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ourmet Gaming RAW novel - Chapter 504
밥만 먹고 레벨업 505화
키메리에스.
서열 66위의 악마인 그는 임시적으로 천외국에 머물고 있다.
그렇다. 말 그대로 임시적으로 천외국에 머물고 있었다.
그는 천외국에서 벌어지는 모든 일을 보았다.
갑작스러운 이들의 수도 습격. 혼란을 틈타 헤츨링인 루나와 헤이즈가 납치되는 장면.
귀신창 밴이 혼자서 말을 이끌고 그를 쫓는 장면까지.
키메리에스는 지금 이 전쟁에 참여할 생각이 추호도 없었다.
자신은 단지 이곳에서 마지막 ‘유희’를 즐기고 싶었을 뿐이었으니까.
그런 그는 혼자서 그들을 쫓아 달려나가는 귀신창 밴이 흥미로워 그를 쫓았다.
키메리에스의 능력 중에 있는 ‘동물변화’는 여러 가지 동물로 변화할 수 있게 만든다.
검은 까마귀가 되어 귀신창 밴을 따라왔던 키메리에스는 모든 것을 보았다.
절대 살아나갈 수 없는 무모한 전투. 하지만 그 무모한 전투 속에서 빛을 발하는 노인.
“…….”
키메리에스는 노인에게 속으로 질문했다.
‘그렇게까지 해서 얻으려는 게 뭐지?’
없다. 그에게 얻어지는 건 아무 것도 없었다. 그런데 그는 싸웠다.
몸 곳곳이 베이고 피를 토하고 쓰러져도 다시 일어서 싸웠다.
한때 인간이었으나 그 감정이 무뎌진 키메리에스의 가슴이 지끈거린다.
귀신창 밴이 깨달음을 얻는 자에 도달했을 때, 키메리에스는 또 한 번 놀라고 만다.
자신의 한계를 이겨내고 자신의 힘을 빌어 다시 성장한 그는 나아갔다.
하지만 결국에 그는 죽음을 맞이했다.
사실 키메리에스는 그에게 흥미를 느끼고 있었으나 그뿐이다.
그에겐 그를 도와줄 이유도, 그럴 생각조차 없었다.
그런데 그는 또 한 번 일어섰다.
신이라는 이름으로.
“……어째서인가.”
키메리에스는 지혜로운 악마였다. 귀신창 밴이 깨어날 수 있었던 이유에 대해 알았다.
예전에도 귀신창 밴과 같은 자들이 몇 있었다.
하지만 그들 대부분은 끔찍한 형벌을 받게 된다.
죽음보다 더한 고통.
지옥에서 수천년간 받아야 하는 형벌.
그런데 귀신창 밴은 그것을 선택했다.
“오로지 왕을 위해서라고……?”
욱씬-
또 한 번 키메리에스의 가슴이 지끈거렸다. 자신이 인간일 때 섬겼던 왕의 기억이 스친다.
키메리에스는 일개 흑인 병사였으나 수차례의 공을 세웠지만 빼앗겼으며 그중에 하나의 공은 인정받아 왕을 알현하게 되었다.
그때 왕이 뱉은 말.
‘피부색이 왜 그런거냐? 역겹구나. 당장 치우거라!’
그것이 왕이 자신을 보자마자 한 말이었다. 자신은 치워지듯 쫓겨났다.
그런데 귀신창 밴이 섬기는 왕은 달랐다.
아기 돼지도, 성기사도, 마족 소설 작가도, 입이 거친 해적도, 켈베로스도, 그 누군가도.
차별 없이 그를 안아주고 보듬어주었다.
‘내가 섬겼던 왕이…… 당신이라면…….’
엘피스가 어째서 그를 섬기는가?
조금 이해할 것도 같다.
하지만 키메리에스.
그는 귀신창 밴을 도울 생각은 없었다. 그러나 그의 손은 식은땀에 축축하게 젖어, 무의식적에 중얼거린다.
