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randdaughter of the Namgung family's return RAW novel - Chapter (125)_1
남궁세가 손녀딸의 귀환-125화(125/319)
* * *
화산으로 떠나기 전날 저녁.
설화는 남궁청해의 전각을 찾았다.
“….”
설화는 서책과 잡다한 물건들로 어수선한 남궁청해의 방을 멍하니 둘러보았다.
“아, 그래.”
그 난잡한 풍경과 뒤섞여 있던 남궁청해의 모습 역시 이전과는 다르게 매우 흐트러진 모습이었다.
며칠 관리하지 않은 것인지 머리는 헝클어져 있었고, 의복 역시 전과 달리 매무새가 흐트러져 이곳저곳 삐죽 튀어나와 있었다.
이전의 단정했던 모습이 떠오르지 않을 정도로 엉망이었다.
“잠시, 잠시 기다리거라.”
설화의 갑작스런 방문에 당황하여 우당탕거리며 방을 치우려던 청해는 짧은 한숨과 함께 치우기를 포기했다.
“괜찮으면 좀 걷겠느냐?”
“…네.”
걷는 건 그에게 더 필요해 보였다.
두 사람은 밖으로 나와 전각의 뒤뜰로 향했다. 시비들이 손대지 못한 곳은 청해의 방뿐이었는지, 정원은 깔끔했다.
나오자마자 바깥 공기를 깊게 들이마시는 그의 표정은 개운해 보이기까지 했다.
“뭘 하고 계셨어요?”
“음?”
“좀 전에요. 전부 기관진식과 진법에 관한 책이던데요.”
“…그새 그걸 보았구나.”
“보려고 본 건 아니에요.”
“괜찮다. 보면 뭐 어떻다고. 하하.”
청해가 시원한 웃음을 흘렸다.
아주 무겁지만은 않은, 한결 편안해진 웃음이었다.
“그저, 해보고 싶은 공부가 있어 마음껏 해보는 것뿐이다. 그동안은 무언가에 몰두할 수 있는 여유가 없었거든.”
처음엔 조금씩 도와주던 가문의 일이 어느새 짐이자 족쇄가 되어가고 있었다.
가주가 되고자 하는 마음으로 시작한 것만은 아니었으나, 가문의 일을 하다 보니 주위에선 그를 가문을 이끌 차기 가주감이라며 추켜세웠고, 그러다 보니 어느 순간 그 시선과 기대에 맞추어 살아가려 노력하고 있었다.
물론 가주가 되어야 한다고 부추기던 부인의 재촉도 한몫하였지만.
“사실 난 검보단 진법을 좋아한단다.”
“알고 있어요. 진법에 뛰어나시다는 것도요.”
천무제에서 보았던 남궁청해의 진법을 잊을 수가 없다.
고작 몇 개의 돌을 이용해 그리 넓지 않은 비무대를 방황하게 만들었던 그 놀라움을.
“그래서 이참에 가문의 진법과 기관들을 좀 손볼까 해서 말이다. 가문에 큰 피해를 끼쳤으니 그런 것이라도 해야 마음이 편할 것 같더구나.”
세가의 장원에는 침입자를 막고 위험을 알릴 수 있는 여러 진법과 기관이 설치되어 있다.
어릴 때부터 진법에 재능을 보였던 청해는 그것들을 오랫동안 관리해 왔다.
가문의 크고 작은 일들을 도맡기 시작하고 나서는 다소 소홀할 수밖에 없었는데, 이제야 돌아볼 여력이 생긴 것이다.
처음엔 무기력함을 떨쳐내 보고자 시작한 일이 어느새 잊고 지낸 어린 날의 즐거움을 되살려 주고 있었다.
근래 들어 이토록 무언가에 몰두할 수 있었던 기회가 있던가.
청해는 지금 이 순간이 즐거웠다.
“그래서… 이번엔 무슨 일로 온 것이냐?”
