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olden Spoon Investment Portfolio RAW novel - Chapter (79)
금수저 투자백서 79화(79/231)
79. 뭐든 말씀만 하십시오.
서울 여의도 대흥증권 본사.
5층 트레이딩 센터는 거래하는 트레이더들의 고성과 요란한 전화벨 소리로 시끄러운 가운데 바쁘게 돌아가고 있었다.
따르르릉! 따르르릉!
“천호 제강 매수 더 들어가!”
“현우 건설 추가 매수요? 알겠습니다.”
“오늘도 기세를 탔네. 호가를 올려!”
작년 금융실명제 실시의 충격을 모두 소화해내고 다시 뜨겁게 타오르기 시작한 시장 분위기를 보여주듯 트레이더들의 목소리에 활력이 가득했다.
“2만 1,000원에 매도 3만 주.”
한쪽 어깨에 수화기를 끼운 정환엽 대리가 모니터에 시선을 고정한 채 주문을 넣었다.
그러자 2만 1,000원에 걸려 있던 매수 주문이 순식간에 줄어들며 물량이 빠르게 팔려나갔다.
쏟아낸 매물에 잠시 주춤하던 주가는 이내 다시 2만 1,000원대를 계속 유지하며 강세를 이어갔다.
“후우.”
오전 내내 모든 신경을 집중하고 있던 정환엽 대리는 거래를 끝내는 순간 긴장이 풀리면서 자신도 모르게 작은 숨을 내뱉었다.
“재미 좀 봤어?”
어느새 뒤로 와 있던 최호근 과장이 가볍게 어깨를 툭 치며 물었다.
“직접 보십시오.”
정환엽 대리가 상체를 슬쩍 옆으로 비켜주자 어깨너머로 모니터 화면을 확인한 최호근 과장이 씨익 미소를 지었다.
“오늘 밥값은 제대로 했네.”
“에이 그거보다는 더 했지요.”
“그래. 돈 벌어오는 놈이 갑이지. 수고했어. 뭐 어깨라도 주물러 줄까?”
최호근 과장이 손가락을 꿈틀대며 장난스럽게 대꾸했다.
“됐습니다. 그러다 좀 까먹으면 쥐잡듯이 잡을 거잖아요.”
“그러니까 계속 벌면 되잖아.”
“저도 그러고 싶은데 그게 쉽습니까.”
입을 쭉 내밀고 투덜거리는 모습에 최호근 과장이 눈을 가늘게 뜨고 물었다.
“너 뭔 일이라도 있냐?”
“뜬금없이 무슨 말씀이세요.”
“다른 때 같으면 어깨에 힘을 빡 주면서 온갖 거드름을 다 피워댔을 놈이 너무 얌전하니까 그러지.”
최호근 과장이 뭐 숨기는 거 있으면 냉큼 꺼내 보라는 눈빛으로 정환엽 대리를 이리저리 살폈다.
그러자 뒤편 책상에 앉아 있던 홍재희가 툭 끼어들어 말했다.
“그러게요. 정 대리님 오늘 컨디션이라도 안 좋으세요?”
그 말에 최호근 과장이 한쪽 손을 뻗어 정환엽 대리의 이마에 갖다대고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열은 없는데.”
정환엽 대리는 두 사람의 장난에 불퉁한 표정으로 대꾸했다.
“에이 참. 저라고 항상 호들갑을 떨라는 법이라도 있습니까.”
“임마. 평소 안 하던 짓을 하니까 이상해서 그러지.”
최호근 과장은 팔짱을 낀 채 서서 진지하게 정환엽 대리를 쳐다봤다.
“너 진짜 무슨 걱정거리라도 있냐?”
옆자리에 있던 유석현도 걱정스런 표정을 하고 있긴 마찬가지였다.
그런 팀원들의 시선에 정환엽 대리는 한쪽 손으로 뒷머리를 긁적이면서 슬쩍 입을 열었다.
“그런 건 아니고 그냥 요새 회의감이 들어서요.”
“뭔 소리야?”
