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randdaughter of the Namgung family's return RAW novel - Chapter (119)_1
남궁세가 손녀딸의 귀환-119화(119/319)
“나는 네가 내 검을 그대로 따라 하길 원치 않는다.”
섭무광이 검을 검집에 넣었다.
그의 주위로 기운이 서서히 사그라들고 있었다.
“네게 내 모든 것을 넘겨주겠다만, 내가 한 그대로, 나의 모든 것을 따라 할 필요는 없다는 말이다.”
“….”
그 말이 검수로서 무엇을 포기한 것인지 설화는 알았다. 그것이 이렇게 웃으며 할 수 있는 말이 아니라는 것도.
무림인이 제자를 두는 이유는 자신이 평생을 일구어 낸 무공이 자신의 대에서 끊기길 바라지 않기 때문이다.
비록 육신은 죽을지언정 자신의 일생과 정신이 담긴 무공이 남아 후대에 알려지고, 나아가 연구를 이어가고 발전시킨다면, 그것만큼 값진 일이 있을까.
무공을 통해 무인은 영원히 존재한다. 무림의 역사에 하나의 흔적으로 남는다.
그것이 바로 많은 무림인이 바라는 바다.
그러나 섭무광은 설화에게 그것을 강요하고 있지 않았다.
“너는 네가 내게 말했던 대로 남궁의 무공과 내 무공을 배워, 너의 무학을 만들어 가거라.”
“….”
“그러다 어느 날, 싹수 괜찮아 보이는 놈 하나 만나면 그놈한테 내 무공을 가르쳐 주던지.”
말 그대로 전인(專人)이 되는 것이다.
계승자는 아닌, 전하는 자.
“…제 안목을 믿으시는 건가요?”
“너 정도 되는 놈의 안목을 못 믿으면 대체 누굴 믿을 수 있겠냐?”
설화를 향한 전적인 신뢰가 담긴 말이었다.
설화는 주먹을 꽉, 쥐었다.
스스로의 길을 찾아가고 싶다고 말한 것은 자신이다. 그런데 왜 기분이 썩 좋지만은 않은 걸까.
섭무광의 검과 그의 검에 담긴 그의 삶을 보았기 때문일까.
그의 무공이 이전 생애와 같이 쉬이 사장되지 않았으면 좋겠다.
“대주님의 검을 배워, 새로운 무공을 창안한다면 대주님께 영향을 받은 것이니, 그것도 무공을 발전시킨 것이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요?”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겠지.”
“그리고 전 대주님의 검법을 그런 식으로 이용만 할 생각도 없고요.”
나 좋자고, 이용하고 버리기에 풍뢰무공은 본가의 무공과 비견될 정도의 절학이다.
“전 그런 마음으로 대주님과의 수련에 임하고 있지 않아요. 전, 대주님의 무학을 존경하고 그 정신을 제 검에 담고 싶어요.”
“….”
“그러니 절 제자로 받아주세요.”
설화가 그의 앞에 무릎을 꿇었다.
섭무광의 눈썹이 꿈틀, 흔들렸다.
보법과 신법, 심법, 검법…. 모든 것을 알려주었지만, 그는 여전히 그녀를 제자로 삼겠다고 인정한 적은 없었다.
가르침을 받았으니 설화에겐 그가 이미 사부이지만, 그는 아직 설화를 제자로 인정하지 않은 것이다.
아마 그 뜻의 저변엔 조금 전 말했던 그 이유가 있을 터였다.
배우되, 따르지 않을 아이니까.
의도치 않았다고 해도 무의식중에 말이다.
“이거 맺고 끊는 게 확실한 꼬맹이셨군.”
섭무광이 황당하다는 듯 웃음을 터트렸다.
“제가 대주님의 계승자가 될게요.”
“….”
그의 눈빛이 사뭇 진지해졌다.
처음부터 제 길을 찾고 싶다고 말한 아이였다.
제자로 삼겠다는 말을 굳이 하지 않은 것은, 제 무공의 계승자라는 틀에 갇혀 한계를 정해두지 않길 바랐을 뿐이었다.
한데 그 마음을 안다는 듯이, 아이는 이 무공을 위해 바쳐온 자신의 일생을 존중하고 있었다.
자신의 지난하였던 삶이 담긴 이 무공을, 가벼이 여기지 않아 주었다.
“…좋다.”
그러니 어찌, 제자가 되겠다는 아이의 말을 거절할 수 있으랴.