“…그냥요. 숙부님께서 잘 계시는지 궁금해서요.”
사실은 가문이 텅 비어있게 된 상황에, 홀로 자책에 빠져 아무것도 하지 않고 있을까 봐 와본 것이지만.
‘그럴 필요가… 없었네.’
생각보다 강한 분이셨구나. 숙부님은.
설화의 입매가 호선을 그렸다.
꾸민 것도, 의도한 것도 아닌 자연스러운 미소였다.
“저는 내일 화산으로 가요. 할아버지와 같이요.”
“아, 화산에서 사람이 도착한 모양이구나.”
도착한 지 반나절이 지났지만, 아직까지 소식을 알지 못할 정도로 청해는 제 일에 몰두하고 있었다.
짧은 시간 내에 생긴 참 많은 변화였다.
“조심히 다녀오거라. 지난번에도 위험한 일이 있었지 않으냐.”
“할아버지가 같이 가시는데요. 그동안 본가를 잘 부탁드려요.”
청해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그럼.”
설화는 청해에게 꾸벅, 인사한 뒤 걸음을 돌렸다.
이곳을 찾아올 때보다 훨씬 가벼운 걸음이었다.
“설화야.”
“?”
“고맙다.”
“….”
어디선가 시원한 바람이 불어왔다.
이전보다 조금은 흐트러진 모습이지만, 남궁청해는 여전히 선선함이 어울리는 사람이었다.
배웅하는 그의 미소가 이전보다도 홀가분해 보였다. 그 선선한 저녁 공기 속에서 청해가 손을 흔들었다.
설화는 그런 청해를 향해 다시 한번 꾸벅, 인사한 뒤 전각을 나섰다.
* * *
안휘에서 섬서까지는 하남의 하단을 통하는 관도(官道)를 통하기로 했다.
가주인 남궁무천을 필두로 흑룡대주와 흑룡대의 반이 선두에 섰고, 화산의 두 제자와 설화와 의약당주가 탄 마차가 중심에, 후미에는 나머지 흑룡대의 절반이 따랐다.
길을 서두르기 위해 최소한의 병력으로 일행을 꾸렸지만, 마차를 이용하는 이상 속도는 그리 빠르지 않았다.
유표가 마차를 보며 유강에게 전음했다.
– 화산에 연락은 취한 것이냐?
유강이 유표를 흘낏 보았다가 어색함을 들키지 않으려는 듯 시선을 앞으로 고정한 채 대답했다.
– 아마… 남궁에서 하지 않았을까요…?
사실 하지 않았다. 하지 말라고 했다.
이전에, 남궁설화가 찾아와 화산에 도착하기 전에 반드시 해야 할 일이 있으니 방문을 미리 알리지 말라 하였기에, 알겠다고 하였다.
– 확실한 것이 아니구나.
딱딱한 제 사형의 대답에 유강은 꿀꺽, 침을 삼켰다. 누군가를 속이는 것은 역시나 제 성격에 맞지 않는 일이었다.
겨우 할 수 있는 대답은.
–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속으로 울음을 삼키는 것뿐.
그런 유강을 잠시 바라보던 유표는 말의 속도를 높여 선두로 향했다.
차마 남궁무천에게 물을 수는 없어서 그 뒤를 따르는 흑룡대주에게 향했다.
“대주님.”
“아, 도장. 무슨 일이오?”
“혹 남궁 세가에서 화산을 방문할 예정임을 본문에 미리 언질을 주셨습니까?”
“음. 아직이오.”
“…예?”
벌써 하남에 들어섰는데 아직이라고?
“이대로 아무런 말씀 없이 쳐들어가는 것은 예의에 어긋나는 일이 아닙니까?”
“쳐들어가다니. 누가 들으면 본가가 화산을 습격이라도 하려는 줄 알겠소.”
“….”
고삐를 쥔 유표의 손에 힘이 들어갔다.