최호근 과장이 영문을 모르겠다는 듯 되물었다.
“이틀 내내 용을 써서 번 수익이라고 해봤자 2천이 조금 넘는데 팀장님이 투자해두신 종목은 오늘만 해도 10억이 넘게 올랐잖습니까. 아예 비교할 엄두조차 안 나니 허탈한 기분까지 들어서요.”
그러자 이야기를 듣던 최호근 과장이 김샌 말투로 대꾸했다.
“난 또 뭐라고.”
“전 나름 심각하다고요.”
최호근 과장은 발끈해서 반박하는 정환엽 대리를 보면서 혀를 쯧쯧 찼다.
“정 대리야. 너랑 팀장님하고 같냐?”
“맞아요. 이런 거 보면 정 대리님도 은근히 자존감이 높으시다니까요.”
말을 거드는 홍재희에 이어 유석현도 머리를 끄덕였다.
“저도 웬만하면 대리님 편을 들어드리고 싶은데 이건 아닌 것 같습니다.”
팀원들의 반응에 시무룩해 있던 정환엽 대리가 인상을 쓰며 반박했다.
“내가 뭐 어때서! 이래 봬도 스윙 트레이딩으론 어디 가서 안 빠지는 실력이거든!”
실제로 뺀질거리며 실없는 행동을 자주하긴 했지만 정환엽 대리는 단기간 내에 거래하는 스윙 트레이딩으로 대흥 증권 안에서 둘째가라면 서러워할 실력자였다.
와이셔츠 소매를 접어 올리고 서 있는 최호근 과장은 하루에도 몇 번씩 아주 짧은 시간 동안 주식을 사고파는 스캘핑의 고수였다.
이런 두 사람이 한 팀에 있게 된 건 회장 아들인 석원을 배려한 거였다.
최호근 과장이 고개를 끄덕거리며 말했다.
“그래. 정 대리가 능력자인 건 잘 알지. 그런데 말이야 팀장님 하곤 사이즈 자체가 다르지 않냐? 다이아 수저를 입에 물고 태어난 걸 빼더라도 실력이 너무 사기적이잖아.”
“간장 종지하고 대접 차이죠.”
홍재희가 얄밉게 쏙 끼어들어 말하자 유석현도 머리를 끄덕였다.
“그렇죠. 레베루가 다르신 분 아닙니까.”
“야. 너희들 정말 그럴거야!”
어째 최호근 과장보다 옆에서 깐죽대며 한마디씩 얹어대는 홍재희와 유석현이 더 밉상이었다.
이마에 불끈 힘줄이 솟은 정환엽 대리가 두 사람을 째려봤지만 틀린 이야기는 아니었기에 입맛만 다실 수밖에 없었다.
최호근 과장은 정환엽 대리의 어깨를 토닥거리면서 말했다.
“뱁새가 황새 쫓아가다가 가랑이 찢어진다는 말도 있잖냐. 그냥 툭 찍은 것 같은 종목 두 개가 미친 듯이 오르는 걸 보고 난 그냥 마음을 내려놨다.”
반쯤 해탈한 얼굴로 허허 웃어대는 최호근 과장의 말에 정환엽 대리는 극심한 두통이 밀려오는 걸 느꼈다.
“끄으응.”
최호근 과장은 그런 정환엽 대리를 보고 슬쩍 던지듯 말했다.
“그리고 질투할 필요가 없는 게 팀장님이 낸 성과도 우리 팀 실적으로 합산되잖아.”
“……!”
정환엽 대리가 귀를 쫑긋 세우는 걸 보며 최호근 과장이 은근한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그 말은 곧 이번 연말에도 보너스가 아주 두둑할 거라는 거지.”
그러자 이야기를 듣고 있던 홍재희가 손뼉을 짝 치고 반색했다.
“어머! 정말 그렇네요.”
유석현도 티를 안 내려고 했지만, 자신도 모르게 입가에 번지는 미소를 감추지 못하고 있었다.
