이 큰지 알 수 있었다.
그런 순간에도 숫자가 정신없이 바뀌며 매물이 빠르게 늘어나고 있는 모니터 화면에 석원이 한쪽 입꼬리를 말아 올렸다.
“얼마 있지 않아 두 번째 충격이 오면 살얼음판 같은 시장이 더 못 버티고 완전히 무너져 내리게 될 거예요.”
석원이 말하는 두 번째 충격이 헤지펀드들이 대량으로 매물을 쏟아내는 것이 될지 아님 엔화 강세일지 알 수 없었다.
하지만 어느 것이든 한 가지 확실한 건 그동안 낙관론 일색이었던 채권 시장의 분위기가 완전히 바뀌었다는 거였다.
‘만약 두 개가 한꺼번에 시장을 강타한다면…….’
머릿속으로 끔찍한 상황을 떠올린 앤드루는 자신도 모르게 마른침을 꿀꺽 삼켰다.
그러고는 이 모든 걸 예상하고 판을 짠 석원을 쳐다보며 내심 대단하다고 생각했다.
랜든은 안절부절못하던 조금 전과 달리 여유를 찾은 모습으로 양손바닥을 비비며 말했다.
“다른 헤지펀드들한테는 지옥이겠지만 저희는 제대로 잭팟이 터졌군요.”
돈 냄새를 맡은 랜든은 생기 넘치는 얼굴을 한 채 엄지를 치켜들었다.
“또다시 굿샷을 날리시다니 역시 보스십니다.”
피식 웃어준 석원은 앤드루를 보며 말했다.
“시장이 무너질수록 우리한테 이득이니까 느긋하게 불구경이나 하다가 때가 되면 손을 털고 나와 수익을 확정 짓도록 하죠.”
아직은 흘러가는 상황을 더 지켜봐야 되겠지만 이번 일로 석원에 대한 믿음이 더욱 깊어진 앤드루는 군말없이 대답했다.
“알겠습니다.”
고개를 들어 정면에 설치된 대형 스크린에 시선을 준 석원은 채권뿐만 아니라 증시도 동반 하락하며 약세를 나타내는 걸 보면서 짙은 미소를 지었다.
* * *
일주일 뒤, 워싱턴 백악관 브래디 언론 브리핑 룸.
연단 정면에 생방송을 위한 텔레비전 카메라가 설치되어 있는 가운데 출입증을 목에 건 여러 언론사 기자들이 실내를 가득 메우고 있었다.
최근 무역분쟁으로 큰 이슈가 되고 있는 미일 양국의 정상 회담 직후 열리는 기자회견이었기에 더욱 관심을 끌었다.
“대통령님께서 나오십니다.”
백악관 직원의 알림에 모여 있던 기자들이 전부 자리에서 일어났다.
곧이어 금발의 필립 데이비슨 대통령이 참모들과 함께 옆문으로 들어왔다.
텔레비전 카메라가 걸음을 따라 움직이는 가운데 무대에 올라선 데이비슨 대통령은 벽에 그려진 큼지막한 백악관 로고를 뒤에 두고 연단에 섰다.
딱딱하게 굳어 있는 대통령의 얼굴에 두 번째 줄에 앉아 있던 갈색 머리 여기자가 옆에 있는 동료에게 낮은 목소리로 속삭였다.
“표정을 보니까 결과가 안 좋은 모양인데.”
그러자 줄무늬 넥타이를 한 동료 기자가 수첩에 기록할 펜을 든 손에 든 채로 힐끗 데이비슨 대통령을 한 번 쳐다봤다.
“회담을 끝내고 공동발표가 아니라 따로 기자회견을 하는 걸 보면 뻔하지.”
회담 결과가 좋았다면 동료 기자의 말대로 미일 정상이 웃으면서 나란히 나와 함께 기자회견을 했을 터였다.
다시 뭐라고 말을 하려던 여기자는 마침 대통령이 이야기를 시작하는 걸 보곤 곧바로 입을 닫았다.
“다들 알고 계시다시피 오늘 워싱턴을 방문한 스즈키 고타 일본 총리와 정상 회담을 가졌습니다.”
모여 앉은 기자들이 귀를 쫑긋 세운 채 발언을 받아 적는 가운데 정면에 있는 텔레비전 카메라를 똑바로 쳐다보며 데이비슨 대통령이 묵직한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최근 미일 간에 이슈가 되고 있는 일본의 무역흑자 축소를 위한 시장개방 문제에 대해 심도 깊은 논의를 나누었지만 안타깝게도 합의에 도달하지는 못했습니다.”
