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olden Spoon Life White Paper RAW novel - Chapter 370
370. 꽤 흥미로운 이야기군요.
“로비를 맡아달라는 말씀이십니까?”
칼로스의 물음에 이시노가 머리를 끄덕였다.
“그렇습니다.”
의아한 표정을 지으며 칼로스가 상대를 쳐다봤다.
“제가 알고 있기로 예전에 몸담았던 AIPAC를 비롯한 여러 로비 단체들과 일본 정부가 이미 손을 잡고 있는 걸로 알고 있습니다만?”
“맞습니다.”
실제로 로비가 합법화된 미국에서 가장 많은 돈을 쓰며 활발하게 정부와 의회를 상대로 로비를 벌이는 곳이 바로 일본이었다.
매년 쓰는 로비 자금이 드러난 것만 수억 달러에 이를 정도였다.
이런 로비 활동을 통해 친일 인사와 의원들을 통해 일본에 유리한 여론을 만들어내고 정책 결정을 이끌어냈다.
한국 역시 로비 활동을 하고 있었지만 수십 년간 돈을 뿌리며 친일 인사를 만들어 온 일본을 따라가기는 힘들었다.
“이번에 새로 내각이 교체되면서 미국과 외교 관계를 더욱 굳건하게 가져가려 하고 있습니다. 그 일환으로 칼로스 씨처럼 영향력 있는 분하고 손을 잡으려는 겁니다.”
“그렇군요.”
센카쿠 열도, 중국명 댜오위다오의 영유권을 두고 최근 일본이 중국과 크게 대립 중이었으니 미국하고 관계를 더욱 튼튼히 할 필요성이 있었다.
상황을 이해한 칼로스는 빠르게 머리를 굴렸다.
‘이번 기회에 일본 내각과 끈을 만들어두는 것도 나쁘지 않겠어.’
꿩 대신 닭이라고 중국만큼 이권을 챙길 수는 없겠지만 그래도 로비 활동을 하면서 워싱턴 정계에 영향력을 넓힐 수 있을 터였다.
계산을 끝낸 칼로스는 맞은편에 있는 이시노를 보며 물었다.
“중국과 관련된 로비를 맡기시려는 겁니까?”
“그런 것도 있고 우선은 한국에 관한 일을 해주셨으면 합니다.”
“한국이라고요?”
뜻밖의 이야기에 칼로스가 의아한 얼굴을 했다.
“조만간 새로운 방위백서를 발간할 예정인데 거기에 다케시마가 우리 일본의 고유 영토라는 내용이 포함될 겁니다.”
“다케시마라면……?”
“시마네 현에 속한 무인도인데 종전 이후 지금까지 한국이 불법 점거하고 있는 곳입니다.”
“그런 곳이 있는 걸 몰랐군요.”
“방위백서 내용이 발표되면 분명 한국 정부가 반발할 텐데 그걸 잘 무마해 줬으면 합니다.”
일본 역시 스스로 억지 주장이라는 걸 알고 있기에 일을 저지르기 전에 미리 약을 뿌려두려는 거였다.
눈치 빠르게 의도를 알아차린 칼로스는 작게 머리를 끄덕였다.
그와 동시에 눈엣가시인 재성이 있는 한국을 엿 먹이는 일이라고 하자 더욱 흥미가 생겼다.
“다케시마라…… 꽤 흥미로운 이야기군요.”
동석해 있던 시프턴이 자연스럽게 끼어들며 말을 거들었다.
“한일 양국이 다 소중한 동맹국인데 서로 싸우지 않게 하는 것이 미국의 국익에도 도움이 되는 일 아니겠나.”
“옳은 말씀입니다.”
가만히 있는 걸 누가 먼저 시비를 걸어 일을 만드는 건데 한국에서 들으면 기가 차고 피가 거꾸로 솟을 이야기였다.
이시노가 진지한 목소리로 물었다.
“일을 맡아주신다면 내셔널 갤러리에 500만 달러를 기부금으로 내도록 하겠습니다.”
칼로스 입장에서 500만 달러는 그리 큰돈이 아니었다.
돈보다는 일본 정부와 집권 자민당에 인맥을 만드는 것이 더욱 가치 있는 일이었다.
‘거기다가 꼴 보기 싫은 박재성, 그놈의 나라를 엿 먹이는 일이기도 하고 말이야.’
재성한테 직접 피해를 주는 건 아니었지만 그래도 벌써부터 통쾌한 기분이 들었다.
칼로스는 씨익 입가에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좋습니다. 이시노 씨의 제안을 받아들이도록 하죠.”
“하하하. 고맙습니다.”
* * *
한편 재성은 예정보다 길어진 미국 출장을 모두 마무리 짓고 리무진을 타고 공항으로 가고 있었다.
“시리아 내전도 이제 곧 마무리가 될 것 같습니다.”
옆에 탄 데이비드의 말에 재성이 물었다.
“왜 그렇게 생각해요?”