언제 시무룩해 있었냐는 듯 눈을 반짝인 정환엽 대리가 최호근 과장을 쳐다보면서 물었다.
“지난번에 연말 보너스보다 많이 나오겠죠?”
잔뜩 기대감에 부푼 목소리에 최호근 과장이 어깨를 으쓱거렸다.
“아직 연말까지 많이 남았지만, 지금까지 번 걸 까먹지만 않아도 더 나오지 않겠냐.”
“헤헤헤. 당연히 성과를 더 내시겠죠. 지금까지 적중률 100%이지 않습니까.”
보너스 이야기에 금방 태세를 전환한 모습에 최호근 과장이 어이없다는 듯 핀잔을 던졌다.
“너 조금 전까지 너무 성과 차이가 나서 일할 의욕이 안 난다고 하지 않았냐.”
“과장님이 그러셨잖아요. 포기하면 편하다고요.”
“으이구. 화상아.”
최호근 과장이 그럼 그렇지 하면서 머리를 절레 흔들었다.
그때 뒤에서 갑자기 석원의 목소리가 들렸다.
“다들 뭐 재미있는 일이라도 있어요?”
놀란 최호근 과장이 뒤돌아서자 사장실에 올라갔던 석원이 몸에 딱 맞는 수제 슈트를 입고 미소를 지은 채 파티션 안으로 들어서고 있었다.
“별일 아닙니다.”
최호근 과장이 대답하는 사이 냉큼 의자에서 일어난 정환엽 대리는 앞으로 다가가 손바닥을 비비면서 친근하게 물었다.
“팀장님 오셨습니까. 점심은 맛있게 드셨어요?”
아무것도 모르는 석원이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사장님하고 요 앞 일식집에 가서 장어덮밥을 먹고 왔죠. 몰랐는데 이 근처에도 맛집이 많더라고요.”
“아이고 그럼요. 장어가 남자한테 아주 좋지요.”
최호근 과장이 황당한 표정으로 작작하라고 눈빛을 쏘아댔지만 이미 보너스에 눈이 돌아간 정환엽 대리는 꿋꿋하게 시선을 무시했다.
“급한 일이 없으면 잠깐 할 이야기가 있으니까 내 방으로 들어와요.”
“아, 예.”
최호근 과장이 대답하자 석원은 몸을 돌려 바로 옆에 있는 개인 사무실로 들어갔다.
“으이그. 이 간신배 같은 놈아.”
“아 왜요!”
“넌 인마 나중에 나랑 따로 면담해!”
최호근 과장은 정환엽 대리를 향해 주먹을 슬쩍 들어 보이곤 뒤따라 걸음을 옮겼다.
노크 소리와 함께 최호근 과장이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왔다.
“거기 앉으세요.”
“네.”
한쪽 손을 들어서 소파를 가리킨 석원은 자리에서 일어나 창가에 있는 커피 포트로 갔다.
“커피 한 잔 마시겠어요?”
“주시면 감사하죠.”
석원은 살짝 웃으며 믹스 커피를 뜯어 찻잔에 넣고 뜨거운 물을 적당히 부었다.
잘 풀리도록 티스푼으로 몇 번 저고는 양손에 찻잔을 들고 소파로 향했다.
“자 마셔요.”
그러면서 찻잔을 탁자에 내려놓자 최호근 과장이 고개를 퍼뜩 숙였다.
“잘 마시겠습니다.”
상사가 직접 타주는 커피라니 정말 부담스러웠다.
그런 속내도 모르고 석원은 태연하게 가운데 자리에 앉으며 평소와 같은 표정으로 물었다.
“오늘 장 분위기는 어때요.”
“강세장이 계속되고 있습니다. 중간에 또다시 돌발 변수만 튀어나오지 않는다면 무난하게 올해 안으로 주가지수가 1,000포인트를 넘길 수 있을 걸로 보입니다.”
작게 머리를 끄덕이며 석원이 말했다.
“그렇게 되면 5년 만에 1,000포인트를 재돌파하는 거죠?”
“맞습니다.”
