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olden Spoon Life White Paper RAW novel - Chapter 143
143. 팔 생각이 있다면 제가 사도록 하죠.
다음 날.
사무실에 출근해 메가시티 분양 자료를 살펴보고 있을 때 한쪽에 놔둔 핸드폰 진동벨이 울렸다.
“응? 허 대표가 어쩐 일이지.”
액정에 뜬 이름을 확인한 재성은 의아한 듯 머리를 갸웃거리고는 전화를 받았다.
[바쁘신데 연락을 드린 건 아닌지 모르겠습니다.]“아니에요.”
몸을 뒤로 기댄 재성은 문득 생각났다는 듯이 물었다.
“참. 신작 게임 개발은 잘 진행되고 있겠죠?”
[물론입니다. 별도의 부서 설립을 끝내고 지금은 개발 방향을 잡는 단계를 진행 중입니다. 그리고 다음 달에는 필요한 개발 인력들을 채용할 예정입니다.]신작 게임은 어떤 장르와 주제로 할 것인지 아직 정해두지 않았다.
모든 가능성을 열어두고, 여러 뛰어난 개발자들을 모아 기획 단계부터 하나씩 차근차근 진행할 예정이었다.
“장기적으로 보고 추진하는 프로젝트니까. 빨리 완성시키는 것보단 재미와 퀄리티 확보에 더욱 신경을 쓰도록 하세요.”
[개발자들이 그 말씀을 들으면 아주 좋아하겠군요.]한국 게임 업체들의 인력 갈아 넣기는 아주 유명했다.
새벽 12시, 1시까지 야근하는 건 기본이고 휴일 근무는 일상생활이었다.
‘그나마 수당이라도 제대로 챙겨주면 다행이겠지만 그것도 아니지.’
수당을 빼먹는 건 다반사였고 공짜 야근은 필수일 정도로 근무 환경이 열악했다.
그러다가 건강을 망치거나 쓰러지면 어떤 보상도 없이 버려지고 새로운 부속품으로 갈아 끼워진다.
그것이 한국 게임과 IT업계의 현실이었다.
지난 삶의 경험 때문인지 그는 인건비를 줄이고 직원들을 희생시켜서 이익을 늘리고 싶은 마음은 없었다.
“안부를 물으려고 연락한 건 아닐 테고. 무슨 할 이야기라도 있습니까?”
[아. 예.]잠시 머뭇거린 허인환 대표가 조심스럽게 용건을 꺼냈다.
[혹시 스마일 워크라고 아십니까?]“……!”
[파이어 슈팅이라고 온라인 FPS 게임을 개발한 곳입니다.]던전 워와 함께 중국에 진출해 1조가 넘는 연 매출을 기록하는 게임이 바로 파이어 슈팅이었기에 모를 수가 없는 이름이었다.
[스마일 워크 이형오 대표가 오너를 뵙고 싶어 하는데 혹시 시간이 괜찮으십니까?]“날 만나고 싶어 한다고요?”
[그렇습니다.]이형오 대표가 자신을 왜 만나려고 하는지 의아해하던 재성은 어쩌면 좋은 기회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만나자는 용건이 뭐죠?”
[파이어 슈팅이 베트남에서 괜찮은 성적을 거둬 중국에도 진출하려는데 오너의 도움을 받고 싶은 모양입니다.]“나한테요?”
[네. 중국 서비스 업체들과 접촉을 했는데 저희가 처음에 당한 것처럼 터무니없는 조건을 제시한 모양입니다.]“그렇군요.”
재성은 이해했다는 듯이 작게 머리를 끄덕였다.
던전 워가 엄청난 성공을 거둔 이후 한국 게임 업체들이 우후죽순 대박을 노리고 중국 시장의 문을 두드리고 있었다.
이러다 보니 중국 유통사들이 유리한 위치에서 터무니없는 계약을 내밀며 갑질을 해대는 경우가 비일비재했다.
‘베트남에서 얼마나 성공을 거뒀는지는 모르지만 본진인 한국에서 스페셜 포스에 밀려 망한 게임이었으니 더욱 불리한 입장이겠지.’
만약 중국 시장을 휩쓰는 대표적 한국 게임인 던전 워와 파이어 슈팅 두 타이틀을 동시에 보유한다면 어떻게 될까 하는 생각이 머릿속에 떠올랐다.
