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olden Spoon Investment Portfolio RAW novel - Chapter (91)
금수저 투자백서 91화(91/231)
91. 결국 막을 수 없는 건가.
똑똑똑.
고려일보 사회부 부장인 김득한이 책상 앞에 앉아 업무를 보고 있다가 노크 소리에 상체를 바로 세웠다.
“들어와.”
그러자 노타이에 여름 양복 차림인 양영모가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왔다.
“부장님. 부르셔서 왔습니다.”
“음, 그래. 거기 앉아. 양 기자.”
살짝 고개를 끄덕인 김득한이 턱으로 앞에 있는 소파를 가리켰다.
양영모가 왼쪽 소파에 자리를 잡고 앉자 몸을 일으킨 김득한이 창가에 있는 선반으로 걸어가며 물었다.
“커피 마시겠나?”
“주시면 감사하죠.”
올해로 6년 차인 고참 기자답게 능청스러운 대답을 듣고 김득한이 피식 웃었다.
믹스 커피를 꺼내 컵에 집어넣고 커피포트로 바로 끓인 물을 따랐다.
그러고는 티스푼으로 대충 저은 김득한이 양손에 머그컵을 들고 와 양영모 앞에 내려놨다.
“잘 마시겠습니다.”
양영모가 뜨거운 커피를 후후 불어 마시더니 엄지를 척 치켜올렸다.
“부장님이 타주시는 커피라서 그런지 더 맛이 좋은 것 같네요.”
“특종만 가져와 봐. 그럼 커피는 매일이라도 타 줄 테니까.”
김득한이 책상에서 종이 한 장을 가져와 상석에 앉으며 말했다.
“그래서 거기 가져왔지 않습니까. 그거, 제 기사 초안 맞지요?”
“눈치 하난 빨라 가지고.”
“기자한테 눈치 빼면 시체 아닙니까.”
양영모가 써서 올린 기사 초안을 내려다본 김득한은 뭔가 불편한 표정을 지었다.
“한강 교량들의 보수와 관리가 부실하게 이루어지고 있어 사고 위험이 있다고 썼던데.”
몸을 앞으로 당겨 앉으며 양영모가 대답했다.
“기사를 보셨으면 아시겠지만 기본적으로 한강에 오래된 교량들이 많은데다가, 차량 통행량이 이렇게 급속히 늘어날 걸 예상하지 못한 채 지어져서 피로도와 노후화가 급속히 진행된 상태입니다.”
“…….”
“단적인 예로 성수대교 같은 경우, 하루 통행량을 8만대로 가정해 설계가 이루어졌지만 실제 통행량은 2배인 16만대를 넘어선 지 오래죠.”
경부 간선도로 입구에서 가장 가까운데다가 이때까지만해도 아직 성수대교 북단이 강변북로와 연결되지 않은 상태였기에 차량이 몰릴 수밖에 없었다.
거기다가 성수대교 자체도 왕복 4차선밖에 안 되다 보니 교통체증이 상습적으로 벌어졌다.
“성수대교뿐만 아니라 한남대교도 이전부터 위험하게 상판에 구멍이 뚫리는 등 말들이 많지 않습니까. 이대로 놔둔다면 분명 큰 사고가 나고 말 겁니다.”
가만히 이야기를 들은 김득한은 떨떠름한 얼굴로 입을 뗐다.
“다들 준공한 지 1~20년이 넘어가는 교량들이니 노후화가 되는 건 당연한 거잖아.”
“하지만…….”
바로 반박하려는 걸 중간에 끊으며 김득한이 계속 말을 이었다.
“성수대교에 집중되는 교통량 문제는 조만간 인근에 청담대교가 완공되면 해결될 일이고. 또 서울시도 노후 교량 관리와 보수에 마냥 손을 놓고 있는 건 아니니깐. 굳이 우리까지 나서서 시민들에게 불안감을 조성할 필요가 있을까.”
얼굴을 굳힌 채 김득한을 똑바로 바라보며 양영모가 말했다.
“……꼭 서울시 담당자처럼 말씀하시네요.”
김득한은 뭔가 켕기는 구석이라도 있는 사람처럼 슬쩍 시선을 피하고는 억지에 가까운 주장을 펼쳤다.