“달리시게. 멀리멀리 달려, 그대의 왕이 있는 곳까지.”
* * *
헤이즈.
그녀는 고개를 저었다. 번뜩- 그녀의 머리에서 책에서 읽었던 문장이 떠올랐다.
‘신의 힘을 탐하나 그에 도달하지 못한 자들은 죽음의 신께 영혼을 팔아 그들의 힘을 얻으니, 그들의 영혼은 지옥에서 수천 년간 고통받고 환생할 기회조차 사라졌다 하였노라.’
그녀는 스르르 검은 재가 흘러나오는 그의 몸을 보고 그가 어떠한 선택을 내렸는지 알 수 있었다.
하지만 귀신창 밴.
그는 인자하게 웃어 보였다.
“예전에 전하를 처음 뵈었을 때, 내게 꽃게라면을 해주셨는데. 다시 생각하니 입맛이 돋네. 다시 한번 먹어보고 싶었는데…….”
“…….”
헤이즈는 그저 울었다.
헤츨링인 루나.
그녀는 처음부터 끝까지 모두 보았다.
귀신창 밴이 자신과 헤이즈를 위해 달려오는 걸, 수만의 적들 틈에서 물러서지 않는걸.
쓰러져도 일어서고, 쓰러져도 일어서는걸.
로드의 피를 타고난 그녀. 그녀는 귀신창 밴이 어떠한 길을 선택했는지도 알았다.
“끼에에에에에에에! 끼에에에에에에에! 끼에에에에에에!”
루나가 펑펑 울기 시작했다. 하지만 귀신창 밴은 말 위에 오른 루나를 올려다보며 활짝 웃었다.
“괜찮다. 루나. 사람은 언젠간 죽게 되는 법이란다.”
루나도 성장하면서 두려움이라는 감정을 가지게 된다.
그리고 죽음이라는 것을 상상하면 울음이 나올 것만 같았다. 그러나 귀신창 밴은 그런 상황에서도 웃어 보였다.
어린 그녀로서는 처음 이해하지 못했다.
자신을 버리면서도 무언가를 지키고자 하는 것.
한데, 귀신창 밴은 누구보다 행복한 미소로 웃어 보이고 있다.
그녀가 크게 깨닫는다.
나를 위해서가 아닌, 남을 위해서 살아가는 인생. 그리고 희생. 그것들 또한 충분히 가치 있고 웃을 수 있는 일이라는 걸.
그 순간 루나에게서 환한 빛이 터져 나왔다.
이제까지 콩이를 통해 몇 번의 깨달음을 얻었던 그녀이다. 하지만 이번은 달랐다.
[루나가 ‘희생’이라는 정신에 대해 크게 깨달음을 얻습니다.] [누군가를 위하여 희생할 때, 고통스러울 수도 있으나 즐거울 수도 있다는 것. 그녀가 새로운 이치를 깨닫고 큰 폭으로 성장합니다.] [루나의 모든 스텟 +50이 상승합니다.] [루나의 아버지. 민혁이 보상으로 모든 스텟 +2가 상승합니다.] [루나는 지금 이 순간 결심하였습니다. 자비로운 존재가 되어 세상 모든 존재를 안아줄 수 있는 드래곤을 꿈꿉니다.] [루나는 자애로운 드래곤 로드의 길을 걷게 될 것입니다.]귀신창 밴이 그런 루나를 보며 인자하게 웃었다.
“그래, 훌륭한 드래곤이 되거라 루나.”
“끼에에에에에에에!”
그리고 다시 귀신창 밴은 적들의 틈을 헤치고 나아가기 시작했다.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
파아아아앗-
앞을 향해 쇄도하는 귀신창 밴의 움직임이 더욱더 빨라지기 시작한다.
어느덧.
그는 자신들을 공격하고 있던 적들의 사이를 헤쳐 나오는 데 성공하기에 이르렀다.
그에 귀신창 밴은 지체하지 않고 말 위에 올랐다.