“얼마 전 들어온 정보에 의하면 시민군이 세력을 규합해 조만간 수도인 다마스쿠스를 향한 대대적인 전면 공격을 감행할 예정이라고 합니다. 그렇게 되면 위태롭게 버티고 있는 정부군도 마지막 생명 줄이 끊어지지 않겠습니까.”
“리비아 내전처럼 말이에요?”
“그렇습니다.”
아랍의 봄이라고 불리는 중동 민주화 열풍으로 촉발된 리비아 내전은 수도 트리폴리가 함락되고 독재자인 카다피 정권이 무너지면서 시민군의 승리로 끝났다.
‘하지만 그게 끝이 아니고 또 다른 늪의 시작이었지.’
시리아 역시 마찬가지였다.
처음에는 단순한 독재 정권 타도를 위해 시작된 내전이었지만 종파 갈등을 비롯해 온갖 이해관계가 복잡하게 얽히면서 끝없는 내전의 늪에 빠져들게 됐다.
‘이때까지만 해도 이게 끝이 아니라 악몽의 시작이라는 걸 아무도 알지 못했지.’
자신처럼 미래를 알지 못하니 데이비드가 이렇게 생각하는 건 당연했다.
“내 생각은 달라요.”
“정부군이 다마스쿠스를 지켜낼 거라는 말씀이십니까?”
“시리아 정부군이 이대로 무너지는 걸 러시아와 이란이 그냥 두고 보지 않을 거예요.”
이미 러시아와 이란이 시리아 정부군을 돕고 있다는 건 공공연한 사실이었다.
“지금은 정권 타도를 목표로 뭉쳐 있지만 시간이 갈수록 여러 가지 이해관계로 나누어진 시민군이 계속 동맹을 유지하기는 어려울 거예요.”
‘거기다가 중간에 IS라는 괴물도 튀어 나오게 되지.’
“종파와 이권이 뒤섞이면 어떻게 되는지 리비아의 일로 잘 알게 되었잖아요.”
“…….”
“더군다나 원유가 나오기는 하지만 리비아처럼 중요한 산유국이 아니니 미국의 개입 여지도 없고요. 그러면 더욱 내전이 빨리 끝나기 어렵겠죠.”
논리적인 설명에 데이비드는 잠시 생각을 해보고는 수긍하듯 머리를 끄덕였다.
“그럼 중동 지역의 정세 불안이 계속 이어질 테니까. 국제 원유 시장에서 비중을 지금처럼 유지해야 되겠군요.”
“당분간은 그러는 것이 좋을 거예요.”
당분간이라는 말에 뭔가 이상함을 느낀 데이비드는 눈썹을 모으며 쳐다봤다.
“나중에는 변동이 있을 거라는 겁니까?”
눈치가 빠른 모습에 그는 입가에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데이비드는 고유가가 얼마나 갈 것 같아요?”
“글쎄요. 지금 같은 상황이라면 앞으로 상당 기간 길게 이어지지 않겠습니까.”
“앞서 말한 대로 중동 정세가 계속 불안한 데다가 산유국들이 고유가 덕분에 큰 이득을 보고 있으니 원유 가격을 쉽사리 내리려고 하지 않을 거예요.”
같은 생각인 듯 데이비드가 머리를 끄덕였다.
“하지만 예전과 달리 이번에는 아주 큰 변수가 하나 있어요.”
“그게 뭡니까?”
“바로 셰일 오일이에요.”
“……?”
이해가 안 된다는 표정을 짓는 데이비드를 보며 차분히 설명을 이어갔다.
“고유가로 큰돈을 벌고 있는 산유국들 못지않게 호황을 누리는 곳이 셰일오일 업계에요.”
전 세계적인 셰일 붐에 너도나도 셰일 개발에 뛰어들면서 천문학적인 자금이 쏟아지고 있었다.
“배럴당 100달러를 훌쩍 넘긴 고유가가 산유국들에게 오일머니를 듬뿍 안겨줬지만, 동시에 채굴 원가가 너무 높아 지금까지 외면받아 왔던 셰일오일이 경쟁력을 가지게 만들어준 거죠.”
많아봤자 채굴 원가가 배럴당 10달러를 넘지 않는 중동 원유와 달리 셰일오일은 환경에 따라 달라지겠지만 대략 50달러 중반대였다.
이 말은 곧 국제 유가가 최소한 배럴당 70달러 이상이 안 된다면 셰일오일을 퍼 올려봤자 손해라는 뜻이었다.
“특히나 텍사스에서 대규모 매장지가 연이어 발견되고 채굴에 들어가면서 셰일오일 생산량은 날이 갈수록 커지고 있는 상황이죠.”
셰일오일 생산량 증가에는 재성도 크게 한몫했다.
“이렇게 셰일오일이 시장을 빠르게 잠식해 가는 걸 산유국들이 과연 달가워할까요?”
“당연히 거슬리겠지요.”
그러면서 데이비드가 반론을 제기했다.