“우리가 3류 타블로이드지도 아니고 명색이 5대 신문사 중에 하나잖아. 그건 무조건 기사를 내보내는 것이 아니라 내용에 책임을 지고 사회 여론을 이끌어가야 할 책무가 있다는 뜻이야. 그런데 이런 걸로 괜한 불안과 소동을 만들어 낼 필요는 없잖아.”
그러자 양영모가 가라앉은 목소리로 대꾸했다.
“시민들은 무엇이든 알 권리가 있고 진실을 추구하며 공정하게 보도해 공공의 이익에 기여하는 것이 기자의 본분이기도 하죠.”
틀린 말이 아닌데다가 평소에 김득한이 술자리에서 후배 기자들한테 입버릇처럼 하던 이야기였기에 순간 말문이 막혔다.
김득한은 난감한 얼굴로 입맛을 다시면서 속으로 혀를 찼다.
‘평소엔 능청맞게 구는 놈이 꼭 이럴 때만 꼿꼿해진단 말이야.’
마뜩잖게 여기는 기색을 알아챈 양영모는 자세로 고쳐 앉으며 진지하게 물었다.
“딱히 문제가 있는 기사도 아닌데 이러시는 이유가 뭡니까?”
“하아.”
답답한 듯 한숨을 내쉰 김득한은 안주머니에서 담뱃갑을 꺼내 입에 하나 물고는 불을 붙였다.
흰 담배 연기를 깊숙이 빨아들였다가 천천히 내뱉고는 가만히 대답을 기다리는 양영모를 보더니 어쩔 수 없다는 듯 입을 뗐다.
“다 좋은데 7~80년대에 지어진 건물과 교량들이 공사 기간을 단축시키고 비용을 줄이기 위해 부실하게 지어졌을 가능성이 높으니까. 전수 검사를 해야된다는 이야기는 왜 넣은 거야.”
시선을 마주 보며 양영모가 당당하게 대꾸했다.
“그게 사실이니까요. 지난 정권 때만 해도 주택 100만 호 건설을 추진하며 신도시를 만드는 과정에서 공사에 들어가는 골재가 부족해지자. 바다에서 캐낸 모래를 염분도 제대로 빼지 않고 마구 썼다는 소문이 있었지 않습니까.”
김득한이 이맛살을 찌푸리고는 짜증 섞인 목소리로 언성을 높였다.
“그런 게 쓸데없는 불안감을 조성한다는 거야! 그래서 무너진 아파트가 한 동이라도 있었어?”
“농담이라도 그런 일은 없어야죠.”
“크큼.”
실언을 한 걸 깨달은 김득한은 괜히 헛기침을 하곤 꼿꼿한 자세로 앉아 있는 양영모를 봤다.
그러다 가늘게 한숨을 내뱉고는 반쯤 타들어 간 담배를 크리스털 재떨이에 거칠게 비벼서 껐다.
“안 그래도 정권 초부터 이런저런 사건사고들이 연이어서 발생해 사고 공화국이라는 비아냥까지 듣고 있는데 이런 기사를 내보내면 정부에서 뭐라고 생각하겠어.”
“그러니까 더 이상 그런 비극이 발생하지 않도록 예방을 하자는 거 아닙니까.”
양영모의 반박에 김득한이 잔뜩 인상을 썼다.
“고작 기사 한 줄 내보낸다고 어이쿠야 하면서 서울시나 정부가 움직일 것 같아? 그리고 쓸데없이 부실 공사 운운하면서 왜 엄한 건설사들을 물고 늘어지는 건데.”
“…….”
김득한은 입을 꾹 다문 양영모를 보면서 앉아 있는 소파 팔걸이를 손바닥으로 내려쳤다.
“건설사들이 우리 신문에 싣는 광고가 얼마나 되는지 모르냐고. 그런데 이딴 기사를 내면 좋아하겠어!”
김득한이 본심을 드러내자 그제야 왜 이러는지 이유를 알아차린 양영모가 실망한 기색을 떠올렸다.
“겨우 광고 때문에 이러시는 겁니까.”
“겨우라니! 자네 월급은 어디 땅 파서 주는 줄 알아.”
불만 가득한 표정을 짓고 있는 양영모를 향해 김득한이 단호하게 말했다.
“아무튼 이 기사는 못 내보내니까 그렇게 알고 있어.”