[내키지 않으시면 안 된다고 하겠습니다.]상념에서 깨어난 재성은 얼른 입을 열었다.
“아닙니다. 내일 오후에 스케줄이 없는데 함께 저녁이나 먹으면서 이야기를 나누도록 하죠.”
[감사합니다. 이 대표한테 연락해서 시간을 비워두라고 하겠습니다.]“그럼 내일 보죠.”
핸드폰을 내려놓은 재성은 눈을 반짝이면서 혼잣말을 내뱉었다.
“파이어 슈팅이라……. 이거 호박이 넝쿨째 굴러온 셈이군.”
알아서 찾아온 기회를 어떻게 붙잡을 수 있을까.
재성은 앉은 자리에서 가만히 고민에 빠졌다.
* * *
약속 장소는 강남에 위치한 고급 한정식당이었다.
풍월이라는 간판을 달고 있는 그 가게는 입구에서부터 손님을 가려 받는 티가 났다.
재성이 안으로 들어가자 개량 한복을 단정하게 차려입은 젊은 여종업원이 인사하며 물었다.
“어서 오십시오. 예약되어 있으신가요?”
“허인환이라는 이름으로 되어 있을 겁니다.”
재빨리 예약자 명단을 눈으로 훑은 종업원은 이내 미소 지었다.
“네. 확인했습니다.”
그다음은 자리를 안내해 주는 홀 담당 종업원 차례였다.
“매화실로 모시겠습니다.”
종업원의 뒤를 따라 안으로 들어가니 환한 실내에 계절 꽃으로 장식된 고급스러운 복도가 눈에 들어왔다.
보통 식당들처럼 넓은 홀에 테이블이 있는 게 아니라 거의 모든 공간이 개별실로 되어 있어서 손님들끼리의 프라이버시를 중시하는 구조였다.
종업원이 미닫이문을 열어주자 재성이 안으로 들어갔다.
방 안에는 허인환과 이형오 스마일 워크 대표가 먼저 앉아 있었는데, 그의 모습을 보고 일어나 인사했다.
“오셨군요.”
허인환이 먼저 말을 걸며 옆의 이형오 대표를 소개했다.
“말씀드렸던 스마일 워크의 이형오 대표입니다.”
“이형오라고 합니다.”
이미 재성이 어떤 사람인지 알고 있던 이형오는 공손한 태도로 명함을 건넸다.
“만나게 돼서 반갑군요.”
재성도 미소 띤 얼굴로 그와 명함을 교환했다.
“이렇게 귀중한 시간을 내주셔서 감사합니다.”
이형오는 적지 않게 긴장한 기색이었다.
그 자신도 한 사업체의 대표이긴 하나 재성의 위치에 비하면 보잘것없기 때문이었다.
특히나 오늘은 부탁을 하러 온 처지였기에 더욱 그러했다.
어쨌건 인사를 나눈 후 서로 자리에 마주 앉았다.
자연스럽게 상석은 재성의 차지였는데, 그에 불만을 가지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일단 자리에 앉자 종업원이 이내 주문한 음식을 가져왔다.
한정식 특유의 정갈하면서도 깔끔한 플레이팅, 그리고 제철 음식을 한껏 활용한 구성은 보기만 해도 식욕을 돋웠다.
재성은 전통주가 든 주전자를 들고 말했다.
“이렇게 만난 것도 인연인데 한잔 받으시죠.”
이형오가 얼른 잔을 집어 들자 재성이 술을 따라주었다.
허인환 대표의 술잔도 가득 채워준 재성은 건배를 외치며 잔을 비웠다.
‘어디 보자.’
재성은 태연한 척하면서 곁눈으로 이형오 대표를 살폈다.
처음 만나 긴장한 것치고는 과하다 싶을 정도로 등과 어깨가 뻣뻣하게 굳어 있다.
게다가 초조한 듯 연신 눈동자를 굴리는 게 무언가 할 말이 있는 것처럼 보였다.
‘회사 사정이 안 좋다더니 사실인가 보군.’
재성은 그의 부담을 덜어주고자 먼저 말을 걸었다.
“파이어 슈팅을 중국에 런칭하려 한다고 들었습니다.”
그러자 이형오 대표가 기다렸다는 듯이 대답했다.
“예. 그 일로 부탁드릴 것이 있어서 이렇게 염치불구하고 연락을 드렸습니다.”
“같은 한국 업체들끼리 서로 도울 일이 있으면 도와야죠.”