“하지만 전체 원유 시장에서 보면 셰일오일 생산량은 아직 미미하지 않습니까?”
“물론 지금은 그렇지만 1년, 2년 시간이 흐를수록 셰일오일 생산량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날 거예요. 얼마 전에는 엑슨모빌 같은 글로벌 메이저들도 셰일오일 개발에 뛰어들겠다고 선언했잖아요.”
이제 셰일오일이 메이저 시장으로 올라섰다는 중요한 의미를 가지는 뉴스였기에 데이비드 역시 잘 알고 있었다.
“거기에 더해 산유국들에게 진짜 위협적인 건 셰일오일 채굴 가격이 점점 내려가고 있다는 거예요.”
“……!”
“막대한 투자가 이루어지는 만큼 생산 기술이 발전하고 채굴량이 늘어나면서 채산성이 좋아지는 거죠.”
심각성을 깨달은 데이비드는 진지한 얼굴로 이야기에 집중했다.
“작은 파도가 아니라 셰일오일이 원유시장을 집어 삼킬 엄청난 해일이라는 걸 깨닫는 순간 산유국들이 바로 행동에 나설 거예요.”
“원유 증산을 할 거라는 말씀이군요.”
재성이 작게 머리를 끄덕였다.
“시장에 원유가 차고 넘칠 정도로 쏟아부어서 가격을 폭락시킨다면 채산성을 맞출 수 없게 된 셰일 업체들은 줄도산하겠죠.”
“……무식하지만 경쟁자를 제거할 수 있는 가장 확실한 방법이군요.”
그러다 무겁게 가라앉은 목소리로 물었다.
“국제 유가가 얼마까지 떨어질 거라고 예상하십니까?”
“셰일 업계를 죽이려는 것이 목적이니 당연히 셰일오일 채굴원가까지 내리겠죠.”
재성의 말에 데이비드는 자신도 모르게 마른침을 꿀꺽 삼켰다.
“채굴 원가라면…… 배럴당 50달러대까지 떨어질 거라는 말씀이십니까?”
“뭐, 내 추측일 뿐이에요. 어쩌면 더 아래로 내려갈 수도 있겠죠.”
“정말로 그렇게 된다면 국제 유가 시장이 엄청난 충격을 받겠군요.”
“순식간에 유가가 절반이 날아가 버리는 것이니. 파급력이 작지 않겠죠.”
충격 정도가 아니라 국제 유가 시장이 패닉에 휩싸일 일이었다.
골드원처럼 대량의 롱포지션을 잡고 있는 경우 자칫 엄청난 손해를 볼 수도 있었다.
“그렇다면 포지션을 유지할 것이 아니라 빨리 물량을 정리해야 되는 것 아닙니까?”
다급하게 말하는 데이비드와 달리 재성은 느긋한 모습을 보였다.
“아직은 오일머니의 달콤함에 빠진 산유국들이 셰일오일을 그리 위협적으로 생각하지 않고 있으니 괜찮아요.”
산유국들이 뭔가 움직임을 보였다면 데이비드도 알아챘을 터였기에 수긍하는 표정을 지었다.
“그럼 언제쯤 유가가 폭락할까요?”
“지금이 정점이고 조금씩 떨어지다가 내후년 뒤에는 급락하게 될 거예요.”
지금까지 단 한 번도 예측이 틀린 적이 없었기에 데이비드는 재성의 이야기를 철썩같이 믿었다.
“내후년이라…….”
“그러니까 당분간은 포지션을 그대로 유지하도록 해요.”
“으음. 알겠습니다.”
머리를 끄덕이던 데이비드는 문득 떠오른 생각에 걱정스러운 얼굴로 말했다.
“예상대로 국제유가가 폭락한다면 울프캠프에서 대규모로 셰일오일을 채굴하고 있는 유니콘 에너지도 위험한 것 아닙니까?”
갑작스럽게 던진 질문이었지만 재성은 여유롭게 대답했다.
“그건 따로 생각해 둔 게 있으니 염려하지 말아요.”
왠지 더 물어봐도 그 이상은 말해주지 않을 것 같은 태도였다.
‘대체 뭘 어쩌시려는 건지…….’
속내가 궁금하긴 했지만 데이비드는 뭔가 계획이 있겠지 하며 걱정을 접어두었다.
그 뒤로도 한참 동안 더 이야기를 나누고 있자니 어느새 공항에 도착했다.
VIP 전용 터미널에서 빠르게 출국 수속을 끝마친 재성은 전용기가 기다리고 있는 주기장으로 향했다.
“그럼 조심해서 가십시오.”
“다음에 또 보죠.”
재성은 데이비드와 악수를 나눈 뒤 전용기에 올라탔다.
승무원의 인사를 받으며 좌석에 앉자 얼마 안 있어 출발을 알리는 기장의 안내방송이 흘러나왔다.
이윽고 엔진 소리와 함께 천천히 활주로를 내달린 전용기가 하늘 높이 날아올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