“부장님!”
“아무리 말해도 소용없으니까 포기해.”
김득한은 소파에 앉은 채 아예 보지도 않겠다는 것처럼 고개를 반대 방향으로 홱 돌렸다.
“정말 너무하신 것 아닙니까?”
“이거 왜 이래. 너 정도 짬이 되면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정도는 알고 있을 거 아냐.”
김득한이 시선을 바로하고는 더 말하기 싫다는 듯한 쪽 팔을 내저었다.
“두말하기 싫으니까 어서 나가 봐.”
“부장님 진짜 이렇게 하실 겁니까.”
“빨리 나가래도.”
양영모는 뭐라고 말을 하려다가 씨알도 안 먹힐 분위기에 어쩔 수 없다는 듯이 입술을 꾹 깨물었다.
“알겠습니다.”
소파에서 벌떡 일어나 부장실을 나오자 안에서 나는 큰 소리에 숨을 죽인 채 귀를 쫑긋 세우고 있던 사회부 기자들이 일제히 양영모를 쳐다봤다.
그중 친하게 지내던 동료 기자가 슬쩍 가까이 다가와서는 표정을 살피며 물었다.
“무슨 일이야. 부장이랑 싸우기라도 했어?”
“아무것도 아니야.”
양영모는 머리를 벅벅 긁으며 짜증스런 표정을 지었다.
“나 잠깐 나가서 담배 한 대 피우고 올게.”
“그래. 머리 좀 식히고 와.”
동료 기자가 걱정스러운 얼굴로 쳐다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등 뒤에 꽂히는 시선들을 애써 무시한 양영모는 사무실을 나가 직원들이 담배를 피우는 장소로 이용하는 빌딩 옥상으로 올라갔다.
“하…….제기랄.”
난간 앞에 선 양영모가 거칠게 주머니에서 담뱃갑을 꺼냈다.
“회식만 하면 기자 정신 운운하며 일장 연설을 늘어놓더니 결국 다 헛소리였던 거 아냐.”
양영모는 담배를 한 개비 빼서 입에 물곤 라이터로 불을 붙이며 눈매를 일그러뜨렸다.
“뭐, 어쩔 수 없나.”
부장을 씹긴 했지만 그 역시 윗선에서 찍어누른다고 소신을 꺾지 않고 기사를 쓰는 정의로운 열혈 기자는 아니었기에 담배 맛이 더욱 씁쓸했다.
“그러기에는 나도 사회 때가 너무 타 버렸지.”
담배 연기를 내뱉으며 꽉 막힌 숨을 토해낸 양영모가 작게 중얼거렸다.
“술까지 얻어 마시고 오랜만에 부탁을 받은 건데 최 선배한테 미안하게 됐네.”
사실 방금 부장한테 까인 기사는 스스로 취재한 것이 아니라 대학 동아리 선배인 최호근한테 소스를 받은 거였다.
물론 부탁을 받았다고 아무거나 그냥 막 써줄 정도로 썩지는 않았기에 나름 이것저것 알아봤었다.
그랬더니 정말로 한강 교량들의 상태가 위험할 정도로 심각하다는 걸 확인하곤 제대로 각을 잡고 취재해서 기사를 썼었다.
하지만 결과는 방금 확인했듯 쓰레기통 행이었다.
“부장 새끼. 예전부터 정치판에 관심이 많더니. 내후년 총선에서 공천을 받으려고 벌써부터 줄을 서는 거야 뭐야.”
투덜거리면서 짜증을 낸 양영모는 문득 멀리 한강이 있는 방향을 쳐다봤다.
“설마 정말로 무슨 일이 벌어지진 않겠지.”
입술 사이에서 흘러나온 작은 혼잣말은 이내 바람을 타고 허무하게 흩어졌다.
* * *
넥타이 없이 가벼운 셔츠 차림을 한 석원은 넓은 퍼스트 클래스 좌석에 앉아 맞은편에 자리한 랜든의 이야기를 듣고 있었다.
“3억 달러에 원 뉴욕 플라자 빌딩을 매입하기로 체이스 은행과 최종 계약을 끝냈습니다.”
“조건은 지난번에 말한 그대로겠죠?”
“네. 1억 달러를 먼저 내고 잔금은 5개월 뒤인 내년 2월에 모두 완납하기로 했습니다.”