낮은 달러와 유가, 금리로 촉발된 이른바 3저 현상이 벌어진 1986~89년 동안 한국은 유례없는 큰 호황을 누렸다.
수출이 늘어나고 경제 규모가 커지자 주식 시장도 활황을 보이며 1985년 초에 139포인트였던 주가지수가 불과 4년 만에 1,000포인트를 돌파하는 기염을 토했다.
‘주식은 사두면 무조건 오른다는 말까지 있을 정도였지.’
하지만 빠르게 타오른 불꽃인 만큼 꺼지는 것도 순식간이었다.
상장만 하면 큰돈을 벌어들이게 되자 자격에 미달하는 회사들까지 무분별하게 기업공개를 하고 기존 상장사들도 과도하게 증자를 하면서 결국 문제가 터지고 말았다.
1989년 4월 1일 1,007포인트를 고점으로 지수가 꺾여 떨어지기 시작하더니 결국 1년 6개월 만에 566포인트로 반토막이 나 버렸다.
‘이때 깡통계좌라는 말도 처음 나왔지.’
무리하게 빚을 내서 주식을 샀던 투자자들의 계좌가 하락을 견디지 못하고 반대매매로 한꺼번에 쏟아지면서 낙폭을 더욱 키웠다.
이때 일확천금을 꿈꾸다가 한순간에 모든 재산을 잃은 사람들이 부지기수였다.
‘지수가 1,000포인트를 다시 넘기고 얼마 있지 않아 데칼코마니처럼 IMF가 찾아온 걸 보면 정말 아이러니한 일이야.’
이런 걸 보면 역사는 반복된다는 말이 그냥 나온 이야기는 아닌 것 같았다.
잡념을 지운 석원은 가만히 이야기를 기다리고 있는 최호근 과장을 보며 입을 뗐다.
“따로 보자고 한 건 해줬으면 하는 일이 하나 있어서예요.”
“뭐든 말씀만 하십시오.”
“그런데 회사 업무가 아니라 내 개인적인 부탁이에요.”
“……!”
앞에 놓인 찻잔을 집어 든 석원은 커피를 한 모금 마시고는 차분히 말했다.
“물론 내키지 않으면 안 해도 괜찮아요.”
거절해도 된다고 했지만, 직속상관인 데다가 오너 직계인 석원의 말을 따르지 않을 정도로 간 큰 직원은 없었다.
눈치 빠른 최호근 과장은 이게 단순한 부탁이 아니라 밑으로 들어와 자신의 사람이 될 생각이 있냐는 물음이라는 걸 바로 알아차리고는 마른침을 꿀꺽 삼켰다.
확고한 후계자인 박진형 사장이 있어 회장직을 이어받진 못하겠지만, 그룹 내에서 중요한 자리를 차지하거나 한몫 크게 받아서 독립해 나갈 것이 확실한 석원이었다.
그런 석원의 밑에 들어간다면 황금 동아줄을 움켜잡는 거나 마찬가지였다.
‘이걸 놓친다면 바보 멍청이지.’
머릿속으로 빠르게 생각을 정리한 최호근 과장은 상체를 똑바로 세우며 대답했다.
“뭐든 말씀만 하십시오.”
당연히 거절하지 않을 거라 생각했던 석원은 잔뜩 기합이 들어간 모습에 미소를 지었다.
“크게 어려운 일은 아니니까. 긴장 안 해도 돼요.”
그러고는 소파 등받이에 몸을 기댄 채 최호근 과장을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
“동해 그룹 모든 계열사의 지분 소유 구조와 차입금 상황을 상세하게 파악해 줬으면 해요.”
뜻밖의 지시에 최호근 과장이 약간 의아한 표정을 지으며 되물었다.
“동해 그룹이라고 하셨습니까?”
“그래요.”
작게 머리를 끄덕인 석원은 사뭇 진지한 목소리로 말했다.
“특히 우용갑 회장을 비롯한 오너가 지배 지분율이 얼마나 되고 어떻게 분배되어 있는지 정확히 알아봐 줬으면 좋겠어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