“그렇게 말씀해 주시니 감사합니다.”
재성의 이야기에 잔뜩 굳어 있던 이형오 대표의 얼굴이 조금 풀어졌다.
“무슨 문제가 있는 겁니까?”
“파이어 슈팅 런칭을 위해 여러 중국 유통사들과 협상을 진행 중인데 너무 터무니없는 조건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어느 정도이기에 그러는 겁니까?”
“이익 배분을 7 대 3으로 자신들이 더 많이 가져가는 건 물론이고 판촉 비용까지 절반을 부담하라고 합니다.”
“판촉 비용까지 부담하라고 했다고요?”
그동안 쌓인 것이 많은지 이형오 대표는 분통을 터트리며 하소연을 늘어놨다.
“그렇습니다. 그게 싫으면 배분 비율을 더 낮춰서 20%만 가져가라고 하더군요. 세상이 이런 날강도 같은 놈들이 어디 있습니까.”
부스러기만 남겨주고 수익은 다 챙겨가겠다는 소리나 다름없었으니 화가 날 만도 했다.
“요즘 중국에 진출하려는 한국 업체들이 많고 파이어 슈팅이 상대적으로 인지도가 낮다 보니 계약을 후려치려는 것 같습니다.”
허인환이 슬쩍 끼어들며 말을 덧붙이자 재성이 동의하듯 작게 머리를 끄덕였다.
그러자 이형오 대표가 몸을 앞으로 당겨 앉으면서 말했다.
“대형 인터넷 서비스 업체인 테라노트에 상당한 영향력이 있으시다고 들었습니다. 저희 게임이 합당한 대우를 받고 중국에 진출할 수 있도록 좀 도와주십시오.”
머리까지 숙이며 부탁하자 재성이 가볍게 손을 가로 저었다.
“이러시면 제가 부담스럽습니다.”
“그만큼 절박한 심정입니다.”
재성은 난감한 듯 얼굴 표정을 흐렸다.
원래대로라면 던전 워의 뒤를 이어 무난하게 중국에 진출해서 큰 대박을 터트리는 회사다.
그런데 이 정도로까지 어려움을 겪는다는 건 뭔가 크게 잘못되었다는 느낌이 들었다.
‘설마 나 때문인가?’
재성은 속으로 약간의 미안함과 혼란을 느끼며 연신 고개를 숙이는 이형오 대표를 쳐다보았다.
그러고는 차분한 목소리로 입을 뗐다.
“원한다면 테라노트와 협상할 수 있도록 자리를 만들어 드릴 수는 있습니다.”
반색하던 이형오 대표는 이어진 재성의 이야기에 얼굴이 어두워졌다.
“하지만 이미 받은 조건보다 더 나은 계약을 맺도록 해드린다고 말할 수 없습니다.”
재성은 확실하게 선을 그으면서 말을 이었다.
“엄연히 다른 기업인데 제가 함부로 간섭할 수는 없는 일이지 않겠습니까. 그리고 솔직하게 말해 지금 중국에 진출하고 있는 다른 게임 타이틀에 비해 파이어 슈팅의 경쟁력이 떨어지는 것도 사실이고요.”
“그건…….”
뭐라고 반박하려던 이형오 대표는 이내 입을 다물며 어깨를 축 늘어뜨렸다.
객관적으로 재성의 말이 틀리지 않았기 때문이다.
함께 있던 허인환 역시 안 되는 일을 재성이 억지로 도울 이유는 없다는 걸 알았기에 그저 측은하게 이형오 대표를 바라볼 뿐이었다.
앞에 놓인 술잔을 들어 한 모금 마시고는 재성이 말했다.
“설사 계약을 맺고 게임을 런칭한다고 해도 지금 중국 시장은 흡사 춘추전국시대와 같습니다. 많은 게임 업체들이 각축전을 벌이고 있으니 살아남는 것이 쉽지 않을 겁니다.”
“……그렇겠지요.”
이형오 대표가 초췌한 얼굴로 시선을 떨궜다.
“제가 괜히 시간만 빼앗은 것 같군요. 죄송합니다.”
목소리가 모래를 삼킨 듯 까끌거렸다.
어깨를 축 늘어뜨린 모습에 재성은 이형오 대표를 잠시 동안 지그시 쳐다보다 말했다.
“대신 제가 한 가지 제안을 드리죠.”