“널 제자로 받아주마.”
설화의 표정이 일순, 밝아졌다. 설화가 후다닥 자리에서 일어났다.
양손을 가지런히 모으는 그녀를 보며 섭무광이 눈썹을 휘었다.
“뭘 하려는 거냐?”
“사제지연(師弟之緣)을 맺을 때는 구배지례(九拜之禮)를 올리는 것이라고 배웠어요.”
“흠….”
“제자의 절을 받으세요.”
“아니, 아니지.”
섭무광이 납죽, 절하려는 설화를 멈춰 세웠다. 그의 입술이 히죽, 휘어졌다.
“기왕 하는 거 제대로 받아 보자꾸나.”
* * *
제대로 된 구배지례를 받겠다던 섭무광은 설화를 만둣집으로 데려왔다.
그렇지 않아도 배가 고픈 와중에 만두와 소면 거기다 동파육까지 시켜주어서 설화는 정신없이 음식들을 욱여넣었다.
그러다 보니 무언가 이상함을 깨달았다.
“제대로 된 구배지례를 받는다고 하지 않으셨나요?”
팔짱을 낀 채 흐뭇한 표정으로 설화의 먹는 모습을 지켜보던 섭무광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랬지.”
“근데 왜….”
자신은 여기서 이러고 있는지?
“왜긴 왜야? 밥때니까 그렇지. 한창 커야 할 꼬맹이가 밥 거르면 안 된다. 지금도 봐라, 애걔? 고작 열 살밖에 안 되어 보이잖냐?”
애걔…라니.
착 가라앉는 설화의 눈썹에 섭무광이 크큭, 웃음을 흘렸다. 그러던 그의 표정이 사뭇 진지해졌다.
설화가 어느 정도 식사를 마친 것을 확인한 그가 웃음기 사라진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내가 물어봤던 건 생각 좀 해봤느냐?”
물어봤던 것?
잠시 고민하던 설화는 얼마 전 섭무광의 질문을 떠올렸다.
‘너는 검을 왜 드느냐, 이 말이다.’
검을 왜 드느냐.
그러기 위해선 스스로를 아는 것이 먼저라고 하였다.
하지만 설화는 아직 자신이 누구인지, 어떤 사람인지 알지 못했다.
하나, 요 며칠 섭무광과의 수련을 통해 확실하게 알게 된 건 한 가지 있었다.
“저는 검이 좋아요.”
섭무광의 입매가 빙긋, 휘어졌다.
“검이 좋으냐?”
“네.”
“왜 좋으냐?”
“검을 휘두르고 있으면, 아무 생각이 나지 않아서 좋아요. 오로지 검에 대해 집중할 수 있어서 좋아요.”
혈교와의 전쟁을 준비한다든가, 남궁을 개혁한다든가 하는 고민을 할 틈도 없이, 검을 휘두르고 있으면 오로지 검에 대해서만 고민하게 된다.
어떻게 하면 더 빠르게, 더 예리하게.
더 날카롭고, 위력적인 검을 휘두를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우위를 점하고, 효율적으로 피하고, 약점을 파고들 수 있을까.
한 걸음 먼저 내디디면 어떨까, 한 번의 호흡을 기다리면 어떨까, 사선으로, 횡으로, 종으로, 찌르거나, 또는 흘려보내면 어떨까.
“단순한 동작들이 모여 복잡한 식을 이루고, 그 식이 모여 법을 완성 시키는 것도 신기해요.”
그저 검을 휘두를 뿐인 시작이, 하나의 법(法)에 이르면 그것은 검수의 비기(祕器)가 된다.
“그렇게 만들어진 법에 담긴 검수의 생각과 사상, 고민들을 알아가는 것도 재미있어요.”
하나의 검법은 마치 무의 서책과 같아서 검법을 창안하고 발전시킨 이들의 생각과 고민이 집약되어 있다.
검을 휘두를 때의 발과 몸의 움직임. 찰나의 호흡 하나까지도.
그 어떤 것도 의미 없이 쓰인 것이 없다.
검수들은 검법의 완성을 위해 보법과 신법, 호흡 등의 필요한 무공들을 창안했고, 그렇게 창안된 무공이 어우러져 검의 역사를 이루어 낸 셈이다.
“선인들께서 그렇게 치열하게 이룬 역사를 알 수 있어서… 좋아요. 그런 분의 검을 배울 수 있어서 더 좋고요.”
섭무광의 무공은 살아있는 역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