역시나 예상한 대로 협상이 결렬됐다는 것이 확인되자 회견장이 작게 술렁였다.
“마지막까지 타결을 위해 양국이 최선을 다했습니다만, 불행하게도 지난해 7월 미일 양국이 규정했던 자동차 등 4개 분야 가운데 어느 하나도 합의를 이루지 못했습니다. 의례적인 공동 성명문을 발표할 수도 있었으나 내용 없는 합의보다는 아무런 합의를 하지 않는 게 낫다는 것이 제 생각입니다.”
일본은 전통적 우방인 데다가 정상 회담 직후였기에 원하는 결과가 나오지 않았더라도 일반적으로 발언 수위를 조절하는 것이 보통이었다.
하지만 그런 것 없이 데이비슨 대통령이 상당히 강경한 태도를 보이자 회견장에 있던 일본 기자들이 당황한 표정을 지었다.
“미일 양국은 앞으로도 강력한 유대관계를 지속해 나갈 것이지만 궁극적으로 일본 시장은 반드시 지금보다 더 미국에 개방되어야 할 것입니다.”
협상 결과가 좋지 않았던 만큼 데이비슨 대통령이 짧게 발언을 끝내자 바로 기자들의 질문 시간으로 넘어갔다.
“질문 받겠습니다.”
여러 명의 기자들이 동시에 번쩍 손을 들어 올리자 한쪽에 선 백악관 대변인이 아까 동료와 잡담을 나눴던 갈색 머리 여기자를 지목했다.
“거기 여성분.”
운이 좋은 여기자가 눈을 반짝이며 빠르게 질문을 던졌다.
“정상 회담에 앞서 벤센트 상무장관께서 통상협상이 실패할 경우 미국은 외환시장에 개입해 엔화의 가치를 지금보다 올리는 등 가능한 모든 조치를 검토할 것이라고 했는데 이 말에 동의하십니까?”
민감한 문제였기에 대답을 회피해도 됐지만 데이비슨 대통령은 그러지 않고 바로 대답했다.
“앞으로 고려해 봐야 할 문제이기에 지금 현재로서는 아무것도 확정된 것이 없습니다. 다만 한 가지 분명한 건 일본의 시장 개방을 위해 가능한 모든 조치를 취할 것이라는 겁니다.”
원래는 여기서 끝내야 했지만 여기자는 얼른 질문을 하나 더 던졌다.
“가능한 조치 가운데 상원에서 이야기가 나온 슈퍼 301조의 항구적 부활도 포함되는 겁니까?”
그러자 데이비슨 대통령이 잠깐 망설이다가 이내 머리를 끄덕였다.
“필요하다면 그것도 배제하지 않을 겁니다.”
데이비슨 대통령의 폭탄 발언에 실내가 크게 술렁거렸다.
곧바로 기자회견장이 시끄러워지며 대통령한테서 조금이라도 정보를 캐내려는 기자들의 틈바구니 속에 일본 기자들은 충격을 넘어 경악한 표정을 지었다.
* * *
같은 시간 뉴욕 플라자 호텔 펜트하우스.
[일본을 향한 슈퍼 301조 발동도 가능하단 말씀이십니까!미스터 프레지던트! 방금 하신 말씀은 일본 정부에 대한 경고라고 봐도 되겠습니까.]
편한 복장으로 거실에 있는 최고급 가죽 소파에 앉아 생방송을 시청하던 석원은 데이비슨 대통령의 폭탄 발언으로 발칵 뒤집힌 기자회견장을 보면서 느긋하게 중얼거렸다.
“슈퍼 301조라…… 대통령이 아주 작정하고 말을 내뱉었군.”
그럴 만도 한 것이 1988년 만들어진 종합무역법에 의해 미국 행정부가 교역대상국에 대해 차별적인 보복 조치를 취할 수 있도록 만든 무역법 301조를 흔히 슈퍼 301조라고 불렀다.
불공정 무역을 하는 상대국에 대해 대통령이 100%에 달하는 보복관세와 수입쿼터 등 광범위하면서도 강력한 보복 조치들을 재량껏 실행할 수 있는 무시무시한 법이었다.
“슈퍼 301조만 해도 기겁할 일인데 거기다가 엔고까지 언급했으니. 일본이 완전 발칵 뒤집어지겠군.”
미일 관계에 커다란 파장을 불러일으킬 말이었기에 절대 실수로 나왔을 리가 없었다.