“이랴아아! 이랴아아아!”
그가 매서운 속도로 내달리기 시작했다.
그 뒤를 여전히 견고한 2만이 넘는 적들이 뒤쫓기 시작한다.
렌지는 서둘러 도망치는 밴을 보며 중얼거렸다.
“정말…… 성공했다고……?”
그의 의지가 해낸 일. 너무도 대단했다.
귀신창 밴은 계속해서 말을 타고 내달렸다. 그가 향하는 곳은 천외국과 연결된 비좁은 하수구가 있는 곳이었다.
간혹 앞지르는 적들을 물리치고, 때론 뒤를 돌아 적들을 막아내며 밴은 목적지에 도달하는 데 성공할 수 있었다.
아주 작은 통로 앞에 도착한 귀신창 밴이 부드럽게 웃어 보였다.
“헤이즈 양, 루나를 부탁합니다.”
“어, 어르신…….”
하지만 헤이즈는 차마 발걸음을 떼지 못하였다. 그는 여기에서 씁쓸하게 사라지게 될 것이다.
그가 그토록 좋아하던 전하의 품도 아닌, 이 냄새나고 더러운 하수구 앞에서 말이다.
“제 죽음을 헛되이 하지 말아주십시오.”
“……네.”
하지만 헤이즈는 루나를 힘껏 끌어안을 수밖에 없었다. 그가 만들어낸 기적 같은 일이다.
그의 희생을 헛되이 만들 순 없었다.
헤이즈가 작은 통로로 들어선다.
“끼에에에에에!”
루나가 가기 싫다며 애타게 귀신창 밴을 불러본다. 밴은 인자하게 웃으며 휘휘 한 손을 휘저어 보인다.
“어서 가려무나. 루나야.”
어느덧 루나와 헤이즈가 통로의 어둠 속으로 사라지고 귀신창 밴은 어느덧 당도한 수만의 적들과 마주했다.
콰직-
그가 창을 힘껏 땅에 박는다.
“이곳은 아무도 넘을 수 없네.”
렌지는 치가 떨렸다. 노장의 의지에 경의를 표하면서도 결국에 그 일을 성공시키고 자신들을 이토록 애를 먹인 노인에 의해.
또한, 수천이 넘는 아군을 잃게 만든 노인에 의해.
“쳐라!!!”
다시 한번 치열한 전투가 시작되었다.
창신의 힘을 계승 받은 귀신창 밴은 절대지존 NPC인 엘레를 뛰어넘는 경지에 도달해 있었다.
콰자아아아아악-
그의 창의 휘두름 한 번에, 수십 명이 죽어 나가고.
콰지익-
그의 창의 찌르기에 수십 명이 관통되어 절명한다.
10분, 20분, 30분이 지나도 귀신창 밴의 기세는 죽지 않았다.
콰콰콰콰콰콰콰콰콰콰쾅!
병사들과 가세한 드래곤 장로 벨라크의 마법폭격 수십 개가 동시다발적으로 그를 폭격한다.
하지만 그 폭발 속에서도 귀신창 밴은 하수구 앞을 막은 채 한 치의 물러섬도 내보이지 않고 있었다.
하나, 서서히. 아주 서서히.
[에르데스의 힘을 잃어가기 시작합니다.]에르데스에게 계승받은 창신의 힘이 서서히 사라져가고 있었다.
절대 이길 수 없는 것처럼 보이던 귀신창 밴이 천천히 약해지기 시작하고, 갈수록 그것이 눈에 보이기 시작하고 있다.
“신에게 영혼까지 바친 건가.”
드래곤 장로 벨라크. 그는 이 상황을 이해할 수가 없었다.
저런 감정적인 인간을 거느리고 있는 왕이 루나를 납치하고 그를 파괴의 본능을 가진 드래곤을 만들려고 한다는 사실에.
하지만 그 의문은 잠시뿐. 그들이 루나의 알을 훔쳐간 것은 맞기에, 그에게 공격을 퍼붓는 것을 멈추지 않는다.