“네?”
그는 생기 없는 얼굴로 중얼거렸다.
“말씀해 보십시오.”
“회사를 저한테 매각하는 건 어떻습니까.”
일순 제대로 알아듣지 못한 것처럼 멍한 표정을 짓고 있던 이형오 대표가 놀라 눈을 깜박였다.
“……예?”
이형오 대표뿐만 아니라 함께 있던 허인환도 깜짝 놀라 그를 쳐다보았다.
“오너! 그게 무슨…….”
재성은 한쪽 손을 들어 허인환을 조용히 시켰다.
그러곤 여전히 상황 파악을 하지 못한 이형오 대표에게 말했다.
“만약 매각할 의사가 있다면 3천억에 인수하도록 하죠.”
액수를 들은 이형오 대표가 입을 크게 벌렸다.
그는 제 귀를 의심하는 것처럼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이었다.
허인환 또한 속으로 경악해선 재성을 쳐다보았다.
파이어 슈팅 말고는 개발에 성공한 게임이 없고, 그나마도 성적이 좋진 않은 편이었다.
그런데 3천억이나 되는 큰돈을 주고 인수하겠다니.
대체 뭘 보고 그런 제안을 한 건지 알 수가 없었다.
이형오 대표는 덜덜 떨리는 손으로 잔을 집어 술을 입에 탁 털어 넣었다.
손등으로 입가에 흐른 술을 닦으며 그는 두근거리는 심장을 진정시키려 애썼다.
“방금 한 말, 진심이십니까?”
“물론이죠. 원한다면 오늘 바로 계약서를 쓰고 입금시켜 줄 수도 있습니다.”
재성의 대답을 들었음에도 이형오 대표는 더욱 모르겠다는 표정을 지었다.
대체 왜?
그가 생각해도 자신의 회사가 3천억이란 값어치를 할 것 같진 않았다.
“어째서죠? 왜 회사를 인수하시려는 겁니까.”
그건 허인환 역시 궁금한 점이었다.
아무리 많이 쳐줘도 시장에서 평가하는 스마일 워크의 가치는 5백억도 안 됐기 때문이다.
미래가 암울하다는 회사를 거액을 주고 사겠다고 하니 의문이 드는 건 당연했다.
두 사람의 시선이 동시에 몰리자 재성은 진지한 얼굴로 대답했다.
“스마일 워크를 인수하면 우리한테 없는 FPS 게임 타이틀을 확보해 부족한 라인업을 확충시킬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개인적으로 파이어 슈팅이 이대로 묻히기에는 아까운 게임이라는 생각도 있고 말입니다.”
“그럼 3천억이라는 인수 대금은…….”
“파이어 슈팅을 개발하는 데 들어간 노고에 대한 보상과 앞으로 미래 가치를 평가한 금액입니다.”
“그렇군요.”
솔직히 지난 삶에서 매년 1조 원이 넘는 수익을 올린 메가 히트작인 걸 생각하면 3천억도 엄청난 헐값이었다.
‘그렇다고 너무 많은 액수를 제시한다면 오히려 상대의 의심을 사게 될지도 모르지.’
거기다가 그의 개입으로 시간의 흐름이 달라진 만큼 최악의 경우 파이어 슈팅이 지난 삶만큼 큰 인기를 끌지 못할 수도 있었다.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도움을 구하러 왔다가 생각지도 못한 매각 제안을 받은 이형오 대표는 한참을 머뭇거리다가 입을 열었다.
“너무 갑작스런 제안이라…… 조금 더 생각할 시간을 주시겠습니까.”
“그러시겠죠. 하지만 그리 오래 기다리지는 못합니다.”
“일주일……. 아니, 며칠 안에 대답을 드리겠습니다.”
“알겠습니다. 신중히 고민하시고 답변을 주십시오.”
“그러겠습니다.”
이야기를 잘 마무리한 것 같아 재성은 티 안 나게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슬그머니 이형석 대표를 바라보니 시선이 정처 없이 술상 위를 떠돌고 있었다.
‘고민이야 되겠지만…… 결국 제안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겠지.’
앞서 말했듯 파이어 슈팅이 중국 시장에서 잘 안 먹힐지도 모르지만.
어쨌든 이미 한번 성공했던 게임 타이틀이니, 자신이 잘만 컨트롤한다면 충분히 흥행 대박을 터트릴 수 있을 거라 확신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