“수고했어요.”
그러자 랜든이 웃으며 축하 인사를 건넸다.
“세계에서 땅값이 제일 비싸기로 유명한 맨해튼에 고층 빌딩을 가지게 되신 걸 축하드립니다.”
석원은 입꼬리를 살짝 올린 채 손에 든 언더락 잔을 기울여 위스키를 홀짝였다.
“아, 그리고 걸프스트림에도 선금으로 3천만 달러를 입금시켰습니다.”
얼음이 달그락거리는 소리를 내며 언더락 잔을 내려놓은 석원이 확인하듯 물었다.
“내년 초에 주문한 비즈니스 제트기를 인도받는 걸로 확실히 못을 박아 뒀겠죠.”
“만약 약속한 기한을 넘기면 하루에 십만 달러씩 지체 보상금을 주기로 특약 사항을 넣어 뒀으니 염려 마십시오.”
변호사 출신답게 꼼꼼하게 일을 처리해놓은 것에 석원이 흡족한 미소를 지었다.
“보상금 때문에라도 어떻게든 기한을 맞추려고 하겠네요.”
“그럴 겁니다. 신형 기체로 주문하신 건 24개월 뒤에 출고될 예정이라고 합니다.”
석원은 머릿속으로 날짜를 계산해보고는 작게 머리를 끄덕였다.
“선물할 거니까 문제가 없도록 꼼꼼하게 만들어달라고 해요.”
“알겠습니다.”
짧게 대답한 랜든은 보고를 위해 테이블에 늘어놓았던 서류들을 챙기며 일어날 준비를 했다.
“그럼 전 이만 내리도록 하겠습니다.”
“그래요.”
“조심해서 가십시오.”
몸을 일으킨 랜든이 인사를 건네자 그가 웃으며 말했다.
“없는 동안 지금처럼 이쪽 일을 잘 부탁해요.”
“네. 걱정하지 마십시오.”
듬직하게 대답한 랜든은 걸음을 옮겨 비즈니스 제트기에서 내렸다.
곧 금발의 늘씬한 스튜어디스가 다가와 부드러운 목소리로 물었다.
“이제 출발해도 되겠습니까?”
“그래요.”
“그럼 안전벨트를 착용해 주십시오.”
그렇게 말하며 스튜어디스가 앞쪽 조종실로 향했다.
언더락 잔에 남은 위스키를 깨끗하게 비우고는 막 안전벨트를 하려고 할 때, 테이블 한쪽에 올려둔 휴대폰 벨소리가 울렸다.
손을 뻗어 전화를 받자 한국에 있는 최호근 과장의 목소리가 귀에 꽂혔다.
[팀장님, 최 과장입니다.]“어쩐 일이에요.”
[미국에 가시기 전에 지시하셨던 일로 연락을 드렸습니다.]뭔지 떠올린 석원이 손에 든 휴대폰을 고쳐쥐며 물었다.
“어떻게 됐어요?”
그러자 최호근이 머뭇거리면서 대답했다.
[그게…… 데스크에서 기사가 짤렸다고 합니다.]기대와 다른 소식에 석원이 미간을 찡그렸다.
“이유가 뭐죠?”
[아무래도 연이은 대형 사고들 때문에 예민해져 있는 정분의 눈치를 보는 것 같습니다. 거기다 광고를 주는 건설사들을 까는 내용도 있다 보니 그쪽도 신경이 쓰이는 것 같고요.]“흐음. 그래요.”
[대신 거슬려 할 만한 부분을 조금 다듬고 수위를 부드럽게 조절하면 어떻게든 기사를 내보낼 수 있을 것 같다는데 그렇게라도 할까요?]알맹이는 빼고 껍데기만 남긴 기사로 과연 서울시를 움직일 수 있을지 의문이었기에 그는 회의적인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그거라도 안 하는 것보단 낫다는 생각이 들자 석원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해요.”
[알겠습니다.]“이제 한국으로 돌아가니까 남은 이야기는 만나서 하죠.”
[네.]통화를 끝낸 석원은 좌석에 몸을 파묻은 채 수심에 가득 찬 얼굴로 중얼거렸다.
“결국 사고가 벌어지는 걸 막을 수 없는 건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