마침내.
쿠우우우우웅-
귀신창 밴이 무릎 꿇었다.
사아아아아-
그의 몸에서 흩어지는 재가 눈에 띄게 많아졌다.
밴이 남은 한쪽 무릎을 꿇지 않기 위해 안간힘을 썼다.
하지만 결국에야.
쿠우우웅-
그의 마지막 무릎까지 꿇리며 그가 손에 쥔 빛의 창을 놓치고야 말았다.
탱그랑-
바닥에 떨어진 빛의 창이 스르르 검은 재가 되어 완전히 사라져갔다.
오랜 시간을 살아온 밴의 삶이 끝날 때가 되었다.
더 이상 전투를 하지 못하는 귀신창 밴에겐 그 누구도 관심을 갖지 아니했다.
그리고 귀신창 밴은 그 와중에도 작게 웃고 있었다.
이미 루나와 헤이즈는 먼 곳까지 도달했을 것이다. 기사들이 통로로 들어가 그들을 쫓아도 그들이 먼저 발렌시아에 도달할 것이다.
‘후회 없는 삶이었다.’
눈앞이 아득해지기 시작한다. 끔뻑거리는 그의 시야가 어두워지려고 한다.
영원한 안식, 그리고 고통으로 가야 할 그의 눈앞으로 마지막 한 사람이 떠오른다.
블랙 드래곤 보르몬에게 ‘절대극창’을 사용해 소멸된 적이 있던 밴.
그에게 민혁이 노발대발하며 말했다.
‘어르신. 다음부턴 절대 그런 무모한 짓 하면 안 돼요. 맨날 나는 물러서는 법을 배우지 못했네. 그런 대사나 치고! 어르신은 꼭 오래오래 만수무강하셔야 한다고요!’
‘허허허, 우리 아들. 아니, 전하. 걱정도 팔자이십니다. 이 늙은이가 더 오래 살지도 모릅니다?’
‘약속입니다. 어르신. 다음부턴 그런 무모한 짓 하지 않기로.’
‘허허, 약속. 또 약속하지요.’
활짝 웃고 있는 민혁의 얼굴이 그 앞에 그려졌다.
덜덜-
밴의 손끝이 그를 향해 뻗어진다. 환상으로 그려진 그의 뺨을 밴의 손가락 끝이 닿을 것만 같다.
이젠 죽음이 정말 코앞까지 온 듯하다. 눈앞에 환상밖에 보이지 아니하며 청각 또한 흐릿해져 가 소리가 차단되어간다.
그런 때에도 허상의 민혁의 얼굴 앞에 손가락을 뻗는다.
전하, 약속 지키지 못할 것 같습니다.
그가 중얼거렸다.
그때 그의 손가락 끝을 따뜻한 무언가가 감싸 쥔다.
그리고 감싸 쥔 손을 자신의 뺨으로 가져간다.
잠깐, 아주 잠깐 청각이 열리며, 다시 어두웠던 시야가 밝게 돌아온다.
그러자 보였다.
주변의 모든 적군이 쓰러지고 그 뒤로 드래곤 장로 벨라크가 고통에 몸부림치고 있다.
귀신창 밴의 손을 따뜻하게 감싸 쥐며 자신의 얼굴에 가져간 자.
그토록 보고 싶어 했던 사람이다.
그는 지금 펑펑 울고 있었다.
그가 무릎 꿇은 귀신창 밴을 꽉 껴안아주며 흐느꼈다.
“늦어서 죄송합니다. 어르신.”
“허, 허허. 허허허…….”
그 강인했던 귀신창 밴의 몸이 사시나무처럼 떨리기 시작했다. 결국 그의 눈에서 눈물이 흘러내렸다.
귀신창 밴이 천천히 몸을 떼내었다.
그는 자신이 스르르 사라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민혁의 눈에서 흐르는 눈물을 훔쳐내며 말한다.
“울지 마십시오. 왕이시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