아마도 스즈키 고타 일본 총리와 일본 정부를 압박하기 위해 치밀하게 의도된 발언이 틀림없었다.
“하지만 이게 엔화에서 멈추지 않고 한 바퀴를 돌아서 헤지펀드들과 국제 채권 시장을 박살 내버리게 될 거라고는 전혀 예상 못 하고 있을 거야.”
전통적인 논리라면 엔화가 오른다고 인플레이션과 채권 가격에 아무런 영향을 주지 않아야 했으니 당연했다.
하지만 그동안 헤지펀드들이 수익을 좇아 전 세계 곳곳의 자산에다가 레버리지를 잔뜩 쌓아 투자해 놓은 걸 간과한 것이 큰 실수였다.
“파운드와 함께 헤지펀드들이 가장 많은 베팅을 해둔 통화가 바로 엔화지.”
곧 불어 닥칠 폭풍우를 생각하며 입가에 미소를 짓고 있을 때 탁자 위에 올려둔 휴대폰 벨이 시끄럽게 울렸다.
전화를 받자 잔뜩 흥분한 랜든의 목소리가 귀에 들렸다.
[보스! 달러엔 환율이 108엔을 깨고 폭등 중입니다!]소파 앉은 채 뒤로 등을 기대며 석원이 당연하다는 듯이 말을 받았다.
“다른 사람도 아니고 미국 대통령이 대놓고 엔고를 부추기는 발언을 했으니 시장이 화들짝 놀랄 수밖에 없겠죠.”
[일본과 협상이 쉽지 않을 거라 예상했지만 백악관이 이런 초강수를 둘 줄은 정말 몰랐습니다.]“일본을 때릴수록 선거 운동에 도움이 될 테니 원하는 결과를 받아낼 때까지 강경한 태도를 계속 고수 할 거예요.”
그러자 랜든이 동의하는 모습을 보였다.
[야당인 공화당도 러스트 벨트 노동자 표를 의식해서 슈퍼 301조를 항구적으로 부활시키는 법안에 반대하지 않고 적극 협조하는 상황이니. 저도 그럴 거라고 생각합니다.]랜든은 여전히 흥분이 가시지 않은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이러면 엔고 분위기가 한동안은 계속 이어지겠군요.]“그럴 거예요. 엔고를 막으려면 백악관이 만족할 만큼 시장을 개방해야 되는데 그게 현실적으로 쉽지 않을 테니까요.”
손에 든 휴대폰을 고쳐 쥐며 석원이 이야기를 계속했다.
“거기다가 이번 일로 일본한테는 악몽이나 마찬가지인 10년 전 플라자 합의를 떠올리게 될 테니. 엔화 폭등을 더욱 부추기게 될 거예요.”
인위적으로 엔화 가치를 높여 한순간에 일본 경제를 침몰시킨 플라자 합의는 일본 정부와 국민들한테는 절대 잊을 수 없는 끔찍한 트라우마였다.
[슈퍼 301조를 부활시켜도 우방인 일본에 사용하기에는 부담이 따르지만, 환율은 직접적인 압박 수단으로 작용할 수 있으니. 백악관의 이번 전략은 일본의 급소를 제대로 찌른 것 같습니다.]“일본 정부로서는 정말 곤혹스러운 상황일 거예요. 뭐 덕분에 우린 큰 수익을 거둘 수 있게 됐으니 아주 잘된 일이죠.”
[하하하! 맞습니다.]크게 웃음을 터트린 랜든이 은근한 어조로 물었다.
[엔화가 어디까지 올라갈 거라고 보십니까?]석원은 잠시 생각을 해보곤 대답했다.
“최소 7%는 오를 거니까 그때까지 포지션을 유지하도록 해요.”
[7%라! 크으. 생각만 해도 정말 달달하군요.]몇 가지 더 필요한 지시를 내리고 통화를 끝내자 어느새 기자회견이 모두 끝나 있었다.
스튜디오에 앉은 앵커가 데이비슨 대통령을 발언을 간추려 설명해 주고 있는 텔레비전 화면을 보면서 그는 탁자 위에 놓인 언더락 잔을 집어 들었다.
달그락 얼음이 부딪치는 소리가 나며 차가운 위스키를 한 모금 삼킨 석원이 낮게 중얼거렸다.
“엔화는 에피타이저에 불과하고 진짜는 채권이지.”
그는 짙은 미소를 입매에 새기며 느긋하게 소파에 몸을 묻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